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워드 Onward -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의 혁신과 도전
하워드 슐츠 & 조앤 고든 지음, 안진환.장세현 옮김 / 8.0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가치 ‘달성’자   보다  가치 ‘수호’자

  나는 오늘도 커피를 마신다. 어제도 마셨고 내일도 마실 것이다. 어쩌다가 내가 커피와 일상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건 지금 이순간도 커피와 함께 글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역시 커피를 찾을 것이라는 것이다. 서머셋 모옴은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고 했다. 이를 본 하루키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하고 있으면, 거기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며 부연했다. 두 명의 소설가가 커피를 매일 마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책을 덮고 두 사람이 말하는 내가 ‘매일’ 하는 것의 ‘철학’을 떠올리게 된다. 어제와 같이 별 고민없이 습관적으로 커피를 내리고 아침을 시작하는 내 삶의 방식과 그것의 의미를 새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무릎을 탁치며 한마디를 읊조리곤 고개를 갸우뚱해본다. ‘온워드’... 전진, 앞으로...? 상투적이지 않으면서 단정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한 이미지가 연상되지도 않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매력적인 단어, 이 책의 제목은 어쩐지 커피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한 모금이 목으로 넘어가며 입안에 그윽한 향이 퍼지는 느낌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마음에 천천히 시동을 거는 일과 같았다. 그랬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커피를 마셔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커피에 대한 사유를 시작하자 ‘온워드’는 한 잔의 커피처럼 천천히, 하지만 꽤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살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그다지 행복한 시간이라는 생각은 자주 하지 않았는데 오늘부터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틀림없이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자 신문에선 ‘커피 값이 오르고 있다’는 통계와 함께 미국의 스타벅스에선 7월부터 커피값을 인상할 것이라는 기사(5.26, 매일경제)가 눈에 띈다. 대체로 이상기후로 인한 커피 생산량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데 오늘따라 이 소식은 나를 슬프게 한다. 우리가 도시에서 살아온 주거 이력은 얼추 카페인 축적의 이력과 같지 않은가. 문명의 발달로 파생한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바로 이 도시의 급격한 발달이 커피의 생산을 줄어들게 하는 원인이라면 이토록 엄청난 아이러니도 없지 않을까. 그것은 우리가 도시에 살면서 도시를 원하고 도시를 포기하지 않을수록 커피가 줄어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원하는 사람은 늘어날 것이기에 커피는 점점 비싸질 것이고 시작과 달리 커피는 우리 생을 옥죄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도시와 커피를 동시에 포기하지 않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혹 커피는 도시 삶에 대한 따뜻한 보상이 아니라 도시를 선택한 자가 감당해야 할 차디찬 댓가는 아닐까. 도시에 살면서 누리는 커피 한 잔의 여유, 그로인한 행복이 아니고 도시를 포기하지 않으려면 할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세금같은 것. 자동차를 굴리기 위해서는 점점 비싸지는 휘발유를 끌어안는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이런 저런 생각을 하자 ‘온워드’는 휘발유처럼 언젠가 다가올지 모르는 커피전쟁의 시대, ‘on war(전시상태)’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안온한 일상을 의미하는 온정어린 키워드 ‘온穩 word’라 여기기에 우리의 오늘은 어두워 보였다.

