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쌤앤파커스/딜런에번스/사회학

'이 책을 정신의학의 이름 없는 영웅인 전 세계의 정신과 간호사들에게 바친다.'

대체로 가족에게 바치거나 모두와 함께 한다는 내용의 서문이 등장하거나 감사의 인사를 하는데 이 작가는 뭔가 색다르다. 정신과 간호사들이 이 작품에서 어떠한 목적으로 고군분투하는지 추측해보게도 되고,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어 무엇을 실험하고 해결해나갈지 궁금증이 야기된다.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호기심 가득 불러일으키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 때부터 흥미롭게 전개된다. 그 흥미의 끝은 어디까지일지 인류 안의 독자로써 만끽하거나 실망해보길 바란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이야기처럼 정신 병동의 환자들이 어딘가로 탈출해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내용일지, 그 전개 과정, 인물의 캐릭터들의 특징도 살펴 가며 책을 섭렵하는 독자의 힘. 이 작품이 소설로, 혹은 픽션으로 쓰인 이야기인지 혼란이 밀려오더라도 그대로 읽고 느끼며 독자 스스로의 결론을 내려보자. 그것이 어쩌면 자신이 느끼는 유토피아이며, 책의 내용과 맞건 다르건 각자의 유토피아 실험은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자의 유토피아적 이상향의 꿈은 멕시코에 머무를 당시부터 고대 마야 문명과 스페인의 지배라는 지리적 특성과 역사를 전해 들은 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은 흔적을 느낀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의 역사적 첫 단추를 꿰는 로봇 박사, 딜런 에번스.

유토피아 지원자 모집

1. 유토피아 실험은 학습 공동체입니다. 모든 자원자는 자기만의 기술이나 지식 분야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 다.

2. 유토피아 실험은 노동 공동체입니다. 자원서에 금전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모든 자원자가 노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3. 유토피아 실험은 제한 시간을 엄수합니다. 이 실험의 목적 은 지속성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실험 기간은 18개월입니다. 자원자는 3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으며 2주의 단기 체류도 가능합니다. 유토피아 실험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소설《더 비치》의 사이를 지향하는 공동체입니다.

저자가 원하고 말하는 그들의 유토피아란 기존 에너지의 발전과 인간의 편리성을 위한 개발과 발명이 아닌 인간 스스로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그 성과를 이루고 나누며 평가하는 방식의 나눔과 소통의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그간 인류 공동체이자 국가라고 불리는 제국들은 스스로의 이익과 평안과 안위에만 초점을 맞춰 세상을 변화시켜 왔기에 결국 그들마저 몰락하는 원인이자 계기를 만든 것이다. 마야 문명이든, 잉카 문명이든 저자가 예로 드는 《더 비치》의 인물이든 시작은 긍정의 결론을 바랐으나 그 반대의 결과에 실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모의 테스트를 통해 좀 더 의미 있고 효율적인 유토피아 공동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작품을 통해 나타난다. 또한 과거의 역사, 그에 따른 원인과 결과의 과정 사례도 제시하며 자신의 임무에 더 커다란 신빙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드러나는 작품이다.

간혹 최신이 최후진보다 못하다는 회의를 느낄 때 인간에겐 알 수 없는 변혁, 개혁의 조짐이 꿈틀거릴 수 있다는 기대 반, 두려움 반의 정서도 내포됨을 확인할 수 있다.

