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7
페데리코 안다아시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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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연말에 이어지던 술자리로부터 시작된 위와 장의 반란이 진정되고 몸의 컨디션이 제대로 돌아온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신체 어느 기관의 균형이 깨지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데 예전과 같은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꼈달까. 겨우 책상 앞에 돌아와 새해 처음 읽은 명작이 <해부학자>이다. 육체는 생로병사의 출발지이자 도착지라는 깨달음을 인식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나서 인지 책 덮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단어는 ‘육체’였다. 죽고 나면 썩거나 태워져 한 줌 재로 사그라드는 이 몸 뚱아리 하나를 보존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발버둥치고 안타까워하는지 그 모든 육체에 대한 정성이 새삼 서글퍼지는 시간이었다.

 

  소설의 구성은 크게 세부분이다. 해부학자가 어떻게 해서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는지의 과정과 재판과정에서의 고소와 변론, 그리고 재판 후 해부학자에게 일어난 일, 즉 재판 전, 재판 시, 재판 후 이렇게 볼 수 있다. 이 모든 일은 해부학자가 달콤한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작가는 해부학자 마테오 레알도 콜롬보의 이름이 탐험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와 뿌리와 같다는 점에 착안하여 해부학자의 발견을 신대륙 아메리카의 발견에 빗대었다. 작가는 실존인물인 마테오 콜롬보에 대한 기록 -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발견했고 교황의 주치의였다는 - 두어 줄을 가지고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당시로선 신성모독이자 마법행위 아니 악마숭배로 평가될 이 발견의 업적 당사자가 어떻게 교황의 주치의가 될 수 있었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아무 기록이 없음이 바로 상상력의 시발점이 된 듯하다. 실제로는 ‘여자의 의지와 사랑과 쾌락을 지배하는 기관’을 발견했다는 사실과 누구나 우러러보는 교황의 주치의로 역임했다는 사실이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별개 사안일수 있겠지만 작가는 사형수가 중죄를 뛰어넘는 권력자가 되기까지를 미스터리로 보고 그 중간 사연을 완성해냈다. 이 소설에 대한 많은 평가가 있겠지만 내겐 그 두어 줄이 불리고 불려져 이토록 흥미로운 소설이 되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클리토리스와 주치의 사이에 극적인 사연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해부학자가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와 실험을 하고 여성을 도구화하여 사람을 치료했기 때문이었다. 해부학자는 창녀의 육체와 성녀의 영혼을 동시에 사랑한 남성이며 유모의 젖과 어린 여자아이의 피를 동시에 약으로 이용한 의사였다. 사랑으로 생명을 살리기도 했지만 생명으로 사랑을 저버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두 줄의 기록이 이백 장이 넘는 사연으로 꽃피운 그 중심에 꽃보다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소설은 육체를 죄악시하고 여자를 도구로 본 중세시대에 여성 해방에의 가능성을 탄압한 역사로 읽히기도 한다. 창녀학교가 종교교육은 물론, 고대 신화, 모국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가르치고 일종의 문예부흥학교로서 시청에서 보조금을 받았다는 서술은 당시 창녀의 신분을 말해준다. 고위인사로부터 공무원 임명장을 수여받는 졸업식은 어느 학교의 졸업보다 영예로와 보였다. 즉,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여성의 성기는 자기 자신의 쾌락이 아닌 남성의 쾌락을 위해 사용되어야 함을 제도화 한 것이다. 그런 여성이 육체의 열망으로 자기 존재를 주체화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은 영혼이 있어서 스스로 성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남성에 구속되는 소유물이지 자유가 허용되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거의 현재까지도 남편이 아내의 개별적 쾌락은 인정하지 않는 성적 집단 분위기로 이어진 면이 있다. 작가는 해부학자의 길고 긴 변론을 통해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이중, 삼중적인 잣대와 시선을 꼬집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작가는 이미 시대가 죽여 버린 여성을 두 번 죽이면서 공평하게 그들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볼 수 있는 남성들을 대표하여 한 사람의 희생양을 가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해부학자가 여성안의 더 극적인 여성을 발견했지만 왜 소설 속 두 여인은 모두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걸까. 해부학자의 첫사랑이었지만 창녀였던 소피아는 성병에 걸려 괴물처럼 죽는다. 자신의 여성성을 발견하게 해준 해부학자를 사랑한 이네스는 화형을 당한다. 한 여인은 클리토리스의 존재를 몰랐고 한 여인은 클리토리스를 제거했다. 클리토리스를 발견한 의미가 없어져버린 해부학자가 택한 인생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의 백미를 해부학자가 펼쳐낸 자기 변론의 페이지들이라 언급하곤 한다. 그런데 멈출 수 없는 가속력으로 넘어가던 그들 페이지 끝에 에필로그처럼 무심하게 덧대어진 까마귀의 행복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잊기가 힘들다. 사실상 해부학자보다 더 인간을 해부하면서 일상을 날아가는 까마귀의 날갯짓은 다시 우리네 덧없는 ‘육체’를 회상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었다.

