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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 읽어드립니다 ㅣ 읽어드립니다 시리즈
김경일 외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6월
평점 :
이그노벨상은 재밌거나 바보같은 연구에 수여하는 상이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런 연구를 한거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연구를 하는 이가 아니라면 이그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상에는 상금이 없다. 명예롭지 못한 상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당신의 연구는 황당하고 하릴없으니 드리는 상입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상을 받은이가 훗날 노벨상을 수여하거나 되려 유명해지는 일이 빈번하단다. 심지어 노벨상을 받는 것보다 이 상을 받는 것이 더 영광이라는 수상자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까닭을 물으니 노벨상을 수상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할 연구가 없는 '마침표' 같지만, 이그노벨상을 수상하면 더욱 분발하라는 응원을 받는 느낌이라 곧바로 또 다른 새로운 연구에 착수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는 연구자도 있다. 실제로 이그노벨상을 받은 황당한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더욱 넓히거나 깊이 연구한 결과 노벨상을 수상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쯤 되면, 이그노벨상은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하고 황당한 괴짜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특별한 상이 되어 버리고 만 셈이다.
그런 이그노벨상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은가. 도대체 얼마나 엉뚱하고 황당하면 이 상을 탈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는지 말이다. 이에 우리 나라 대표 심리학자 세 명이 '이그노벨상의 진면목'을 요모조모 살펴 볼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서를 써냈다. 책내용은 이렇다.
처음으로 소개한 연구내용은 '욕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전세계의 욕을 연구할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있단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공을 들여서 말이다. 이 연구의 핵심은 '욕을 하면 고통이 줄어든다'였단다. 실제로 욕을 시원하게 내뱉거나 누군가 쏟아내는 찰떡같은 욕을 들으면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욕도 잘만 쓰면 효용가치가 높아진다는 연구인 셈이다. 물론, 욕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는 상황에 적절한 욕을 쓰면 되려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늘상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큰 효과가 없단다. 이런 사람들은 욕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고 성품과 인품이 모두 나빠져서 품위 없는 무례한 사람에 불과하단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욕을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착한 사람이 욕을 한바가지 쏟아내면 자신에게는 스트레스 해소로 작용하고, 청중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어 '나쁜 말'을 들으면서도 기분은 좋아지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정말 엉뚱한 연구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누가봐도 별 것 아닌 연구를 심도 깊게 연구한 이에게 수여하는 것이 바로 이그노벨상이다. 그렇지만 만약 '욕에 관한 연구'가 여기서 그쳤다면 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연구내용은 또 이어진다. 바로 '손가락 욕'과 '외국어 욕'에 관한 연구다. 연구자는 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뒤에 '말이 아닌 욕'과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욕'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지 복잡다단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결과만 얘기하자면, 욕을 말로 해야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과만 봐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손가락 욕은 바로 품위 없는 행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교양인이 품위 없는 행동을 하고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또한, 알아 듣지 못하는 욕도 긍정적인 효과가 그다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욕은 '알아 들을 수 있어'야 효과나 나타난다는 얘기다. 이를 테면, 한국인에게 '뻔데기'라는 욕을 하면 자신을 능력을 비하하거나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어 상황에 적절할 경우에 모든 사람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할 수도 있지만, 외국인이 들었을 땐, 애벌레와 어른벌레 사이의 과정인 '번데기'가 왜 욕이라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어떤가? 욕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연구를 수 년 동안 하고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것을 인정할 만 한가.
한 가지만 더 소개하겠다. 연구내용은 '저주인형은 효과가 있을까?'다. 저주인형이란 직장인들이 종종 나쁜 상사에게 대놓고 화를 낼 수 없으니 대신 화를 내고 벌을 퍼부을 수 있는 대상을 일컫는 말이다. 직장인들의 스트레스 유발 원인 가운데 '상사의 부당한 일처리'에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신에 대한 짜증이 상위권에 든다는 것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이럴 때, 못된 상사 대신에 할 말 다하고, 심지어 복수의 칼날을 내리 꽂을 수 있는 저주인형은 훌륭한 대안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그노벨상 수상자의 연구 핵심내용이다. 정말로 '저주인형'에게 대신 분풀이를 하면 속이 시원해질까? 하고 말이다.
