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안 맞네 그럼, 안 할래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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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안하고는 선택의 문제! 나랑 안 맞네 그럼 안 할래

 

무레 요코의 글은 언제나 읽기 편하다.

공감하게 하는 부분이 많은, 껄끄럽지 않은 내용을 다루는 점이 그녀의 큰 장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때문에 이번 신간도 기대감을 가득 안고 읽었다. 물론 그 기대는 충분히 충족되었고.

<나랑 안 맞네 그럼, 안 할래>는 제목 그대로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일상에서 하는 다양한 일들​ 중에서 자신과 '안 맞는 일'이라고 판단한 일은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적었다.

자기 인생은 자기밖에 선택할 수 없으니 남이 뭐라 하건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편이 좋다. 예스보다 '노'라고 말하기가 어렵지만,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 삶의 방식이 있는 게 당연하다. 자신감을 갖고 세상의 기준에 '노'라고 할 수 있는 인생도 좋다고 생각한다. (p.156)

 

무레 요코의 안 할래 리스트, Not to Do List는 크게 셋으로 나누었다.

첫번째는 욕망. '인터넷쇼핑, 화장, 신용카드, SNS, 카페인'이다.

두번째는 물건. '휴대전화, 하이힐, 수첩, 포인트카드, 너무 버리는 것' 순서로 말한다.

세번째는 생활. '결혼, 말, 관계, 뒤로 미루기, 나만은 괜찮다는 생각'으로 끝난다.

 

처음부터 안했던 일들에 대해서만 쓴 건 아니다.

하다가 안 맞는다고 느껴서 하지 않게된 일들에 대해 쓴 글이 더 많았다.

이를테면 맨 처음 나오는 '인터넷쇼핑'.

처음에는 편리해서 종종 이용했지만, 몇 번 문제가 생기는 일을 겪게 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지만 꿋꿋이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들도 있다.

확실히 인터넷 쇼핑은 편리하지만 배송 문제 때문에 골치 아플 떄가 종종 생긴다.

SNS나 휴대전화, 결혼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휴대전화는 놀랐다. 요즘 시대에 없으면 불편함이 많은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도 휴대전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상황을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저자의 결정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무레 요코의 '안 할래 리스트'에 속한 것들 중 '나도 안 할래'라고 결정하는 게 어려웠다.

하고 싶지 않지만 그 마음만으로 실제로 하지 않는 건 역시 어렵다. 그러니까 책을 읽으며 신기하고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

특히 생활과 관련된 것들이 그렇다. '말'과 '관계'... 쉽게 딱 잘라낼 수가 없다.

'뒤로 미루기'나 '나만은 괜찮다는 생각'도 생각보다 잘 떨어지지 않는다. 매년 결심하는 내용에 꼭 들어갈 법한 것들인데 말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안 할래 리스트를 생각해보았다.

선뜻 NO!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골랐다.

첫번째는 술 마시지 않기.

지금도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하지 않고 있지만 아주 가끔 권유 때문에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이제는 그럴 때도 똑똑하게 'NO'라고 말하고 싶다.

두번째는 매운 음식 먹지 않기.

얼마 전 크게 탈이 났는데, 그 이후로 먹는 걸 신경쓰고 있다.

매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조금씩 앓았는데, 그 한계치까지 다다른 게 아닐까 싶다.

매콤한 맛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녕할 수밖에 없다. 아파서 고생하는 건 하고 싶지 않으니까.

세번째는 뒤로 미루기.

이 책에 있는 목록 중에서도 하나를 골랐다. 어떤 걸 고를까 하다가, 제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걸 골랐다.

뒤로 미루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생각은 계속 하는데 이 습관 좀처럼 고치기 어렵다.

글쓴이도 아직 이건 잘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노력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본받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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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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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 들어선 소설가,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어쩐지 요리 에세이를 많이 읽고 있는 요즘. 또 한 권의 요리 에세이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하면 이 에세이의 '저자'가 눈에 띄었다.

줄리언 반스. 그의 소설을 몇 권 읽었다. 에세이는 처음이던가 싶었지만 전에 한 권 읽은 게 기억났다. 그래도 요리 에세이는 처음이다.

