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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
박정은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11월
평점 :
이 책은 인문학책으로 세 가지 논점에서 '인간다움'을 논하고 있다. 1부에선 '코로나 시대'를 맞아 달라진 일상을 맞이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그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기로움을 이야기했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어쩌면 불편한 주제인 '21세기 페미니즘'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마지막 3부에서는 '낯선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방법론을 고찰하고, 대립과 갈등이 아닌 '공존'을 모색하는 마당을 제시했다.
지은이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고 있으며, 현재는 이탈리아 로마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 책을 쓸 당시에는 '로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그리고 수녀이며 학자다. 미국 홀리네임즈대학의 영성학 교수라고도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 다분히 '종교적'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딱히 주제가 종교적이지는 않았다. 책제목조차 '인간다움'이 적혀 있으니 말이다. 그저 시종일관 '인간'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이다. 딱히 어느 종교적인 관점에서만 논하지 않는 것이 퍽 맘에 들었다.
책 속에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였다. 나는 '남성'이면서 동시에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나에게 "남자는 페미니즘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고 공격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난 '페미니즘'을 페미니즘이라 얘기하지 않는다. 솔직히 까놓고 얘기를 한다면, '페미니스트'는 다분히 '백인여성만을 위한 이상주의자'로 백인여성이 아닌 유색인에 대한 편견도 심하며, 남성들은 모두 성범죄자, 아니면 예비 강간범 취급을 하는 지독한 편견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여성들이 나를 '페미니스트'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는 큰 반감이 없다. 나는 차라리 '여성주의자'라고 불리우고 싶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를 '문제시'하고 바로 잡기 위해 운동을 펼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말이다. 그런데도 그런 불평등을 눈앞에 두고서도 여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할라치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느니, 남성과 여성을 '편가르기'하려는 모략이라느니...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일삼는 인간답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아주 가관일지경이다. 여성에 대한 우대정책이라고 여겨진다면 '당신네 엄마를 위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억울하진 않을 것 아닌가. 그리고 당신의 아내와 딸이 살아갈 사회인데, 차별로도 모자라서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엉망진창인 사회시스템을 계속 유지하자고 고집부릴 셈이냔 말이다. 당장 '남성'들이 손해를 보는 정책일 것 같아도 큰 그림으로 보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일뿐인 것이 훨씬 더 많다. 왜 그런 '최소한 것'조차 열린 마음으로 남성과 여성이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단 말인가.
여성 운동은 좁게 보면 '유리천장'을 없애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양성평등'을 이루어 남녀차별이 없어진 세상을 만들어 '운동, 그 잡채'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세상을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성 운동'은 여성만이 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남성도 동참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페미니즘'이란 명칭을 빼버린 것이다. 너무나도 복잡하다 못해 난잡해진 개념을 다시 '단순화' 시킴과 동시에 '누구'에게나 열린 운동으로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다. 물론, '여성 운동'이란 명칭도 이미 어디선가 쓰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운동가'들이 이미 활약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운동을 여자만의 전유물로 삼았을 것이다. 그런 편협함을 깨고 '남성'도 동참할 수 있는 진정한 여성주의운동으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 꼭 그래야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인간다움'을 이런 관점에서 출발하면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남을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자신도 힘든 상황이지만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이다. 제주도에 낯선 이주민이 왔을 때도, 일각에선 '종교적 배타성'을 앞세워 예멘 난민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날선 주장을 했지만, 그들이 체류하고 있던 30일 남짓한 기간동안 많은 제주도민들이 그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며 잠시나마 평안함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는 소식을 듣고, 새삼 '인간다움'을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AI가 지배할 미래에도 '인간다움'은 필수조건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러면서 AI가 '인간다움'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들이 인간세상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도 담았다. 하긴, '인간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입력했다고 하더라도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AI가 인간을 어찌 대할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리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아간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나도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곤 한다. 그러다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곤 한다. 마치, 깨끗한 공기를 당연하게 여기다가 '오염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나서야 콜록거리며 괴로워하다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공기'도 '인간다움'도 청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다운' 당신의 도움이 절실하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