  이처럼 커피의 중독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스타벅스라는 대형 글로벌 기업의 상업적 이미지 때문에 처음부터 이 책이 긍정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저 여느 대기업의 성공전략이나 CEO의 성공법칙을 말하는 서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처음 접한 ‘온워드’도 보이지 않는 특수 전략의 암호 정도로 느껴졌달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만이 가지는 독특한 브랜드의 매력처럼 ‘온워드’라는 단어의 창의적인 느낌만은 의문을 가질 만했다. 대단한 비밀같지는 않지만 무언가 의미있는 개념이라 주장하는 듯해 결국 스타벅스의 전략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온워드’의 컨셉이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책을 덮고 난 지금의 ‘온워드’는 다행히도 내가 가진 여러 편견을 전복시킬만한 내재적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책은 성공이나 신화, 인물이나 법칙을 말하는 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집필한 저자는 스타벅스 신화의 주인공이 맞았지만 그가 말하는 이야기는 세간에 유행하는 특별한 전략들과는 달랐다. 그는 시종일관 자기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일을 무던히도 설파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 책이 지난 남다른 가치이자 유일한 의미였다. 다만 평생 품어온 가치가 커피라는 꿈에 담긴 사람일 뿐이었다. 만약 그가 커피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했다면 마찬가지로 평생 그 일을 같은 방식으로 수행하였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커피를 말하는 책이 아니고 커피를 통해 발견한 자기 생의 가치와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끝까지 사수한 노력, 그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을 말하는 책이었다. ‘가치 달성이라는 목표’를 자신있게 말하기보다 ‘가치 수호에의 과정’을 담담히 전하는 그의 모습이 나는 좋았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일등의 목표를 가지고 일등을 이루는 것 보다 일등을 소원하던 처음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지켜가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 알게 된 까닭이다. 일등을 하고 난 후에도 변하지 않는 일등가치, 그것이야말로 일등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임을 일등에서 내려온 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다. 스타벅스가 커피 업계의 일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일등이 되려고 몸부림 친 것이 아니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가치를 무엇보다 최고로 여기는 마음가짐에 있었다. 그 최고의 가치가 실현되는 현장의 진행형 이야기, 그것은 일등이라는 성과를 낸 후 작성하는 결과 보고서와는 다른 문제였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감동받은 한 가지 분명한 가치는 바로 하워드 슐츠라는 가치수호자의 수호정신이었던 것 같다.

’개방’형 폐쇄공간   또는  ’소음’적 묵음공간

 
이 책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의 성장가도를 달리던 스타벅스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던 시기에 전격 CEO 복귀 결정을 한 후 어떻게 스타벅스를 다시 1인자의 위치로 올려놓게 되었는지를 되돌아보는 하워드 슐츠의 자전 기록집이다. 글로벌 기업의 창업자나 CEO가 말하는 기업이념과 경영철학, 특화전략들은 사실 CEO가 아닌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괴리감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기업가로서 너무 인간적인 개인 경험만을 강조하거나 보편적인 인류애에 호소한다고 느껴질 경우 저자가 주장하는 가치는 자칫 비현실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 전문성과 대중성의 사이를 자신들이 전파하는 제품, 바로 커피 한 잔의 가치로 공감을 유도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리드하는 전략이 미덕이 되는 에세이의 특성도 묻어났다. 딱딱하고 어렵고 생소한 용어나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최신의 신조어들도 커피라는 향기를 얹어내면 이상하게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마음을 열게 되는 친화력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경영자의 지나친 겸손도 과장된 칭찬도 부담스런 강요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가진 전부의 기술로 최선을 다해 내린 한 잔의 커피처럼 정직해 보이는 문체와 식기전에 신속히 전달하려는 결단력의 문장들은 번역체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로 하여금 안정감과 신뢰를 제공하고 있었다. 분량상 2년 여 기간 동안의 일을 밀도높게 정리하면서 슐츠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점까지 넘나드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끝내 독서의 저울을 수평으로 유지하는 절제된 균형미를 보여주었다. 꼭 담아야 할 컵에 적정 최고치를 넘지 않는 범위내에서 최상의 맛과 온도를 오래 유지하는 기술자로 보였달까. 하워드 슐츠는 분명 커피 한잔이 차지하는 영혼의 질량과 그 무게감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책은 슐츠만이 우려 낼 수 있는 최상의 커피 한잔이 아니었을까. 

