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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ㅣ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평점 :
아는 것과 느끼는 것
나는 오랫동안 박물관(Museum)기획으로 밥을 먹었다. Muesum 의 영역에는 크게 역사관과 기념관, 사료관을 비롯해 과학관, 홍보관, 비지터 센터등의 하위 분야가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공모를 하면 이상하게도 역사관련 분야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았고 과학관, 홍보관 쪽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성적대로 전문분야가 정해지는 꼴이었다. 역사를 특별히 미워하지 않았음에도 과학을 남달리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해보면 거기엔 늘 사람이 있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역사박물관을 하나 건립하려면 그 분야의 역사학자와 고미술 전문가에게 시공하는 순간까지 자문을 받아야 한다. 나는 계획초기 단계에서부터 그들과의 만남이 순조롭지 않았던 것이다. 미술사 전공자들의 자존심과 역사학자들의 자긍심과 늘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번 달라지는 Museum의 주제에 따라 해당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왔지만 그들만큼 고집이 세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내 일이라는 것이 그들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과 일반 관람객이 느끼는 전시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임에는 분명했지만 그들 앞에서만 서면 나는 역사도 미술도 뭣도 모르면서 가벼운(?) 디자인으로 유물을 망치는 기획자가 되어 있곤 했다. 그래서 내게 있어 역사, 그중에서도 특히 고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소통 불가한 대화상대'라는(그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낙인이 찍힌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부끄럽지만 이번에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Ⅰ』를 접하면서 어렴풋이 그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이런 책이 그때는 없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들 앞에서 망신당하지 않기 위해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하고 미팅에 임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시험치듯 내용을 암기한 것이지 전시물이 될 뻔했던 그 유물들을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이 책은 우리에게 그 차이를 시원하게 한방 가르쳐준 책이었다고 할까.
이 책은 저자의 소개대로 '한국미술사 입문사'를 표방하고 있다. 말 그대로 발을 처음 들여 놓음에 있어 부담스럽지 않은 개론적 지식과 통사通史를 풀어 놓았다. 한번 마음먹기 어려워서 그렇지 실은 시작이 반인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같은 비전공자로서 일반 독자들은 이 책이 시작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많을 듯하다. 이로써 넘치게 충분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단답형 수준의 단편적인 지식들이 한자리에 총체적으로 모인다는 기념비적 의미는 물론이고 대외적으로 보아도 화보의 질이나 부록으로 첨부된 요약노트까지 어디 한군데 빠지는 곳이 없어 그 소장가치도 뛰어나다. '내가 꼭 제대로 정리를 하고 말겠다'는 학자로서의 결연한 의지가 페이지마다 결결이 느껴졌다. 시작은 학생들의 요구로 부터였다 하지만 기왕 칼을 빼어들었으니 그의 바램대로 앞으로 '통일신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3년 안에 정리된다면 한국미술사에도 커다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큰일을 하셨다.
