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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명랑한 세계 의학 여행 - 역사·인물·과학 모든 것이 담긴 의학 이야기 ㅣ 토토 생각날개 42
최현석 지음, 조승연 그림 / 토토북 / 2021년 5월
평점 :
요즘 만큼 '의학'에 관해서 관심이 많아진 적도 드물다. 세계적으로 사스가 유행했을 때도, 우리 나라에 신종플루와 생소한 메르스가 유행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은 그저 흔한 감기 정도로만 기억할 뿐, 감염병에 심각한 걱정을 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계속된 마스크 착용을 경험하는 요즘은 확실히 달라졌다. 날마다 전하는 '감염정보'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이 행여 밀집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았으면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서로 마스크를 챙기며 조심하는 등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의학'에 대한 책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이 책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의학책' 가운데 어린이가 읽을 만한 책은 드문 형편이다. 특히, '의학의 발달'을 한 눈에 통찰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한데, '어린이의 눈높이'에 딱 맞춘 책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유명한 의사의 업적'을 단편적으로 모아놓은 책이거나 '의학 분야별'로 나누어서 짤막하게 의학지식을 소개하는 책, 또는 유명 의학자의 생애를 다룬 '위인전'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런 책들도 훌륭한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의학의 발달'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꿰뚫은 책은 매우 드물었다. 간혹 그런 비슷한 책이 있긴 했어도 '외국작가의 책'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책은 '국내작가의 책'이라는 점에서 반갑기 그지 없다. 작가는 '서울대 의과대학' 출신 의학박사로, 서울대병원에서 전임의 과정을 마치고 국내 굴지의 병원에서 교수와 원장을 역임한 분이다.
국내 작가의 '어린이를 위한 의학책'이 왜 반가울 수밖에 없냐면, 현대의학의 주류는 '서양의학'일 수밖에 없으나 우리 나라 의학발달사를 다룬 '한의학(韓醫學)'도 함께 다루어야 제대로 된 '우리 의학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작가의 의학책은 그야말로 '서양의학'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며 '동양의학'이라고는 '중국의 것'만 간략히 소개할 뿐이고, 간간히 소개되는 동양의사들도 일본과 중국만 단편적으로 소개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한의학도 고대 중국에서 전해진 <황제내경>을 주축으로 삼기는 했다. 허나 조선시대 허준이 쓴 <동의보감>을 빼놓고 우리 나라의 의학발달사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 의학박사들 대부분은 <동의보감>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서양의학'만이 정통이라 여기고 있으며 '동양의학'은 부수적이고 '현대의술'에 적용시키기에 난감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이런 접근법은 '의학발달사'를 다룰 때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 식이라면 서양의 고대에 '주술'이 치료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중세 때 '신앙'에 근거해서 환자를 다룬 내용을 '의학발달사'에 빼야 옳을 것이다. 헌데, 서양의학도 가운데 이런 내용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이런 미신에 가까운 치료법이 차츰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윤리의식'을 강조하는 등 아픈 사람을 최일선에서 돌보는 의료진의 희생정신이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허준이 집필한 <동의보감>에는 그런 의원이 지녀야할 도덕윤리와 희생정신이 없겠는가. 허준 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땅에 있었을 것인데, 이를 빼놓은 '의학책'을 우리 어린이들에게 소개해서야 되겠느냔 말이다.
이제 '현대의학'은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근자감에서 벗어나 질병 앞에 겸손해지고, 때론 불굴의 의지를 뿜어내야 할 것이다. 특히, 새로운 감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의료진은 '과거의 자신감'을 상실한 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질병과의 싸움에 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때는 '항생제'를 만들어내고 '백신'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올라 '천연두 박멸'하듯 모든 질병을 종식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슈퍼박테리아의 출현'과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인간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수 없다는 사실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먼 옛날 패스트와 콜레나 등과 같은 역병으로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속절없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던 끔찍한 경험이 되살아나는 듯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의학발달'로 인해 오늘날에는 적어도 '죽음에 이르는 이유'는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의료진들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항시 대기중이다. 근래에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읽을 '의학책'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우리의 관점이 녹아 있는 생생한 '의학발달사'가 담긴 책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대단한 수작이다.
아쉬운 점은 <황제내경>과 <동의보감>, 그리고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선생의 <우두신설> 이외에 별다른 소개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린이 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인류의 의학발달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가운데 이 정도 분량을 함께 넣었다는 점은 아쉬울 수는 있어도 '부족하지는 않다'는 것이 틀림없다. '어린이'를 넘어 '청소년을 위한 의학책'에서는 더 많은 분량을 함께 소개할 수 있을 것이기에 기대감이 더 커질 뿐이다.
끝으로 인류는 '의학발달'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조차 질병을 완벽히 퇴치하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아픈 환자의 곁에서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헌신하는데 목표를 설정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부터 '의료진의 윤리의식'이 강조되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허준도 마찬가지다. 질병으로 인해 아파하고 죽어가는 환자를 '비싼 약재'를 구할 수 없어 방치하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약재'를 손수 찾아내 환자를 구하려는 마음가짐을 강조했다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질병의 고통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환자들은 병원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의사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마련이다. 왜냐면 우리는 모두 '의료진들의 헌신'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료진들은 '의학발달' 덕분에 고통받는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내고 연구하고 있다. 이런 의료진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은 '의학발달'에 대한 일반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야 '의료진의 노력'을 단박에 알아내고 의료진들의 헌신적이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손발이 맞아떨어질 때 인류는 질병이 주는 고통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손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의료진의 몫일테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환자의 몫일테니 말이다. 물론, 서로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반대로 신뢰가 무너지고 '의심'만 가득한 채 '아는 것만 많다'면 사사건건 시비가 붙어 의료진은 '소극적인 치료'만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의학발달사'를 제대로 알아두는 것은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