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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 미국 문학의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 ㅣ 클래식 클라우드 12
최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뒤늦게나마 부족한 '문학적 소양'을 쌓을 요량으로 닥치는대로 고전문학을 섭렵하다보니 결국 '작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문학의 배경지식'과 '글쓴이의 뒷이야기'가 더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돌고 돌아 다시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를 다시 손에 들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가 애초에 100권을 목표로 잡았다고 해서 '관심도서'에 올려두었는데, 코로나가 대유행을 하고 난 뒤에 뜸해지더니 목표에 다다르기도 전에 멈춰서고 말아서 참 아쉬웠더랬다. 다시 '시작'할 것을 의심치 않으니 더 기다리면서 '완간'을 기원해본다.
작가 분야에서는 코난 도일로 시작해서 헤세와 단테를 지나 네 번째 순서로 '피츠제럴드'를 읽게 되었다. 이 시리즈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도 '작가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을 읽을 수 있어서 '한 편의 기행문'을 읽듯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더구나 풍부한 사진이 실려 있어서 '글'로만 남긴 기행문과는 달리 '시각적인 정보' 또한 함께 읽을 수 있기에 막연한 감상이 아닌 '사실적인 느낌'으로 작가의 삶에 다가갈 수 있어서 참 좋다. 뿐만 아니라 '사진' 곳곳에 감춰진 작가의 뒷이야기도 '저자의 세련된 글'을 통해서 접할 수 있기에 견문을 넘어 '풍부한 배경지식'까지 쌓을 수 있기에 좋았다.
그래서 <피츠제럴드>를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피츠제럴드의 소설들은 대부분 '자전적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단언컨대,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해서 <낙원의 이편>, <밤은 부드러워>, 그리고 <리츠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등의 단편소설들까지 거의 대부분 피츠제럴드가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대다수의 소설가들이 이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피츠제럴드의 경우엔 좀 특별한 무엇이 있었다. 그건 바로 거의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의 삶은 화려했고, 늘 '사교계'에 주목받는 스타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상반된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게 바로 이 책에 담긴 '호기심'이었고, 그것이 또한 '매력적인 서술'로 담겨 있었다.
그 가운데 <위대한 개츠비>에서 주인공인 개츠비와 작중화자인 닉은 '피츠제럴드' 자신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한다. 또 <밤은 부드러워>에서 남자 주인공은 '피츠제럴드'였고, 여자 주인공은 그의 아내인 '젤다'가 모델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그의 소설 곳곳에서 '피츠제럴드'라는 자신을 등장시키고, 그것이 마치 유명화가들이 그림 속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는 것 같은 '시그니처'처럼 느껴지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평가들은 모두 그가 '심장마비'로 죽고 난 뒤에야 관심을 받게 된 것들이란다. 그의 유일한 히트작은 <낙원의 이편>이라는 장편소설 하나뿐이었고, 너무나도 유명한 <위대한 개츠비>도 그가 죽은 지 10년 뒤에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그의 삶은 '가난, 그 잡채'였다. 더구나 그의 아내 젤다가 '정신병'을 앓고 정신병원은 전전했던 탓에 '병원비'에 쪼들리는 상태였고, 그나마 '원고료'를 받으면 겨우 병원비를 충당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작정 글을 써냈고, '단편소설'도 뚝딱뚝딱 써냈고, 말년엔 헐리우드 상영목적의 대본을 '각색'하는 일에 참여했지만 대부분 '엔딩크레딧'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는 수모(?)를 견뎌야 한다고 했다. 그랬는데도 그는 단 한 번도 '집'을 산 적이 없고, 대부분 월세를 전전하거나 여러 호텔에 투숙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것도 꽤나 유명한 호텔들에서 말이다. 평생 가난했다던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그의 '상승욕구'에서 찾아볼 수 있단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고상하고 품격 있는 집안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품격과는 거리가 멀지만 돈 많은 상인가문이었다고 한다. 피츠제럴드가 어렸을 적에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에에게 곧잘 "나 없었으면 너의 아버지가 어떻게 잘 먹고 잘 살았겠니"라는 말을 떠벌릴 정도였다고 하니, 집안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였으니 그가 처음으로 입을 뗀 단어도 '엄마'가 아닌 'UP'이었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호사가들은 그가 품었던 '상승욕구'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호들갑을 떨곤 한단다. 실제로 피츠제럴드는 작가로 성공해서 부자가 되어 '화려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그가 그런 의지를 불태운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그의 첫사랑이었던 '지네브라 킹'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라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가난'을 들먹이며 헤어지라고 강요했기에 젊은 피츠제럴드는 '반드시' 부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마치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한편, 첫사랑에 실패한 피츠제럴드는 두 번째 사랑인 '젤다'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약속하지만, 또 다시, 젤다의 아버지가 그의 가난을 들먹이며 '파혼'하기에 이른다. 피츠제럴드는 절치부심하여 그의 첫 장편소설인 <낙원의 이편>을 대히트시키며 '유명작가의 대열'에 끼자 젤다와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는 피츠제럴드가 유명작가가 된 뒤였고, 엄청난 인세를 챙기던 때였기에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찾아온 행복을 '화려한 삶'으로 보상받으려 했는데, 그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다고 한다. 