부제가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이다. 소설가가 요리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했다.

읽어보니 요리하는 일상 이야기이긴 한데.... 생각했던 것과 느낌이 달랐다.

아무래도 제목에 '레시피'가 들어가서일까, 저자는 다양한 요리책을 언급한다.

요리하는 과정보다 요리책에 관해 사색한 내용들의 비중이 크다. 부제에도 충실하다.

요리책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들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 덕분에 다양한 서양 요리 책도 알게 되었는데, 번역서가 있으려나.

아, 이러다가 저자처럼 요리책이 책장 한가득 쌓여버리면 안되는데.

 

요리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교훈은, 요리 책이 아무리 솔깃해 보여도 어떤 요리들은 반드시 음식점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사실이다. (p.74)


줄리언 반스는 맨부커 상을 수상한 소설가지만 부엌에서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요리책에 실린 사진으로 본 맛있어 보이는 요리.

의욕을 가지고 만들어 보려 하지만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재료 계량부터 문제다. 적절한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어찌 계량을 하고 순서에 따라 만들어도 완성작은 사진만큼 훌륭하지 않다. 모양 뿐 아니라 맛 역시도.

그가 열심히 준비한 디너파티에서 제일 맛있었던 건 근처 가게에 부탁해 사온 요리였다.

나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때로는 요리할 때 자신의 '감'을 따라보라고.

레시피에 나온대로 정확하게 만드는 게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이긴 하다. 특히 제과제빵은 그렇다.

하지만 요리에는 때로 '도전'이 필요하다.

음식 재료 각각이 어떤 맛을 내는지 생각하고, 적절한 맛을 위해 어느 정도 넣어야 할지 스스로의 판단을 믿어보는 것이다.

음식의 맛이란 건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온의 영향도 있고, 어떤 요리가 함께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른 느낌이 있다. 재료 각각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요리하는 이의 판단이 중요한 거다.

레시피를 참고하며 요리하되,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요리하면 되지 않을까. 실수해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다보면 저자도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완벽한 레시피에 맞추려하기보다는, 요리를 하는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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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좋은 이유 - 내가 사랑한 취향의 공간들 B의 순간
김선아 지음 / 미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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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공간들을 담아낸 책, 여기가 좋은 이유

 

<여기가 좋은 이유>는 '공간'에 대해 쓴 건축 에세이다.

건축가가 쓴 글이라 모르고 넘어갈 뻔 했던 전문적인 부분들도 짚어볼 수 있다.

공간의 매력들을 가득 알아갈 수 있었다.

 

유명해서 알았던 곳.

스치듯 지나쳤던 곳.

가본 적 있는 곳.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이, 알지 못했던 공간들이었다.

 

책에서 소개한 스무 곳의 공간들 중에서 '여긴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곳들이 있다.

대부분 이 마음이 생겨났지만, 그 크기가 조금씩 달랐다.

가장 그 마음이 컸던 곳은 둘이다.

여덟번째에 실린 '뮤지엄 산'.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라는 설명에 호기심이 생겼다.

물의 정원을 가로지르는 통로를 걷고 싶었다.

사진으로 보니 그 공간 안에 있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사진만으로도 이리 멋진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더 환상적일까.

무엇보다, '여백의 미'가 좋다. 트여 있는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열두번째로 만난 '선농단'.

지상에 건물을 세우지 않고, 지하에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선농단'이라는 유적 자체도 궁금하다.

 

내용도 좋았지만, 책 자체의 만듦새도 좋았다.

표지 디자인이 깔끔한데, 약간의 변주가 있는 게 좋았다.

공간을 소개하는 글마다 적절히 들어간 사진 편집도, 실제 공간에 대해 궁금해지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B의 순간'이라는 취향 에세이 시리즈에 속했다.

다른 취향을 담아낸 책은 어떨지, 살짝 기대감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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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송정림 지음, 채소 그림 / 꼼지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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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할 때 읽을 책,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제목에 끌렸다.

<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그리고 표지.