시행착오와 다양한 공동체를 미리 경험하고 지구 종말에 대비하는 공동체의 완성을 꿈꾸는 사람들. 그 중심에 딜런 에번스란 로봇 공학자가 있으며 함께하는 다채로운 조력자들이 함께 한다. 함께 원하는 목표를 두고 꿈꾸는 유토피아 공동체는 세계의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안에서도 생각하고 원하는 방향성이 흡사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공동체를 만들어가며 나름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자연주의든, 지구 멸망 이후를 대비하는 초자연주의든, 육아 목적이나, 자급자족을 위한 목적이든 지향점은 하나로 연결될 것이라 여겨진다. 분명 딜런 에번스의 목표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살아온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에 따라 황당할 수도 있으며 실현 불가한 일이 아니라고 여기며 이러한 공동체 구성에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공동체, 유토피아란 혼자만이 꿈꾸는 세상이 아니라 다수의 협조와 동참, 실현 가능한 일에 계획성 있는 조력자 혹은 리더십의 필요성도 느낀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도 함께 풀어나가는 토론의 장과 논쟁거리를 잠식 시키고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진정 필요한 유토피아 실험이고, 불안하다고만 여기는 미래의 변화무쌍함에 대비하는 우리 인간의 긍정적 자세가 아닐지 생각해본다.

유토피아적 삶을 꿈꾸던 저자 딜런 에번스를 온전히(?) 보살피고 살펴준 정신과 병동의 닥터 사토시와 간호사들의 등장은 현실 세계와 공상의 세계에서 갈팡질팡하는 박사이자 괴짜 학자인 그를 다시 현실 세계에 안착하게끔 하는 조력자들의 하나이다. 이로 인해 지금의 다큐멘터리 같은 멋들어진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추측해본다. 그래서 그 감사를 정신 병동의 전 세계 간호사들에게 바친 것은 아닌지. 그것이 실제가 아닌 거짓,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상대를 위해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동참해주는 동질감,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증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리의 돼지의 낙타
엄우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동마을, 그리고 갓 이사 온 경수네 가족.  얽기 설기 지어진 단칸방 신세의 세 가족. 경찰이었던 경수 아버지 신변의 변화. 그리고 시작된 자영업의 험난한 경로가 커피숍, 분식집, 문방구, 통닭집에서 마무리를 짓는다.
이야기는 이렇게 경수네의 현재 상태와 함께 과거로의 귀환과 같은 삶의 궤적을 돌아보듯 예전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떡볶이집부터 난관이 시작되는 경수네 집. 화학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분식에 목숨을 걸다시피하며 아들인 경수에 딱 맞는 분식 요리를 선보이지만, 손님들에게 뭔가 2% 부족한 미묘한 맛의 차이로 아이들 손님은 줄고 어른 손님은 그럭저럭 드나들어 유지는 해가는 분식집이다. 하지만 10대 여학생들과의 커다란 홍역을 치른 뒤 맛의 전환을 바라며 분식집 생명인 떡볶이에 양파를 갈아 단 맛을 보강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양파를 비롯한 사탕수수의 생명력 등이 식물 자원의 의미,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유통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지 설명하며 양파에게 묵념을 하는 장면에 ‘피식‘웃음과 함께 그럴 수도 있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경수의 아버지는 분식집 화장실과 벽면에 쓰인 글들로 인해 결국 분식집을 접고 만다. 그것이 분식집을 찾은 10대 아이들의 장난인지, 다른 누군가의 모략성 글귀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불행과 함께 경수에게까지 정신적 건강을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행히 경수 아버지가 경찰 시절 잠시 알고 지낸 노상방뇨를 일삼던 의사의 진료와 처방으로 ‘돼지와 흰색‘을 멀리하라는 알듯 말듯 한 처방 속에 분식집 순대 대신 집 밥을 가까이하자 경수의 발작적 증세는 어느새 안정화된다. 이어서 분식집 대신 문방구로 업종 전환을 하지만 경수 아버지의 소문은 잠재워지지 못하고 결국 그 사업마저 접고 마는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전기 통닭구이 사업 또한 하루, 이틀을 못 버티고 생각지도 못한 절망과 함께 프라이드치킨의 대공습과도 같은 영향력에 힘도 써보지 못한 채, 가게 빚을 지며 거금의 이자를 통해 대출을 받은 사채업자에게 넘기고 만다. 이렇게 경수 아버지의 찬란(?) 했던 자영업 시대는 마감되고 남은 건 빚, 무동마을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만도 하나의 단편 소설과도 같은 장편 소설의 생생한 에피소드이다.  내가 한 말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 변화하는 세상 속에 가족이라는 이름과 함께 가장의 입지를 다져가려는 경수 아버지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아이의 눈에 비추인 어른들의 세계, 혹은 그 아픈 경험 안에서 더 크게 미래를 바라보고 성장하는 해안이 깊어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무동마을은 그렇게 서울에서 근접한 입지 조건을 지니고 있으나 커다란 발전은 하지 못했다. 그저 힘겹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러 갈 만한 곳에 지나지 않았으나 삶에 찌들거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절망과 단념으로 몰락한 이들이 그 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경수네 가족들도 그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물 로큰롤 고, 토마토 문과의 만남. 음악에 심취한 채 살아가는 청년과 토마토 농장 일을 하는 또래의 여자. 우연히 만난 그들의 이야기도 필연처럼 무동 마을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연속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함께 생활을 하게 되고 쓸데없는(?) 음악 대신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막노동을 시작해 이름 또한 노가다 고로 개명하게 된다. 하지만 알고 보니 로큰롤 고는 이미 ‘중력 밀가루 한 포대‘라는 물질을 받으며, 국가의 뜻에 따른다는 명목하에 원래 이름인 고봉남에서 로큰롤 고로 창씨개명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다시 우여곡절 끝에 몇 달 후 노가다 고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 토마토 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 무동 마을 비닐하우스 내의 단란한 가정은 지속되어간다.

