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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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움 출판사에서 '새로운 뒤침책'들을 내놓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뒤침(번역)이란 시대가 바뀌면 새로이 바뀌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이 꾸준히 뒤쳐지는 것일테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엔 씁쓸한 진실이 감춰져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공을 들여 새롭게 뒤쳐내었다해도 독자들의 관심밖으로 내몰려 버리면 '출판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출판시장은 한없이 좁아터져서 이런 문제를 쉽사리 넘길 수 있는 출판사는 몇 안 된다는 것 또한 크나큰 문제다. 나도 이런 문제를 최근에 들어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같은 책'을 '여러 출판사'를 통해 접해보니 알게 된 씁쓸한 진실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나 좁아터진 마당에 '메이저 출판사'만 살아남고, 그마저도 '온라인 서점'이 매출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니 '소규모 출판사'나 '오프라인 책방' 들은 죽을 맛일게다. 그나마 독자들의 관심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솟아날 구멍이라도 찾은 듯 활기를 띨 수 있을텐데 정녕 '쉬운 길'은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새움 출판사가 '새로운 뒤침'을 내세워서 기존의 메이저 출판사의 책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보이니 열렬히 응원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허나 독자들도 안다. 남을 시기하는 마음, 다른 책의 흠을 들춰내는 따위로는 결코 '좋은책'으로 주목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늘 바른 길을 걸어야만 결국에는 '좋은 결실'을 맺는 법이다. 그래서 새움 출판사가 '다른 뒤침'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리는 것으로 족하지, 다른 출판사는 '그르고' 자신만이 '옳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안타깝다. 물론 애초에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믿는다. 예전의 뒤침에 '잘못'이 있으니, 이를 바로 잡아 '새로 뒤쳤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그런 뉘앙스가 살포시 내려앉았다는 것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독자들도 '새로운 뒤침'을 접하면서 '예전의 뒤침'의 흠만 꼬집으며 저울질 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용감하게 '새로운 뒤침'을 내놓은 후발 주자들에게 힘찬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커다란 강물을 이루기 위해선 '새로운 물결'이 늘 밀려와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도 벌써 세 번째 리뷰다. 첫 번째는 '개츠비'를 주목했고, 두 번째는 '데이지'에 관한 썰을 풀었으니, 이번엔 작중화자인 '닉'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한다. 닉 캐러웨이는 데이지와는 사촌관계이고, 톰 뷰캐넌과는 대학동창 친구관계다. 그리고 개츠비와는 옆집에 사는 이웃지간이고 말이다. 그런 닉이 사촌도 아니고 동창도 아닌 '낮선 이웃'에게 호감을 갖고 그의 이야기를 호의적으로 쓴다는 사실이 이 책의 흥밋거리 가운데 하나다. 닉은 왜 그랬을까?

 

  굳이 따지자면, 이 책에선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귀족적인 분위기를 띠는 '이스트에그'와 서민적인 분위기를 띠는 '웨스트에그' 사이에 존재하는 벽 말이다. 톰과 데이지가 살고 있는 곳이 '이스트에그'이니 톰과 데이지도 신분적으로 귀족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미국 동부지역에 살면서 서부지역의 촌뜨기와는 사뭇 다른 고풍스런 환경속에서 유복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웨스트에그' 지역은 주로 서민들이 살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스트에그' 방면으로 출퇴근을 하는 평범한 이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지역의 출신들도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먼 조촐한 생활을 했고 말이다. 그런데 개츠비만이 '웨스트에그'에 살면서 '이스트에그' 못지 않은 화려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런 기묘한 풍경속에 닉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개츠비의 이웃'이 되고 만 것이다. 자신의 출신이 '이스트에그'이면서도 말이다.