버스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가 있다. 입은 꾹 다물어 일자를 하고 있다. 주변엔 아무도 없다. 비둘기 몇 마리 뿐.

나도 그런적 있었지,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마음이 허전할 때, 공허함이 느껴질 때.

이 책을 읽으면 그 비워진 부분이 조금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삶이 완전히 정전돼버리는 것 같은 순간,

더 이상 난로도 작동하지 않고

더 이상 등불도 없어서

마치 전기가 나가버린 터널 속처럼

깜깜해지는 순간이 살다보면 온다.

 

그러다가 마음에 등불이 탁, 하고 켜지는 순간,

마음 방송국에 ON-AIR 불이 켜지는 순간이

또 다가와 준다. (p.31)

 

이런 에세이들을 읽다보면, SNS에서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으며 생각한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그럴 때면 조금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자책하던 마음이 사그라진다.

뻔하디 뻔한 이야기,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런 이야기라는 게 위로가 된다.

어쨌든 다들 견뎌냈다는 거니까. 그럼 나도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위로는 손을 잡고

그 추운 영혼 위에

이불을 덮어주는 일

그리고 그 따뜻한 이불이

내 영혼도 덮어주는 일. (p.38)

 

공감이 얼마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인지 생각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은 복잡한 마음.

열심히 뭔가 해보는데 나아가는 것 같지 않아.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지만 속은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을 때.

이 책의 글들을 읽어보며 잠깐, 한숨 돌려보는 것도 좋겠다.

게다가 이 책은 색감도 마음에 드니까.

중간중간 글씨색에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부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글도, 색감도, 글씨체도 편안한 쉼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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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사용 설명서
페터 볼레벤 지음, 장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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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니 숲을 걷고 싶어! 숲 사용 설명서

 

저자 페터 볼레벤의 전작, <나무 수업>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숲 사용 설명서>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전작 <나무 수업>이 나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숲 사용 설명서>는 좀더 스케일을 키웠다. 나무들이 모인 곳, 숲을 주제로 숲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무들이 모여 숲이 형성되면 그곳에서는 벌레, 버섯, 야생동물, 목재산업, 수목장, 서바이벌 체험 등 다양한 '숲 사용법'을 펼쳐낼 수 있는 것이다.

책에 쓰여있는 다양한 '숲 사용 설명서' 중에 흥미가 생기는 내용은 일반인들이 숲에서 할 수 있는 독특한 체험들을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봄에 갓 피어난 가문비 나무의 싹은 부드러워서 잘 씹히는 데다 송진 맛이 살짝 섞인 은은한 레몬 맛이 난다. 이 연둣빛 부드러운 잎은 차로 우려먹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숲을 체험하면 아이들은 나무의 종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p.137)

 

솔직히 말하면, 가문비 나무가 뭔지는 모른다. 물론 이름은 들어봤다.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뿐이다. 그런데 어린 싹을 '차'로 마실 수 있다니! 티타임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써 관심이 갔다. 그냥도 먹어보고 싶다. 은은한 레몬맛이라니, 뭔가 우아한 느낌! 게다가 이 내용 바로 뒤에 붙어있는 에피소드도 재밌었다. 저자의 수업을 참여한 학생들이 옆 마을에서 진행한 퀴즈 대회에서 해당 나무에 관한 문제가 나오자 바로 나무의 싹을 먹어보는 걸 보고 담당자가 "저 애들 볼레벤 씨가 담당한 학급 맞지?"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풋, 웃어버렸다.

게다가 가문비 나무는 또 다른 활용법도 있었다. 바로 나뭇진을 씹어 장밋빛 껌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껌을 만드는 것은 가문비 나무나 소나무의 진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나무들의 진을 찾아냈다고 다 끝난 건 아니다. 꽤 긴 공정(?)이 필요하다.