가을이 시작되자 마자 이 책을 선물받았다. 지난 두주 가량 소설을 읽다가 마음이 멀어지면 지나간 강의노트를 들쳐보듯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쉬이 넘겨가며 서두를 필요도 없지만 편한대로 한번 마쳤다고 덮어둘 책은 아니다. 머리가 복잡하면 텍스트를 외면하고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정돈되는 일종의 심리안정격의 뉘앙스를 가진 서적이다. 아주 아주 오래전 같은 나라에 살았던 같은 민족이 만들었다는 예술품이다. 그들이 붓을 든 것을 본 적이 없으며 그들이 칼을 만지는 걸 본 적이 없으나 이상하게도 살아가는 삶의 기운이 느껴진다.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술사가인 앙리 포시옹은 '삶은 형태이며, 형태는 삶의 방식'이라고 했던가. 포시옹은 미술가로서의 삶을 형태라는 독립적 가치로 보고 결국 미술사 연구는 형태의 삶을 찾아내는 것이라 하였다. 형태를 단순한 대상으로서의 존재가 아닌 변화가능하고 무한대로 증식할 수 있는 생명성을 띤 가능성의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형태의 변화를 알고자 하는 것은 굉장히 미래적인 욕구이며 과정 또한 역동성을 수반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국사시간에 삼국시대 고분의 형태와 신라시대 불상의 외양적 이미지를 주어진 대로 정지된 존재로서 감상하고 암기해왔다. 마치 과거 어느 시대에 잠시 발을 멈추고 한 장의 스틸 컷을 박아 넣듯 그렇게 차곡차곡 데이터베이스를 쌓아 온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그 사진을 찾으려면 붙박이 사진을 떼어내듯 정확하게 그 부분만 뽑아야 했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 우린 앞뒤 맥락없이 다시 그 사진을 스스로의 힘에 의해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 책은 어찌 보면 그동안의 우리 역사와 미술 교육이 참 획일적이고도 무책임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 책에선 예술품이 가지는 형태를 정사진이 아닌 움직이는 활동사진화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형태를 다시 명상화, 감성화 하는 텍스트의 진심이 있다. 분명이 살아있다고 느껴지는데 나는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이다. 생명의 신비란 그런 것일까. 살아있는 것을 지켜보고 생명의 힘을 느끼는 것은 숨막히는 일일지 모른다. 이 책은 분명 형태가 가지는 '생명의 신비'와 그로인한 '정적인 감동'을 보여주고 가르쳐준다.
발견의 기쁨
책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발해까지 시대별 미술의 특징을 역사 속에서 서술하고 있다. 모든 시대에 공통으로 서사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관계'와 '미학'에 있다. 즉, 공히 각장에서 중국과 일본과의 교류를 상세히 밝히고 있으며 하나하나의 예술품에 대한 미학적 표현을 곁들였다는 것이다. 어디서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소상히 알려주면서 독창적인 예술적 가치를 저자만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와 미술 각 분야를 아우르는 이 설명방식은 어떤 부분에선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특히 작품 하나를 공들여 표현해내는 풍부한 언어의 유려함과 그 전문성이 가장 인상깊었다. 우리는 그동안 유물을 머리로만 기억한 것이지(그 기억도 이제 희미하지만) 마음으로 느낀 적은 없지 않은가. 그동안 내 눈으로 본 것들이지만 다시 가슴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 감성적 가이드였다.
선사시대에서 발견한 우선된 느낌은 '추상성'이었다. 잘 알려진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해 타래무늬, 번개무늬의 토기를 나란히 배치해 바라보면 그것은 의미없는 직선과 곡선의 반복이 아니라 그 반복에서 전해지는 生의 리듬과 또렷한 패턴이 있다. 특히 타래무늬, 번개무늬 토기를 바라보면 그것을 제작한 사람들이 어떤 신명이나 활기를 지닌 채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책에는 신석기인들이 사물을 '의식'으로 파악했기에 부호화, 개념화, 상징화하려는 경향이 추상무늬로 나타난 것이라 설명한다. 왜 나는 빗살무늬의 직선이 생선뼈를 상징했으며 생선뼈는 정복의 의미로서 사냥과 주식의 풍요로움을 소원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디선가 한번은 들었을지 모르나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신선함이었다. 삶의 형식이 예술적 태도를 지배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우쳐준 무늬들이기도 했다.
<잔무늬거울. 청동기. 지름 21.3cm,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소장>
이 추상성이 결정타를 날린 것은 청동기 시대의 잔무늬거울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치던 순간이었다. 처음 보는 유물이기도 했고 무늬의 정교함이 아주 편집적인 집요함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청동거울은 얼굴을 들여다 보는 용도가 아니라 제관이 햇빛을 반사시키는 용도였다. 무당의 놋거울처럼 제관의 상징적 지물이라는 것이다. 2400년 전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어느 장인은 지름 21.1cm의 원에 1만3000여 개의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을 0.3㎜ 간격으로 그려낸 것이다. 확대경이나 초정밀 제도기구없이 어떻게 이토록 복잡하고 고난이도인 무늬를 그려낼 수 있었는지도 신비스럽고 이등변삼각형과 동심원의 반복이 이루는 패턴의 조형미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정도이다. 전체적인 구도상으로 보았을 때도 중앙의 원을 중심으로 3단계로 확산되는 레이아웃에 대칭성을 이루는 안정감이 손이 아닌 컴퓨터를 사용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정확하고 매끄럽다. 잔무늬거울의 무한대 삼각형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빛무늬를 퍼트릴때 사람들은 어떤 환상의 세계를 보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날 잔무늬거울의 제작 비밀을 풀기위해 주석과 구리의 비율, 거푸집의 재질, 문양 제도 방법 등을 연구한다고는 하나 아직 시원스레 비밀을 풀지 못했다고 한다. 인간의 예술적 의지라는 것이 어쩌면 시대와 환경과 지식, 조건을 훌쩍 뛰어넘는 신성한 영역이라는 생각이드는 작품이었다.
