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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9 - 블러디 선샤인 신미양요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9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0월
평점 :
1860년대를 돌이켜보면,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본다는 것은 참 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신정부에 의해 '근대화(명치유신)'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중국은 어찌어찌 '북양함대'를 추진하며 군제를 서양식으로 개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아니, 조선은 대원군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관계로 '개항'이 아닌 '쇄국'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이로써 동북아시아 삼국은 서로를 향해 잠시 숨을 돌릴 틈을 각자 갖게 되지만, 속내는 그러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 서양에서는 '보불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해 '북독일연방(프로이센)'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려는 형국이었고, 이를 막기 위해 '오스트리아 제국'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서 독일민족 통일이라는 명분에 더욱 불을 붙이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바이에른'을 비롯한 '남독일 4개국'이었지만, 오스트리아가 패배함으로써 힘의 균형이 프로이센에게 기울어진 상황에서 '흡수통일' 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이를 가로막고 '통일 독일'을 막아선 나라가 프랑스였다. 왜냐면 '남독일 지역'은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매우 긴밀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빌헬름 1세(독일 황제)가 스페인의 왕위 계승을 막아선 전례가 있었기에 '프로이센' 처지에서는 '간섭'으로 볼 수밖에 없어서 결코 곱게 볼 수 없는 나라였다. 그런 프랑스가 '남독일 4개국'과의 통일전선을 막아서니 비스마르크는 전쟁을 선택한다. 시작은 치열한 '언론전'이었지만, 언론끼리의 자존심 싸움은 두 국가의 국민들의 감정을 서로 상하게 하였고, 끝내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전쟁, 또는 프프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의 시작은 프랑스가 우세를 점하며 시작하였으나, 보급물자는 프로이센이 훨씬 더 빠르게 조달할 수 있었고, 화력의 우세함이나 전술운영의 우월함에서 프랑스는 프로이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전쟁의 승리는 '프로이센'에게 돌아갔고, 파리의 개선문에서 승전을 기념하는 행진을 하고 돌아가는 등 프랑스로서는 패배의 치욕을 씻을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조선에서는 독일 상인 오페르트(유대인)에 의해 '남연군묘 도굴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이에 대노한 흥선대원군은 '통상거부(쇄국)정책'을 더욱 굳게 밀어붙이게 된다. 여기에 미국의 함대가 '제너럴셔먼호'의 행방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강화도로 쳐들어오게 되는데, 바로 '신미양요'다.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선을 공격한 미함대는 전투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만 애초에 목적으로 삼은 힘에 의한 '수호통상조약'은 맺지 못하고 되돌아가고 마는데, 어찌 되었든 조선에 또 한 번의 승리를 안겨주게 되었다. 승리의 비결은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인해 태평양 건너의 전쟁에 충분한 힘을 보탤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고, 대원군시대의 외교가 '근시안적'이었고,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 세력의 안이한 태도로 인한 것이었으니, 치열한 격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조선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진 못했다.
하지만 눈여겨 볼 대목은 있다. 조선 후기 '북학파의 후손들'이 개항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나름의 방법대로 서양과 (조만간 일본과도) 손을 잡고 '조선의 개화(근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북학파의 계승자'들이 어찌어찌 '매국노'가 되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을 다시금 살펴볼 일이다. 이들은 시대를 앞선 지식인들이기도 했으나 '권력'과는 인연이 없던 관계로 늘 '아웃사이더'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국가정책으로 제대로 시행하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외세'만 끌어들이는 결과만 내놓았으니, 중앙정부는 정부대로, 지식인들은 지식인들대로 '따로따로' 조선의 안위와 안녕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백성은 고달파지기만 했고 말이다. 과연, 조선의 백성을 구할 위인은 없었단 말인가?
다시, 일본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명치시절에 '이와쿠라 사절단'이 활약을 펼쳤더랬다. 이들은 서구열강을 두루두루 둘러보고 '선진제도와 문물'을 일본의 신정부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 중차대한 임무를 떠안고 세계유람을 떠났더랬다. 그 결과, 새로운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했다. 얼추 정리해보면, 미국에서는 '행정제도'를, 영국에서 '정치제도'를, 프랑스에서 '사법제도'를, 그리고 독일에서는 '군사제도'를 받아들여, 신일본의 멋진 시작을 뽐내려 했으나, 그보다는 일본내부에서 벌어지는 각종 소요로 인해 시작부터 삐그덕대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이 '서양식 제도'를 도입해 근대화 국가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일본의 민중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봉건시대의 사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폐번치현'과 '사민평등'을 시작했지만, 갑자기 하루 아침에 시골촌놈이 서울깍쟁이로 바뀔 수 없는 것처럼 일본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하루도 편할 날이 없도록 훽훽 돌변하는 '동북아 3국'의 바쁜 일상은 다음 권에 계속된다. 커밍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