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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공지영을 말하라' 하는 일은 당신의 '이삼십대를 서술하라'는 주관식문제와도 같다. 90년대가 나의 이십대였고, <도가니>를 읽은 것이 작년이니 근 이십년간 그녀는 사실상의 내 큰언니와 다름없었다. 학교로 치자면 바로 내 윗세대 386 운동권에다가 여성으로 치자면 결혼과 육아의 선배에다가 직장으로 보아도 남성이라는 우월적 존재와 늘 대적해야 하는 같은 위치로서 그 시절 정신적 멘토이자 카운슬러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와 생각해보니 세대와 성별을 넘어서 그녀는 우리시대 문학의 습관에 다름 아니었다. 문단은 연이어 베스트셀러만을 써내놓는 작가와 독자를 약간 하위레벨로 제쳐두는 경향이 있는데 독자는 그럴수록 차기작에 집착하는 행보를 보이므로 나만해도 공지영의 이름이 붙은 책이라면 일단 작품성과 내용에 상관없이 사고 본다. 그렇기에 이번 역시 거의 무의식적으로 장바구니에 집어 넣었는지 책이 내 손에 도착한 날 나는 주문자가 나인지 전표를 보고서야 확인하고 말았다. 헌데 책 한권 읽는 시간도 늘 빠듯하기만 해 그저 가방에 넣고만 다닌 작품도 많았던 그녀의 책을 이렇게 리뷰를 써보기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땐 화장실 가서 한번 울고 책 한번 쓰다듬고...남 몰래한 사랑이었는데 이제야 답장을 하는 것 같아 새삼 눈가가 촉촉해진다. 지금 막 덮은 책 한권이 아닌 그동안의 세월과 내가 읽어온 그녀를 말하고 싶어 이토록 가슴이 달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내가 그동안 그녀에게서 받아온 위로의 방식과는 좀 달랐다. 아마 그녀도 나도 시간이 흐른 탓일 게다. 우린 그렇게 나이들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 그녀는 나를 알 리 없건만 그간의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는 사실이 자못 대견했다. 이야기의 무대인 공간이 도심아닌 시골자락이어서 그런지 가슴이 저리기 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자라나는(?)듯 마음이 포근해진 탓일까. 본인이 이야기 했듯이 '나를 키운 건 8할이 상처'라는 말을 나는 내 공식처럼 써먹었었고 '아무리 먼지만한 상처도 내 것이 되면 우주만큼 아프다'는 문장은 거의 매일 수첩에 적다시피하며 살아왔는데 이번엔 책을 덮고 처음으로 빙긋이 미소지었다. 그냥 세월견디고 한참 뒤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솟아 나오는 반가운 눈물, 그런 웃음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의 유머에 그만 달려가 손이라도 덥썩 잡고 싶을 만큼이었다. 나도 지금은 이 책 읽고 많이 웃고 있다고 인사라도 건네며 유치하게 지리산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섣부른 오해일지 모르나 지난날의 '상처'가 요즈음의 '행복'으로 피어난 건 아닌지 싶었다. 그간에 보여준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회한이 어쩐지 덜해 보였다고나 할까. 어쩌면 내 원망이 줄어 든 것은 아니었나 싶긴 하지만.
자신의 인생이야기가 아니고 남의 인생을 바라보는 이야기라서 그런 것인 지도 모르겠다. 벼랑끝까지 내몰린 남의 입장이 되어 보았기에 같이 눈물 훔치고 같이 욕하더라도 다시 돌아와 '상처'와 '행복'의 무게를 조율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다. 다들 죽고 싶거나 죽을만한 아니면 죽어야 할 상처들을 누가 더 라할 거 없이 모질게도 짊어지고 나타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결국 행복해졌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기로 하면 산다고 행복을 내려놓자 행복이 스며 든 것이다. 그들이 대단한 일을 해내고 무엇을 성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 눈엔 누구보다도 자신의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성취한 사람들로 보였다. 내 어머닌 늘 작은 것에 행복해 하라고 하셨는데 그 작고 소박한 것들은 모두 자기로부터 나와 자신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왜 많고 많은 곳 중에 지리산에 간 것일까.
무엇하며 어떻게 살았기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거기, 그들을 찾아가는 것일까.
