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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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김호연/문학/한국소설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대한민국의 에이스 투수 준석. 그는 시즌 초반 승리를 거두고 퇴근길에 우연을 가장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하지만 타박상에 불과한 징후와 검은 옷을 입은 낯선 여인과의 만남. 그리고 그에게 감춰진 사실을 설명하는 여인 경이.

그 후 준석은 구단 지정 병원으로 이송되어 안정을 취한다. 그리고 준석의 조력자라 할 수 있는 파우스트 태근과 파우스터라 불리는 준석의 관계가 서서히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다. 복잡한 구성 같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긴장감과 반전이 펼쳐질 것 같은 호기심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누가 누군가를 조종하며 업그레이드하는 사회. 그 안에 보이지 않는 거대 조직 메피스토라는 회사 또한 등장한다.

사고 후 각종 의문의 실타래를 풀어가려는 준석의 모습이 마치 비밀 요원 같다. 자신을 노리고 있는 어둠의 실체와 자신의 지인이었던 지수의 죽음. 그리고 지수와 닮은 경이라는 여인의 아버지의 죽음이란 물음의 정답을 찾기 위한 노력들. 가독성이 뛰어나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내용의 구성이지만 다음 장면을 추리하며 책을 읽어나가는 묘미가 뛰어나다.

"우리 아버지의 자살조차 저들은 자연사로 포장할 수 있었어요. 저들은 이미 많은 돈을 이 세계의 결정권자들에게 지불하고 있을 거

에요 이곳에서 벌어들이는 어마어마한 수입에 비하면 로비 금액은 껌 값에 불과하겠죠.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맞서는 순

간 저들은 소리 소문 없이 우리를 제거할 거예요. 당신이 아무리 유명한 선수라고 해도 저들에게는 그냥 몸 쓰는 젊은 놈일 뿐이라고

요 순식간에 당신은 음주운전 사고나 약물중독 사고로 죽은 선수로 처리되겠죠."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은밀히 파헤쳐야죠. 놈들의 정체를."

언론조작, 은폐, 의혹은 수없이 넘쳐난다. 권력과 가진 자의 특권으로 약자는 그들의 노리갯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느냐, 혹은 중심 선 해결사가 되느냐의 선택은 오로지 나 자신임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재미는 기본이나 이야기 속에 풍겨오는 향기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우린 도전하고 어둠의 껍질을 깨야 할 위치에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짐 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를 기억하는가? 그저 한낮 쇼에 불가했던 한 남자의 생애, 1984의 빅브라더에 의해 좌우된 세상 등 우리가 지금 올바른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까지 드는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이다. 그만큼 몰입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며 인물들의 자기 정체성, 존재성을 찾아가려는 모습들 속에 나라는 독자 또한 투영 가능한 이야기이기에 많은 독자들이 호기심 어리게 이 작품과 만나보길 바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액션 스릴러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만이 아니라 국내 문학계나 영화계여서 소화 가능한 작품들이 많아진다는 자체가 즐거움이다.