  나는 여지껏 그토록 커피를 마셔왔으면서 흙에서 시작해 컵으로 도착하는 커피 한 잔의 여정이나 내가 마시는 커피 한 잔에 담긴 사회적 책임 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커피가 사람의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해보았어도 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식품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슐츠는 밀라노의 에스프레소 바에서 바리스타와 사람들이 인생을 이야기하며 저마다 낭만을 간직하는 풍경을 보고 커피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어떤 강렬한 기억은 평생의 희망이 되기도 하는 법. 그가 커피를 말할 때 ‘꿀처럼 떨어지는 에스프레소’ 한 잔의 마법을 빚어 내는 바리스타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우아하게 춤을 추는 무용수처럼 한편의 공연을 연출하는 예술가라 말한다. 밀라노같은 공연이 상연되는 극장이 바로 스타벅스이며 감성적인 사람들이 경험하는 벅찬 인생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아도 흥분되는 꿈의 공간이었다. 이 책을 통해 커피가 내 인생으로 흘러 들어온 일련의 과정을 추억해 보는 것은 이상하게도 삶의 생기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지난 시절 커피앞에 앉은 나는 사랑도, 우정도, 공부도, 이별도 함께였었다. 슐츠처럼 강렬한 커피 경험은 아니었지만 커피는 내 인생의 그림자라도 되는 듯 늘 묵묵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커피의 행보를 따라간 것인지도 모르지만. 누가 먼저였건 언젠가부터 우리네 인생은 커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한 번도 커피와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따라가는 나는 자주 그 사실을 확인해야했다. 나는 왜 그동안 커피와 함께 커피속에서조차 사람, 인생,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혹시 그가 말하는 커피와 내가 만나본 스타벅스는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스타벅스를 처음 경험한 시절은 대학원시기였다. 그때 학교앞에 생긴 스타벅스는 우리나라 1호점이면서 된장녀의 아지트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이제 커피도 다양화, 전문화, 고급화되는구나, 하는 놀라움과 그 밑에 잠재된 외국 자본주의, 그 침입을 통한 약간은 두렵고도 쿨cool한 이미지 정도였다. 이제까지 먹어온 커피보다는 비싸지만 지금까지 다녀본 커피전문점 보다는 쿨cool한 곳. 약속을 위해 누구를 기다리는 대기 및 전이 공간 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알차게 수행하는 개인적 여가 및 휴식 공간. 예전엔 (같은 자리의)패스트 푸드점에서 시간에 쫓겨 리포트 숙제를 하던 것이 근사한 스타벅스에서는 노트북이나 여유롭게 책을 넘기는 모습으로 바뀌면서 그 장면은 밀레니엄을 코앞에 둔 여학생이 지녀야 할 (트렌드로서)품위로 생각될 정도였다. 속으로는 각자 어떤 뜨거운 사유를 시도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스타벅스에 출입하는 친구들이 쿨cool하고 있어 보인다는 이미지는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했다.(당시 스타벅스 커피값은 학교앞 라면값의 두배였다)

  그 후로 10여 년이 지난 지금 스타벅스는 누가 뭐래도 쿨cool한 이미지를 대량복제하며 폭풍 성장했다. 소설 속에서 마저도 쿨cool한 기운은 특별한 시공간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 책에는 ’오늘의 커피’로 제공되는 브루드 커피가 한결같은 맛이길 바란다는 고객의 바램을 깨닫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슐츠의 경험을 만날 수 있다. 퍼뜩 작년에 출간된 김영하 소설집에 수록된 <오늘의 커피>의 첫 장면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에서 무릇 쿨cool한 작가로 대변되는 김영하를 관통한 스타벅스는 얼마나 쿨cool했을까. 소설속의 스타벅스는 소란스럽고도 조용했는데 이는 마치 ’뜨거운 얼음’을 만져보는 것 같았달까.


“광화문 스타벅스는 소란스러웠다. 계산대 앞에는 여섯 명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여자는 빨간 털모자를 쓴 친구와,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과 달콤한 티라미수 케이크중에서 어떤 것이 맛있는지 토론하고 있었다. 혼자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한 여자 가수의 배꼽과 그녀가 그것으로 버는 돈, 새로운 다이어트요법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 웅웅거리는 소리들은 원두분쇄기의 요란한 소음에 묻혔다. 캐논볼 애덜리의 색소폰 소리는 스피커를 나오자마자 바람빠진 풍선처럼 바닥으로 가라앉아 사람들의 발길에 차였다.”  
                                                       - 오늘의 커피 中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2010>


