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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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식탁에 앉아서 단 한 번의 이동도 없이 한번에 다 읽었다. 집에서 내 작업 공간이 따로 없는 나에게 식탁이 주로 독서장소라고는 하지만, 엉덩이가 무겁지 않은 나는 읽다가 덮었다가 폰 보다가 누웠다가 하느라고 한 장소에서 한 권을 다 읽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여기가 식탁인지 어디인지도 잊었다. 책을 폈나 했더니 어느새 다 읽었다.

 

너무 멋진 사람들을 만났다. 동시에 너무 한심한 사람들도. 멋지다고 세상을 구한 사람들도 아니고 한심하다고 인간 말종인 것까진 아니었다. 그냥 우리 주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범위 안에서 가장 친해보고 싶은 사람과 가장 짜증날 것 같은 사람. 호감과 비호감의 인간군을 경험했다고 할까. 작가는 어떻게 이런 실제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냈을까. 밀착 카메라를 곳곳에 달아놓고 모니터링이라도 하시는 걸까.ㅎㅎ

 

김순례 씨는 변두리 빌라촌의 한 빌라 건물주다. 그 빌라를 순례 주택이라고 부른다. 순례 씨는 뼈빠지게 세신사로 번 돈으로 주택을 하나 샀고 그게 어찌어찌 되어서 지금의 4층 빌라가 됐다. 각 호의 입주민들을 소개하는 대목부터가 완전 흥미진진했다. 여기에 주인공인 순례씨와 수림이가 있다. 수림이는 화자이고 16세 중학생이다. 201호 입주민이자 순례씨의 남친이던 할아버지의 외손녀다. 수림이 집은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좋은 아파트지만, 주로 순례주택에서 지낸다. 딸 부부에게 집을 내주고 밀려난 외할아버지는 둘째 손녀인 수림이까지 맡아주게 되었다. 그리고 순례씨와 함께 수림이를 살뜰하게 키웠다.

 

순례주택에 뿌리를 박고 자라난 수림이는 공부는 중간쯤 해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반면 엄마 아빠가 끼고 키운 연년생 언니 미림이는 공부만 잘했지 세상 쓸모없는 인종이다. 언젠가 교사 모임에서 아이들에게 자취능력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요즘 제손으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아이들, 아니 인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언니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반면 수림이는....

 

아버지 집에 머리 디밀고 들어와 결국 아버지를 빌라촌으로 밀어내고 아파트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수림이 엄마 또한 한심한 인종이다. “우리 아빠꺼니까 내꺼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이 그렇다. 그런 주제에 빌라촌 사람들을 어찌나 무시하는지.... 이들에게도 인생의 실전이 닥치게 되었는데, 순례주택의 입주자이자 아파트의 주인이신 외할아버지가 작업중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그즈음 사기를 당했고, 아파트를 날리게 되었고, 수림이 엄마는 우리 아빠꺼였던 아파트에서 땡전 한 푼 없이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 그들의 인생이 사상누각이었음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상황이다. 갈곳 없는 끔찍한 현실을 깨달은 그들은 결국 순례 씨의 호의로 할아버지가 살던 201호 주민이 되는데.....

 

수림이는 걱정이다. 자신의 가족이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서다. 이들의 처신에 신뢰감이 1도 없으니, 이들이 순례주택의 민폐가 되는 것은 아닐지, 순례 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좌불안석이다. 순례 씨는 이런 말을 했다.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글쎄.”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이어 그들은 누가 누가 더 어린가내기하는 듯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했는데, 완전 공감되었다. 철든 걸로 나이를 매긴다면 평생 걸음마하는 인간들 얼마나 많게? 뭐 나도 나이값 다하고 있진 않아 목소리 높일 주제는 못되지만.... 하여간 이 집에서 그래도 가장 어른인 수림이는 이렇게 하여 망해가는 경기의 구원투수가 되었다. 감독은 순례 씨?^^

 