이야기는 이렇게 무동마을 잔잔한 삶의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무동 마을 정착 후 24시간 감자탕 집에서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경수 엄마. 하지만 경수는 감자탕 집 눌린 돼지 같은 사장을 싫어하고 그를 골탕 먹이듯 점심때마다 식당에 찾아가 두 그릇의 식사는 기본, 식당이 운동장이라도 되는 듯 활개를 치며 사장의 기분을 좌지우지한다. 이러한 인물들을 비롯해 12명의 아들을 키우는 아낙 일석 엄마의 삶. -그녀의 삶 또한 어찌 보면 파란만장했다- 가진 것은 빠듯하나 하루하루의 일상을 겪어가며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의 군상-어른들의 이야기와 상상을 초월할 것 같은 초등학생 아이들의 유쾌하고 재미난 일상-이 이러한 것이구나를 새삼 느끼게 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마음을 잔잔하게 저울질해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라며 성장해가는 과정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들을 조각 퍼즐 맞추듯 완성해가는 과정도 경험해보길 기한다.

비닐하우스와 개발되지 않은 지역적 특성을 지닌 비록 작고 볼품없는 마을 일 수 있지만 권력과 탐욕, 좌절과 희망, 투쟁과 대치, 환희와 절망이 모두 공존해 있는 상징적 마을 무동.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직시하며,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떻게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 볼 만한 시간도 될 수 있다. 재미와 풍자, 웃음이 묻어나지만 현실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행태들이 작품에서 묻어 나오는 기시감과 함께 맛깔스럽게 그려지는 대화체의 문장들도 흥미를 더하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 - 네 마음이 반짝반짝 빛나는 곳으로 너를 데려다줄게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쌤앤파커스/곽세라/에세이/심리

      

행복의 깊이, 넓이를 따지는 행위부터가 행복과 멀어짐을 의미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미세한 부분부터 내게 다가오는 작은 행복. 엄청난 큰 것을 바라는 행복보다 어느 순간 불현듯이 찾아온 행복의 정의. '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에 대한 다양한 물음이 이 작품에 담겨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공이라는 목표도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있으며 그 성공과 행복을 구분하는 개념도 사람들마다 다르다. 그 방향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 행복의 깊이와 가치관. 너는 어디까지 행복해봤니? 와 만날 시간이다.

       

'네가 원하는 바로 그때.

 

원하는 바로 그걸 주진 않을지 모르지만

 

들어뒀다가 너의 때가 무르익었다 싶을 때

 

너에게 적당하겠다 싶은 걸로 골라 주는 것이

 

더 크고 현명한, 진정 너를 사랑하는 보호자가

 

하는 일이란다.'

