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표지를 보고 가상현실과 실제의 괴리를 다룬책이겠구나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복제인간 윤봉구>를 쓰신 임은하 작가님의 책이기도 하니 믿고 읽어볼 만하겠다 싶어서 집어들었다. 끝까지 쭉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에게 공감도 가고.6학년 손호랑은 교실에서 소위 '쭈구리'다. 그맘때 아이들이 선망하는 걸 하나도 못 갖췄다. 키도 작고 인물도 별로로 공부도 그닥인데다 운동도 못한다. 고학년 남자아이들의 인기는 공부보다도 운동이 좌우하는데 치명적인 거지. 인기의 요소를 하나도 못갖춘 손호랑은 반에서 존재감 제로에 은근히 무시당하고 있다.하지만 가상세계에서는 다르다. '조이버스'라는 가상공간에서 손호랑의 아바타인 '소라게'는 핵인싸다. 엄청난 팔로워를 거느렸고 크루를 운영하는 대장이기도 하다. 존재감과 성취감, 권력감, 인정과 칭찬을 여기에서는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그걸 즐기면서도 현실과의 괴리감에 문득문득 불안해진다. 가상세계에서의 성취감에 취해 있다보면 현실의 모습을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그 간극이 클수록 현실의 그사람은 더욱 부적응이 될 수밖에 없다.호랑이가 조이버스와 학교에서 겪는 일들이 대비되어 나오며 그에따른 호랑이의 심리묘사도 잘되어있다. 현실의 주변인들과 조이버스의 주변인들 또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조이버스에서 가장 호의적인 팔로워 '알리오올리오마시쪙'이 현실의 주변인인 것을 눈치채게 되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은 높아진다. 현실에서의 존재감을 끌어올려줄 절호의 기회(농구시합)를 잡았지만 결정적 기회를 노골로 날려버린 호랑. 거기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쓴 편지가 공개되어 조롱거리가 된 날. 호랑의 부적응은 극에 달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부모님도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그렇게 호랑은 홈스쿨링 학생이 된다.이랬던 호랑이 학교로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일들이 뒤에 더 남아있다. 위에 적은 '알리오올리오'외에 호랑의 실제 모습을 조이버스에서 까발렸던 '방탄소녀클럽', 아이디 사칭으로 비난받았지만 이후 좋은 관계가 된 '이지은(아이유아님주의)' 등의 팔로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에선 가상현실에서의 모습을 무조건 비난하고 부정하진 않는다. 주인공의 닉네임을 '소라게'라고 한 것도 작가의 메시지와 무관하지 않다."녀석은 얼굴을 감춘 채 껍데기 속에 쏙 숨어들었다. 소라게가 제집에 얼굴을 꼭꼭 숨긴다고 해서 게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157쪽)호랑이는 조이버스 계정을 폭파하거나 시시콜콜 변명하진 않았다. 자신이 직접 만든 종이블록 로봇을 찍어 올린 것이 달라진 점? 그리고 해시태그에 '나는 괜찮아요' '나는 나다' 와 같은 말들을 올린다.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은 다시 등교하는 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사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있다. 회피하지 않기. 할 말은 하기.가상세계를 악마시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결말로 했다면 이 책의 메시지는 너무 단순한 것이 되었을지 모른다. 누구나 한 모습만 가지고 있지 않다. <천 명의 대니>라는 그림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 사람 안에 들어있는 모습은 다양하게 많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에서 출발하되, 양쪽 모두 불건강함을 경계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현실이 너무 쭈구리인 것도, 가상이 너무 허황된 것도 건강하지 않았으니까.이런 면에서 바라보면 이 책이 일깨우는 성찰은 어른들에게도 필요하다. '셀럽'을 다룬 드라마도 있는 것 같던데, 그 늪은 어른들에게도 치명적이더라. 그 늪에 빠질수록 현실에 실속이 없어진다. 현실의 탈출구로 가면무도회에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이 건강해야 한다는 점. 타인의 환호에 집착하면 소금물처럼 마실수록 목이 탄다는 점. 그걸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