이어지는 긴장감과 반전 속에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고, 조금은 거창해 보이지만 인류의 주인인 나를 돌아보고, 바람직한 삶의 노선을 흰 도화지에 스케치하고 채색해보는 과정도 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작품이, 김호연 작가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던져 주는 숙제, 자기 존재성을 확인하게끔 하는 선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성 넘치는 각각의 캐릭터에 몰입 되 신나고, 긴장감 터지는 한국 문학, 소설 읽기의 바다로 빠져 보길 기대한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지나친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1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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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리더” 밥상교육에서 만들어진다 - 유대인은 하브루타 한국인은 밥상교육
허태근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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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꿈꾼다. 그래서 예부터 가정 환경 혹은 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귀에 닳도록 듣고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30년간 유아 교육의 전문가로서 이 책을 통해 말 많고 탈 많은 우리 아이의 인성교육,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지 그 해결책을 제시해주려고 한다. 그 기본이 함께 식사하는 밥상머리 교육임을 강조하는데, 밥상 머리 교육을 통해 우리 자녀의 미래, 그 인성이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나갈지 독자로서도 연구하고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저자의 바람처럼 밥상 교육이 중심이 된 가정환경이 바로잡혀 아름다운 가정과 사회를 만들고, 국격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한 식탁에서 아이들을 자제시키고, 조용히 시킨다는 명목하에 휴대폰을 아이들의 밥상머리 소지품화 시키는 부모의 잘못된 행동도 머지않아 주변에서 보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창의력과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 흔하게 대두되며,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이젠 지겹도록 듣고 있다. 그럼 그 교육의 일환이자 과정을 어디에 초점을 두고 아이들의 미래를 내다보아야 할까? 그것이 바로 저자의 밥상머리 교육이다. 아침은 대충 거르고 점심은 회사나 학교에서, 그리고 저녁도 집에서 먹거나 잦은 야근으로 외부에서 때우는 부모들. 아이들은 셔틀을 돌듯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며 성공이라는 단어만 읊조리며 미래로 향하고 있다. 이로부터 단절은 시작이며 창의력과 인성은 먼 산 너머 남의 나라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식사 시간에 함께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고, TV나 휴대폰 사용량을 줄이는 실천적 행동이 어느 때보다 필요할 때이다. 그것이 그리고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인 것이다.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아닌 질문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 미래 리더가 될 것이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은 그저 자기 방에서 숙제나 과제를 하거나 게임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나눌 수 있는 자투리 시간이 필요하다. 위에서 저자가 언급했듯 그 시간이 바로 식사 시간이 되는 것이다. 아이와 의논 후 시간이나 요일을 정해 밥상머리 교육 시간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아이에게 ˝오늘은 어떠한 재밌는 일이 있었니?˝ 혹은 ˝어떤 질문을 했니?˝라든지 관심을 비추면 즉시는 힘들겠으나,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 생각을 비추는 소통의 시간이 생겨나리라 여겨진다. 그러다 보면 외부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거나 발표할 수 있는 능력, ˝왜?˝라는 물음과 호기심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밥상머리 교육의 장점이자, 시간의 효율성을 활용한 자녀와의 대화법이 될 것이다.
단, 부모와 자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나 내용을 번갈아 가며 해보는 것이 아이를 배려하는 측면에서 더 큰 장점을 얻을 수 있다는 저자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이자.

까마득하지만 독자인 나의 예를 들더라도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이렇게 여섯이 함께 식사를 했던 기억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긴 대화가 오고 간 것은 아니나 함께 식사함으로써 느껴지는 가족이라는 유대감, 다양한 음식과 반찬 등을 맛보며 식사 예절을 배우고 쌀 한 톨의 소중함도 느꼈던 아련했던 기억이 있었으니 밥상머리 추억이 도움이 되면 되었지 나쁘지 않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직 영유아의 자녀를 둔 부모들에겐 식사 시간이 분명 곤욕 가득이겠지만, 조금만 참고 스스로 숟가락을 잡고,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고대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처럼 밥상머리의 교육의 추억과 중요성은 반복하여도 그 가치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아이의 미래를 위해 믿을 수밖에 없는 팁인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밥상머리 교육은 자녀의 인성과 창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식탁에서 함께 소통하며 부모로서의 지혜와 경륜도 함께 자녀와 나누고, 아이들의 의견과 생각도 공감해 주는 자세, 소통이 필요하다. 책을 통해 저자의 밥상머리 교육의 방법 및 예제 등을 참고한다면 효율이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습관이 되면 자연스러워지는 밥상머리 교육. 교육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가족이 함께 고민을 나누고 행복을 공유하는 자리가 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예제
식사 개시 종료(1~2시간)
: 신변 정담 및 주제 터치, 자유 토론
마무리:밥상 교육 기록 남기기, 소감 발표,
다음 준비(10분)
정리 정돈​

밥상머리 교육은 모든 교육의 시작이다. 그만큼 기본이 중요한 것이며 그 안에서 새로운 자녀의 교육법을 터득할 수도 있다. 함께 먹는 음식의 영양요소 파악하기라든지, 운동의 필요성. 더 나아기 저자가 설명하는 올바른 독서법과 계획 등 밥상에서 시작할 수 있는 자녀를 위한 미래 콘텐츠 구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기반이자 뿌리가 든든하다면 부모와 자녀의 소통은 장밋빛 미래만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결론까지 예측해본다.