 
배경이 된 광화문 스타벅스는 국내 스타벅스 매장중에서 매출 1위를 달리는 점포이다. 김영하 작가는 하루에 일 천명 이상의 고객이 드나드는 그곳에서 ‘오늘의 커피’를 주문한 남자와 ‘카페라테’를 주문한 남자가 우연히 재회하도록 만들었다. ‘오늘의 커피’의 친구는 작년에 췌장암으로 죽었고 자신은 얼마 전 직장에서 잘린 신세로 며칠째 스타벅스에 출근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재수없게 그 죽은 친구와 술 한잔하며 시비가 붙어 코뼈를 부러뜨린 남자, ‘카페라테’를 주문한 그 놈을 광화문 한복판에서 마주친 것이다. 하지만 매장 내 사람들은 ‘오늘의 커피’가 ‘카페라테’로부터 어떤 형태의 보복성의 폭력을 당하고 다시 매장에 들어 섰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작가는 도심 한복판의 커피 전문점이 서로 적당한 거리의 무관심과 다음을 기약하지 않아도 되는 일회성의 특성을 지닌 장소라 말하는 듯했다. 당신도 바쁘고 나도 당신만큼 피곤하니 혹시 실연이나 실직으로 며칠 그곳에 죽치는 신세가 되더라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 같은 연대감이 서로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장치가 되는 곳. 내 사정을 알아줄 사람도 지켜볼 사람도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방해받지 않는 장소, 스타벅스는 개방형의 폐쇄공간, 사회적인 독립공간인 것이다. 그러니 열려 있으면서 닫혀있고 소란스러우면서 조용한 곳이 그곳이 아닐까.

 
’핫’hot한 전략이  ’쿨’cool한 고객을

 
 그런데 슐츠는 스타벅스의 감성, 스타벅스의 경험과 문화는 바로 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스타벅스만의 고유한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끈질기게도 설파하고 있었다. 고객들과의 지속적 교감, 정서적인 유대감이 없는 스타벅스는 존재이유와 가치가 없다고 반복, 주장하는 것이다. 나로선 이 책에서 가장 핫한 소식이었고 고개를 흔들고 눈을 크게 뜰 정도로 놀라울 뉴스였다. 슐츠가 말하는, 고객 한명에게 내려주는 한 잔의 뜨거운 커피를 가슴으로 느끼며 마시고 싶을 때 나는 스타벅스를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하려 스타벅스를 가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외려 정반대의 이유로 스타벅스를 찾으면 찾았지 말이다. 그동안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는 대용량 커피를 테이크 아웃할 수 있다는 효용성과 규격화된 (에스프레소)커피 맛에 대한 기호변화, 생활 동선상에서 발생하는 일상의 패턴 및 습관 등이라 믿어왔다. 다시 말해 내 주변에 스타벅스 커피가 특별히 맛있어서 혹은 스타벅스의 바리스타가 특별히 친절해서 굳이 스타벅스를 찾아 가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대체적으로 스타벅스가 제공하는 고유한 커피맛을 충성 구매한 것이 아니라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의 우월한 이미지를 랜덤하게 소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최근엔 커피 빈, 앤제리너스, 탐 앤 탐스등 커피 맛에 큰 변별력을 느낄 수 없는 경쟁 브랜드들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감에 따라 그동안 스타벅스를 택해왔던 이유들마저 점점 미약해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한마디로 내 인생에서 스타벅스 경험은 결코 인간적인 유대감이 아닌 비인간적인 소비행태에 불과했던 것인데 그는 스타벅스야말로 인간적인 교류를 추구하는 곳이며 커피향 만큼 진한 사람냄새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곳이라 확신하다니!