< 손잡이잔. 가야. 국립김해박물관 >
< 손잡이잔. 가야. 개인소장 >
삼국시대로 넘어와 나를 멈칫하게 한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도기를 제치고 현대미가 물씬 풍겨 나오던 가야의 손잡이잔 이었다. 세계문명사에도 1500년 전에 질그릇으로 다양한 손잡이잔을 만들어 사용한 나라는 없다고 했다. 오늘날 커피잔은 물론이고 와인잔, 호프잔, 머그컵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실은 우리나라가 최초였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뿌듯한 순간이었다. 다양한 모양의 잔으로 미각을 느낀다는 것은 다양한 미감美感을 음미하는 것이다. 당시 음료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였을까 마는 담아내는 음료에 따라 컵이 달라진 것이 아니고 술과 물을 이토록 다양한 컵을 이용해 마셨다는 사실 자체가 가야인들의 심미안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극적인 예 일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영국 황실의 커피잔을 생각해보자. 인간의 조형수준은 곧 높은 생활수준을 의미하지 않을까. 가야의 손잡이 잔을 보면서 당시 왜와 밀접한 교류를 하는 가야국의 왕족들이 그려졌다. 한 잔의 차와 한모금의 물을 마셔도 저토록 세련된 손잡이잔에서 그 기품과 세련미를 잃지 않았던 우리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막연함의 구체화
< 금동해무늬맞뚫림장식. 고구려.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소장 >
우리는 흔히 금속공예의 정점을 신라시대로 익히 알고 대표적 작품들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특히 신라의 금관은 세계역사상 어느 나라의 왕관보다 화려하고 완벽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절정의 완성미를 선사한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은 고구려와 백제의 말로만 듣고 외우던 '강인함'과 '우아함'의 실제였다. 고구려의 금관에 사용되던 장식을 보면 강인하다는 것, 강렬하다는 것의 막연한 미사여구의 구체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내 눈길이 머물렀던 고구려의 금동관 장식 은 단연 불꽃무늬였다. 중심에는 원에 둘러쌓인 삼족오를 기점으로 용의 용트림과 봉황의 날개짓이 불꽃으로 형상화한 곡선의 디테일을 보라. 속도감은 물론이고 태양을 향한 역동적 에너지가 확실하고도 진취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으로 친다면 카리스마 있으면서 이목구비 또렷한 수려한 외모를 떠올리게 한다. 무늬의 조형미에서 어떤 음악적인 기운도 묻어난다. 이태리 명품 브랜드의 페이즐리한 문양이 떠올라 살짝 흥분되기도 했다. 물론 꽃이나 불꽃으로 된 단순한 시도였지만 오늘날 식물과 동물의 무늬를 패턴화하는 방식의 시초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 상아바둑알과 바둑판 바둑통. 일본 도다이지 쇼소인 소장 >
고구려가 고분벽화, 신라가 금속공예라면 백제의 고분미술은 도굴로 인해 그 결과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기는 했지만 이 책을 읽기전까진 일제가 그토록 지속적으로 도굴을 해왔다는 사실을 실감하진 못하였다. 백제는 개방적인 나라였기에 일본에 불교를 전하고 공예품도 많이 하사하였다. 백제왕이 왜왕에게 보내준 선물을 도리어 자신들에게 바친 선물이라 칭하며 식민사관화 하였다는 것은 치졸하기 그지 없으며 참으로 파렴치한 행위였다. 한눈에 보아도 일본풍임이 감지되는 상아바둑알과 바둑판 이 알고 보니 백제 의자왕이 보내준 선물이라는 것 또한 가슴 아프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답다는 바둑판과 바둑알이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도 그것을 보고 우리 것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 선입견도 울컥하던 순간이었다. 검은색과 빨간색의 바둑알에 새겨진 흰새만 하더라도 나리타 공항에서 판매되는 기모노 의상과 기념품을 연상시키기 충분했다. 새삼 당시는 따라가는 입장에서 이러한 문화와 문화재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통렬하게 인식하여 우리것을 자기것화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네들이 대단해보였다. 우리가 중국에서 보고들은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듯이 일본도 우리 것을 빼앗아 후세에 자기 나름의 우수성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미국의 어느 쇼핑몰 푸드코트엔 김밥과 우동과 함께 비빔밥이라는 메뉴도 Japanese에 분류되어 함께 팔리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 이 책은 문화재를 통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깨우치는데도 어지간한 자극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감의 승리
