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 - 입문자를 위한 철학
김현강 지음, 안스가 로렌츠 그림, 김현강.신성엽 옮김 / 인간사랑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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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보예의 책은 두 번째다. 그리고 참 만족스럽다. 난 '몸소 실천하는 철학자'를 좋아한다. 생각만으로 그쳐 '세상 바꾸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철학자는 그저 '말 많은 수다쟁이'라는 느낌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마르크스를 좋아한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현실에 투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바꾸기를 망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꿈꾸던 공산주의는 '노답'으로 귀결이 되었지만, 그의 사상은 끝없이 변주되면서 '자본주의'를 바로 잡는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훌륭한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여기 '슬라보예 지젝'도 마르크스 못지 않은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슬라보예는 1949년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연구하며 라캉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그저 그런 학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계'에 입문하여 대통령체제에 도전하는 등 자신의 사상을 현실에 접목시키려 한 '실천가'이기도 했다. 또한,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의 영향을 진하게 받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포스트구조주의'의 범주에 속하는 철학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리고 슬라보예는 '농담'을 즐겨 한다. 물론, 그의 농담에는 뼈도 있고, 가시도 있다. 그가 농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동구권 출신'이며, '사회주의 정치 색채'가 물씬나는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즐기는 농담이 목숨을 걸고 내뱉을 정도로 나치나 공산당의 감시와 같은 것들이 팽배한 '독재정권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는데도, 거침없이 내뱉는 그의 용기에 박수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의 저적들은 한결같이 유머러스함이 빠지지 않아 철학적인 내용인데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그득하다.

 

  그 가운데 이 책은 <슬라보예 지젝>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해주는 친절한(?) 책이다. 마치 그의 '연대기'를 연상케하는 내용을 뼈대로 삼아 '그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늘어놓으며 설명해주고 있어 '슬라보예, 그는 누구인가'라는 부제가 어울릴 지경이다. 이와 함께 '근현대 철학사상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슬라보예의 철학사상'이 어떻게 정립하게 되었는지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철학은 역시 철학이다. 잘 정리된 듯한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옮기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철학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철학의 핵심을 가장 잘 설명한 '헤겔의 변증법'으로 철학을 간략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철학'을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끝맺기 마련이다. 이를 헤겔은 '테제-안티테제-진테제'라는 '정-반-합'으로 요약했다. 다시 말해, '기존 철학사상'을 '비판'하는 철학사상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철학사상'이 나온다. 이렇게 새로운 철학사상은 다시 '기존 철학'이 되어 '또 다른 비판'을 받고 '새로운 철학'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철학자들의 거듭된 비판의 내용들'을 정리하다보면 자연스레 '철학사상의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인데, 그 심오하고 복잡하며 방대한 내용을 간략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슬라보예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라캉)'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의 핵심은 '윤리적이면서 폭력적'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윤리'는 도덕적인 선함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쪽에 윤리적인 탓이다. 오히려 욕망에 거스르려할 때 상황이 악화되기 십상이니, 욕망에 충실하라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이다. 허나 욕망이 '성적쾌락'과 같은 수준이하의 것을 대변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히 한다. 그는 '성차별'이 아닌 '성차이'를 뚜렷히 밝히며 여성을 비하하는 부류들에게 통쾌한 어퍼컷을 날리길 아끼지 않는다. 한편, 슬라보예는 '폭력'을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지만, 그에게 '폭력'이란 '혁명'에 가깝다. 다시 말해, 엿 같은 세상을 시원하게 바꿔버리기 위해서는 '폭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슬라보예는 자타공인 '마르크스주의자'인 셈이다.

 

  물론, 마르크스가 꿈꾸던 '공산주의'는 오늘날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공산당'은 히틀러의 나치와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대명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입에 올릴 것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반대 개념인 '자본주의' 역시 노답인 상황에 처하자 세계의 석학들은 다시금 '마르크스주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사상가들은 "2008년 이후, 자본주의는 이미 끝났다"고 주장하면서, 대표적인 자본주의 폐해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방법은 없다고 단언할 정도다.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우리 사회도 '수저 계급론'을 펴며, 금수저는 태어날 때부터 입에 무는 것이지 흙수저가 아무리 노력을 한들, 감히 들어볼 수조차 없게 된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소득의 재분배'의 한 형태인 '기본소득제도'인데,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세력들은 '빨갱이' 운운하며 극렬하게 반대하는 실정이다. 이들은 '능력'대로 먹고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를 만든다고 맹신하고 있기에, '기회의 평등'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면서 오로지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위한 규제철폐를 목놓아 외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상위 1%에 해당하는 금수저들의 외침이라면 이해하고도 남을 현상이지만, 웃기게도 99%에 해당하는 '흙수저'들이 '자유시장경제'를 훼손하고,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소득의 재분배'를 하는 것에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일에 열심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지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를 접목시켜 수많은 '복지정책'을 펼침으로써 겨우 유지되고 있는 형국이다. 쉽게 말해, 상위 0.1%가 하위 99.9%의 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형평에 맞게 '복지정책'을 강화하며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빈곤층'이 더 많아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국민들은 '가난은 게을러서 생기는 질병'쯤으로 여기고서 늘어나는 빈곤층을 그대로 방치하여 소멸시켜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빈곤층은 게을러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잘 살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 때문이다. 이는 마치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모아도 '내집(아파트) 마련'에 실패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 태반이 게으름이라는 질병에 걸렸단 말인가?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는 것은 공산주의자라서가 아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착취'로 말미암아 '자본가의 배만 불려주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동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실현시키려 노력했다. 나의 노동이 '내 조국'을 건실하게 만들고, '우리 사회'를 부강하게 만들며, '내 가정'을 먹여 살리기에 모자람이 없다면 힘든 줄 모르고 즐거이 할 것이다. 그런데 '내 조국', '우리 사회'를 튼튼하게 성장시키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소수 재벌의 사치와 향락'을 위해서 수탈 당한 것을 알게 되었다면, 나아가 정부가 재벌들을 비호하고 노동착취를 보장하며 '내 가정'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굶주려 모아둔 목돈을 날름했다면, 이를 그저 '방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한 목소리로 외친다.

 

  과거에는 이를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외쳤겠지만, 이제 우리의 혁명은 '촛불'이다. 촛불을 들고 한 목소리로 외치면 '혁명'이 완수되는 놀라운 경험을 우리는 해보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전세계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우리는 가장 '혁명(폭력)적인 방법'이면서도 가장 비폭력적인 방법인 '촛불의 위력'을 전세계에 선보였다. 이는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이룩한 위대함이다. 이런 위대함이 '전통'으로 자리매김하고 이어지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제 다시 촛불을 들 시간이 오는 듯 하다. 또 한 번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 것이다. 비겁한 무리배들은 요란스럽게 목청을 높이고 난리법석을 떠들겠지만 말이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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