  실제로 고객입장에서는 커피 전문점에서 바리스타가 따라주는 한 잔의 커피에 영혼이 담겨져 있다는 느낌을 전달받기는 쉽지가 않다. 바리스타 역시 매순간 어떤 손님에게도 최고 품질의 커피를 최고의 정성으로 예외없이 대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슐츠는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일이 실현되었을 때 얼마나한 행복을 전달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자신 역시 그 행복을 체험했기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첫 번째 가치라 역설하는 듯했다. 가만 기억해보니 스타벅스에는 다른 경쟁사에 다 있는 흔한 진동벨이 없었다. 내 경우 바쁜 점심시간에는 부러 커피전문점을 피하는 편이라 스타벅스에서 줄을 서 본 기억도 없었고 그래서 진동벨의 유무가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 진동벨이 없기에 고객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고 바리스타는 커피를 만들어 바로 주문자를 찾게 된다. 바로 슐츠가 강조하는 한명의 고객과 눈을 맞추며 유대감을 나누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의 경험을)다시 생각해 보아도 진동벨을 받았을 때 커피가 나오면 진동벨과 커피를 맞교환 하고는 특별한 이유없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바리스타 입장에서 보자면 고객과의 짧은 눈빛 교환은 물 건너 간 것이다. 무릎을 탁 치게되는 순간이었다. 혹시 슐츠가 말하는 커피 한잔에 담긴 영혼을 판매한다는 것은 이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감사와 보람을 말하는 것일까?  진동벨의 장점을 포기하고 영혼의 목소리를 택한 슐츠가 처음으로 커피와 고객, 바리스타 모두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슐츠가 고객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우선가치로 두고 파트너 역시 같은 가치를 자신처럼 소중하게 여길 것이라 믿어주는 태도는 확신을 너머 거의 신앙에 가까워 보였다. CEO로서 파트너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는 직원들의 자부심으로 이어질 터이다. 직장생활 할 때 회사가 상사가 나를 믿어준다면 스스로 부여하는 책임감은 최상의 상태가 된다. 바로 자기 가치관에 대한 확신에서 파트너에 대한 신뢰, 공동체로서 가치관의 고수로 이어지는 슐츠의 가치추진력은 흔히들 일컫는 리더의 차별화된 능력으로 생각된다. 결국 정서적 유대감에 대한 상호신뢰가 직원들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그 책임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자부심이 스타벅스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고 지속적으로 강화해 온 것이었다. 브랜드 이미지가 타사보다 우월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 그들이 그토록 핫hot했기 때문에 우리는 쿨cool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서로 쿨cool했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적, 개인적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스타벅스라는 무의미한 공간을 재소비할 이유는 없었을 터이다. 또 그들이 말하는 정서적 유대는 바리스타와 한 명의 고객간의 밀착이지 매장 내 고객 간의 교류를 유도하는 건 아니었다. 커피 한잔을 마시는 한 명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에 우리는 개방된 공간에서도 보호막으로서 독립적인 경험이 가능했던 것이고 그 한 명의 고객은 자신처럼 다른 고객을 존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스타벅스에 대한 편견을 한 번도 바꾸어 본적이 없는 내가 미안해지도록 그는 사람에 대한 애정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한 적이 없어 보였다. 위기상황일수록 언제나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았고 사람을 신뢰하는 모습은 이 책을 이루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살면서 꿈을 잃어버려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만은 잃어버리지 않음으로써 다시 꿈을 찾고 이룰 수 있었던 그의 가치 경영방식은 결국 최고의 커피 회사에서 최고의 커피를 제공한다는 공동의 사명감을 창출했다. 최고 경영자가 최고로 여기는 가치는 이토록 최고로 중요한 것이었다.

커피 ‘권위자’  그리고  커피 ‘메신져’