더 나아가 대화와 타협이 중심이 되는 유대인의 식사법, 자녀 존중 및 자립심, 독립성을 강조하는 미국식 밥상머리 교육법도 참고한다면 한 곳으로 편향되지 않는 떳떳하고 든든한 우리 자녀의 미래 성장을 돕는데, 커다란 마중물이 될 것이다. 바쁜 현대 사회, 혼밥족, 홀로족들이 늘어나지만, 필요한 전통과 예절은 지키며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자녀를 가르치고 교육하는 밥상머리 교육법. ‘늦었다고 여겼을 때가 가장 빠르다‘라는 명언 속에 지금부터라도 습관화되는 밥상머리 교육의 미래를 설계해보자. 어린아이를 둔 가정이든, 청소년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의 부모이든 중요치 않다. 식사를 통해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는 소통의 시작을 지금부터 다시 시도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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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의 거리는 10분입니다 - 묵은 감정을 풀어내는 나만의 감정노트
강현숙 지음 / 궁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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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묵은 감정 덜어내기이다. 쌓이면 쌓일수록 화가 되는 인간의 마음. 그 감정을 나와의 소통을 통해 먼저 풀어나가고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 묵은 떼를 벗어내는 감정을 완성해보자.

‘감정은 내 마음상태가 어떤지를 알려주는, 우리 각자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란 이와 같이 사람마다 다르며 그로 인해 무엇을 보고 느껴지는 의견이 각각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는 자신을 ‘고유한 나‘로 확인시켜주는 증거와도 같은 상황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도 필요하며 그 이전에 나 스스로의 감정을 다독일 수 있는 내적 정서가 구체화되어야 내 마음과 좀 더 가까워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은 판단이 아니라 존중이다.‘​

이 한마디에 감정이 와르르 무너지고 현답처럼 다가오는 저자의 말. 지금껏 내 감정으로 상대방을 파악하고 평가한 것이 내 안의 거울이었음을 깨닫는다. 너무 내 생각, 내 위주로 판단하고 학점 매기듯 상대를 평한 것이 부메랑처럼 스스로에게 돌아온 기분이라 자기 반성의 시작이 된 것일까? 쉽고 간결한 글이 저자와 대면하듯 상담을 나누고 있는 느낌이라 글의 내용이 더욱 편하게 다가온다.

몸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를 들여다보는 것도 좋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흔히 ‘속이 뒤집히다‘, ‘뒷골이 당긴다‘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몸이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자신의 감정 상태를 확인하고 이해하며 부드러운 감정의 전환을 위한 자기 수양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몸과 감정의 반응을 통해 스스로의 상태를 파악하고 적합한 상태로 변화하게 만드는 생존 법칙. 이로써 감정과 몸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불균형을 균형화하는 조화로움의 통로로 완결지어야 하는 목표도 필요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성적 동물일까? 감성적 동물일까? 물론 이성의 판단 능력을 지닌 생명체는 인간이 유일하나 결국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다는 것을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 날씨 좋은날 아들은 놀러나가고 싶지만 아버지는 ˝이 좋은날 공부를 해야 성적이 오르지 않겠니˝라며 나름의 이성적 결론을 내리지만 아들의 입장에서는 감정하나 없는 불합리한 결정으로 들릴 뿐이다. 또한 콩깎지가 덮힌 연인 사이라면 어떠한 불합리함이 이들을 가로막아도 이를 극복하려는 감성에 호소하는 경향이 짙어져 멀어질래야 멀어질 수 없는 결과도 발생한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야 긍정의 결론이 나오겠지만, 이와 반대로 쾌락과 환락에 찌들어가는 이성을 져버린 감정으로 매몰된다면, 필히 확고한 이성적 판단을 통해 막을 필요가 있다는 결론도 내려본다.