죽어야 할 불행, 죽지 못할 행복
지리산...도시에 살면서 한 번도 그곳을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한번쯤 지리산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있을까.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아마도 지리산을 모르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직장인에게 지리산은 스님이 되거나 수녀가 되기엔 종교적 믿음이 약하여 산속으로 들어가 지팡이 하나짚고 도사처럼 속세를 잊고 살고 싶다는 뜻일지어다. 도시에 바둥거리며 낙오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내 자리는 더 이상 없어 이제 어디로 가야할 지 잠시 생각하고 싶다는, 아니 아무 곳도 생각할 수 없다는 발걸음일 게다. 지리산으로 간다는 건 모든 걸 버렸다거나 모두가 나를 버렸다는 말일 게다. 여기, 자신도 모두를 버리고 세상도 자신을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옛날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도 아닌, 지금 사는 오늘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상하게도 모두들 미리 정해져 있었던 운명처럼 한 곳에서 조우해 우리앞에 나타난 걸 보면 그들의 역할이야말로 지리산에 따로 배정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저마다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으로 막다른 절벽에 내몰린 사람들이 차마 산목숨 끊을 수 없어 귀농한 지리산 자락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두 명은 확실히 시인이고 서너 명은 스님이고 두세 명은 음식점 주인, 그 외 사진사도 있고 도사도 있고 목수도 있다. 시인의 부인도 있고 그들이 키우는 개와 물고기, 닭들도 있다. 가끔 마을에 등불을 밝히는(?) 가수도 드나들고 전직 기타리스트도 돌아온다. 처음부터 지리산에 계시었던 한평생 나무만 심어온 할아버지와 그 나무와 함께 자라온 딸도 있다. 이들은 1년에 50만원이면 먹고 살 수는 있어 나머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이다. 이들이 날 때 부터 세상에 통달하여 안먹고 안입고 살았던 것은 아니나 지리산에 모인 이후론 그렇게 살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살기 싫거나 그렇게 살 수가 없어 간 곳이었지만 그렇게 살다보니 그동안 왜 그러고 살았나 싶은 것이다. 그들은 다소 느리고, 어지간히 게으르고, 얼마간 속터지지만 생명을 사랑하고 계절을 기다린다. 어줍잖게 살아보지도 않고서 그들을 무조건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여기서 커피한잔 하며 그들이 부럽다 말하는 나는 얼마나 웃길 것인가. 아무리 거지 같은 인생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러운 게 생길 수 있듯 단순히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을 가졌다고 선망하고자함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도 사는데 나는 왜 하는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반성이나 알 수 없는 안도감도 아니다. 나는 그들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들을 품었던 지리산이 신기하고 거기서 자라나는 신기한 행복이 대견하다. 꼭 지리산이어야 행복할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지리산에 간다고 되어 지는 문제는 아니고 처음부터 지리산에 간다는 결심과 지리산일 수 밖에 없는 선택 자체가 이미 다시 행복할 수 밖에 없다는 지리산적 수사학을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즉, 지리산에서 살 운명이라 함은 이미 비지리산에서 불행을 겪었을 수 밖에 없는 전제적 조건이 성립되어야 하므로 그는 더없는 불행의 끝에서 행복을 찾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다지 죽을만큼 불행하지도 않은 주제의 우리가 결과만을 놓고 현상을 부러워 할 자격이 될 리가 만무한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 우린 얼마나 쉽게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런만큼 여기를 아쉬워 하나. 그들이 느꼈던 행복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싶은 나를 고백한다. 그들로부터의 행복이지만 내 행복이 거기 숨어있을지 모른다 여긴 내가 부끄럽다.
다정한 시인, 행복한 작가
이 책의 양대산맥인 버들치 시인과 낙장불입시인은 법없어도 살 사람들로 우리같이 법이 없어야(?) 살 사람들을 시종일관 웃기고 울리는 지리산식 페이소스를 선사해 주신다. 시인은 정말로 누구보다도 지리산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이 아닌가. 그러나 애석하게도(내가 시인과 연애를 해봐서 아는데) 시인과는 연애만 해야 할 사람이 아니겠는가. 나는 아줌마들과 늘 하는 이야기지만 시인과 사는 부인을 존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렇다고 나를 존경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우리 아저씬 가정을 위해 시를 포기했다.) 그런 면에서 낙장불입 시인에게 이불 한장 들고 나타난 고알피엠여사에게 심히 고개숙이련다. 시인의 부인은 자신의 이름을 어느 별, 어느 꽃보다도 더 벅차고 아름답게 불러준 그 한 번의 시를 한평생 가슴에 지니고 살면서 나머지 세월을 용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유독 세상의 모든 생명에 감동하고 눈물짓는다. 보통 사람들은 이 감수성을 그저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그가 쓴 시를 읽을 때만 끄덕이곤 하는데 시인과 사는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하필 시를 쓴다는 건 씻을 수 없는 원죄로까지 생각되는 가혹한 형벌에 가깝다고 느낀다. 말더듬이에 가까우신 버들치 시인도 집에서 기르던 물고기와 닭이 죽으면 바로 며칠 앓아 눕는 여린 심성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마음을 다치면 그 몇 배로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이다.