< 금동신발. 신라 5세기. 국립 경주박물관 소장 >
신라의 고분미술에서는 금관이 주를 이루나 나는 특이하게도 왕릉급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을 발견하곤 이들의 장려壯麗취미가 어디까지 였는지 비로소 궁금해지기도 했다. 금구슬의 현란함에서 일종의 자신감을 엿보았다면 금동신발 의 정교함은 매니아적인 호기심을 느낄 정도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앙 육각의 무늬안에 동물과 인물의 형상이 패턴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잘 아는 페르시안 양탄자를 떠올리기 충분하다. 금관, 금허리띠에 이어 신발의 밑창에 까지 당시 유행한 타국의 사조가 반영된 것을 보면 추구한 예술성의 경지가 상당히 혁신적이며 도전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직장 다닐 때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들고 디자인 좋은 차는 윗선에서 간섭하지 않은 차라는 자조적인 이야길 밥먹듯이 들었다. 즉 아무리 참신하고 훌륭한 디자인이라도 그것을 선택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택해주지 않으면 디자인은 발전이 없다는 것. 페르시안 문양을 신발에 적용한 디자인 의도보다 그것을 지시했거나 수용한 관계자들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지금 신라시대의 윗선보다 한참 떨어지는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누구보다 독창적이고 감각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오랜 관료주의와 무사 안일주의는 오늘날 자동차번호판처럼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중간이하 정도의 보편성을 뛰어넘지 못하는 결과를 양산해내지 않았던가. 우린 결코 색감이 없고 조형감각이 떨어지는 나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확인한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감명받은 것은 바로 백제의 석탑과 백제의 향로였다. 흔히들 백제미의 대표성으로 알고 있는 '우아미'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공식과도 같은 진부함의 표현일 지 모른다. 다시 보는 백제의 석탑은 그 절제가 선사하는 단정함에 있어 어떤 절대성의 가치에 천착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책에는 정림사 오층석탑의 아름다움의 핵심은 체감률에 있으며 이 같은 비례감각이 우아한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정리하고 있다. 소름끼치는 비례감은 뒤편에 등장하는 불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디테일이나 조형미보다는 절대비율에서 오는 안정감이 가시적인 웅장함보다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리곤 그 와중에 적당한 기울기를 지닌 추녀끝 곡선은 절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명품의 그것처럼 존재감을 입증하고 있다. 나는 절대감을 자극하는 비례나 절제된 디자인을 볼 때 그것이 우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 편이다. 오히려 완벽이 주는 절대성은 심리적인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오늘날 여심을 선동하는 많은 명품의 디자인을 보면 그 단순미가 어떻게 사람의 심미안을 만족시키는지 쉽게 이해될 수 있을까. 그것은 발칙한 도전에 가깝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그 자체로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이고 상대의 숨을 멎게도 할 수 있는 내공인 것이다.
