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권의 책은 한 명의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인연관계라 믿어요.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이라 해도 비슷하지만 또 다른 사람이라 믿습니다. 읽고 싶은 책도 있고 읽어야 할 책도 있고, 읽기 싫지만 의무적인 책도 있고 또 우연히 읽게 되는 책도 있죠. 사람도 그렇잖아요.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야 할 사람, 만나기 싫은 사람, 우연히 스치는 사람...

그래서 저는 한 권의 책을 알게 되고 그것이 손에 들어와 끝내 가슴에 들어오는 책은 분명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들추어 볼 때도 마찬가지죠. 어쩌면 우연을 앞세운 필연인지 모르겠어요.

지난 주말에 우리 사이 오래 끌었던 관계, <깊은 밤, 기린의 말>이라는 책을 덮고 무언가에 이끌려 담 날 아침 리뷰를 적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책은 의무적인 만남이었어요. 송구하게도 어떤 인연으로 출판사로부터 서평을 부탁받은 책이었습니다. 저라는 사람을 모르지만 제 서평을 보고 또 다른 서평을 부탁받았던 경우가 생각해보니 한 번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책을 아직도 손에 들지 못했어요. 꼭 누가 주선해 선보러 나가는 자리 같았거든요. 부탁하시는 분의 성의를 거절하지 못해 약속은 받아놓고 지키지 못한 경우지요. 마음에서 우러 나오지 않는 글을 쓸 확률이 반 이상이라는 생각에 미루고 미루다 보니 작년에 딱 한권 그 책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 책이 너무 좋다, 감동받았다고 한들 아무도 뭐라 그럴 사람 없지만 글을 쓰다보면 글이 자신을 밀고 나갈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아직 아마추어이고 서평으로 돈버는 사람도 아니지만 꼴에 느끼지 않은 글은 적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은 전문가 수준입니다. (돈도 안받으면서 거짓말 할 필요가 없잖습니까 !)

<깊은 밤, 기린의 말>은 워낙 훌륭한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기 때문에 거짓 및 과장의 서평을 쓸 여지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을 받아들고 한 달간 제대로 읽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탁하신 쪽에서 저에 대한 기대감을 잃어버릴 시간을 보낸 후에라야 글을 쓸 수 있었어요. 그런데 독서에도 다 때가 있는 것인지, 뜻밖에도 이 책을 통해 아름다운 문장가를 만났습니다. 이것이 인연이라는 것이죠.

바로, 최일남 작가입니다. 이분의 국어 사용은 제가 접해본 한국의 소설가중에선 국보급의 수준이었습니다. 이미 문단에서 오래전부터 국보급의 대접을 받아 오셨고 여러 차례 문학상을 수상하신 분이니 일개 동네 서평자인 제가 뭐라고 새삼스럽게 이런 평가를 할까...싶지만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 같은 이분의 글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이상한 순정을 발동시키는 분입니다. 그래서 어제 아침 이분의 최근 산문집을 주문했는데 기특하게도 오후 세시 전에 총알 배송이 되어 저는 어제 이분과 좋은 저녁 한때를 보내었습니다. 읽어야 할 다른 책이 있었지만 저는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라는 책에 푹 빠져 다른 모든 걸 잊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바로 지난 일요일에 청승을 떨었던 이유까지도 잘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책을 읽게 되는 과정은 마치 영양소처럼 그 음식이 몸에 필요해 먹고 싶어지는 과정과 같지 않을까요.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 최일남 (문학의 문학)>

최일남 작가의 글은 운율이 있는 시처럼 마음을 적십니다. 이분이 음악에 대한 회상을 소회하는 꼭지가 두어 개 있어요. 자신의 일생을 거쳐 온 노래들을 정리하면서 그것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자리였죠. ‘비목’이라는 가곡에서부터 ‘고향의 봄’, ‘반달’, ‘아리랑’ 같은 우리 민족의 노래와 ‘오 쏠레 미오’, ‘번지 없는 주막’, ‘테네시 왈츠’, ‘체인징 파트너’, ‘사랑했어요’등 장르불문한 노래가 우리네 인생에 끼친 영향을 되짚어 주시더군요.


 

 

  


" 간절한 그리움이나 절실한 동경이 무망한 나이를 퇴색한 가사의 시큼한 잔정으로 메우기 위해 노랫말에 더 쏠리는가. 무엇에 대한 사무침이 도대체 없어 아니라고도 못하겠는데, 어떤 때는 또 어느 가수 어느 절창의 외마디 곡조가 열 배 백 배 낫다. 내 마음 내가 모를 노릇이다. "

 


" 그런 울림이 강퍅한 시대를 위무하는 자기 버전 구실을 하는 수도 있다."

" 발상이 너무 한갓지다면 그만이지만 노래는 그처럼 일상에 쓸모가 많고 요사바사하다."

"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어쩌다 축축한 쪽으로 감정이 기운 자는 우군을 만난 기분으로 더욱 곬로 빠지기도 한다.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참 많다. 삭은 정서를 모아 등에 업고 둥개둥개를 할 것까지는 없어도 일부러 정신적 침잠을 배가시키려 든다."



살다 보면 그럴 때. 삭은 정서, 오래된 상처, 지금은 다 잊었다고 여겨온 묵은 감정. 새삼 다시 꺼내어 나만 힘들다 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쩌다 우연히 들은 노래 한 마디는 그동안의 이 악물었던 모든 것을 일순간에 허물어 뜨리지 않나요.

어제 저녁, 임재범의 하차소식을 견딜 수 있게(?) 해주던 어떤 아나운서의 자살소식은 어지럽고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일찌감치 TV를 끄고 독서라는 벗에 의지를 하려고 리모콘을 드는데 그만 잘못 눌려진 채널에서 어느 가수가 흘러간 옛노래를 구슬프게 부르더군요. 대충 부모님을 그리는 익숙한 노래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드라마고 노래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사정없이 끄려고 하던 순간 왜 부모님이 생각나는 거지요?  왜 울컥하게 눈물이 맺히는 것이죠?  저는 가요무대 보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심지어 그런 프로 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거든요. 예를들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같은 분들이요. 그랬어요. 그 프로는 내 부모님이 즐겨 보시던 프로였고 나는 그 순간이 마치 그분들이 자주 가던 음식점이라도 들어 가게된 것처럼 발길이 멈추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그분들은 가시고 가게만 남은 그 자리에 들른 황망한 심정이었달까...

최일남 작가는 말합니다.

" 모든 노래는 물레방아를 돌리고 흘러가는 물이 정녕 아니라고 믿는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꽁꽁 숨었다가 저를 알아주는 사람앞에 나타나 제 할 일을 하고는 다시 자취를 감출 뿐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그러면 됐다. " 


요즘, 제 할 일 톡톡히 하는 노래들을 생각합니다. 또 어디선가 꼭꼭 숨어 있을 그들을 생각해요. 혹시 한 곡의 노래도 한 명의 사람이 아닐까요. 임재범이 그랬죠. 그 노래는 내가 부른 것이 아니고 어디선가 내 속에 들어온 무엇이 나를 노래 부르게 했다고요.

노래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네요. 그런데 왜 그 노래들에 보기좋게 관통당한 저는 이렇듯 정처없이 흘러가는 것일까요. 웃기죠. 멀쩡히 서 있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모든 곳을 떠도는 존재들이 아닐까요. 어떨 땐 책속에 어떨 땐 노래속에 들어가 사람 아닌 척 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슬프고 많이 아파서 살 수 없는 존재들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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