 

  그런 닉이 이사온 지 얼마되지 않아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자신의 사촌인 데이지의 결혼생활이 어딘지 잘못되어 가고 있었고, 그 원인이 자신의 친구인 톰의 '바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직접 겪고 알게 된 것이다. 비록 톰은 자신의 아내에게 '그 사실'을 감추려고 애쓰지만,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남편을 찾는 전화'를 통해 데이지도 얼마간은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닉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친척에게 속시원히 '친구의 비밀'을 까발리고서 '한 가정의 파탄'을 지켜보는 것이 마땅했을까? 일단, 닉은 관망하는 것을 택한다.

 

  그 와중에 닉은 개츠비의 초대장을 받고 개츠비와 급속히 친분을 쌓는다. 비록 개츠비가 제법 훌륭한 '귀족 흉내'를 내곤 하지만, 그의 출신배경을 의심케 하는 의뭉스러움 때문에 닉은 '개츠비의 진실'을 파악했지만, 그의 순진한 열정과 거침없는 행동 덕분에 속내를 터놓고 지낼 정도로 급속히 친해졌던 것이다. 개츠비의 진실이란 그의 출신배경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의 소탕한 성격으로 인해 '악의 없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고, 그가 악당(?)들과도 사업을 하는 것을 보며 '범죄자'라는 의심도 하지만, 그의 소탈하고 진솔한 행동거지에 그런 의심 또한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개츠비가 '초대장을 보낸 진실'을 알고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기까지 한다. 왜 그랬을까?

 

  그건 그와 데이지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톰과 결혼하기 전부터 둘을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둘 사이의 걸림돌(신분적 차이, 경제적 차이 따위)만 없었다면 데이지는 톰과 결혼하지 않고 개츠비와 결혼했을 거라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결론을 내렸기에 닉은 자신의 사촌이자 친구의 부인인 데이지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눈감아 주었다. 어차피 톰도 '목하 불륜중'이었으니 말이다.

 

  자칫 '막장 드라마'의 소재로 전락할 이 이야기가 매력적인 까닭은 '개츠비의 순수하고 순진한 사랑' 때문이라고 이미 밝혔다. 닉은 그런 개츠비의 매력에 빠져서 '개츠비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응원하는 쪽을 택했던 셈이고 말이다. 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의 사랑'을 받을 만큼 썩 좋은 여자는 아니었다. 개츠비의 사랑에 감동하고 톰과 헤어질 결심까지 하지만 끝내 '톰을 사랑하지 않고 개츠비를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데이지는 '두 남자'를 모두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 남자도 좋고 저 남자도 좋으니 '이남자저남자다내꼬~'라는 심보가 작용한 듯 최종선택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뤘기 때문이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내고서 그대로 내달리듯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모든 책임은 '순진한 개츠비'에게 다 떠넘기고서 말이다. 그리고는 개츠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과 함께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리고 만다. 그 사이에 개츠비는 살해를 당하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는커녕 사과도 않고, 흔한 꽃 한송이 보내지도 않고 외면해버린다.

 

  닉은 이런 두 남녀를 지켜보며 절망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토록 무책임하고 몰상식한 세상을 비관하는 한편 '개츠비의 순수성'을 위대하다는 표현으로 승화시키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런 닉의 절망감을 알아차린 듯이 '미국사회'는 대공황을 맞이하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미국의 독자들이 이 책을 사랑했던 까닭도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결코 '남일'이 아니며, 닉의 판단과 결론에 '암묵적인 동의'를 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결코 '찌질한 남자의 징징대는 러브스토리'가 될 수 없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닉'과 같은 작중화자가 등장한다면 무엇이라 말할까? 개츠비와 같은 '순수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까? 과연 대한민국에도 '순수, 그 잡채'인 존재가 있기는 한 걸까? 난 있다고 믿는다. 만약 없다면 대한민국은 진즉에 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이 망하지도 않고 오히려 전세계가 부러워할 선도국가로 거듭나고 있다면, 그건 바로 '순수한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닉이 열렬히 응원하던 '그 순수'로 가득찬 사람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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