올바른 감정, 긍정의 결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일생. 하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며 가꿔 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짐은 자명한 사실이다. 마음에 쌓아둔 감정이 부정 가득한 암덩어리처럼 존재해 터져버린다면 그 결과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뻔한 결론이 나오게 될 것이다. 묵은 감정을 삯히기보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그간 쌓여 있던 감정을 ‘화해와 용서‘로 극복해보는 방법. 또한 짧은 10분이라도 나만의 ‘감정 노트‘를 작성해 내가 앉고 있는 긍정과 부정의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내 밖으로 해소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감정의 쓰레기를 과감히 휴지통에 던져버리는 나! 티끌이 모여 쌓이면 태산이 되는 것처럼,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감정이나 부정적 요소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정체된다면 스스로를 내버릴 수 밖에 없는 심리 상태로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과의 거리는 10분입니다‘ 그다지 멀지 않은 내 안의 감정과 진솔하게 만나 묵은 감정을 벗어 던지는 내가 되길 기원한다. 또한 타인과 나의 공감 능력 또한 필요로한 현대 사회인만큼 꾸준한 자기와의 공감 훈련 나아가 다양한 인류와의 공감대 형성에도 계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그러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이 작품에 실린 사례와 감정 노트 기록지 등을 참고하여 감정적으로 내가 되어가는 길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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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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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제/김희곤/문화/예술기행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타아고 대성당으로 걸어가는 길을 스페인어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 부른다. ‘산티아고의 길‘이라는 뜻이지만 흔히 ‘산티아고 순례길‘로 알려져 있다. 산티아고는 사도 야고보를 스페인어로 부르는 이름이다.‘​

이야기의 서두에서 느껴지는 기독교적 색채.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신에 의해 만들어진 이 땅에 인간이란 존재가 스스로를 성찰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신의 선물이자 사유의 터전이라 할 수도 있겠다. 방송 때문만이 아니라 한 번쯤 태어나 걸어보며 나를 순례하는 시간을 가져볼 만한 공간이자 나를 느낄 수 있는 존재의 지점이 될 수 있을 지구상의 버킷 리스트이다. 그 길에 앞서 우린 책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설렘을 선물 받은 것이다. 그 신비로움 가득한 영적인 가치를 이 작품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스페인 순례길은 프랑스 길, 파리,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피스테라로 구성되어 있다. 유럽 전역을 거쳐 길고 곧거나 험난하게 뻗은 산티아고의 여정이 짜릿한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고행인 것이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순례길이 되는 것이다. 걷고, 뛰고, 눕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순례를 통해 느끼며 자신의 현재 가치와 존재성을 가늠해보는 시간들. 그래서 나이 불문, 성별 불문으로 이 스페인이라 명명되는 산티아고 땅에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 것 같다. 고행 뒤에 서광처럼 드러내는 스페인의 건축물들, 그것이 장관이며 마음을 추스르는 영혼의 단비가 될 것이다. 책을 통한 만남이 아쉽게지만 간접 경험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힘이 되듯, 이 책이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스페인 하면 북유럽 문화와 대비되는 독창성, 개성이 묻어난다. 무어인이라 불리는 이슬람인들의 침략과 그들의 건축 예술이 어루어진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려있는 곳도 유럽이란 대륙 스페인이란 나라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책에서도 언급하듯 스페인의 건축물 일부는 이슬람 건축 기초 위에 세워진 기독교적 색채가 묻어나는 것이 특징이란 설명을 더하고 있다.

스페인 순례길의 정점은 산티아고만이 아니라 프랑스 길의 대문이라 불리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빠트릴 수 없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노트르 담 상당의 웅장함과 견고함에 빠져 눈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여행자들 대부분이 프랑스 길을 떠나기 전에 이곳을 찾는다고 하니, 산티아고 순례길의 포인트 중 하나가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아닌가 싶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2세기 중엽에 착공해 13세기에 완성했으며, 18세기 초 측면 제실을 증축하긴 했지만 중세의 원형을 최대한 살렸다.‘​

역사와 전통이 묻어나는 건축물 노트르담 대성당. 이 또한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인한 부침을 겪던 시기도 있었으며, 성당 내부가 창고로 쓰인 굴욕도 있었지만 현세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소설 속 주인공이자 개선문, 에펠탑 등과 함께 프랑스의 상징적 건축물로 전 세계 여행객의 각광을 받고 있다. 물론 최근 화재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신개념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재탄생한다니 기대가 더욱 크다. 어찌 보면 옛 것의 고증에 집착해 옛 모습만을 추구하는 우리의 건축문화와는 대비되는 획기적인 발상임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던 뉴스였다. 한 번은 생각지 못했던 것들에 올인해 보는 방법도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813년 산티아고의 무덤이 발견되고 나서 무덤 위에 성소를 지었다. - 중략- 오늘날 대성당은 디에고 페라에스 주교와 알폰소 6세의 후원으로 착공됐다.‘​