      

저자가 쓴 글의 내용 일부이다. 처음부터 행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극히 일부는 부유하거나 복된 가정에서 태어나 그 행복을 영유아기 시절부터 느낄 수 있으며 그 안에 좌절 또한 묻어 나올 수 있는 게 행복을 향한 과정이다. 그래서 그때그때 모든 것이 채워지는 것보다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는 와중에 행복이 더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 꽃이 빛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뿌리가 든든해야 행복도 더 크고 화려하게 내 앞에 기쁨처럼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그때를 기다려보는 행복의 여유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하지 마라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그 방향을 바라보며 노력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도 마라. 그 대신 나의 도마 위에 무엇이 올려져 있는지를 알고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그리고 그것들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요리를 떠올릴 수 있는 창조력을 심어주어라. 낙천과 배짱을 가진 삶의 요리사로 키워라.'

      

가족과 자녀의 행복. 특히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를 대하는 현대인의 모습. 부모의 모습은 공장의 조립화된 기호품을 만드는 이들처럼 자신의 아이들을 획일적이며 천편일률적 모습으로 교육하고 있다. 남보다 앞서가게 하려는 경쟁의 바다에 투쟁하듯 던져 놓을 뿐, 아이들 개개인의 창의성과 인성은 무시한 채 삶을 부모 식대로 요리해주고 있다. 요리사를 만들기보다 부모가 바라는 행복이자 자신이 못다 이룬 행복의 절정에 이르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자녀의 행복이란 미명하에 마음의 나이, 절망을 행복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이처럼 행복의 기본 뿌리. 외적인 것보다 내적 성장을 위한 방향의 전환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그래야 고난도, 도전도 이겨내 행복에 닿는 길을 찾아가는 인생 항로가 펼쳐지는 것이다.

       

행복을 위해 기다리면 안 된다. 누군가가 행복을 갖다 주지 않는다고 저자는 표현한다. 운동, 공부, 승진 등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 능동적인 행동으로 행복을 위해 달려보자.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천천히다. 자다 깨어보니 맛있는 아침을 차려 놓은 애인, 부인의 선물.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이룬 행복도, 타인이 전해 준 행복도 보다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서둘러야 행복의 깊이가 상승하는 것이다. 먼저 행복하게 해주길 바란다. 그럼 또 그 행복을 받은 상대가 내게 더 큰 행복의 충만함을 선사할 것이니까. 그것이 행복이고 깊이를 잴 수 없는 함께 누리는 행복이라 정의하고 싶다.

 

'행복을 추구하는 순간, 당신은 불행해질 것이오. 행복을 (추구해야 할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오. 행복은 누리는 것이오. 숨처럼 쉬는 것이오. 느끼고 기억하시오. 그저 (이미 있다) 는 것을 기억하시오.'

   

엉클 파루의 말에 공감이 간다. 우리는 행복하기를 물질적 풍요의 추구이며, 안락한 삶이 완성되는 귀결점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그저 시간을 누리고 숨쉬기를 통해 자연과 호흡하는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행복보다 포장된 화려함의 행복감에 도취되어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신해철 님의 노래 가사처럼 우린 지금까지도 '큰집, 빠른 차, 여자, 남자, 명성' 등의 화려한 쇼윈도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듯하다. 그냥 이렇게 잘 살고, 서로 교류하며 만남을 통해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의 여유가 필요할 때이다.

 

 

까르마파에게 던지는 한가지 질문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저자는 이 답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까지 16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하니, 우문현답에 대한 명답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우면서, 이를 깨닫는 순간부터, 진정한 행복이 내 안에 밀려듦을 확인함도 더 큰 행복감으로 다가오리라 확신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욕심 없이 누리는 것이 행복이고, 그것을 채워가는 시간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방식임을 배우게 된다.