< 백제 금동대향로. 백제. 높이 64.0cm,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
엊그제 2010 세계백제대전이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수도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전, 충청권에서는 큰 행사였다. 개막식과 폐회식 행사 장면을 보면서 익숙한 조형물이 제일먼저 눈에 띄었다. 바로 백제 금동대향로 였다. 그뿐 아니라 행사에서는 백제금동향로 속 5악사를 불러내어 그들의 악기와 음원, 복장을 그대로 복원해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금동대향로의 설명을 읽어내려 가면서 또 한번 나의 무심함을 깨우치기도 했다. 그저 꽃봉우리를 형상화 한 것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산봉우리엔 피리, 비파, 거문고, 북등을 연주하는 다섯명의 악사와 봉황, 용은 물론 여러 날짐승이 포진해 있었던 것이다. 공예품에서도 드라마같은 종합연출을 담아내는 예술혼의 경지가 어쩐지 애틋해 보였다고나 할까. 3차원 조형물에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고 복합적인 상황을 입체적으로 구현해 내었다는 것은 예술품을 하나의 무대로 생각했다는 뜻과 같을 것이다. 이것은 2차원 도화지에서도 화가의 실력에 따라 그 수준차가 천차만별인 과제이다. 담아낸 이야기를 보면 신선이 살고 있는 영생의 세계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봉황이 날아드는 몽환적 환타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창의력과 기술력이 조화된 예술품으로서 두고두고 자랑할만하다. 악사의 표정과 악기의 디테일에서도 완성도가 상당하여 아마도 이 작품을 제작한 예술가는 일생일대의 명작을 남기었음에 틀림없다. 저자의 말마따나 그 절정에서 딱 멈추어 버린 백제문화에 대한 아쉬움과 말로만 듣던 백제미에 대한 경의가 절로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도전하는 마음
< 금동관음보살 입상(뒤). 백제. 높이 21.1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 나한 두상. 백제. 높이 11.5cm,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불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의 불상은 중국에 동참한 후 일본에 전파하여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주로 불상을 감상할 때 표정이나 미소위주로만 의미를 분석하고는 했는데 이번기회에 불상을 보는 법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할까. 저자는 백제보살상의 전형이면서 백제미술의 진수라며 금동보살 입상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중 압권은 '미스백제'라 불리는 금동관음보살입상 의 뒷태였다. 비례도 세련되었지만 뒷모습에 표현된 의상의 실루엣과 가운데 꽃무늬를 중심으로 X자의 패턴을 강조한 드레시한 라인은 요즘말로 '간지짱'이라 할 수 있겠다. 각종 시상식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등파인 드레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백제 불상은 그 표정에서도 신라 이상의 다양성을 표현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부여에서 출토된 나한 두상 은 리얼리즘의 정수라 생각되었다. 입을 벌리고 있는 불상은 처음이기도 했고 수도자의 내적인 고통이라는 의미로 표정을 음미하니 정지한 돌이라 하기엔 미안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부분 신라의 불상에서 느껴진 편안한 미소와 상반되면서 백제 장인의 기술력에도 엄청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 방형대좌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삼국 > < 자코메티. 걷는 사람. 1960>
신라의 불상중에는 반가부좌를 튼 자세에서 주로 명상에 잠긴 듯한 금동미륵반가사유상들이 아무래도 정이 갔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부처' 특유의 고뇌를 신비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방식이나 기법이 독창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그중에 전체적 이미지가 기존의 사유상과는 달리 유달리 추상적인 불상이 있었는데 방형대좌 미륵반가사유상 이 그 주인공이다. 흡사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의 거장 자코메티의 청동조각상 '걷는 사람 (L’homme qui marche, 1960)'에서 느껴지는 고독함에 단순화한 추상미가 더해져 묘한 아름다움을 자극하고 있었다. 여느 불상에서 시도되던 기법을 사용하지 않은 불상을 보면 파격을 시도한 차별화에 비록 후세에서라도 달려가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발해의 유물들 중에는 생활도기로 알려진 구름모양도기 쟁반 이 기억에 남는다. 구름무늬를 현대적 감각으로 유려하게 도안한 쟁반의 크기는 86cm로 쟁반치고는 대형사이즈다. 전문가들은 고구려 풍과 중국의 영향을 받아 잘 융화되었다고 극찬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생활도기에 심미안을 발휘하여 대칭의 미를 극대화한 부분이다. 나는 대칭의 비례를 가진 상품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시각적 즐거움이 주방용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술안주를 담아내는 그릇을 연상할 정도로 곡선이 재미나고 자극적이다. 구름이라는 네이밍이 없었다면 네잎클로버나 호두 등 다양한 자연소재를 단순화했다는 생각도 들고, 현대의 기업마크나 엠블렘에 적용할수 있을 정도이다. 이탈리아 산업디자이너인 필립스탁이나 알레시의 주방기구와 나란히 디스플레이 한들 빠지지 않을 디자인감이다.
