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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2 (반양장) - 그 후 이야기 ㅣ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90
진 웹스터 지음, 서현정 옮김 / 더클래식 / 2018년 2월
평점 :
<키다리 아저씨>의 감동이 컸던 탓에 '그후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고 망설임없이 구매하고 말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주디와 저비스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주디의 단짝 친구였던 '샐리 맥브라이드의 사랑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샐리가 쓴 편지들' 속에서 주디의 이야기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었는지 말로 다 하지 못한다. 허나 끝내 '주디가 쓴 편지'는 찾을 수 없었다. 온통 샐리의 편지들뿐이었고, 그나마 주디에게 쓴 편지조차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큰 실망을 하면서 읽어나가는 도중에 '새로운 사랑이야기'를 발견하면서 빠르게 몰입해나갈 수 있었다. 바로 '샐리 맥브라이드'가 새로운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이 '자신이 직접 쓴 편지'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샐리가 사랑하는 남자는 누구였을까? 그 이야기는 잠시 나중으로 미루고...
1권에서 주디는 고아원에서 자란 소녀로 등장했고, 뜻밖의 후원자가 보내준 든든한 후원에 힘입어 반듯한 숙녀로 성장해서 사랑에 성공하는 결말을 보여주었다. 전세계 수많은 소녀들이 동경하는 멋진 남자와의 결혼에 성공하는 '현대판 신데렐라'가 <키다리 아저씨>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2권인 이 책도 '현대판 신데렐라'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았을까? 그건 아니다. 2권의 주인공인 샐리 맥브라이드는 20세기 초반의 여성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여성도 남자 못지 않게 '사회적 역할'에 충실할 수 있고, 고등교육을 받고서도 좋은 혼처를 잡아 결혼하고 '한 남성의 아내' 역할로 만족을 해버리는 당시의 여성관을 싹 뜯어 고치는 내용으로 이 책을 장식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당찬 여성이 자신의 꿈을 꺾지 않은 채 '사랑'에도 성공하는 내용을 담아서 재미와 감동을 놓치지도 않았다.
줄거리를 살짝 보자면, 주디는 어릴 적 자랐던 고아원의 새원장으로 샐리 맥브라이드를 점찍었다. 물론 '샐리의 동의'가 필요한 조치였으나, 주디는 샐리가 '고아들의 원장'으로 제격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샐리도 당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남자'를 만나 성대한 결혼식을 치르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이미 결혼 상대로 '고든'을 선택해놓은 상태고 말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둘 사이는 결혼을 약속하며 약혼을 하기도 했다. 뉘앙스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둘 사이는 '약혼까지'만이었다. 그런데도 샐리는 '환상의 짝꿍'을 찾는데 성공했고, '자신의 일'까지 놓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한다. '팬들턴 부부(주디와 저비스)'에 이어 두 번째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완성되는 결말인 것이다.
이렇게 일과 사랑을 모두 잡은 '커리어우먼'의 이야기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동화'같은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실제로 현실판 '맞벌이 부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기보다 '처절한 부부싸움'이 날마다 일어나는 끔찍함만 떠오르곤 한다. 자아실현에 성공한 커리어우먼들은 행복한 결혼을 꿈꾸며 '사랑스런 남자'와 달콤한 연애에 빠지지만, 결혼과 동시에 모든 '환상'은 다 깨져버리고 '자신의 일'까지가 사랑해줄 것만 같았던 남편은 온데간데 없고 '시월드'의 등쌀에 기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며느리가 되어 버리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주는 '3중 스트레스'는 여성의 건강과 젊음, 그리고 '삶, 그 잡채'를 몽땅 말아먹는 '괴물'처럼 느껴지곤 한다. 물론 이렇게 끔찍한 현실만 있지는 않다. 부부사이에 알콩달콩 깨가 쏟아지기도 하며, 자식들이 건내주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에게 연애와 결혼, 그리고 임신, 출산, 육아,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물론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 '일'도 포기하지 않는 조건을 충족하면서 말이다. 결국엔 '풍족한 돈'인 걸까? 풍족한 돈을 한방에 해결하기 위해 '돈 많은 남자'를 꼬셔야 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결국엔 '돈 많은 남자'를 꼬시기 위해 아름다워져야 하고 화장하고 치장하고 다이어트에, 성형까지 해야하는 '현대판 신데렐라'가 되어 차가운 유리구두에 구겨넣어야 하고, '현대판 백설공주'가 되어 쓰디쓴 독사과까지 씹어 삼켜야하는 것이 '현대여성의 굴레'란 말인가?
