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원전 완역판 3 : 초망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가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천자다. 동탁이 권력을 잡은 뒤에 '영제'를 폐위하고, 그 자리에 '헌제'를 황위에 등극시키는데, 말 그대로 '허수아비 황제'로 세우기 위해서다. 실제 정사에서도 변변한 권위를 누린 적도 없이 여러 군웅들에게 끌려다니다시피 할 정도로 '천도'를 많이 했고, 여러 군웅들에게 '옹립'되는 것으로 '권력의 상징'이 되어 그야말로 '바지 사장'마냥 처지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이는 헌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가 없어서라기보다는 헌제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충신'이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신하들이 충신을 자처하고 저마다 헌제를 모시겠다고 서로 각축을 벌이곤 하지만, 자신의 수중에 떨어지자마자 헌제를 앞세워 '제 잇속'만 챙기기 급급하니 황제의 위신이 제대로 설리 만무한 까닭이다.

 

  이처럼 한 나라의 통치권자가 무능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하가 왕처럼 군림하며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냅둬서는 안 될 일이며, 신하가 왕을 능멸하는 것을 냅두는 것도 나라가 망조에 들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 까닭에 헌제는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 '선위'라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망국의 임금이 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혼란은 잠잠해지지 않고 '위진남북조 시대'로 계속 이어지며 훗날 '수'가 통일을 할 때까지 백성들은 끊임없는 전란과 굶주림에 허덕이게 된다.

 

  이렇게 '중앙정치'가 대혼란에 빠지니 '지방영주'에 해당하는 군웅들이 중앙의 간섭을 벗어나 저마다 자신의 영지를 통치하니, 백성들은 잠시라도 먹을 걱정, 죽을 걱정을 덜어줄 뛰어난 영웅의 등장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비의 덕정(德政)'이 유명세를 끌게 된 것이다. 잠시라도 유비가 다스리던 지역은 세금을 덜내고 전쟁터에 끌려갈 걱정을 덜 수 있으니 유비는 어디를 가나 '환대'를 받았던 셈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유비는 한창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된 영지도 얻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둘러싼 영주들은 가혹하리만치 세금을 걷어 군사를 양병하고, 그렇게 양병한 군사를 앞세워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려 혈안이 되어 있는데도 유비는 세월아 네월아~ 백성들의 안위를 위한 너그러운 정치를 하였으니,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용할 정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능할 정도로 '명망'을 쌓은 덕분에 적들에게 쫓기는 처지가 되어서도 제 한 목숨은 건질 수 있는 묘한 재주(?)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을 '유비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에 반해, 조조는 화끈하다. 아마 <삼국지> 속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패배도 많아서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기곤 한다. 그때마다 아끼던 측근들이 조조 대신 희생을 당하는데, 조조는 그런 희생 앞에 눈물을 아끼지 않고 펑펑 울어대는 '쇼맨쉽'이 정말 어마어마할 정도다. 심지어 자신의 가족이 죽었는데도 그 슬픔보다 '신하들(특히 호위무장들)'이 죽을 때마다 후하게 장례를 치뤄주며 재산도 아끼지 않고 공로도 아낌없이 베푸니 '조조측 장수들'은 조조를 위해서 신명(身命)을 다하겠다는 맹세를 끊임없이 한다. 이것이 '조조의 매력'이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손견과 손책, 그리고 손권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들의 공통된 별칭이 바로 '강동의 호랑이'다. 손씨 집안은 대대로 양자강(장강)의 동남쪽에서 세력을 키워왔기에 '지역의 맹주'로 성장했다. 거기다 비옥한 땅과 풍부한 물자, 편리한 교통으로 일찍이 발달한 문물로 인해 '한 지역'에 오래 머물고 있어도 저절로 부를 쌓을 수 있는 풍요로움이 특색이었다. 비록 아버지인 손견과 형님인 손책은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지만, 손권 대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기반을 다지고 풍요를 누렸으니 다른 어떤 세력보다 안정적인 발전을 이룬 셈이다. 만약 조조 세력의 위협만 없었다면 손권은 강동의 패권을 바탕으로 오래도록 평화를 누리며 번영했을 것이다.

 

  이처럼 어지러운 세상에는 '독특한 매력'이 큰 세력을 이루는 비결이 되곤 한다. 황제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세상의 혼란을 멈출 영웅이 세력을 끌어모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매력'이란 말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어지러운 정치판에 뛰어들 요량이라면 우선 '자기만의 매력'부터 확실히 부각시켜야 한다. 또한 그 매력은 '능력'과 직결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능력은 '파워'와 '모럴', 두 가지로 집중되어야 한다. 현대에는 '폭력'이 금기시 되곤 하니 '경제력'과 '도덕심'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능력은 절대적으로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닌 '서민을 위한 경제력과 도덕심'이어야만 한다. 그 어떤 정책이라도 국가경제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부의 분배'를 공평하고 공정하게 해야 하며, 그 어떤 행보라도 양심에 꺼릴 것이 없고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것'이어야만 한다. 그런 정권이어야 올바르다 할 것이며, 그런 인물이어야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속에서 그런 위대한 지도자는 드문 일이니 '경제'와 '도덕',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경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도덕군자라 하더라도 '배고픔' 앞에서 체면만 차리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또한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풍요를 누리고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말이다. 현실은 그렇더라도 말이다. 나는 왜 '도덕군자'가 더 끌리는 걸까? 실속을 다 챙기는 '조조'는 하는 짓마다 밉기만 하고, 실속은커녕 제 밥그릇마저 못 챙기는 '유비'가 하는 짓은 이쁘기만 하다. 한편, 잇속도 챙기고 적당히 도덕적인 '손권'은 하는 짓마다 쏘쏘~고 말이다. 유비의 매력이 이토록 징허게 오래 지속되는 까닭은 정녕 무슨 조화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