201호 수림이네부터 시작해서 402호 순례 씨까지 모든 입주자들의 캐릭터와 삶이 제각각 흥미진진하여 인기있는 생활드라마 한 편 충분히 나올 것 같다. , 러브라인이 없어서 좀 그렇나? 그건 순례 씨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그리고 러브라인이 살짝 부족하더라도 찰진 재미와 메시지가 충분히 메꿔줄 것이다. 캐스팅이 중요한데, 주연인 순례 씨와 수림이보다도 조연 쪽을 더 신경써야 한다. 주연들이 ‘1이라고 부르는, 수림이네 가족. 고학력이지만 10여년 째 시간강사만 하고 있는 아빠, 역시 고학력이지만 전업주부면서 남들을 무시하기로 악명 높은 엄마, 부모 닮아 공부는 잘하지만 싹퉁머리 없는 언니, 이들을 맡아서 욕 제대로 먹어줄 배우들을 골라야 한다. 이들에게 현타가 오는 장면들을 제대로 연기해야 한다.^^

 

요즘 학급 아이들과 유은실 작가의 멀쩡한 이유정을 읽고 있다. 이 책을 선정하는 데 약간 고민이 있었지만, 일단 뚜껑을 열어보니 잘한 선택이었다. 작가님을 가을 작가초청행사 때 모시기로 되어있다. 특별한 느낌은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보니 갑자기 설렌다. 젊은 시절의 화제작들을 봐도, 중년이 된 지금의 원숙한 작품을 봐도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자기 분야에서 이렇게 존재감과 퀄리티를 유지하며 나이들어가기가 어디 쉬운가. 대단하고 부럽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작명, 주인공 이름이자 공간적 배경인 순례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의 말에 담겨있다. 순례자. 아마도 나그네비슷한 뜻이 아닐지. 이생을 나그네의 길이라 생각한다면 그렇게 아득바득 할 것은 무엇인가. 남을 밟고 올라서고, 남의 것을 뺏고, 남을 무시하며 나의 존재감을 확인할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을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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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2021-06-2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례씨는 진정한 어른이에요. 저도 순례씨처럼 멋지게 나이들고 싶네요.^^
 
소원 떡집 난 책읽기가 좋아
김리리 지음, 이승현 그림 / 비룡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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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음으로 김리리 작가님의 떡집 시리즈 세 권을 다 읽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 책이 두번째로 좋다. 장군이네 떡집은 만복이네 떡집에서 파생된 느낌이 너무 강했고 인물 캐릭터나 대사도 전형적으로 느껴지는 게 많아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이 책은 앞책들과 이어지면서도 색다르게 펼쳐진다.

떡집 손님이 사람이 아닌 쥐라는 것부터.
이름은 꼬랑쥐. 쥐들 사이에 가장 약하고 볼품없는 존재다. 여기에 옛이야기의 '손톱' 화소가 사용되어 맛깔스런 재미를 더한다. 꼬랑쥐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손톱이란 손톱은 다 뒤져 먹었지. 그래서 동네 아이들의 '손톱의 맛'을 다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꼬랑쥐는 <소원떡집>의 적임자다.

소원떡집 앞에 구인간판이 붙었다. 배달원을 모집하는. 그리고 "사람이 되게 해드립니다!" 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이야기는 아귀를 착 맞췄다. 이제 흘러가기만 하면 된다.

꼬랑쥐가 출근하면 떡집에는 바구니에 담긴 떡이 놓여있고 우리가 익히 보던 그런 떡이름이 적혀있다. '기운이 쑥쑥 나는 쑥버무리' 같은 이름 말이다. 그치만 배달처가 적혀있지 않다니 이건 배달원에게 너무한거 아니야? 하지만 바로 그 '손톱'이 있잖아. 꼬랑쥐는 손톱 맛의 기억으로 떡의 주인을 찾아낸다. 그리고 바구니를 물고 배달을 간다. 그 과정이 쉬울 리는 없지만 위기를 극복하면서 배달 임무를 수행한다.

이 책에선 주요 인물 꼬랑쥐와 함께 꼬랑쥐가 떡을 물고 찾아간 아이들의 상황을 보는 감동도 있다. 독자들마다 다를테지만 난 '시간을 되돌리는 호떡'을 먹은 종호의 이야기가 제일 가슴에 와 닿았다. 늙은 엄마를 부끄러워해서 엄마한테 큰 상처를 줬던 종호. 시간을 되돌려 후회를 행복으로 만드는 과정이 흐뭇했다.

마지막 떡은 꼬랑쥐를 위한 거였다. 이름은 '절대 편이 되어 주는 절편'이라고 붙어 있었다. 그렇다. 살면서 꼬랑쥐에게 내편이란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외로웠던 거지. 떡집은 <소원 떡집>이었기에 그 떡은 꼬랑쥐의 소원까지 이루어주었다. 바로 사람이 된 것이다!