현대여성이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렵지 않게 잡기 위해서는 '여성의 몸'을 뜯어고치거나 무조건적인 '여성의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남성의 의식구조'를 바꾸고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어차피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성의 출산'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현대여성이 '출산기피 현상'을 보이는 까닭은 앞서 열거한 끔찍한 현실 때문이다. 거기에 '경력단절'이라는 복병까지 여성을 옭아매고 있는 현실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성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어야만 한다. 누구보다 '남성'에게 말이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남성들은 볼멘소리를 한다. '역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장내에서 '선의의 경쟁(?)'를 무너뜨리면서 '여성의 이익'을 챙겨주는 불공정한 처사라면서 말이다. 이를 테면, '임신, 출산, 육아 휴직'으로 1년~2년 동안 '휴직'을 하고서도 아무런 불이익도 없이 '복귀'할 수 있다면, 여성들은 첫째, 둘째, 셋째를 연이어 낳으면서 10년간 경력단절 상태에서도 당당히(?) 복직을 해서 그동안 남자직원들이 쌓아놓은(?) 달콤한 이익만 챙겨가게 되니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성이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 뿐만 아니라 '집안일'까지 도맡아하면서 아내와 엄마 역할까지 해내면서 낮에는 '직장일', 저녁엔 '집안일', 밤에는 '마담일(직장스트레스로 고단한 남성의 술접대)'까지 몽땅 해내는 완벽한 여성과의 결혼을 꿈꾸는 못난이들의 망상엔 한없이 관대해져버리는 찌질한 남성들이라니...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결국엔 '남성들의 의식구조 개선'이 절실하다. 남자가 임신과 출산을 할 수는 없을테니, 결혼을 한다면 '집안일'과 '육아' 정도는 전담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직장 스트레스는 더는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젠 '맞벌이'가 기본 옵션이니 여성들도 직장 스트레스가 장난 아닌 셈이다. 그러니 스트레스도 부부가 '함께' 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짜내야 한다. '주5일제'가 아닌 '주4일제'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의 윤똘께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토욜과 일욜'만 쉬는 것이 아니라 '수욜'도 휴식을 할 수 있게 지정해버리는 것이다. 저출산 문제를 들먹이며 '여성의 희생'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연인과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늘려서 다른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희망적인 정책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동화같은 사랑이야기에 뭔 정책연구 같은 소리나 늘어놓았지만, 아이들과 토론수업을 진행하면서 이야기한 내용의 일부를 옮겨 적어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키다리아저씨 2>는 사랑이야기책이다. 그냥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과 사랑'을 모두 놓칠 수 없었던 진취적이고 멋진 현대여성이 펼쳐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거기에 113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나날이 펼쳐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도 놓쳐선 안 될 것이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아가씨'가 고아원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펼쳐지는 사건과 사고는 덤이다. 그리고 멋진 어른이라면 '자기 앞에 놓인 힘겨움'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돌파하듯 해결해내야 하고 말이다. 물론 어린 주디처럼 샐리에게도 팬들턴 부부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전편의 '키다리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조력자도 있고 말이다. 샐리는 바로 그 '조력자'와 끝내 아름다운 사랑을 맺고 만다. 처음엔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며 샐리가 하는 일마다 방해하는 나쁜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전반적으로 좋은 내용의 훌륭한 책이었다. 고아원을 운영하는 이들이 '우생학'과 같은 사이비과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장면이 조금 끔찍하긴 했지만, 이 소설이 쓰여졌던 20세기 초반에는 '우생학'도 최신 과학의 범주에 속했으니 그리 탓할 것은 못 된다. 이 책이 쓰인 지 얼마 되지 않아, 히틀러의 나치와 일제의 군국주의가 '우생학'을 빌미로 끔찍한 대학살을 자행한 것을 지은이는 몰랐을테니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땐, 살짝 '독서지도'가 필요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