언젠가 나는 겨울 한낮에 시인에게 전화를 했다가 어쩐 일인지 그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길래 무슨 큰일이 일어났나 싶어 전화를 다시 하였지만 좀처럼 받지 않는 것이었다. 십 여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저쪽에선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들려와 내 가슴은 애가 탈 지경이었다. 이미 대화는 불가능해 그의 자발적 신호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나는 한 시간이나 후에 그의 신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사연은 절대 누구에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바로 베란다에 벌레 한 마리가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 오길래 반사적으로 그 녀석을 밟아 죽여 버렸지만 곧 그 녀석이 혹시 자신의 전 생애를 걸고 누구를 찾아 나서는 길이었다든지, 누군가 그 녀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었다면 자신은 그녀석의 모든 희망을 죽여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 너무 미안해서 울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어라고 단지 발짓 하나로 느릿하게 희망을 이동하던 또 다른 생명을 그렇게 간단히 밟아버릴 자격이 있는 것인지...시인은 자신의 발밑에 깔려있을 벌레를 확인하기 싫어 한참을 베란다에서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인은 보통사람과 같다가도 일 년에 한 두번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온몸을 다해 울고는 했다. 그때 시인을 지리산으로 보내지 못했던 건 내가 지리산으로 갈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앞서 말했듯이 이번엔 남의 인생을 관망하는 시점이라 한결 수월하고 슬프지는 않지만 결코 쉽다거나 여운이 잔잔하지만은 않다. 그녀 특유의 청승(?)조의 분위기가 줄었다는 것이지 유난히도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그녀의 바람잡이문체는 읽는 내내 지리산을 향한 흑심(?)을 선동하며 지금당장이라도 짐싸서 떠나고 싶은 울컥한 심정을 좀체 가라앉혀 주질 않는다. 간혹 가다 지리산에서 돌아가거나 사라지는 사람들의 사연을 말할 땐 역시 감성소설가답게 그 폭풍감동을 주체할 수 없도록 만드는 여전함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실패로 낙향한 L선배의 절절한 사랑이나 수경스님의 잠적 이야기도 소설이 아닌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실화였던 것. 그들은 분명 지리산에 자신들의 모든 정한을 잠시 내려두고 지리산이 다시 자신을 품어줄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술친구들이 많고 정이 많아 위로부터의 유명인사들 보다는 아래로부터의 각계인물(?)들과 친분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명(이것도 알려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만 언급되지 않았지 인물사진까지 오픈하며 아예 그래도 이렇게 행복한 자신의 친구들을 세상에 보란듯이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간의 인간관계가 부럽기도 했다. 본인도 말했듯이 꽁지작가는 참 행복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장 벅차고 놀라웠던 건 정말로 행복학교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신문에 연재한다고 할 때부터 내용도 모르고 꽁지작가가 지리산에 학교를 차렸나 싶었는데 그녀가 차린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들은 실제로 지리산의 야심찬 다정다감 프로그램을 구성해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도 하게 된 것이다. 다정도 병인 양, 잘 짜 놓은 각본처럼 하필이면 대부분 예술가들이 많아 시도 쓰고 사진도 찍고 기타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도자기도 굽고 가구도 만들면서 사람사는 이야기와 빼어난 풍광을 벗삼아 소박한 행복을 가꾸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 '소박하다'이고 글이 '고즈넉하다'는 것이지 내보기엔 그 마을이 도심 어느 동네보다 시끌벅적하고 뜨거워보였다. 혼자 사는 버들치 시인이 아프다고 동네여인들 하나둘씩 죄다 죽을 해다 놓고 가는 바람에 부엌엔 죽집을 차려도 좋을 정도로 그릇풍년이 들었다 하니 그 뜨거운 김자락에 내 도시의 삶이 헛헛해지는 까닭일까. 신문사 기자에서 노숙자가 되어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도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본능적으로 지리산에 입성한 낙장불입시인이 고알피엠 여사와 새살림을 차리고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에 내 사랑이 샘이 나는 이유일까. 도자기 기타리스트와 보컬 고알피엠여사와 버들치 시인의 작사로 이루어진 섬지사 동네밴드의 공연이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해 보여서일까.