사람이 된 꼬랑쥐는 바로 저 떡의 이름 같은 아이가 되었다. <절대 편이 되어주는> 아이. 물론 쥐였을 때의 자신과 같이, 놀아주는 친구 없는 외롭고 소외된 아이들을 찾아갔을 것이다. '편'의 효과는 강력했다. 내 편이 있다는 위안은 상황을 엄청나게 바꾼다. 어른들은 누구나 살아오며 이런 경험 있을 것이다. 아이들도 겪어본 아이들은 절실할 것이고. 지혜롭고 사려깊은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인지도 모른다.

'소원떡'이니까 아이들이 먹고 싶은 떡을 그리거나 만드는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의 욕구, 결핍, 바람, 혹은 상처까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치유'겠지. 이야기의 힘이 크다는 것을 갈수록 더 실감한다. 이 책을 읽으며 위로받고 힘을 얻는 아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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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수산나 이세른 지음, 로시오 보니야 그림, 김정하 옮김 / 우리학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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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이들과는 주제글쓰기를 좀 늦게 시작해서 아직 많이 진행하지 못했는데도, 주제를 주는 일이 항상 고민이다. 이 책을 보자마자 그 생각부터 났다. 아! 요걸로 글쓰기 주제 하면 되겠다!

제목을 보고 내용이 '가정'일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있다면'이 아니라 진짜로 있는 것을 얘기하고 있었다. 18명의 각기 다른 재능과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 나온다. 그리고 장마다 한 아이의 장점을 눈에 보일듯 소개한다. 그것을 '초능력' 이라고 부른다. 엘레나의 초능력은 이야기 들려주기고 마크의 초능력은 긍정적인 생각, 노라의 초능력은 용기, 마리나의 초능력은 음악... 이런 식이다.

세상엔 완벽한 사람보다 빈 곳이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다행이지 뭐야) 하지만 그 사람들도 저마다 강점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게 더더욱 다행스런 일이다. 어찌보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주 사소한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사소하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모든 강점은 다 귀하다. 그걸 '초능력'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아이들이 '나의 초능력'에 대해 글을 쓰면서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남의 초능력을 곁눈질하면서 이런게 무슨 능력이냐고 비하하지 않았으면. 이 책을 읽으면 강점을 찾는 눈이 한결 예민해질 것 같아서 꼭 읽어주고 싶다.

그리고나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글도 써보고 싶다. 내가 읽기 전에 예상했던 '가정'으로. 내가 갖고 싶은 초능력은 뭔지. 왜 그 초능력이 갖고 싶은지. 그게 있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 바람이 너무 허황되거나 허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 한 권 읽고 주제를 두 개나 건지다니 횡재했잖아?ㅎㅎ 이 책은 부모님이 자녀에게 사주어도 좋지만 교사들이 소장하면 다양한 영역에서 쓰임새가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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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된 아이 사계절 아동문고 99
남유하 지음, 황수빈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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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환상적이지만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운 판타지다. 비슷한 작품을 기억해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했다. 음울한 걸 싫어하는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건 인정할 수 있었다.

 

6편의 단편이 모인 단편집이다. 첫 번째 작품 온쪽이는 내가 읽기에도 아주 좋았다. 표제작이 되었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옛이야기에서 반쪽이가 겪던 혐오와 차별, 소외를 여기서는 온쪽이가 겪는다. 여긴 반쪽이가 다수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왼쪽사람, 오른쪽사람으로 분류될 뿐 온쪽이는 돌연변이다. 그래서 수오는 은연중에 수술을 강요받는다. 오른쪽을 남길 것인가, 왼쪽을 남길 것인가.... 부모와 의사는 이것을 고민한다. 좌우대칭 인간은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선 왼쪽인간 아니면 오른쪽 인간만이 정상이다. 수술 들어가기 전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정상으로 만들어 줄게.”

마취 직전, 수오는 마치 악몽에서 깨어나듯 이 상황에서 탈출한다. 수오는 자신을 지켰다. 그 댓가는 계속되는 혐오와 소외일 것이다. 하지만 수오는 마음을 굳힌 것 같다. 괜찮다. 수오는 단단해졌으니까.