 
스타벅스가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미국이 경제불황을 겪으며 세계적 위기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던 시기와 정확히도 겹쳐졌다. 그렇다면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세계 5대 CEO 중 한사람으로서 그가 혼란을 기회로 재창조하는 과정은 전 세계의 기업인과 고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줄곧 그 해답은 사람이라 말하는 그의 답안지에 사인처럼 적혀있는 ‘온워드’가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서만 힘을 발휘하는 어떤 암호만 같다. 이 마법의 키워드야 말로 세상 뭐라해도 꿈쩍않던 슐츠의 고집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런 슐츠는 ‘온워드’로 환기되는 자신의 고집을 내심 자랑스러워 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에서 유독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접할 땐 슬몃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다. 가장 감동적으로 느껴졌던 스타벅스의 사회활동은 뉴올리언스 리더쉽 컨퍼런스 였는데 슐츠는 ‘커피를 미국에 들여온 최초의 항구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발생한 카트리나 피해 복구를 위해 총 5만 시간의 봉사를 한 경험을 회상하며 자신들의 결정과 행동에 상징적인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다. 도시복구를 위한 자원봉사활동은 뉴올리언스 지역의 공동체의 힘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바로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미국이 스스로 위대함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뉴올리언스와 스타벅스의 회복을 동일시하고 스타벅스와 미국의 성장을 동일시하는 슐츠의 결연한 의지는 당시 많은 미국인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을까. 커피 생산자로서 르완다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여성 농부와의 공식적 일화도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젖소를 사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의 소원은 젖소 살 돈을 기부하겠다는 파트너의 선행을 불러오고 끝내 전 세계 빈민에게 가축을 지원하는 단체와 협력해 젖소기금을 마련하는 온정의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된다. 스타벅스의 바리스타가 자신의 고객에게 신장을 제공한 미담은 슐츠조차도 믿기 어려운 기적에 가까웠다. 이렇듯 슐츠가 유난히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의 거친 손에 감동받고 그들의 고달픈 노동을 소중히 여기는 심성은 단순히 그가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했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슐츠는 가장 영광스런 순간에도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 모든 것은 아버지 덕이라는 고백을 한다. 참전 용사로서 가족부양을 위해 거친 육체노동을 마다않은 아버지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한 번의 부상으로 해고를 당하고 이후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가 가난한 소규모 생산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은 어쩐지 커피라는 가장 도시적인 식품을 파는 기업의 총수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커피가 탄생되는 가장 원초적 과정의 숭고함으로 커피가 주는 마지막 행복한 시간을 창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 잔의 커피를 이루는 노동에는 아버지의 변함없는 성실성이 담겨있었고 아버지의 고생에 공감하는 가족의 연민이 아버지의 고통을 위로하는 아들의 눈물이 배어 있었을 터이다. 슐츠는 힘없이 스러져 간 아버지가 한 평생 믿었던 노동에의 가치가 부질없고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실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슐츠가 커피 판매의 ‘권위자’가 아니라 커피가치의 ‘메신져’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비로소 그의 전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CEO복귀 후 새롭게 시도한 전략들 중 인상깊었던 것은 ‘비틀즈 브레인 스토밍 회의’와 ‘인스턴트 커피 개발’, ‘선거 켐페인을 활용한 마케팅’등이었다. 이들 모두 아이디어에서부터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참신하고도 좋았는데 고민의 출발은 한 가지였다는 생각이다. 바로 스타벅스라는 커피 대표 회사, 스타벅스라는 최고의 커피 브랜드가 이끄는 커피 문화, 커피 철학이었다. 슐츠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커피 한잔의 철학을 통해 리딩기업으로서 지역사회 커피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에 프런티어가 되고자 했다. 한 시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 비틀즈를 예로 들며 스타벅스가 단순한 커피 브랜드를 너머 시대를 리드하는 문화 아이콘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비틀즈와 스타벅스의 공통점이 사람들의 삶에서 기억의 표지 역할을 해주는 아이콘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한 시대의 커피의 권위자가 그 시대의 문화의 권위자가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진 것은 별스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슐츠가 발견한 진리는 비틀즈가 대규모 공연을 가지면서부터 자신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인데 그는 이 시점이 꼭 스타벅스의 영혼이 부식되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매장 수, 매출 규모등 고속 성장에만 집중한 전략은 스타벅스를 조용히 무너뜨리는 발암물질이었던 것이다. 1위 브랜드가 1위를 지키지 위해 잊지 말아야 할 자신의 목소리를 변함없이 유지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감성을 고객에게 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비틀즈로부터 자기 영혼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한 스타벅스를 보면서 내가 가진 목소리, 나만이 가진 장점들을 조용히 돌아보게 되었다. 내 장점중에서도 남들이 아닌 내가 마음에 들어 자랑하고 싶고 잃고 싶지 않았던 능력이 있었음을 새롭게 상기할 수 있었다. 아무리 목소리가 훌륭해도 (남들이 좋다는 목소리를)자기 스스로 들을 수 없다면 다음의 발전도 없는 게 아닌가. 반면에 슐츠는 자신의 열정과 능력은 오로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 발휘되는 것이 단점이라며 수월하게 해 낼 수 없거나 원래 흥미가 없던 비즈니스 영역은 충분히 파고 들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뼈아픈 자기진단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슐츠뿐만 아니라 한 가지라도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과하는 열정의 사각지대에 다름아니었다. 이 책은 대부분 기업의 전략을 설명하는 책임에도 이렇듯 개인의 역량을 냉철하게 점검하게 하는 기특한 구석이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분말커피 비아가 상륙하지 않았지만 아시아인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커피 믹스를 즐긴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스타벅스에서 개발한 수용성 분말커피의 탄생과정도 놀랍고 반가웠다. 자가면역 질환 진단을 전공한 세포 생물학자 돈 발렌시아가 혈액검사의 생물학적 지식을 적용해 시도된 커피추출기술이 스타벅스 인스턴트 커피 개발의 시초였다는 것도 흥미로왔고, 성공적인 개발 후 마케팅을 앞두고 발명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도 안타까웠다. 한 생물학자의 우연한 실험처럼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이 녹아든 커피를 편리하게 마시면서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가 길이나 거리를, 경유하고, 관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존재라면 ’Via비아’라는 이름의 네이밍은 가히 철학적인 듯하다. 슐츠는 이렇듯 새로운 기술에 대한 잠재력을 특유의 직관으로 투시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마케팅은 언제나 리스크를 부담하게 되는데 선거캠페인 같이 민감한 행사도 기업의 윤리성, 공정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눈치보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정신이 나는 좋았다. 나만해도 선거가 있는 날 투표를 마치고 삼삼오오 커피전문점에 들러 즉흥적인 모임을 가진 적이 꽤 있었다. 지역사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개인적 유대감 형성에 기여하겠다는 슐츠의 기본 원칙이 더 부각되어 보였던 건 위험을 기꺼이 수긍할 수 있는 일관성과 그동안의 고객신뢰를 바탕으로 한 결과였다. 