상처는 행복의 씨앗
'난 악양(지리산의 다른 이름)에 산다'고 합창하는 그들이 남일 같지 않게 저릿도 했음이다. 사람냄새란, 역시 마음이 먼저 알아채는 감각이었다. 나는 자신들이 연주해 놓고도 스스로들 눈물 글썽이는 마음에 비로소 '상처'가 '행복'이 되는 각자 저간의 사정들이 떠올라 같이 눈물지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공지영을 '상처'로만 만났던 지난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이십대를 지나면서 '상처'라는 단어와 개념을 알게된 건 다분히 그녀의 공이 컸다. 나는 그녀를 통해 내 상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상처를 받았다고 자신의 상처를 인식하고 그것을 바로보기 힘든 존재 아니던가.
나는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와 학교생활만 십오년 남녀차별을 모르고 살다가 사회에서 처음으로 도처에 숨어있는 가부장적, 군대적, 권위적 직장체계를 실감하게 된 경우이다. 제일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군필자가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직장생활 3, 4년차이던 시절의 일이다. 밤낮없이 야근과 철야를 꼬박 3년을 견디고 나는 그 분야의 경력을 쌓은 터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정도 많은데 군대를 다녀오느라 입사가 나보다 늦었던 한 다리 건너면 알만한 친구가 교수추천으로 입사를 했다. 그 친구가 입사한 직후 우리는 나란히 승진을 했는데 내 월급은 그 친구보다 약 십만원이 더 적었던 것이다.(같은 것도 아니고) 나란히 승진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어찌하여 3년 동안 뺑이치며 회사의 주요(?) 인력으로 실무를 쌓아온 나라는 여자가 군대에서 전혀 실무와는 상관없었던 이력을 쌓은 그 친구라는 남자보다 급여가 적은 것인지, 당시의 억울함은 이기적이기만 하던 나에게 큰 상처가 되고도 남았음이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에서 민감한, 군필자에 대한 직장우대 조건을 자꾸 지적하는 일이 되기에 자칫 남녀간의 평등 및 대결문제로 확대되기 아주 좋은 사안이었다. 그런데 나는 가족중에 군대를 다녀온 사람도 없고 남자친구도 군대와는 거리가 멀어 그 시절 '군필자 가산점 제도'와 같은 문제에 가차없이 적대감을 드러내는 청춘이었다. 내가 억울한 것은 내 지난 3년이었다. 물론, 그 친구도 지난 3년이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의 국방의무기간 3년을 보상해주는 것이 내 직장경력 3년을 무시해야 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되는 일 이라 생각했다. 같은 직위라고는 했지만 업무를 처음 배우는 단계인 그에게 나는 실무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달 지나 가져가는 금액은 그 친구보다 적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비로소 내가 여자임을 깨우쳐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바로 여자에게 있어 실무경력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라는 회의를 들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들이 같은 기간에 꿈을 펼치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젊음의 세월을 바친 시간에 대한 보상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보상의 방법이 여성을 차별하는 도구로 쓰여진다는 것에 분개했다. 그전엔 거의 울 일도 없었던 내가 상처를 된통 받아 들고 서점으로 달려가 집어든 것이 그녀의 책들이었다. 그 위로에 대한 기대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시집이라는 철벽같은 문화를 겪으면서 또 습관처럼 그녀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올 한해 불혹의 강을 지난히도 건너가던 그 마지막 하류쯤에서 또 그녀를 만나 모든 것 버리고 속된말로 '지리산에나 들어갈까' 생각도 해보던 차에 이 책을 집어 든 것이다. 민망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웃는다. 그녀는 당신은 오지 말라,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마시라 조용히 타일러 주었다.
