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사용 설명서
페터 볼레벤 지음, 장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니 숲을 걷고 싶어! 숲 사용 설명서

 

저자 페터 볼레벤의 전작, <나무 수업>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숲 사용 설명서>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전작 <나무 수업>이 나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숲 사용 설명서>는 좀더 스케일을 키웠다. 나무들이 모인 곳, 숲을 주제로 숲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무들이 모여 숲이 형성되면 그곳에서는 벌레, 버섯, 야생동물, 목재산업, 수목장, 서바이벌 체험 등 다양한 '숲 사용법'을 펼쳐낼 수 있는 것이다.

책에 쓰여있는 다양한 '숲 사용 설명서' 중에 흥미가 생기는 내용은 일반인들이 숲에서 할 수 있는 독특한 체험들을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봄에 갓 피어난 가문비 나무의 싹은 부드러워서 잘 씹히는 데다 송진 맛이 살짝 섞인 은은한 레몬 맛이 난다. 이 연둣빛 부드러운 잎은 차로 우려먹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숲을 체험하면 아이들은 나무의 종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p.137)

 

솔직히 말하면, 가문비 나무가 뭔지는 모른다. 물론 이름은 들어봤다.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뿐이다. 그런데 어린 싹을 '차'로 마실 수 있다니! 티타임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써 관심이 갔다. 그냥도 먹어보고 싶다. 은은한 레몬맛이라니, 뭔가 우아한 느낌! 게다가 이 내용 바로 뒤에 붙어있는 에피소드도 재밌었다. 저자의 수업을 참여한 학생들이 옆 마을에서 진행한 퀴즈 대회에서 해당 나무에 관한 문제가 나오자 바로 나무의 싹을 먹어보는 걸 보고 담당자가 "저 애들 볼레벤 씨가 담당한 학급 맞지?"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풋, 웃어버렸다.

게다가 가문비 나무는 또 다른 활용법도 있었다. 바로 나뭇진을 씹어 장밋빛 껌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껌을 만드는 것은 가문비 나무나 소나무의 진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나무들의 진을 찾아냈다고 다 끝난 건 아니다. 꽤 긴 공정(?)이 필요하다.

 

껌을 만들려면 이미 단단히 굳은 나뭇진이 있어야 한다. 또 최소 손톱 크기만큼의 양이 되어야한다. 조건이 다 맞으면 그 나뭇진 조각을 입에 넣어 부드럽게 만든다. 사이사이 이빨로 살짝 깨물어 씹어도 되는지 살핀다. 너무 성급하게 꽉 깨물면 나뭇진이 터져 버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잘못 골라 균열이 생긴 우윳빛의 나뭇진을 선택한 경우에도 입에서 터져 먼지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말 그대로 쓴맛을 봐야 한다. 성공을 거두어 어금니로 살짝살짝 씹어서 껌의 형태가 갖추고 졌다고 해도 처음엔 쓴 물질이 빠져 나온다. 이것은 뱉어버리면 된다. 뱉다니? 예의없게?걱정 마라.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숲이다. 가족과 새 몇 마리 말고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안심하고 뱉어도 된다. 맛이 견딜만해질 때쯤이면 나뭇진은 장밋빛의 질긴 껌으로 변신한다. (p.297~298)

 

이쯤 되니 적어도 가문비 나무의 모양새 정도는 꼭 알아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이야기한 숲 체험 방법 중에 흥미로운 건 또 있다. 서바이벌 체험이라는 건데 이건 도전해 보기에는 약간 고민이 된다. 그도 그럴것이 진짜 서바이벌이니까!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먹을 수 있는 생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실제로 먹어본다는데 아무리 단백질이 많다고 해도 곤충을 먹는 건 조금 꺼려진다. 뭐, 진짜 조난 당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만.

서바이벌 체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름 현실에 닿아있다면, 밤에 바람이 부는 숲을 걸으며 소리를 듣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동화 같다. 담담히 써내려간 듯한 묘사는 참 아름답다.

 

바람이 나뭇잎과 가지들을 스치며 속살거리고 나뭇가지들이 서로 몸을 비비고 휘어지는 줄기가 신음 소리를 내면 다른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밤의 숲이 선사하는 완벽한 교향곡을 들을 수 있다. 그런 날에는 수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간 우리 조상들이 들었던 소리, 석기 시대 인간들이 둘러앉았던 그 수많은 모닥불의 배경 음악이 되었던 소리, 바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밀려드는 해방과 영속의 느낌을 맛볼 수 있다. (p.248)

 

여기까지가 숲에 흥미를 끄는 다양한 체험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조금 전문적인 내용에 대해 쓴 부분도 살짝, 짚어볼까 한다.

이를테면 생물종을 보호하려다가 더 큰 멸종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경고 같은 것.

 

한 종의 새를 구하겠다고 숲을 뒤집어 엎는다면, 그것이 제아무리 선의에서 시작된 행동이라고 해도 훨씬 더 많은 생물종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비판하는 지점이다. 일반인들에까지 이런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전문가를 믿고 전문가에게 판단을 맡긴다. 그러니 전문가들이 객관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멋진 새나 화려한 꽃에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지역 토종 생태계를 지켜야 할 자신들의 임무를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p.192)

 

인간의 선택이 많은 종의 멸종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 그 무게가 느껴졌다. 이런 부분 말고도 목재 산업으로 인해 기계가 숲에 들어오면서 땅에 영향을 미쳐서 생기는 충돌, 숲에서 하는 사냥과 관련된 문제들. 숲에서 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벌레로 인해 마주할 수 있는 위험.

물론, 이렇게 무겁고 안타까운 주제들이 아닌 것도 있다. 수목장림에 대한 내용이었다. 수목장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장례 문화이다. 그래도 <숲 사용 설명서>에서 수목장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들을 읽으면서 수목장이 숲을 지키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지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인상적인 에피소드 하나. 숲을 지키기 위해 수목장이라는 문화를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숲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해낸 어느 남편의 애정이 담긴 하트 모양의 얼음.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기 때문에 하트 모양으로 얼음을 얼려 부인이 묻힌 나무에 가져다 둔 것이었다.

 

이밖에도 숲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계절에 따른 숲의 풍경을 볼 수 있는 부분도 따로 있었다. <숲 사용 설명서>란 제목이 참 적절했다. 저자는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깊이 우리가 현재 숲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보다는 몰랐던 것이 훨씬 많았기에 흥미진진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독일과 우리나라의 숲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테니 그 점은 감안해야 할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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