이처럼 순례길의 ‘728km‘의 대단한 여정처럼 순례길에서 만나는 각종 양식의 건축물들과 대성당들 또한 세월의 흐름과 영향 속에서 끊임없이 부침을 겪으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하물며 작은 미물이란 존재의 인간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았겠는가? 짧은 생애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연 앞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영혼 순례의 여정. 산타아고 순례길의 유래와 상흔 속에 성장하는 역사와 민족. 전 세계인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 그리고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까지의 여정에 몸을 실어 보는 기회를 꼭 맞아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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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박찬승/역사/근현대사​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4.11) 수립 100주년이란 명명하에 각종 행사와 기록물, 영상물에 이르기까지 우리 과거 선조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족적을 살피고 기억할 많은 자료들이 국민들에게 선보여지고 있다. 물론 100년이란 숫자의 의미도 긴 세월의 흐름을 증명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과 간직함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 생각된다.

그래서 역사학자 박찬승 교수의 작품 ‘
대한민국의 첫번째 봄 1919‘의 의미가 새롭고,그 안에 담겨 있는 사실적 기록을 바탕으로 우리 선배이자, 선조의 피와 땀이 서린 과거의 공적을 잊지 않고 그 위대함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조선 3대 통감 데라우치와 매국노 이완용, 송병준의 지나친 친일 행각이 결국엔 조선을 일본의 속국으로 만드는 비참한 상황을 만들고 만다. 조슈번 계열 육군 대장 출신 데라우치를 비롯한 군벌의 장교들은 러일 전쟁의 전리품 정도로 조선을 합병하며 무력적인 강권 통치로 일본 안의 조선이라는 속국의 의미를 강화해간다. 이 중 악법 중의 악법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태형이 주목된다. 한국인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매로 다스려야 한다는 조선 태형령.

야만적이고 저급한 행태일 수 밖에 없는 행위를 일삼은 나라가 당시 열강의 대열에 함께 하려는 일본이었다는 나라였다는게 느껴질 수 없을 오히려 낙후 된 수준의 형벌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런 원인이 3.1 운동 당시 지역의 주민들이 헌병과 순사 주재소를 습격하는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우리 민족의 한 맺힌 울분이 비통함과 절규로 이뤄진 사건 중 하나임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부당하고 부도덕한 행위에 짓밟힌 우리 민족의 한 많던 정서.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보아 온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해서도 3.1 운동이 큰 의미를 새겨보고 동기를 짐작할 수 있으나, 이를 위한 근거 또한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반만년 역사의 권위‘와 ‘이천만 민중의 진실한 마음‘, ‘민족의 영원하고 자유로운 발전의 소망‘과 ‘세계개조의 큰 기운‘이 그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 선언서의 낭독과 대표성도 중요하겠으나 우리 민중이 함께 한 3.1운동의 의미는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갖게 된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봄날은 따스했겠지만 우리 민족이 지닌 그 당시의 마음은 용암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지 않았을지 추측해본다.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의 전환. 힘이 아닌 유연함으로 우리 민족을 다스리려했던 3.1운동 이전과 이후. 문화통치라는 허울이 약간은 느슨해 보이나, 분명 3.1운동 우리 민족이 일어나 봉기한 과정과 힘을 통해 그들은 느꼈으리라, 그저 만만한 대상이 아니고, 쉽게 다스리려했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걸. 다스린다는 자체도 담고 싶지 않은 용어이나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겠다는 방편으로 다시금 상기해보며 우리가 가진 아픈 역사를 되새겨본다. 이러한 우리의 과거, 아프고 슬프지만 쓰라린 기억을 꼭 간직해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고 기념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란 생각을 한다.

‘대한민국 첫번째의 봄‘ 1919라는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읽혀지고, 기억되며, 우리가 잊지 않고 간직해야할 이런 장르의 작품들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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