’마지막’ 인사가  ’시작’의 인사로

 
이 책에는 슐츠의 지인을 비롯해 수많은 스타벅스 파트너, 전략가, 고객들이 등장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인재를 적재에 등용하고 장인을 존경하듯 한 분야에서의 전문가를 깍듯이 대접했다. 슐츠는 감사의 인사에서부터 그들의 업무수행까지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성의를 표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 책이 한편의 영화라 했을 때 그들의 이름은 마지막 엔딩에 올라가는 크레딧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이 책이 자신을 포함한 스타벅스 파트너들에게 바치는 감동적인 헌사라는 느낌이 든 것은 그가 26년간 편지를 쓰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의심없이 끄덕여지는 대목이었다. 그는 편지를 누구보다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인식했기에 내부 ‘이메일 유출사건’에서도 유독 상처를 많이 받은 것 아닐까. 이 책에는 스타벅스의 위기신호탄이 된 이메일에서부터 슐츠가 보내고 받은 여러 편지가 등장한다. 최고 경영자의 한번이 아닌 지속적인 인사는 곧 그 기업의 이념이자 사명이 되는 것이었다. 그가 편지 끝머리 인사인 ‘Regards(존경심으로)’나, ‘Sincerely(진실함을 다해)’를 택하지 않고 이미 존경과 진실을 담아 ’Onward(전진, 앞으로)‘라는 구령을 붙인 것은 언제나 바로 지금부터 우리만의 여정을 시작하자는 크랭크 인의 암호는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온워드‘는 헤어질 때 주고받는 인사이면서 동시에 시작할 때 나누는 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처음부터 갸우뚱했던  ’온워드‘의 메시지를 이제서야 가슴에 새겨본다. ’온워드‘는 언제나 그들에게 현재진행형의 메시지였다. 그는 이 책의 마지막에 (40년 만에 최고 매출을 달성 한 후에도) 이제 성장을 이루었다고 믿는다는 확신이 아니라 ‘성장을 이루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이 기쁘다는 설레임을 의미심장하게 표현했다. 무엇보다 끝까지 결과가 아닌 과정에 더 집중하는 자세는 한결같았던 것이다. 지금도 성장하고 있음이 기쁘고 벅찬 것이지 성장했다는 수치가 자랑스럽다는 것이 아니었다. 성장으로 인한 보상이 아니라 생존에서 성장으로 목표전환을 이루어낸 그 자체가, 그리하여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미래의 가시적인 성과보다 더 중요했기에 결국 계속하여 성장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최근에 방한한 그는 한국의 커피전문점인 ’카페베네’가 스타벅스를 앞지른 것에 대한 질문에 바로 매장수나 매출규모가 1등 기업을 말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대답한 바 있다.  스타벅스는 고객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과 자부심이 묻어나오는 답변이었다.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기쁨이란  혹시 원두가 로스팅되면서 공장에 서서히 퍼져가는 커피향을 온몸으로 확인하는 순간, 바로 스타벅스의 뜨거운 심장을 확인하는 순간의 환희가 아닐까. 그가 말했듯이 커피로 꿈을 꾸었던 자신의 과거와 그 꿈으로 성공을 이루어낸 스타벅스의 오늘, 그리고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파할 미래를 확인시켜주는 순간이 아닐까. ‘온워드’는 그 극적이고도 벅찬 순간에 서로의 가슴뛰는 심장을 확인하며 모두의 내일을 기다리는 가장 현재진행형인 오늘의 단어가 아닐까. 나 역시 한 번의 과거 실패로 성장이 뚝 멈춰진 오늘을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나이들수록 실패의 경험은 후유증이 길고 또 다른 시작의 걸림돌이라는 것을 통감한다.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이 잔인한 현실앞에서 더욱 더 진한 커피만을 벗삼아 내일의 두려움을 피하려던 내 자신을 분명하게 깨우치게 된다. 또 실패할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고 다시 시작하는 것, 다시 뛰어드는 그 순간이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온워드’가 사람이라는 행복을 커피라는 문화로 이루고자 하는 하워드 슐츠의 자기선언이었다면 나 역시 꼭 내게 어울리는 온전한 키워드, 나만의 ‘온워드’로 새로운 인생선언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꿈틀거린다. 