   

 

다양한 현자들을 통해 행복의 의미와 나아갈 길을 제공받는 것, 행복의 깊이는 무게감보다 가벼움을 통해 내 안에 스며듦이 참된 진실임을 체감한다. 그 시간이 더 짧아지길 바라고 행복을 바라기보다 숨 쉬고 호흡하면서, 타인과의 눈인사, 혹은 유쾌한 대화를 통해서도 행복감을 맛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을 위해 노력해보자. 그것마저 짐과 무게라면 시간의 흐름에 나를 내맡기는 것이 행복을 위한 첫걸음이란 걸 깨닫길. 그 시간이 내 앞에 선물처럼 다가와 행복의 지경을 넓혀 나가리란 확신 속에 늦고 빠름의 차이도 없음을 확인한다. 꿈과 행복을 위한 내 앞의 미래, '인생은 늘 꽃철'이란 저자의 믿음에 화답하는 시간을 만들어가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떨어지면 어떡해 오리그림책
안새하 지음, 차상미 그림 / 동심(주)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시험이 아닙니다. 승진이 아닙니다.

아이의 동심이 묻어나는 동화입니다.

흔히 대*밴드라 불리던 반창고의 추억 다들

갖고 계시죠? 어른인 저도 피가 나면 반창고 먼저 찾는데

저희 아이 또한 밴드 붙일게요~를 제일 먼저

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계속 반창고를 찾고, 아빠가 머리가 어깨가 아파도 반창고 붙여줄까요? 이런답니다.

동화 속 소녀도 반창고를 통해 세상을 다 가진 듯 예쁜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아빠는 매우 걱정이 되어 어서 약국으로 가 반창고를 붙여주지만 아이는 아픈 것도 잠시 이것이 훈장처럼 느껴지나 봐요. 엄마, 아빠, 언니는 이런 동생이 너무 걱정되고 안타까워 더욱 보듬어 주는 하루인데 말이죠.

아빠와 아이는 반창고를 당당히(?) 붙이고 집으로 향하지요.

아빠의 말도 예뻐요.

 

"괜찮아? 조심하지" 가 아닌 "안 아프게 해 주세요. 눈물 말고 웃음을 주세요."아빠들이 배워야 할 부드러운 말이네요.

이렇게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머금고 자라나는 아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아빠에게 업혀 집으로 당당히 무릎엔 반창고 훈장이 부착되어 있어요.

오늘, 내일 친구 같은 반창고가 아이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이죠.

"반창고야, 떨어지면 안 돼."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엄마의 진수성찬. 언니의 격려가 이제 아픔 대신 진짜 웃음으로 다가오는 저녁입니다.

"반창고야 고마워~" 이건 어른의 마음일까요ㅋ

 

 

아이는 반창고가 떨어질까 봐 걱정이고, 느슨해진 반창고를 떼어 내주려는 엄마. 하지만 아이는 내일까지 반창고를 소중하게 지켜 친구들에게도 자랑하고, 어른이 되어 회사에서 반창고를 붙인 자신의 당당한 모습도 상상해보고 싶습니다. 작은 것의 위력, 동심이 큰 꿈으로 변화하는 마법 같은 하루를 '반창고'가 만들어 준 하루였어요. 아빠랑 엄마랑 반창고에 대한 추억을 나누며 즐거운 동화 읽기가 되길 바랍니다.

동화는 아이도 부모도, 다시 동심 가득 아이 시절로 귀환시키네요.

   

"떨어지면 어떡해?"

그래도 차분하게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격려해주세요. 작은 것에도 미세한 울림이 나는 아이의 모습을 인내하며 바라봐 주세요.

부족한 아빠인 저도 깊이 배우고 반성하는 동화였습니다.

 

아이는 괜찮아요. 자신의 분신 같은 떨어지지 않는 반창고가 있으니까. 어느새 꿈속에 빠진 아이의 무릎에 튼튼한 반창고를 다시 붙여준 천사가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이의 동심, 그게 참 영원하길 바랍니다.