아직은, 괜찮다
책 덮으며 전에 없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작품이었다. 내 행복엔 그냥이 아니라 꼭 '다시'라는 단서가 붙을 것이었다. 나는 이제 이 나이에 걸맞는 상처와 그로 비롯된 그럴싸한 사연을 훈장처럼 지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만한 사연하나쯤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내 사연이 생기고 나서야 알게 된 몽매한 인간이기도 했다. 많은 행복을 손에 쥐고 있었으면서도 얼마나 더 행복해 지기 위해 발버둥 쳤던가. 이 책을 보면서 도저히 아물 것 같지 않은 상처마저도 행복으로 잉태해 낸 사람들에게 내 좁은 소견의 행복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다시금 깨우친다. 물질이 떨어지면 곧 불행이 시작되곤 하던 속세의 습관이 얼마나 무섭도록 가여운 것이었는 지 부끄러워진다. 작년에 우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전 재산을 처분해 도심 어느 곳에 외양좋은 술집을 꾸며놓고 어이없게도 준비되지 않은 미래를 모두 걸었었다. 일년 만에 우린 겉멋만 잔뜩 머금은 채 거리로 나앉았고 각자의 책임을 통감하며 서로를 반목하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주었다. 서로 실패를 말하지 않고 상처를 기억하지 않으며 각자 견뎌보기로 한 것이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우린 잘 견딘 것일까. 그럭저럭 눈물이 난다.
그래서 그녀가 한없이 고맙다. 이번에도 역시 내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큰언니가 맞았던 것이다. 이제, 나 섬진강변의 벚꽃보다 흐드러지고 형제봉에 만개한 철쭉보다 활짝이고 싶다 해도 괜찮을까. 다시 일출도 보고 싶고 피아골의 단풍도 보고 싶다 말해도 좋을까. 오십 줄에 다가선 그녀가 보기엔 이런 나도 한참 젊어 보이겠지만 인간은 애석하게도 제 나이로서만 젊고 늙음을 자각할 수 있으니 지금 나로선 여태까지 전부의 시간으로 가장 나이든 슬픔인 것이다. 아직은 차마 지리산에 갈 용기가 없어 이 책으로 그들의 행복을 엿보기 하며 내 소박한 행복을 다시 꿈꾸어 보고 싶다. 도시가 서럽고 사람이 미워져 자꾸 계절에 기대는 내 자신을 잘 달래어 보련다. 나쁘지 않다. 아직은, 아직은 괜찮지 않은가. 나 비록 온 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은 못되었지만, 갈비뼈 어긋나던 시인은 못되었지만, 툭하면 꿈꾸는 자살도 못 이루어 보았지만 아직은 여기서 견뎌볼 터이다. 지은 죄가 아직이라 섬진강은 나를 외면할 지 모르겠다. 지리산은 나를 품어주지 않을 지 모르겠다. 여기 소망을 핑계삼아 나는 그쪽 지리산을 내 쪽 가슴 한 구덩에 심어 놓을 터이다. 언젠가 지리산이 거기 있어 나 여기서 견딜 수 있었다고 꼭 다시 웃으며 이야기 할 그날을 기다릴 것이다. 그동안 날 기다려 주어 고마웠다, 나 오지말라 말해 준 당신이 서운치 않다 말할 것이다.
나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느긋하고 좀 더 부지런하게 그러나 이 모든 거, 거길 잊지 않으며 울지 않으며 잘해낼 수 있을까. 다시 실패가 두렵지 않아 세상이 야속치 않아 뼛속깊이 그 회한 다 풀지 않아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아...자신이 없다. 또 얼마안가 무례한 도시인에, 냉혹한 도시에 서운타 바보같을 나이기에. 어쩌면 그때까지만 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그래, 지리산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도 있다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지리산을 갈 수도 떠날 수도 돌아갈 수도 올 수도 있다는 것일 게다. 그것은 행복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일 게다. 그리고 그 행복을 운전하는 주인공은 바로 우리 자신일 것이다. 내일도 나는 바람보다 못한 것에 온몸이 떨리고 낙엽보다 가벼운 것에 눈물지을 지 모르지만 당신들의 섬진강 물줄기 하나, 당신들의 화전잎 하나로 희망을 걸어본다.
나는 소망한다. 상처도 행복이 되는 그날의 이야기를. 희망으로 다시 웃는 이곳의 지리산을. 다시 내 희망이 잦아들 그날 다시 그곳이 그리워질 그날 나는 또 그녀를 집어 들 것이다. 큰언니의 답장을 찾아 늘 그래왔던 오늘처럼. 거의 무의식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