< 구름모양도기 쟁반. 발해. 너비 86.0cm >
< ALESSI. Babyboop, Ron Arad >
삶이 무늬로
나는 막연히 알고 있던 고구려의 강인함, 백제의 우아함, 신라의 화려함이라는 고전적 가치를 언어나 지식이 아닌 마음과 감성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마음이 부자된 기분으로 독서를 마치게 되었다. 세계문화사의 시각에서 보면 그 민족의 고유한 정서는 고대국가를 경험하면서 세련되어 진다고 한다. 즉, 고대국가를 거친 민족과 그렇지 않은 민족간의 정체성의 차이는 그 깊이와 양적인 면에서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 책은 한 민족의 정체성이나 자긍심도 양적, 질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우리의 미적가치가 무자르듯 단지 저 세단어로 축약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고대국가에서 존재했던 분명한 가치를 다시 되새김하며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혹시 내재해 있을지 모를 문화적 열등감이나 사대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엔 마땅히 정당하다 생각한다.
미술을 보고 역사를 추정하고 역사에 따라 미술이 변화했음을 배우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책은 학부모로서도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유용한 팁을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박물관에 손잡고 가자하면 숙제처럼 입이 나오는 아이들이 많은 실정이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무슨시대 무슨자기, 무슨 금관...이렇게만 달달 외우고 쇼케이스속의 유물로만 기억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느낀 사람만이 감정을 설명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역사속에서의 '관계'와 예술로서의 '미학'을 모두 기억할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이 그리운 감성만은 아이들에게 잘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세상에 유인원이 등장한 것은 500만 년 전이고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빗살무늬 토기를 만든 시기는 기원전 4000년 무렵 부터이다. 빗살무늬 하나만 해도 약 삼 천 년 정도 변하지 않았던 양식으로 상상할 수 없도록 오랜세월의 결과물이었다. 기껏해야 백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네 삶이 빗살무늬의 빗금 한줄만도 못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삶은 형태이고 형태는 삶의 방식'이라는 명제가 자꾸 떠오른다. 미술사가 뿐 아니라 일반인으로서 우리 삶도 특정한 양식과 반복되는 패턴을 지니고 있다. 그 지겹도록 일상적인 형태가 결국 훗날 어느 시기에 빗살이 아닌 어떤 무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지나고 또 얼마나 반복해야 하나의 무늬가 탄생되는 걸까. 그러고보면 인류의 미술사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온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며 후세 사람들은 열심히 그 무늬를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더 나은 무늬를 창안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 삶의 무늬를 떠올리며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다음 무늬를 기대해 보겠다. 부디 인상적이고도 아름다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무늬라면 좋겠다. 한점, 한줄도 되지 못할 우리네 삶의 형태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빗살이 무늬가 되기까지 얼마나 울고 웃었는지 누군가는 기억해 준다면, 정말 좋겠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 대단한 것이었다.
산다는 건, 좋지는 않지만 어쩌면 대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임>
책에서의 눈부실만큼의 고화질 화보에 비하면 인터넷 이미지들은 그 반절도 좇아갈 수 없는 표현의 한계가 있었다.
각 지역의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 이미지를 중심으로 참고화 하였기에 질적으로 감상에는 부적절함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