  문득 ‘손이 진흙으로 더러워지더라도 결국은 깨끗한 순백의 결말을 맞는 것’이 ‘온워드’의 정신이라는 그의 한마디가 자꾸 떠오른다. 이것은 어쩐지 흙에서 시작해 한잔의 행복으로 귀결되는 커피의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이다. 커피는 진하디 진한 제 색에서 출발해 사람들의 하얀 영혼에 이르러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게 하기 때문이다. 기왕에 습관적으로 커피를 즐겨온 거 이제는 커피같은 인생을 출발하고 싶다. 최근에 바닷속 은어의 소리를 듣는 눈먼 어부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수류탄으로 눈을 잃은 어부는 생존이 절박해지자 신비한 청력이 생겼지만 그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고 외부의 지원금이 몰려들자 은어의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사람은 조금 앞길이 보이는 성 싶으면 초심보단 변심이 더 수월한 법이다. 까짓것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내가 가진 가치관이라고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 어쩌면 미련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슐츠는 말한다. 가장 위기의 순간,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도 오랫동안 믿었던 신념만큼 더 확실한 해답은 없다고. 그 신념이 옳다고 믿으며 그 신념 때문에 보람을 느낀 적이 있었다면 더 큰 도전이 필요한 그 순간에도 절대 그 핵심가치를 잊지 말라고. 당신이 믿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믿음을 절대 버리지 말라고. 나는 한번의 크나큰 실패 이후 그 결과로 내 꿈이 사라진 것에만 슬퍼하였지 꿈을 좇던 나만의 핵심가치를 놓아 버린 것은 아쉬워 하지 않았다. 내가 꿈을 가졌던 이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가장 소중히 여겼던 가치, 그 가치가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만이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처음 내 꿈을 꾸었던 순간으로 가만히 돌아가본다. 다시 꿈꾸어야 하는 건 지금 꿈을 꿀 수 있어서가 아니다. 앞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 꿈을 꾸던 내가 그 꿈으로 행복해질 것을 의심없이 믿었던 나를 찾기 위해서다. 다시는 그 믿음을 버리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온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꿈, 그 꿈을 다시 꾸고 나를 움직이게 할 인생선언서를 처음으로 작성해본다. 그리고 그 마지막 줄에 조용히 끓어 오르는 커피향처럼 내 심장을 뛰게 할, 지금부터 계속하여 변함없을 뜨거운 단어 하나를 적어본다. 이 사인이 내 인생을 약속하는 사인이면서 마지막까지 변치 않을 사인이길 바래본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마지막 사인이 되어도 후회없지 않을까.


Onword!, 
영원한 믿음, 변함없는 전진, 
존경과 진심을 다해 당신도 나와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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