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에게 문학상을 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모르긴 해도 모두 잠든 그동안의 밤에 흘린 눈물이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로 화답하는 기분이 아닐까.

내가 아는 작가, 내가 읽은 작품이 상을 타면 괜스레 무언가 기여를 했다는 착각에 덩달아 벅찬 경우가 있었다. 바로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공지영의 <맨발로 글목을 돌다>의 경우 나는 작가의 소감을 읽고는 같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를 울린 독자들과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니. 나를 울려온 작가가 그런 말을 하니 나는 가슴이 터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는데 나에게 책은,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약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처럼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어떤 단정적인 문장으로 만날때 나는 그만 숨이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책 속의 추함이 현실의 추함을 따라잡는 법은 거의 없다. 책 속의 비참함이 현실의 비참함을 넘어서는 법도 거의 없다. 책은 내 아편이다. 술만큼이나.

- 고종석 일일연재, <해피패밀리> 제 1회 中에서

http://cafe.naver.com/mhdn/27416 

 
   


어제 늦게 연재소설을 시작한다는 고종석 작가의 첫 회를 읽게 되었다. 주제넘지만 그의 인텔리하고 히스테리컬한 문장들이 내 졸음을 가시게 만들었달까. 소설쓰시는 것도 반가웠고 연재까지 하시다니 좀 의외였다. 어쩐지 속세의 유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작가여서 그랬을까. 위의 저 두어 문장을 어디다 적어 놓고 싶은 유혹을 참고 잠이 들었다.

아침 신문에 동인문학상 후보작에 관한 기사를 보며 자연스레 어제 덮고만 두 문장이 어른거렸다. 고종석은 2004년도 동인문학상 후보(엘리아의 제야)를 거부한 작가였다.

작년에 독고준이라는 소설 리뷰를 쓰면서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찾아본 기억이 난다.


   
 

 

"나는 조선일보가 수구 냉전 복고세력의 선전국일 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권력화를 가장 비도덕적으로, 현저히 정치적으로 드러내왔다는 판단때문에 집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조선일보를 읽지 않는다" 

"심사위원단의 종신화와 상금의 파격적 인상, 그리고 상시적 독회 평가의 기사화를 뼈대로 한 세 해 전의 체제 개편 이래 한국문단에 대한조선일보의 아귀 힘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도저히 이 상의 수상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고 그 얼굴을 지면에 실은 데 대해 조선일보 쪽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심사독회에 올랐을 뿐 수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거부라니 내 꼴이 얼마나 우스운가, 그렇다고 제가 비판해온 문학상의 후보에 오른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는 꼴은 또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

"나쁜 뜻이야 없었겠으나 결국 조선일보 지면은 나를 조롱한 셈"


- 2003. 12.25, 한국일보 고종석의 칼럼 '동인문학상의 생각'

 
   


그 외에도 동인문학상은 2000년 황석영, 2001년 공선옥 작가가 후보를 거부했던 적이 있었다. 독고준 리뷰를 쓸 때는 그의 동인문학상 거부 사실을 다시 책의 홍보 헤드카피로 활용하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독고준 소설 앞에는 ‘동인문학상 거부 고종석’이 메인 카피였었다. 그는 아마도 작가하는 동안엔 거부사실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텐데 그럼 발표하는 소설마다 저 타이틀을 활용할 것인지 묻고 싶었다. 물론 그의 의견과 상관없이 출판사 마케팅 차원에서 적극 앞세우고 싶었겠지만 사실 독고준과 동인문학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않은가.(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는 꼴은 또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 라는 말만 안했어도...) 본인으로선 거부 사실이 사실이므로 기피하거나 숨겨야 할 사실이 아니었겠지만 어쩐지 뇌물을 안 받아 놓고 나 뇌물 안 받은 의원입니다, 하는 안보고 싶은 경우에 속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여, 그땐 독고준과는 별개로 침묵이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만 없었던 것으로 한다면(?) 나는 그가 수상작도 아닌 후보작을 거부할 때 인터뷰로 날린 저 멘트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또 하나 의문이 들었던 건 ‘도저히 이 상의 수상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이라는 부분인데 나로선 어떤 사람이 수상이 안되는 이름인지 알 수 없으므로(그해 수상자는 김영하 작가였는데 솔직히 고종석이 김영하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음이다) 그 어떤 사람의 기준이 몹시도 궁금했다. 독자 입장에선 솔직히 수상한 사람은 무언가 더 아우라가 크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작년에 같은 상을 수상한 김인숙 작가도 그러한 영역에 속해있다. 마치 영화제 주연상을 수상한 후 몸값이 올라가는 이치처럼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 상받은 작가라는 인식은 떡허니 선입견의 저장위치에 한 자리를 내주었다.