온쪽이가 비정상인 사회라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만 차별의 속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설정이 아닌가 싶다. 그냥 이미지처럼 단숨에 다가와 박힌다. 그게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두 번째 작품, 표제작인 나무가 된 아이는 배경이 학교와 교실이라서 읽기 더 괴로웠다. 어떤 아이들은 변신을 하게 되었다. 무당벌레로, 청설모로. 필순이는 나무가 됐다. 준서한테 괴롭힘 당하던 어느날, 교실 바닥에 깊이 뿌리박은 나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사실은 아이들만 알 뿐, 어른들은 모른다. 담임선생님까지도.... 교실에 가득한 갈등과 아픔과 긴장을 교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기 할 일만 한다. 이게 많은 교실의 모습이라고 작가는 생각하신 걸까... 슬프다. 하지만 100% 부정하진 못하기에 더 슬프다. 내가 손을 뻗었어야 하는 아이는 더 있었겠지.

나무에게까지 패악을 떠는 준서의 모습, 그짓을 따라하는 동조자 아이들, 아무 말도 못하는 방관자 아이들.... 폭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도 아무말 하지 못했지만 수업이 끝나고 말없이 물 한 양동이를 필순이의 뿌리에 부어 주었다. 필순이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고마워.”

작가가 형상화한 이미지는 황수빈 님의 그림과 만나 독자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뇌 엄마를 보고 얼마 전 읽었던 마지막 레벨 업이라는 장편동화가 떠올랐다. 육신이 부서진 사람의 뇌를 살려놓고 존재를 이어간다는 설정이 유사했다. 둘 다 많이 슬프다. 사후 세상을 알 수 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하는 몸부림은 어디까지가 의미있는 것일까? 함께 있고 싶고, 보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존재의 소멸이란 무엇이며 가시적인 존재의 소멸은 반드시 불행한 것일까? 우리는 알 수 없다.

죽을 만큼 어려운 일이겠지만 언젠가 엄마를 보내 줄 거야. 엄마가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늘 높이 날아가 바람의 냄새를 맡고 구름의 감촉을 느낄 수 있도록.”

작가는 SF와 호러 장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표현방식이 늘 이렇게 슬픈 것은 아니겠지?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착한 마녀의 딸은 화가 날 만큼 비참한 작품이었다. 아니 이괴모야..... 세상은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더 참혹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동화가 이렇게 비참할 수가....ㅠㅠ 아이들도 잔인하다는 점은 현실에서도 자주 그렇다. 하지만 타고난 악인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마녀사냥에 휩쓸리지 않을 판단력이 있거나 주변에 그것을 깨우쳐 줄 사람이 있으면 되는데... 하지만 살면서 마녀사냥에 한번도 동참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 얼마나 될까. 이 작품의 마지막 이미지 역시 강렬하고 섬뜩했다. 강한 인상만큼 우리를 일깨워줄 작품이라면 좋겠지.

 

구멍난 아빠가 보여주는 이미지도 군더더기없이 간결하면서도 강하다. 아빠에게 난 구멍, 나날이 커지는 그 구멍, 그 구멍을 통해서 보이는 욕실의 타일무늬가 선명하면서 슬프다.

 

웃는 가면착한 마녀의 딸만큼 파괴적이진 않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미소. 우리 안에 있는 관계와 인정의 욕구는 그 미소가 나를 향하길 고대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지켰던 건 객관적 눈으로 봤을 때 매우 특이한 미유 한 명 뿐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미유가 될 수는 없고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럼 어떻게 아이들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전체적으로 모든 작품들에 서늘하고 섬뜩한 느낌이 배어있다. 느낌만으로 판단한다면 난 이 책을 그냥 한번 읽어본 것으로 만족할 것 같고 누구에게 권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기엔 꽤 아쉽기도 하다. 고통을 직면하기 싫어하는 게 나의 성향이지만, 백신을 맞고 좀 앓아야 면역이 생기듯이... 그런 면에서 이중에 한두 작품은 아이들과 읽어봐도 좋을 것 같고, 나머지 작품들은 선생님들과 읽어보고 싶다. 다른 분들의 느낌이 아주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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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3 - 태권도의 고수가 되어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3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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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든 태권도장에 갖춰놓아야할 것 같다. 전국의 태권도장에서 한권씩만 구입하셔도 엄청나게 팔리겠다.ㅋㅋ 내가 사범님이라면 입단 선물로 이 책을 줄 것 같다.^^;;;

