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된 아이 사계절 아동문고 99
남유하 지음, 황수빈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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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환상적이지만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운 판타지다. 비슷한 작품을 기억해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했다. 음울한 걸 싫어하는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건 인정할 수 있었다.

 

6편의 단편이 모인 단편집이다. 첫 번째 작품 온쪽이는 내가 읽기에도 아주 좋았다. 표제작이 되었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옛이야기에서 반쪽이가 겪던 혐오와 차별, 소외를 여기서는 온쪽이가 겪는다. 여긴 반쪽이가 다수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왼쪽사람, 오른쪽사람으로 분류될 뿐 온쪽이는 돌연변이다. 그래서 수오는 은연중에 수술을 강요받는다. 오른쪽을 남길 것인가, 왼쪽을 남길 것인가.... 부모와 의사는 이것을 고민한다. 좌우대칭 인간은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선 왼쪽인간 아니면 오른쪽 인간만이 정상이다. 수술 들어가기 전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정상으로 만들어 줄게.”

마취 직전, 수오는 마치 악몽에서 깨어나듯 이 상황에서 탈출한다. 수오는 자신을 지켰다. 그 댓가는 계속되는 혐오와 소외일 것이다. 하지만 수오는 마음을 굳힌 것 같다. 괜찮다. 수오는 단단해졌으니까.

온쪽이가 비정상인 사회라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만 차별의 속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설정이 아닌가 싶다. 그냥 이미지처럼 단숨에 다가와 박힌다. 그게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두 번째 작품, 표제작인 나무가 된 아이는 배경이 학교와 교실이라서 읽기 더 괴로웠다. 어떤 아이들은 변신을 하게 되었다. 무당벌레로, 청설모로. 필순이는 나무가 됐다. 준서한테 괴롭힘 당하던 어느날, 교실 바닥에 깊이 뿌리박은 나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 사실은 아이들만 알 뿐, 어른들은 모른다. 담임선생님까지도.... 교실에 가득한 갈등과 아픔과 긴장을 교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기 할 일만 한다. 이게 많은 교실의 모습이라고 작가는 생각하신 걸까... 슬프다. 하지만 100% 부정하진 못하기에 더 슬프다. 내가 손을 뻗었어야 하는 아이는 더 있었겠지.

나무에게까지 패악을 떠는 준서의 모습, 그짓을 따라하는 동조자 아이들, 아무 말도 못하는 방관자 아이들.... 폭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도 아무말 하지 못했지만 수업이 끝나고 말없이 물 한 양동이를 필순이의 뿌리에 부어 주었다. 필순이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고마워.”

작가가 형상화한 이미지는 황수빈 님의 그림과 만나 독자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뇌 엄마를 보고 얼마 전 읽었던 마지막 레벨 업이라는 장편동화가 떠올랐다. 육신이 부서진 사람의 뇌를 살려놓고 존재를 이어간다는 설정이 유사했다. 둘 다 많이 슬프다. 사후 세상을 알 수 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하는 몸부림은 어디까지가 의미있는 것일까? 함께 있고 싶고, 보내주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디까지 용납될 수 있는 것일까? 존재의 소멸이란 무엇이며 가시적인 존재의 소멸은 반드시 불행한 것일까? 우리는 알 수 없다.

죽을 만큼 어려운 일이겠지만 언젠가 엄마를 보내 줄 거야. 엄마가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늘 높이 날아가 바람의 냄새를 맡고 구름의 감촉을 느낄 수 있도록.”

작가는 SF와 호러 장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표현방식이 늘 이렇게 슬픈 것은 아니겠지?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착한 마녀의 딸은 화가 날 만큼 비참한 작품이었다. 아니 이괴모야..... 세상은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더 참혹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동화가 이렇게 비참할 수가....ㅠㅠ 아이들도 잔인하다는 점은 현실에서도 자주 그렇다. 하지만 타고난 악인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어리석은 마녀사냥에 휩쓸리지 않을 판단력이 있거나 주변에 그것을 깨우쳐 줄 사람이 있으면 되는데... 하지만 살면서 마녀사냥에 한번도 동참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 얼마나 될까. 이 작품의 마지막 이미지 역시 강렬하고 섬뜩했다. 강한 인상만큼 우리를 일깨워줄 작품이라면 좋겠지.

 

구멍난 아빠가 보여주는 이미지도 군더더기없이 간결하면서도 강하다. 아빠에게 난 구멍, 나날이 커지는 그 구멍, 그 구멍을 통해서 보이는 욕실의 타일무늬가 선명하면서 슬프다.

 

웃는 가면착한 마녀의 딸만큼 파괴적이진 않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미소. 우리 안에 있는 관계와 인정의 욕구는 그 미소가 나를 향하길 고대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지켰던 건 객관적 눈으로 봤을 때 매우 특이한 미유 한 명 뿐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미유가 될 수는 없고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럼 어떻게 아이들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일까?

 

전체적으로 모든 작품들에 서늘하고 섬뜩한 느낌이 배어있다. 느낌만으로 판단한다면 난 이 책을 그냥 한번 읽어본 것으로 만족할 것 같고 누구에게 권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기엔 꽤 아쉽기도 하다. 고통을 직면하기 싫어하는 게 나의 성향이지만, 백신을 맞고 좀 앓아야 면역이 생기듯이... 그런 면에서 이중에 한두 작품은 아이들과 읽어봐도 좋을 것 같고, 나머지 작품들은 선생님들과 읽어보고 싶다. 다른 분들의 느낌이 아주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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