올해는, 누가 그 위치에 들어 오실런지. (사실 크게 궁금하진 않지만) 후보작들을 훑어 보니 그들 중 반은 내가 읽은 작품이라 나도 참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상작 발표는 10월이고 7월말까지 출간된 소설까지 후보작을 선정한다고 하니 앞으로 두세 편은 더 포함 될 듯 싶다. 현재까지 후보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총 열세 편이다.(작년은 열여섯 편) 

 

 

 

 

 



 

    

 

 

 

 

 

 

 

 

 

 

 

  

 

 

 

 

 

 

 

 

 

지금까지 후보작은 권여선 소설집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최제훈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같은 작가의 연작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김도연 소설집 '이별 전후사의 재인식', 강영숙 장편 '라이팅 클럽', 서준환 소설집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김숨 소설집 '간과 쓸개', 박민규 소설집 '더블', 박금산 장편 '아일랜드 식탁', 편혜영 소설집 '저녁의 구애', 윤영수 소설집 '귀가도', 염승숙 소설집 '노웨어맨'  

완전 소설집의 축제이다. 작년 수상작 김인숙의 <안녕, 엘레나>도 소설집이었다.  단편 많이 읽는 축에 속하는 나도 서준환, 염승숙의 소설집은 낯설게 느껴졌다. 등단한지 3년된 최제훈 작가의 돌풍도 놀랍다.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 문서로 사기치는 능력이 남다르다 느꼈지만 두개의 작품을 후보로 올리셨다. (보통 후보작이 두개일 경우 이상하게도 수상확률이 낮은 편이지만 ㅠ.ㅠ) 

이들중 개인적으로 수상하였음 싶은 작가는 김도연 작가이다.  완전 내 기준, 그러니까 순수문학은 순수해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내 기준에서. (강원도 출신이고 작품에 유난히 눈내리는 마을, 눈 쌓인 배경이 많이 등장하는 덕이다)

눈에 띄는 작품 중에는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 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북쪽 향기의 내음이 났다.  

이야기는 함경북도에서 탈북해 벨기에로 밀입국한 청년 로기완을 쫓아 브뤼셀로 날아간 어느 방송 작가의 정체성 찾기라고한다. 다음 후보작이 선정되기 전에 읽어보고 싶다. (는 생각이지만 읽을 책이 쌓여있구나....ㅠ.ㅠ)

더불어, 이러한 논의에 언급되는 것 자체를 거부한 고종석 작가의 연재소설도 기대된다.  

(연재소설 끊은지 얼추 일년인데 다시 불을 지피는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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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07-05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연재소설 안 쓸거 같은 작가들이 쓰는 연재소설은 정말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당. 저도 고종석 일일연재 따라가볼까요? 접때 문동에서 허수경 일일연재 시작했더랬는데 한 두 번 따라가다보니 지쳐서 말았지 뭡니까. 일일연재 따라가면서 읽는 거 이거..독자도 대단하지 말입니다. 작가도 대단하지만, 독자도 대단하다! 에 한 표. ㅎㅎ

문학상..이 우리나라에 종류가 많은가요?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언급하신거 말고도 또 있을까요?
위에서 저는 더블이랑 저녁의 구애랑, 두 권이나 읽었네요. 히

한사람 2011-07-05 11:00   좋아요 0 | URL

어휴~ 작년에 몇개월 하루도 안빠지고 일수찍듯 해봤는데요
보통의 에너지가 필요한게 아니더라구요 ㅋ
완전 그 시간에 맞추어 하루 일정이 짜지던걸요 ㅋㅋ
첨에 멋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가 그땐 그 다음이 궁금해서 마치 드라마에 빠져들듯
그랬죠..

제가 생각하기에 연재소설에 더 적합한 작품이 있고
그냥 전작으로 더 감동적인 작품이 있는 거 같아요
몇 회 읽어보다가..스스로 결정했죠^^

이번은 몇회까지 갈지 모르겠는데..
저는 고종석 작가의 칼날같은 관념적 사유가 좋아서..그거 찾으려고 또 몇번은 클릭질을 할거 같다는 ^^

글구, 저도 문학상은 이름 외우는거 그거 두개가 다 일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