동심 오리 그림책이 그 동심을 더 오래 지속해 주길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을 바꾸는 정리 기술 - 물건과 공간, 인생을 디자인하다
윤정훈 지음 / 다연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연/윤정훈/자기계발/실용서

이 작품은 현실적인 정리에 기본적 틀을 제공해주는 실용서이다. 그간 책이며 옷에 관련된 정리 정돈이 서툴렀던 독자들에게 일종의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제공해준다. 많은 것보다 적당히 자신이 정말 소중한 것을 곁에 두는 행위. 그리고 미니멀라이프가 이 책과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업이 늘어갈수록 건물과 직원은 늘었지만 좀 더 효율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정리의 필요성이 증가된다는 것을 느낀 저자의 경험처럼 이 작품을 읽고 내 주위의 자잘한 도구에서부터 애장품까지, 꼭 한 번 둘러보고 내 인생의 정리 기술을 익혀보는 것은 어떨까? 깔끔해진 집안 분위기, 회사 분위기를 보면 정리할 때는 약간 힘들지만 알게 모르게 밀려오는 뿌듯함을 기대해보자.

저자 윤정훈 정리 전문가, 그는 사업이라는 변화무쌍한 세계에 몸담고 있었던지라, 예측 불가능한 미래와 사업의 등락폭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성공과 실패를 이어가는 과정에 죽음의 문턱까지 당도했던 저자. 이 죽음의 문턱이 저자 스스로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진정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나아갈 바를 확정 지을 수 있는 푯대와도 같은 역할을 한 것 같다. 자신이 쌓아 온 사업의 노하우에 좀 더 색다른 시선을 더해 시작해보려는 의지, 그것이 저자 윤정훈을 인생 전환의 기회, 정리의 기술이란 큰 선물로 화답된 것이 아니었는지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해본다. 필연은 우연스럽게 찾아온다. 저자 또한 사업 실패로 휴식을 취하는 중 우연히 발견한 전단지 한 장에 매료되어 자신의 일과 꿈꾸었던 이사의 일부를 매칭 시켰다니, 자신의 생각이 현실이 되게 하는 결과의 완성을 위해 늘 생각을 정리하고 내 삶을 바꿔나가는 것도 정리의 기술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정리를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다.‘​


흔히 돼지우리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 있다. 그 집의 평수가 크든 작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중요치 않다. 정리가 우선 되어야 사람같이 사는 것 같다는 정리 의뢰자의 사례처럼 우린 정해진 공간에서 필요한 정리가 기본이 되어야 삶도 안정화되고 풍요로울 수 있다. 일단, 환경이 안정되면 심신도 안정돼, 일의 능률도 오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놓지 말아야겠다. 그것이 정리의 기술이고, 인생 계발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취미생활에 있어서도 우선순위가 있을 정리의 기술, 삶이 변화하는 그 후련하고 사이다 같은 기분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정리는 공간의 정리이자 내 삶의 정리라는 나름 포괄적인 생각도 해보는 것이 좀 더 긍정적이고 장기적 측면의 정리적 완성이 되지 않을까? 미니멀 라이프의 장점을 저자가 지지하는 것처럼 많은 것보다 실용적인 삶을 위한 정리 습관이 무엇보다 필요함을 이 책을 배우게 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생활에 활력을 주고 나를 조금이나마 변화시키는 목적의 변화는 자신의 행복을 위한 정리이지, 타인을 위한 삶의 변혁은 아니다. 이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나와 내 가족의 심플하면서도 안락한 삶을 꾸려보자. 이것이 인생을 바꾸는 정리 기술이며 그 시작을 작은 공간의 변화부터 시작해보길 권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작품은 독자의 삶에 변화에 조력자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정리 유형을 독자의 취향과 기호에 맞게 만나보자. 독자들 대부분이 아마 책을 다 읽고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을 느끼지 않을까? 그러한 기대를 조심스럽고 설레는 마음 가득 담아 꿈꿔본다.
몇 페이지 읽었을 뿐이지만 바로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 나. 마법같이 변신해가는 내 주변의 공간을 둘러보며 그 기쁨과 편안함, 만족감을 꼭 느껴보길 바란다. 인생이 변화하는 정리의 기술,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