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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스탠딩
래리 호건 지음, 안진환 옮김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정치의 사전적인 의미는 '주권자가 국민을 통치하다'이다. 과거에는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었으나 지금은 국민이 '주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표가 국가를 '대리'해서 통치하는 정치형태가 전세계적으로 일반적이다. 허나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정치란 주권자에게서 권력을 '어떻게'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것인지가 더 큰 관건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국민들은 스스로 선택한 대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늘 관심을 두어야만 한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거나 하면 정치인은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제멋대로 일 것이며 정치는 옳은 방향이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는 국민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해야 하며 선거가 끝났더라도 끊임없이 관여하여 '정치인'이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지켜봐야 한다.
이 책은 미국 공화당 출신 메릴랜드 주지사인 '래리 호건'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미국 메릴랜드주는 역대 미국 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릴 정도로 민주당이 강세인 지역인데 공화당 출신으로 당당히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이 된 이력만으로도 주목 받을 만한 정치인이다. 거기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선거유세를 하면서 정치계에 입문하였고, 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지기도 했고, 암투병을 하다 극복한 사례 등등 '인생역전'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래리 호건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까닭은 다름 아니라 그가 한국계 미국인인 '유미 호건(한국명: 김유미)'과 결혼을 하면서 '한국 사위'로 유명해진 탓이다. 얼마 전에 트럼프 미 대통령의 비난을 받았던 '한국산 코로나진단키트'를 주지사의 자격으로 수입한 사례 말이다. 그는 이 사례를 통해서 '한국 사위'라는 별명을 확고히 했으며, 지금까지도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강조하며 미국이 '판데믹 상황'을 헤쳐나가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만으로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가 미국 정치계에서 특별한 승리를 거둔 일화가 우리에게 큰 감명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계에서 보면 흔한 이야기일 뿐이다. 정치적인 승리는 늘 양극단에 서 있다. 뻔하거나 극적이거나 말이다. 어중간하게 이도저도 아닌 승리는 정치계에서 있으나마나 한 결과일 뿐이다. 이를 테면 대통령선거에서 8명의 대선후보 가운데 2등을 했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냔 말이다. 다음에 또 도전할 수는 있겠으나 최종승리를 거두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그런 까닭에 <스틸 스탠딩(still standing)>도 래리 호건의 정치인생역전으로 읽어버리고 만다면 그저 그런 정치인이 쓴 자화자찬이라는 수식어에 그치고 말 것이다.
한편, 정치인의 공약(公約)이라는 것이 있다. 정치인이 국민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한 것을 뜻하지만 '정치인의 비전(vision)'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인을 지지하기에 앞서 그 정치인이 어떤 정치적 실행을 해왔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물론 공수표를 남발하듯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정치인 자신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허튼 공약을 남발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정치인들은 대체로 미국의 이익과 미국국민의 이득을 위해서 내세우는 공약들이 대체로 지켜지는 편에 속한다. 이것은 정치 선진국이란 자부심이 한 몫하는 것으로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상관하지 않고 모든 정치인에게 해당되는 최고의 덕목인 셈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래리 호건은 이런 점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는 듯 보인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버틴(스틸 스탠딩)' 그의 삶처럼 자신의 '선의(善義)'가 최선이 되도록 열심히 뛰었다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낙선에도 정치계를 떠나지 않고 다시 돌아왔으며, 암투병으로 생사를 오갈 때에도 끝내 이겨냈고, 민주당의 텃밭인 메릴랜드주에서 공화당 출신 주지사로 당당히 당선된 것까지 자신의 삶이 그러했노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또한 같은 공화당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에도 주눅 들지 않고 소신껏 '판데믹 상황'을 대처해나가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꿋꿋한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시민들에게 향한 메시지일 뿐이고, 한국 국민들이에게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일 뿐이다. 그럼 이 책이 한국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 단지 '한국 사위'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미국 주지사가 한 명 있다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만약 그가 훗날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면 '한국 사위'라는 별칭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일개 주지사 급 정치인으로 남는다면 그 영향력은 미미할 뿐이다. 물론 그가 '한국계 미국인'에게 보여주는 것이 있어서 훗날 미국 정치계에 '코리안 파워'가 미치게 될 시발점이 된다면 그 의미를 짚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먼 훗날의 일이지 지금 이 책을 읽은 한국독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그닥 없다고 보아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있다. 우리가 지지해야할 '정치인의 바람직한 모습' 말이다. 정치인이라면 무엇보다 '국익'을 위해서 정치적인 비전을 제시해야만 한다. 특히 대한민국 정치인이 가장 우선해야할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낡은 냉전시대의 이념으로 진보와 보수, 우파와 좌파 따위로 편갈라 싸우는 '싸움꾼'이 되려는 정치인 따위는 지양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정치인의 본색은 '국민의 이득'을 최우선으로 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사리사욕을 챙기거나 부정부패를 일삼으려 한다면 절대로 정치계에 발도 못붙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세'를 부릴 생각을 하덜 말아야 한다. 정치인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대리하는 사람일 뿐, 주권을 '이양'받은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러니 정치인으로 입문하는 순간부터 오직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된 사람을 지지해야만 한다. 흔한 말로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정치인'은 절대 가만 두어선 안 된다.
이런 관점으로 이 책을 읽으면 메릴랜드 주지사인 래리 호건이 바람직한 정치인의 표상으로 삼을 만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가 백점 만점짜리 정치인이란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또한 그가 '한국 사위'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도 미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대변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의 정치인과 비교했을 때 분명한 차별점을 보이는 것으로 바로 '정치에 입문했을 때 본받아야할 자세'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 나라 정치인들 가운데에도 그런 훌륭한 분들이 계실 것으로 믿는다. 아직 우리 눈에 잘 띄지 않고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해서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라고 믿고 싶다. 허나 분명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정치인이 어떤 모습일지는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봄이아트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