 

  탐험가나 해부학자가 아니더라도 무엇을 발견하고 그 발견의 기쁨을 상징하는 깃대를 어딘가에 꽂을 상상……을 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역사 속 해부학자가 무엇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진실을 허구화하여 자기 인생의 아메리카로 만들어버린 작가가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에 기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마다의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위해 사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탐험가는 새로운 땅을 발견했고 해부학자는 새로운 여성을 발견했다. 한 사람은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세상을 확대했고 한 사람은 우리가 아는 여성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로써 우리가 아는 소설의 무게는 분명 늘어난 것이다. 이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연은 마테오 콜롬보에게 서양을 향해 항해를 계속하면 동양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시해줄 것이다. 향신료를 찾는 사람이 우연히 근사한 금광과 맞닥뜨리는 것처럼, 자신과 동일한 성을 가진 제노바 출신의 그 남자처럼, 마테오 콜롬보도 자신의 ‘아메리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운명은 그가 베네치아로 금의환향하기 위해서는 먼저 피렌체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에게 가르쳐줄 예정이었다. 한 여자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여자의 마음을 정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109p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당시 해부학자는 예술가이자 과학자, 기술자였고 사상가이자 법률가였고 스승이자 전사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형의 인간이었던 그가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소설 속에서 그는 유려하고 감동적인 문장으로 성녀에게 연서를 보내는 문필가였다. 해부대상이 된 신체를 혼을 담아 그려낸 화가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변론하기 위해 그가 펼쳐낸 논리는 과학, 윤리, 종교, 도덕, 심리를 총 망라한 자기인생의 감독관이자 연출자의 관점이었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이 모든 역할을 한 공간과 시간 안에서 펼쳐낼 수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며칠 전 소설을 읽으면 뇌 부위가 활성화되어 읽는 사람이 마치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 처럼 느낀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 있다. 뇌신경세포에 변화를 일으켜 소설을 읽고 나서도 최소 5일 지나도 그 효과가 지속된다고 했다. 소설가가 하는 일이 인간의 뇌를 변화시키는 영역에 있다하면 한 편의 좋은 소설은 한 명의 인간에 기여하고 남을 일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내 이름과 같은 유명인을 떠올려본다. 만약 유명한 미스코리아와 같다거나 대통령, 혹은 유명한 작가, 아니면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같았다면 오늘의 우연이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하게 된다. 분명한건 그 우연이 행운의 범주에 있다 하면 반드시 그 이전에 어떤 갈망에의 발걸음과 실망스런 넘어짐이 무수히 반복된 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 <해부학자>는 미래에 다가올 알 수 없는 반가운 우연을 준비하는 꽤 신선한 발자국쯤 되지 않을까.

 

  새해가 시작되면 어쩐지 꿈의 크기와 무게가 더 강력해지는 느낌이다. 우리 모두 각자 정복의 깃발을 꽂는 그날을 위하여, 그리하여 내 마음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그날을 위하여, 나의 아메리카여, 부디 끝까지 기다려 주시길.

  그것이 기나긴 발견의 기쁨이라면 당신도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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