팔리는 걸 내가 왜 걱정하냐? 이미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 장바구니에 담을때 높은 판매지수를 확인했는데 다른 책과 같이 구매버튼을 눌렀더니 이 책만 나중에 온다는 거다. 예약판매인데도 그렇게 판매지수가 높았던 거다! 깜냥 1권을 읽고 재밌다고 리뷰를 쓸 때만 해도 인기예감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쨌든 매력만점 깜냥이가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니 좋긴 하다.^^

1권에서 경비실에, 2권에서 피자집에 나타나 특유의 츤데레 매력을 발산하면서도 행복 바이러스를 나눠준 깜냥은 3권에선 태권도장에 나타난다. 길에서 '광고지를 가져오면 선물을 드려요' 전단지를 주웠기 때문이었다.

태권도장을 혼자 운영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젊은 여자 사범님도 참 호감이 가는 캐릭터다. 선물은 원래 도복이었지만 그건 등록하면 주는 선물이고, 그래도 착한 사범님은 하얀색 띠를 하나 깜냥 배에 둘러 주었다. 이제 시작이야! 우린 알잖아. 깜냥에게 공짜는 없다는 거. 깜냥의 커다란 여행가방은 당분간 태권도장에 머무르게 된다. 태권도장에서 깜냥은 또 어떤 '밥값'을 하게 될까?

1,2권에서도 만남의 시작은 어른이었지만 결국 깜냥은 어린이들의 친구였다. 여기서도 깜냥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사범님의 훌륭한 조수이기도 했고. 또.... 갑작스레 벌어진 사건의 해결사이기도 했지.

공부 학원 늘려야 해서 좋아하던 태권도를 그만둬야 했던 나은이에게 깜냥은 가장 큰 선물을 준 친구였다. 마지막 수업 장면을 세심하게 촬영해준 동영상 때문에 부모님이 나은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이 장면에 학부모로서도 교사로서도 공감하고 응원했다. 난 사교육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공교육이 기본교육, 보통교육이라면 자신의 취미와 특기에 맞는 예체능활동은 방과후에 장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딸 중2때까지 피아노학원에 보냈다. 그때 주변에서 "전공 시키려고 그러냐"는 질문을 많이 하셨다. 전공은 무슨.... 하지만 그때 배운 특기로 딸은 아직도 예술적 취미를 누릴 수 있으니 난 딸의 삶의 질을 높여줬다고 생각한다. 아들도 태권도, 악기 다 시켰다.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부모님께 그건 꼭 부탁드리고 싶다. 그런데 요즘 보면 4학년만 되어도 예체능 학원은 다 끊고 공부학원으로 다 돌린다. 아이들 삶의 질을 깎아먹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님은 이 소재를 의도적으로 넣으신건지 우연히 넣게 되신건지 모르지만 내 평소 생각과 맞아서 더 유심히 보게 됐다.

독자들의 수요가 있고 작가님의 창작의 샘이 솟아나는 한 우리는 깜냥을 계속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는 힘이 세고, 따라서 주인공의 영향력도 크다. 깜냥의 인기가 더 높아져 어린이들의 스타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왜냐? 아이들이 깜냥을 모방하고 닮고 싶어했으면 좋겠어서. 그 염치를. 양심을. 밥값정신을. 따뜻한 마음을. 도전정신을. 그리고 다시 또 휙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을.

깜냥이 그렇게 완벽 캐릭터인가요? 노노~ 아닙니다. 도덕 교과서 위인전이라면 인기가 있을 리가 있나요? 적당히 허당이고 속보이고 철없고 가끔 살짝 얄밉기도 한 캐릭터. 확실한 건 정이 간다는 거예요. 귀엽고.ㅎㅎ

3권 판매가 막 개시되었는데, 다음 깜냥의 무대는 어디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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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2021-06-16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깜냥에 매력에 빠지셨군요. 저도 이제 막 읽기 시작했답니다.^^
당연히 울집 꼬맹이가 먼저 읽었고요.

기진맥진 2021-06-20 10:32   좋아요 0 | URL
네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 같진 않은데도 빠져드는 매력이 있나봐요. 책 잘 안읽는 아이들도 조금만 읽어주면 바로 빠져들더라구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