 

껌을 만들려면 이미 단단히 굳은 나뭇진이 있어야 한다. 또 최소 손톱 크기만큼의 양이 되어야한다. 조건이 다 맞으면 그 나뭇진 조각을 입에 넣어 부드럽게 만든다. 사이사이 이빨로 살짝 깨물어 씹어도 되는지 살핀다. 너무 성급하게 꽉 깨물면 나뭇진이 터져 버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잘못 골라 균열이 생긴 우윳빛의 나뭇진을 선택한 경우에도 입에서 터져 먼지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말 그대로 쓴맛을 봐야 한다. 성공을 거두어 어금니로 살짝살짝 씹어서 껌의 형태가 갖추고 졌다고 해도 처음엔 쓴 물질이 빠져 나온다. 이것은 뱉어버리면 된다. 뱉다니? 예의없게?걱정 마라.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숲이다. 가족과 새 몇 마리 말고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안심하고 뱉어도 된다. 맛이 견딜만해질 때쯤이면 나뭇진은 장밋빛의 질긴 껌으로 변신한다. (p.297~298)

 

이쯤 되니 적어도 가문비 나무의 모양새 정도는 꼭 알아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이야기한 숲 체험 방법 중에 흥미로운 건 또 있다. 서바이벌 체험이라는 건데 이건 도전해 보기에는 약간 고민이 된다. 그도 그럴것이 진짜 서바이벌이니까!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먹을 수 있는 생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실제로 먹어본다는데 아무리 단백질이 많다고 해도 곤충을 먹는 건 조금 꺼려진다. 뭐, 진짜 조난 당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만.

서바이벌 체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름 현실에 닿아있다면, 밤에 바람이 부는 숲을 걸으며 소리를 듣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동화 같다. 담담히 써내려간 듯한 묘사는 참 아름답다.

 

바람이 나뭇잎과 가지들을 스치며 속살거리고 나뭇가지들이 서로 몸을 비비고 휘어지는 줄기가 신음 소리를 내면 다른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밤의 숲이 선사하는 완벽한 교향곡을 들을 수 있다. 그런 날에는 수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간 우리 조상들이 들었던 소리, 석기 시대 인간들이 둘러앉았던 그 수많은 모닥불의 배경 음악이 되었던 소리, 바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밀려드는 해방과 영속의 느낌을 맛볼 수 있다. (p.248)

 

여기까지가 숲에 흥미를 끄는 다양한 체험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조금 전문적인 내용에 대해 쓴 부분도 살짝, 짚어볼까 한다.

이를테면 생물종을 보호하려다가 더 큰 멸종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경고 같은 것.

 

한 종의 새를 구하겠다고 숲을 뒤집어 엎는다면, 그것이 제아무리 선의에서 시작된 행동이라고 해도 훨씬 더 많은 생물종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비판하는 지점이다. 일반인들에까지 이런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전문가를 믿고 전문가에게 판단을 맡긴다. 그러니 전문가들이 객관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멋진 새나 화려한 꽃에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지역 토종 생태계를 지켜야 할 자신들의 임무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p.192)

 

인간의 선택이 많은 종의 멸종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그 무게가 느껴졌다. 이런 부분 말고도 목재 산업으로 인해 기계가 숲에 들어오면서 땅에 영향을 미쳐서 생기는 충돌, 숲에서 하는 사냥과 관련된 문제들. 숲에서 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벌레로 인해 마주할 수 있는 위험.

물론, 이렇게 무겁고 안타까운 주제들이 아닌 것도 있다. 수목장림에 대한 내용이었다. 수목장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장례 문화이다. 그래도 <숲 사용 설명서>에서 수목장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들을 읽으면서 수목장이 숲을 지키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지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인상적인 에피소드 하나. 숲을 지키기 위해 수목장이라는 문화를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숲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해낸 어느 남편의 애정이 담긴 하트 모양의 얼음.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기 때문에 하트 모양으로 얼음을 얼려 부인이 묻힌 나무에 가져다 둔 것이었다.

 

이밖에도 숲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계절에 따른 숲의 풍경을 볼 수 있는 부분도 따로 있었다. <숲 사용 설명서>란 제목이 참 적절했다. 저자는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깊이 우리가 현재 숲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보다는 몰랐던 것이 훨씬 많았기에 흥미진진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독일과 우리나라의 숲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테니 그 점은 감안해야 할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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