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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 진실의 영혼 ㅣ 시공그래픽노블
알렉스 로스.알렉스 로스 지음,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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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더우먼은 '여성 히어로'의 대명사다. 놀랄 만큼 강한 힘에 날아오는 총알도 막을 수 있는 팔찌, 그리고 묶이면 진실만을 토해내는 밧줄이 그녀의 능력이다. 하지만 원더우먼의 힘이 이것 뿐일까? 물론 아니다. 그녀의 원천적인 힘은 '아름다움'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조화를 이루며 불의에 당당히 맞서는 정의로움이 그녀의 진짜 힘이다. 바로 원더우먼이 강력한 까닭은 그녀의 겉모습이 아닌 진정으로 아름답고 올곧은 마음가짐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원더우먼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묻히기 십상이다. '남자들이 지배한 세상'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고작 '섹시한 외모'에서 찾으려는...심지어 '성적 도구', 그 이상으로는 절대 보고 싶지 않은 더러운 속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남자보다) 잘난 여성'은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곤 한다. 비단 남자만의 어리석음은 아니다. 같은 여성끼리도 '자유와 평화, 정의, 그리고 박애에 앞장서는 여성'에게 신랄한 비난을 퍼붓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무지한 남성과 '똑같이' 그녀의 섹시한 외모에 초점을 두어 비난하기 일쑤다.
만화속에서 '원더우먼'은 아마존 부족의 공주로 재탄생했다. 아마존은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사회'를 일컫는 말인데, 전설에 전해지기로는 '남성들에게 핍박 받은 여성들'이 무리를 이뤄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따로 떨어져 은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여성들만이 존재하는 사회지만 '아마존 전사'로 유명세를 떨쳤으며, 아마존 전사들은 기존의 남성 전사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아마존 전사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그런데 '그 땅'에서 다이애나(원더우먼의 본명)가 태어났다. 아니 만들어졌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여성만의 사회에서 '임신과 출산'으로 태어난 생명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다이애나는 '아프로디테와 아테나 여신'에 의해 흙에서 빚어져 태어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겐 '정의를 지킬 원천적인 힘'을 이어 받아서 말이다. 그렇게 태어난 다이애나는 숙명적으로 온 세상의 불의를 타파하고 정의를 수호하려고 아름다운 고향을 떠나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나가려 한다. 그리고 그속에서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이 타고난 능력을 아낌없이 쏟는다.
그러나 세상은 '원더우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른 남성들은 원더우먼 앞에서 준엄한 꾸짖음을 받으면서도 흘끔흘끔 '원더우먼의 몸매'를 감상할 뿐이고, 각성하지 못한 여성들은 '원더우먼의 구원'을 받으면서도 '자신(여성)과 다른 강한 힘'에 또 다른 두려움을 느낄 뿐이다. 그럴수록 원더우먼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뽐내며 온세상의 나쁜 점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려 한다. 그렇게 해야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을 이해해 줄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돌아온 시선을 따가울 뿐이다. 이미 '남성의 지배'에 길들여진(!) 여성들은 원더우먼을 이해하지 못했고, '남성의 지배'에 익숙한 남자들은 쳐맞으면서도 '섹시한 몸매'만 감상할 뿐이다. 평범한 여성과는 '다른' 색다른 매력을 가진 원더우먼조차 '언젠가는(!)' 남성에게 순종하는 여성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인간일 뿐인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남성이 지배하고 여성이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정말 그런가? 절대 그렇지 않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인간이 생존하고 번성하기 위한 '최적의 시스템'일 뿐이다. 인간은 오직 남자만으로 이루어져 살아남을 수 없고, 오직 여성으로만으로 무리지어 번성할 수 없는 법이다. 반드시 양성이 어우러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잘 살아갈 수 있다. 이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개념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차별의 잣대'로 삼는 짓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십분 이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는 대부분의 사회는 남자를 우위에 놓고 여성을 그 밑에 놓아 '남자가 군림하는 사회'를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사회'라고 기준 삼고 있다. 행여 그 반대가 되면 '비정상'이라 낙인 찍고 애써 바로 잡으려 고집부리곤 한다. 이를 증명할 예는 얼마든지 많다. 전세계적으로 '여왕'의 존재는 부정 당하기 일쑤고,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부각시키곤 해서 '또 다른 여왕'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리기 일쑤며, 수많은 '(남성)왕' 가운데 무능력하거나 못된 짓을 일삼았으면 '폭군'이라고 명명하며 '불운의 시대'가 잠시 스쳐지나갔다고 어물쩍 넘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탐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여자가 여러 남자를 거느리는 것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점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그런 까닭에 '페미니즘'은 남녀를 불문하고 주목할 만 하다. 아, 물론 요새 청년들이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혐남'과 '꼴페미' 따위의 극단적인 페미니즘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니, 나는 '여성운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개인적으로 어설프게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발언했다가 '남자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받은 경험 때문이다. 물론 충분히 이해한다. 남자인 나는, 어두운 밤거리를 걸으면서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머리속으로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작은 배려'로 엘리베이터를 탈 때, 여성과는 웬만해선 같이 타지 않으려 한다. 여성운동가인 나를 '치한 취급'해도 탓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말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정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억울한 남성들은 말한다. 이는 명백한 '역차별'이라고 말이다. 여성들이 무차별적으로 남성을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라고 말이다. 불편한 점은 십분 이해한다. 허나 '남성지배사회'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불편함은 그런 역차별쯤은 가볍게 능가할 것이다. 여성들이 죄없는 남성을 '변태, 치한, 범죄자' 취급을 해서 불편하다고? 수많은 남성들이 '죄없는 여성들'에게 가한 폭력과 억압, 그리고 차별 등등은 어쩌구 말이다. 한껏 예쁘게 꾸미고 나갔는데 기분 잡치고 곧장 집으로 숨고만 싶은 '여성만의 불편함'을 이해하는 남성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그런 불만이 있다면 속시원히 토로하고, 안 되면 경찰에 신고하고, 법적인 도움을 받으면 될 일, 아니냐고? 귀가하는 여성의 뒤를 쫓아 '무단침입'한 성범죄자조차 '여자가 먼저 자신을 유혹했다'고 증언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회에서 할 소리는 아니다.
원더우먼 이야기를 하다가 샛길로 빠지긴 했지만, 암튼, 대통령 당선인께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마당에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몇 자 끄적였다. 근본적으론 '양성평등'이 완벽히 이루어져서 '여가부' 따위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진정한 양성평등은 '차이'는 인정하고 '차별'은 없애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배려'다. 우리는 어려운 시기에 '영웅의 등장'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잘난 여성(원더우먼)의 등장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잘난 남성이 해결해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고쳐야 할 문제점은 바로 '우리의 시선'이다. 아직도 '원더우먼의 몸매'만 감상할 요량이라면 '양성평등'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진정한 원더우먼이 '수많은 남성 영웅들' 틈바구니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을 때 '그녀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지지해줄 작은 배려가 필요한 까닭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시선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되 겉모습이 아닌 착한 마음가짐과 올곧은 가치관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하겠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