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 자본론으로 21세기 경제를 해설하다
한지원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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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들은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심지어 공산주의든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잘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언제나 기본 전제는 '자유, 평등, 풍요'인 탓이다. 물론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하였다. 계급을 타파하고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평등을 추구했던 공산주의는 현실에선 자본가를 쫓아내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자본가의 자리를 '공산당'이 차지해버리는 모순을 보였기 때문에 동유럽의 공산국가의 몰락을 시작으로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북한이 고립되는 결말로 치닫고 말았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자유도 보장하지 못하고, 평등은 지켜지지 못했으며, 풍요는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어떤가? 마르크스가 주창한 <자본>의 결말은 자본주의가 끝장나면 사회주의가 완성된다고 했다. 허나 '이론'으로서만 그렇고 '현실'은 그렇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는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용케 버티고, 또 버티고, 또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 불안하다. 자본주의를 대신할 만한 것이 없어서 계속 이어오고 있긴 하지만, 현대인들이 꿈꾸던 '자유, 평등, 풍요'가 좀처럼 보편화되지 않은 까닭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날로 심각해지고 '상위 1%의 부'가 전세계 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자산과 맞먹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주목 받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자본>이다.

 

  이 책도 그렇다. 21세기에 걸맞는 관점으로 <자본>을 들여다보고 자본주의의 맹점을 다시금 돌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당사자는 보지 못하는 수를 옆에서 관망하는 이의 눈에는 잘 띄어서 곧잘 훈수를 두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자본>은 '자본가의 착취'를 파헤쳐서 '노동자의 해방'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착취 당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조금이라도 덜 착취 당할 수 있도록 방편을 마련하기 위해서 써놓은 책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서는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은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가 점점 벌어져서 더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피착취자(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오게 되어 끝내 사회주의가 시작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자본주의가 망한 적이 없기 때문에 끝내 사회주의가 펼쳐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직까지는 마르크스의 상상에 머물러 있는 단계일 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삐걱거릴 때마다 '사회주의'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요즘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열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말하길 즐긴다(?)고 한다. 그래 봤자, '복지정책'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정도이지만, 기꺼이 '자유, 평등, 풍요'를 이루기 위해서 가치관을 바꿀 의지가 있다는 점에서 심상찮은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무상급식'으로 시작해서 '기본소득'에 이르기까지 보다 적극적인 공공근로와 복지정책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애써 무식한 이들은 이를 '공산주의의 책동'이라며 무식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지만, 이것들 모두가 바로 '자본주의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이 책에서도 수없이 언급하지만 '자본주의의 결함'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현실이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과연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인가? '뉴노멀 시대'에도 자본주의는 굳건하게 경제시스템의 지휘를 누리고 있을 것인가? 어느 것 하나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어쩌면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 더욱 어두운 미래를 점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더욱더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더 '긍정적인 힘'을 발휘해야만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긍정의 힘은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만이 '자본주의의 허점'을 제대로 지적한 덕분이다. 물론 '사회주의의 이상향'으로 귀결된 것은 안타깝지만, 그것마저도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왜냐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상향을 꿈꾸는 것'으로 돌파구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대변혁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결국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원대한 몽상가들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시민들이 깨어나야만 한다. 꿈은 꾸되 무지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몽상가들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몽상가들의 꿈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함께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벽한 자유와 평등, 풍요로운 시장경제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큰 정부의 힘'이 필요하지만 '커다란 정부'는 위험요소가 대단히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재정부담'이다. 원대한 이상향을 실현시키기 위해 '무모한 도전'이 계속된다면 자본주의 변혁을 완수하기도 전에 파탄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전세계가 '같은 꿈'을 꾸어야만 한다. 더는 '약소국의 피땀눈물'을 착취하여 선진국의 경제를 유지하는 방식으로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착취자(자본가)'와 '피착취자(노동자)'의 밀접한 관계로 성장을 한다지만, 전세계의 경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버리면 '자본주의 변혁'은 또다시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꿈을 동시에 꾸어야 한다. <동물농장> 속의 '복서' 같은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하지만, 결코 이용 당하고 착취 당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깨어 있는 경제 시민'이 되어야만 하는 까닭이다. 더는 영웅적인 정치인의 등장을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시민들이 스스로를 위해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일을 경험해야만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멈추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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