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원전 완역판 2 : 군성
요시카와 에이지 엮음, 바른번역 옮김, 나관중 원작 / 코너스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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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탁이 진류왕(훗날 헌제)을 앞세워 권세를 휘어잡자마자 국정은 혼돈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 충신들은 '십상시'를 몰아내면 국정농단을 바로 잡고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워 황건적의 난도 절로 사그라들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삶도 나아질 거라 예상했지만, 그 십상시를 몰아내자 마자 '동탁'이라는 또 다른 승냥이를 불러오고 만 것이다. 급기야 여포까지 양아들로 삼게 되자 동탁의 횡포는 더욱 심해진다. 이를 저지 위해 여러 군웅들이 '반동탁연합군'을 조성해 낙양을 공격하지만, 동탁은 '장안천도'를 강행하며 낙양을 불바다로 만들고 유유히 도망가버리고 만다. 정녕 동탁을 처단할 영웅은 없단 말인가?

 

  아니 있다. 다름 아니라 '영웅, 초선'이라는 아리따운 여인이 동탁을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동탁이 국정농단을 벌이면서도 굳건하게 권세를 지킬 수 있는 비결은 '이유의 꾀'와 '여포의 힘'이었다. 이 둘이 '반동탁 세력'을 뿌리부터 잘라놓았으니 천하의 영웅조차 변변한 힘을 쓰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철옹성 같은 동탁의 권세를 무너뜨린 계책이 바로 '미인계'였던 것이다.

 

  초선은 사도 왕윤의 기녀로, 기록에 의하면 '딸처럼' 아끼는 여인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왕윤이 동탁을 처치할 방도가 없어 고뇌에 빠져있는데, 평소 초선이 아버지처럼 모시던 왕윤을 위로해주려하자 왕윤에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것이 바로 '미인계'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초선의 미모로 여포를 홀린 뒤에, 정작 초선을 동탁에게 보내버려 둘 사이를 갈라놓는 '이간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초선의 미모'가 출중하지 않았으면 가능하지도 않았던 터다. 그도 그럴 것이 '초선의 미인계'도 번번이 동탁의 모사 '이유' 때문에 어그러질뻔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자' 하나 때문에 큰일을 그르칠 수 없다고 끊임없이 동탁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동탁도 멍충이가 아닌 탓에 다잡은 황제의 자리를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망칠 수는 없다고 여러 번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포가 멍충한 탓에 초선의 미인계는 성공할 수 있었고, 동탁도 색욕을 멈출 수 없었기에 초선의 미인계는 적중했던 것이다. 자, 이렇게해서 '영웅, 초선'은 황위를 찬탈하려는 반역자를 처단하는데 일등공신이었으며 동탁의 폭정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해낸 '영웅, 그 잡채'였다.

 

  그런데도 초선은 계책이 성공을 했는데도 '자결'을 하고 말았다. 훗날 여포가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에게 끔찍한 짓을 할까 두려워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사로잡혀' 지내게 될 것이 몸서리쳐지게 싫어서 그랬던 것일까? 어떤 이유 때문이었더라도 '영웅'에게 걸맞지 않은 죽음인 것은 틀림없다. 만약, 초선이 '남자영웅'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전국의 영웅들이 초선의 행적을 위대하다고 평가하며 황제로 추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통치자'의 자리에 올려 혼란을 잠재울 중심으로 삼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여인의 사회활동'을 인정하지 않던 '가부장제의 그늘'속에서 초선은 자결하고 말았다. 그리고서는 아무도 안타까워하지도 '초선의 시신'을 되찾아 정중하고 명예롭게 장례를 치뤄주지도 않는다. 아버지처럼 굴었던 사도 왕윤조차 말이다.

 

  왜 이렇게 '여성영웅'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것일까? 초선은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사람이긴 하지만, 요시카와 에이지가 <삼국지>를 쓰던 시기는 1940년대로 20세기란 말이다. 아무리 '원전'에 충실했더라하더라도 200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지독하리만치 오래되고 한없이 낮추어보기 일쑤다. 그렇다면 21세기가 된 지금은 <삼국지> 속 여성영웅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아쉽게도 '고전소설' 속의 줄거리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내용을 바꾼다면 그건 '다른 소설'이지 '원작'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석'을 달리하는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 우리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시선'을 바로 잡아야 하는 진정한 양성평등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고전소설 속의 인물에 대한 평가를 '시대상'에 맞게 바로 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먼저, 초선이라는 인물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리기 위해선 '미녀'라는 수식어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요즘에도 여자에게 '예쁘다'는 말은 칭찬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예쁨'이라는 '기준'으로만 여자를 평가하는 것은 무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여성의 가치가 오직 미모 뿐이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남자나 여자 모두 '인간의 가치'로써 똑같은 잣대로 평가를 내려야 한다. 그러므로 '초선의 미인계'가 아니라 '초선의 이간계'라고 바로 잡아야 한다. 물론, 동탁과 여포 사이를 금가게 만든 궁극적인 이유가 '예쁨'이긴 하지만, 어차피 계책의 핵심은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것, 이간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웅의 죽음'에 걸맞는 재평가를 해주어야만 한다. 엄청난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그 능력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희생했다는 점에서 초선은 '영웅'임에 틀림없고, 한나라 황실을 바로잡기 위해 충성스런 희생을 했으니 '충신'에 버금가는 일을 해낸 것이 틀림없다. 비록 초선이 '관직'에 오른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충신이라 칭할 수 없다고는 해도 위기에 빠진 황제를 위해,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희생했으니 모든 영웅들의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이렇게 제대로 존경해주어야 '여성'들도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제 몫'을 해내며 지킬 것이 아니냔 말이다. 위기에 빠져 급한 처지에 놓였을 때에는 아낌없이 '희생'을 요구해놓고, 위기를 극복한 뒤에는 '천한 목숨'이니 입에 올릴 까닭이 없다고 해버린다면, 비상식도 이런 비상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낡았다는 이유로 곧잘 비판하곤 한다. 그런데 여인들에 한해서는 '푸대접'도 당연하다는 듯이 넘겨버리기 일쑤다. 심지어 '여자의 적은 여자'라듯이 여자들끼리도 서로를 공격하며 헐뜯는 일이 무한반복되고 있다. 그 와중에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여인들의 다툼'을 즐기는 것이 무정한 남정네들의 어리석음이고 말이다. 인류의 절반은 '여성'이다. 그런 여성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사회는 정상적인 발전을 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문제도 알고 보면 우리 사회가 '여성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공정한 방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한 탓이 가장 크다. 그런데도 여성들의 희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하지 않고서 '애를 셋이나 낳았으니 수고비를 아낌없이 퍼주겠다'는 안일한 정책으로 해결이 될 것 같은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만 한다. 더는 여자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여자인 까닭에 더 챙겨줄 것이 없는지 살펴야 할 때다. 그리고 제대로 된 해법을 바란다면 '여성의 목소리'에 귀기울어야 한다. 들어주고 싶지만 여자들의 속좁고 근시안적인 소견일 것 같아 걱정이 된다는 헛소리 좀 집어치워라. 그 '여성'의 다른 이름이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회나 인류 역사의 위대함은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고귀한 희생'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지금, 우리가 더 나은 '선도국가'가 되기 위해서 '여성의 힘'이 절실해졌다. 여성들이, 아니 우리 어머니들이 아낌없는 희생을 하고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말할 때까지 '여성의 진정한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것이 또 다른 인류의 절반인 '아들'이 해야할 가장 숭고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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