뒤이어 쓴 책들이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고, 출판시장에서도 별로 팔리지 않자 그는 곧 쪼들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의 씀씀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급기야 아내인 젤다가 정신병원을 전전하게 되니 '막대한 빚'까지 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말년은 호텔이 아닌 여인숙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고, 그가 동경해마지 않던 뉴욕을 떠나야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거물>이라는 작품을 쓰는 도중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소설들은 그가 죽고난 뒤에야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고, <위대한 개츠비>는 현재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렇게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지만, 그의 삶은 개츠비가 맞이한 비극과 거의 다를 바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의 책이 이처럼 사랑받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를 더해가고,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묘한 문장력'에서 찾을 수 있다고들 한다. 이는 '원작'을 접한 이들이 말하는 공통된 주장이기도 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셀린져, <노르웨이의 숲>의 무라카미 하루키 등 유명작가들의 한결같은 이유다. 물론, 피츠제럴드라면 뭐든 까기만하던 헤밍웨이조차 '그의 문장력'만큼은 인정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극찬의 이유로 [피츠제럴드의 문장은 '중의적 표현'으로 가득하다]고 표현했는데, '원작'을 직접 접할 수 없는 나같은 독자들에겐 참으로 아쉬운 평론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뒤침(번역)'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일반독자들은 <위대한 개츠비>가 왜 '위대한 것'인지 그 까닭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긴, 엄청난 부를 쌓고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뿐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심지어 그렇게 부를 쌓을 목적이 고작 유부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였으며, 끝내 그녀에게 뒤통수를 맞고 어이 없는 죽음을 맞이했으니...개츠비를 '최고의 찌질남'이라고 평한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영어권에서 'great'의 뜻은 대단하다는 긍정적인 뜻도 있지만 '너 잘났다'는 부정적인 뜻도 내포하고 있기에 개츠비를 향한 두 가지 시선을 '원작'에서는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비영어권에서는 이런 이중적인 표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탓에 독자들이 느끼는 '한계'가 극명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하지만 '중의적인 표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뒤침책'이라하더라도 <위대한 개츠비>를 곰곰이 곱씹으며 읽다보면, 그 대단함을 엿볼 수 있다. 한 여인을 향한 순정을 품고 '엄청난 부'를 단단히 거머쥐며 '한 시대'를 주름잡은 시대의 풍운아, 개츠비. 그는 온 도시의 유명인사를 쥐락펴락하며 자신의 파티에 끌여들일 정도로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정작 그가 가장 원하는 단 한 명을 초대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품고 있다. 그 아쉬움은 바로 '데이지'다. 아름다운 여성이자 개츠비의 단 하나뿐인 사랑이다. 그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부를 쌓은 것도 바로 데이지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다.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버렸다고해도 멈출 수가 없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개츠비' 자신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엄청난 자신감 아닌가? 단 한 명의 여자를 위해 온 인생을 건 남자. 그 순수성에 놀라고.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도 오직 자신 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자. 그 순진함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리고 그가 뿌려대는 엄청난 부에 다시 한 번 놀랄즈음, 교통사고 한 번에 어렵게 쌓아올린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에게까지 '철저한 외면'을 당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도대체 그의 인생은 왜 이 모양이란 말인가? 살아서는 엄청난 관심을 받던 그가 죽어서는 철저한 외면을 받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아무리 그가 '살인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고는 하나 그의 평소의 품행을 보았을 때 '결코 그랬을리 없을거야'라고 믿어주는 친구 한 명이 없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라울 따름이다. 개츠비는 이런 푸대접을 받을 위인이 아니었다. 정작 '살인자'는 따로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개츠비는 그 살인자까지도 품고서 홀로 저 세상으로 가버린다. 그 살인자가 다름 아니라 '단 하나 뿐인 사랑, 데이지'였던 탓에 말이다.
이쯤되면, 긍정적으로돈 부정적으로든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였던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이 책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절대로 그냥 찌질한 남자는 아니었던 탓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개츠비의 원래 모델이 '피츠제럴드, 자기 자신'이었단다. 엄청난 부를 이루고픈 갈망과 단 하나뿐인 사랑을 되찾고 싶은 욕망을 자신의 소설속에 '투영'시키고 써낸 걸작이었단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갈망과 욕망은 살아생전에는 이루지 못하고 죽고난 뒤에야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로 꼽히게 되었다니, 죽어서나마 그는 만족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아직 접하지 못한 <낙원의 이편>과 <밤은 부드러워>, 그리고 다수의 단편소설들을 읽어보고 싶다. 이런 것이 또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