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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돼지의 낙타
엄우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4월
평점 :
무동마을, 그리고 갓 이사 온 경수네 가족. 얽기 설기 지어진 단칸방 신세의 세 가족. 경찰이었던 경수 아버지 신변의 변화. 그리고 시작된 자영업의 험난한 경로가 커피숍, 분식집, 문방구, 통닭집에서 마무리를 짓는다.
이야기는 이렇게 경수네의 현재 상태와 함께 과거로의 귀환과 같은 삶의 궤적을 돌아보듯 예전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떡볶이집부터 난관이 시작되는 경수네 집. 화학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분식에 목숨을 걸다시피하며 아들인 경수에 딱 맞는 분식 요리를 선보이지만, 손님들에게 뭔가 2% 부족한 미묘한 맛의 차이로 아이들 손님은 줄고 어른 손님은 그럭저럭 드나들어 유지는 해가는 분식집이다. 하지만 10대 여학생들과의 커다란 홍역을 치른 뒤 맛의 전환을 바라며 분식집 생명인 떡볶이에 양파를 갈아 단 맛을 보강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양파를 비롯한 사탕수수의 생명력 등이 식물 자원의 의미,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유통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지 설명하며 양파에게 묵념을 하는 장면에 ‘피식‘웃음과 함께 그럴 수도 있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경수의 아버지는 분식집 화장실과 벽면에 쓰인 글들로 인해 결국 분식집을 접고 만다. 그것이 분식집을 찾은 10대 아이들의 장난인지, 다른 누군가의 모략성 글귀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불행과 함께 경수에게까지 정신적 건강을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행히 경수 아버지가 경찰 시절 잠시 알고 지낸 노상방뇨를 일삼던 의사의 진료와 처방으로 ‘돼지와 흰색‘을 멀리하라는 알듯 말듯 한 처방 속에 분식집 순대 대신 집 밥을 가까이하자 경수의 발작적 증세는 어느새 안정화된다. 이어서 분식집 대신 문방구로 업종 전환을 하지만 경수 아버지의 소문은 잠재워지지 못하고 결국 그 사업마저 접고 마는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어든 전기 통닭구이 사업 또한 하루, 이틀을 못 버티고 생각지도 못한 절망과 함께 프라이드치킨의 대공습과도 같은 영향력에 힘도 써보지 못한 채, 가게 빚을 지며 거금의 이자를 통해 대출을 받은 사채업자에게 넘기고 만다. 이렇게 경수 아버지의 찬란(?) 했던 자영업 시대는 마감되고 남은 건 빚, 무동마을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만도 하나의 단편 소설과도 같은 장편 소설의 생생한 에피소드이다. 내가 한 말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 변화하는 세상 속에 가족이라는 이름과 함께 가장의 입지를 다져가려는 경수 아버지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아이의 눈에 비추인 어른들의 세계, 혹은 그 아픈 경험 안에서 더 크게 미래를 바라보고 성장하는 해안이 깊어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무동마을은 그렇게 서울에서 근접한 입지 조건을 지니고 있으나 커다란 발전은 하지 못했다. 그저 힘겹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러 갈 만한 곳에 지나지 않았으나 삶에 찌들거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절망과 단념으로 몰락한 이들이 그 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경수네 가족들도 그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물 로큰롤 고, 토마토 문과의 만남. 음악에 심취한 채 살아가는 청년과 토마토 농장 일을 하는 또래의 여자. 우연히 만난 그들의 이야기도 필연처럼 무동 마을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연속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함께 생활을 하게 되고 쓸데없는(?) 음악 대신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막노동을 시작해 이름 또한 노가다 고로 개명하게 된다. 하지만 알고 보니 로큰롤 고는 이미 ‘중력 밀가루 한 포대‘라는 물질을 받으며, 국가의 뜻에 따른다는 명목하에 원래 이름인 고봉남에서 로큰롤 고로 창씨개명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다시 우여곡절 끝에 몇 달 후 노가다 고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 토마토 문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 무동 마을 비닐하우스 내의 단란한 가정은 지속되어간다.
이야기는 이렇게 무동마을 잔잔한 삶의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무동 마을 정착 후 24시간 감자탕 집에서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경수 엄마. 하지만 경수는 감자탕 집 눌린 돼지 같은 사장을 싫어하고 그를 골탕 먹이듯 점심때마다 식당에 찾아가 두 그릇의 식사는 기본, 식당이 운동장이라도 되는 듯 활개를 치며 사장의 기분을 좌지우지한다. 이러한 인물들을 비롯해 12명의 아들을 키우는 아낙 일석 엄마의 삶. -그녀의 삶 또한 어찌 보면 파란만장했다- 가진 것은 빠듯하나 하루하루의 일상을 겪어가며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의 군상-어른들의 이야기와 상상을 초월할 것 같은 초등학생 아이들의 유쾌하고 재미난 일상-이 이러한 것이구나를 새삼 느끼게 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마음을 잔잔하게 저울질해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라며 성장해가는 과정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들을 조각 퍼즐 맞추듯 완성해가는 과정도 경험해보길 기한다.
비닐하우스와 개발되지 않은 지역적 특성을 지닌 비록 작고 볼품없는 마을 일 수 있지만 권력과 탐욕, 좌절과 희망, 투쟁과 대치, 환희와 절망이 모두 공존해 있는 상징적 마을 무동. 이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직시하며, 무엇을 필요로 하고 어떻게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 볼 만한 시간도 될 수 있다. 재미와 풍자, 웃음이 묻어나지만 현실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행태들이 작품에서 묻어 나오는 기시감과 함께 맛깔스럽게 그려지는 대화체의 문장들도 흥미를 더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