결론은 의외로 대단히 효과적이라고 나왔단다. 우리는 나쁜 감정을 함부로 분출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이를 어기면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고 으레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처럼 '나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히게 되면 병이 되어 버리고 마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우리 나라 여성들에게서 자주 발생한다고 해서 이름도 '홧병'이 된 것도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풀지 못하고 쌓아두게 되어 생긴 병이라고 한다. 이때, 저주인형에게 적절하게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 이그노벨상 수상 이유였단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어떤 것이 가장 좋을까? 말로만 해야 할까? 날카로운 바늘을 인형에 꽂는 행위는 효과가 없을까? 놀랍게도 모든 방법에 효과가 좋았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꼭 맞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았다면 그대로 시도해도 무방하며, 색다른 해소 방법이 떠올랐다면 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릴 때까지 하면 효과가 직방이라고 한다. 그럼 저주인형은 '저주대상'과 꼭 닮아야 할까? 라는 연구를 한 결과는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냥 대충 그린 그림에 '이름'이나 '별명'을 붙여놓고 저주의 대상을 '상상'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한다. 되려 저주인형을 저주대상과 꼭 닮게 만들면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 까닭은 실물과 꼭 닮을수록 폭력을 가하면 할수록 '죄책감'이 쌓이기 때문이란다. 역시나 이그노벨상을 받기 위해선 재미와 흥미를 넘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이밖에도 '소변을 참으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거나 '설명서는 왜 안 읽을까?', '사이코패스 진단법' 같은 흥미롭지만 굳이 왜 이런 걸 연구할까 싶은 연구를 아주 심각하게 다루는 연구자와 저자를 만날 수 있는 재미난 책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감춰진 '심리'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유용한 책이기도 하다. 한 가지만 더 소개하면서 마무리 하련다. 이 책이 얼마나 유용한 책인지 판가름 해보길 바란다.
우리는 2년 사이에 세 차례의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그런데 한 가지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백신을 맞았을 것이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던 백신이 있었는데 기억이 나는가? 내 기억으론 수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백신은 '값이 비싼' 백신이었고, 그닥 선호하지 않은 백신은 반대로 '값이 싼' 백신이었다. 그러면서 왜 자신에게는 '비싼 백신'을 놔주지 않느냐면서 불만을 쏟아냈던 사례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백신의 효능은 가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개인적인 면역력에 딱 맞는 적절한 백신을 맞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는 결론이 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비싼 백신'이 더 좋은 효능을 낼 것이라 굳게 믿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쯤해서 연구할 수 있는 내용이 바로 '싼 게 비지떡일까?'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의 '기능'보다 '가격'에 더 민감하다는 사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가격이 높을수록 좋은 물건이라는 상식이 부추기는 점이 없지 않지만, 진실이 밝혀져서 가격에 거품이 잔뜩 낀 물건일지라도 비싸게 주고 샀으니 만족해버리는 경우가 흔히 벌어지곤 한다. 이쯤되면 사람들은 '사실'을 믿기보다는 '믿음'이 사실이길 바라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고, 이런 경험이 쌓이면 '믿음'이 그대로 '진리'가 되어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단다. 바로 '플라세보 효과'가 그렇다. 가짜 약이 불치병을 낫게 하는 놀라운 기적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역기능도 있다. 철떡같은 '믿음'이 동반되지 않으면 플라세보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짓'이라도 '진실'로 믿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도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재밌는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명한 책을 소개해보았다. 별 것 아닌 주제를 평생에 걸쳐 연구하는 모든 이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비록 이그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하더라도 당신들의 연구가 결코 헛된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이그노벨수상자 가운데 소똥으로 바나나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술을 연구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아무도 먹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젠가 그 기술이 인류의 고민을 해결해줄 열쇠가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릴없다고 쓸모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