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어려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말풀이로 풀 문제는 아닌 듯해요.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가 저번 글에서 ‘마음’과 ‘얼’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죠. 다시 생각해보니 동물에게는 ‘마음’과 ‘얼’이 없을까 궁금해져요.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있을 텐데 싶고요. 사람이 동물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은 과연 맞는 말일까요? 우리가 모르는 세상 헤아리기 어렵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네요. 깊은 철학이 담긴 이야기라 살면서 더 찬찬히 생각해보려고 해요. 그래도 ‘넋’과 ‘얼’ 이야기를 여기저기 듣고 본 속살을 나름 갈무리 해봐요. 

 

 먼저 ‘넋’이예요. 김수업 선생님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넋’을 쓸 수 없다고 하셔요. 최종규님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기운’이며 ‘넋’과 ‘얼’은 ‘살거나 죽는’것이 아니라 어떤 몸(사람)을 빌어서 이 땅에서 ‘살다’가 다른 몸으로 가서 다시 ‘살’도록 하는 숨결이라고 합니다.

 

 국어말집에는 다음과 같이 나오지요.

 

*넋 [이름씨(명사)]

1) 사람의 몸에 있으면서 몸을 거느리고 정신을 다스리는 비물질적인 것. 몸이 죽어도 영원히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초자연적인 것이다.

보기> 억울한 넋을 달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넋이 나를 지켜 주는 것 같다.

2) 정신이나 마음

보기> 그 유물에는 백제의 넋이 살아 있다. 그는 여자 생각에 넋이 빠져 있다.

 

 주로 죽은 사람에게 ‘넋’이라는 말을 1)처럼 써요. 생각해보면 죽은 사람에게만 쓰는 게 아니고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기운’이 맞는 듯해요. 살아있든 죽었든 사라지지 않는 게 ‘넋’이죠. ‘혼(魂)’이라 불리기도 해요. ‘넋’이 빠지면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없으니 ‘죽은 사람과 다름 아니다.’라는 말이구요.

 

*넋 빠진 사람, 넋 나간 사람, 넋을 놓고 있다

 

 그럼 ‘얼’은 무얼까요? 국어말집에는 이렇게 뜻풀이를 해놓고 있어요.

 

*얼 [이름씨(명사)]

1) 정신의 줏대

보기> 전통문화에는 민족의 얼이 담겨 있다. 엄마는 얼이 빠진 모습으로 쳐다봤다.

 

 ‘얼’은 ‘마음을 지키는 뼈대’예요. ‘얼’은 ‘마음’ 속에 있지만 ‘마음’과는 달라요. ‘마음’은 몸에서 비롯하지만 ‘얼’은 몸에서 나오지 않지요.

 

 ‘얼’은 ‘알’과 같은 말이에요. ‘알’은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도록 하는 씨앗입니다. 많은 짐승들이 알에서 태어나죠. 땅 위에 자라는 모든 푸나무들도 씨앗에서 자라요. 옛 신화에도 알에서 태어난 사람 이야기가 나오죠. 사람의 진짜 알맹이가 바로 ‘얼’이에요.

 

 ‘얼’은 ‘알다’라는 움직씨 몸통인 ‘알’이기도 해요. ‘알’은 ‘앎’이죠. ‘얼’은 아는 것, 알게 하는 힘이라는 뜻이에요. ‘생각’과는 달라요. 사람이 알 수 없는 저 너머 이야기를 아는 힘이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그런 힘이에요. ‘얼’은 몸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얼’이 있고 거기서 몸이 생겨나는 거죠. 사람이라는 목숨이 생겨나도록 열어주는 힘이며 씨앗이 바로 ‘얼’이에요.

 

 ‘얼’이 쓰인 낱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아요.

 

*얼간이: 얼+간+이 → 얼이 가 버린 사람

*얼뜨기: 얼+뜨+기 → 얼이 하늘 높이 뜬 사람

*얼빙이: 얼+빈+이 → 얼이 비어 버린 사람

*얼빠졌다: 얼+빠졌다 → 얼이 사람의 마음에서 빠졌다

*얼먹다: 얼+먹다 → 놀라서 어리둥절하여지다

*얼치다: 얼+치다 → 정신을 잃어버리다

 

 어른들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하죠. ‘돌아갔다’는 무엇이 돌아갔다는 것일까요? 사람이 죽으면 몸은 썩어요. 몸은 땅에 묻혀 자연으로 흩어지죠. 마음도 몸에 비롯된 것이기에 자연으로 흩어져요. 하지만, 사람은 죽음을 뛰어넘어 ‘돌아가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것이 바로 ‘얼’이예요. 목숨이 시작된 곳, 하느님께로 ‘얼’은 돌아갑니다.

 

 그럼 ‘넋’과 ‘얼’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죽기 앞서 있는 게 ‘얼’이고 죽은 다음 있는 게 ‘넋’일까요? 최종규님은 이렇게 말하세요.

 

 “넋이 있어서 ‘산 목숨’이 됩니다. ‘얼’은 뼈대와 같은 구실로 ‘넋’을 지키는 구실을 합니다. 사람은 넋이 깃들면서 새 목숨이 되고, 새 목숨이 되면 ‘생각’을 지어서 어떤 뜻을 품고, 생각을 ‘마음’에 씨앗(알)처럼 심어서 어떤 일을 합니다.”

 

 무교에서는 넋이 깨끗해야 편안히 돌아간다고 믿죠. 그래서 제명에 죽지 못한 사람의 넋을 씻어주는 굿을 하기도 해요. 살아가며 ‘얼’에 때를 묻히고 흠을 내면 저승에 가서 ‘넋’에 묻은 때를 씻겨내는 아픔이 무지 크다고 하죠. 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그 가르침은 다르지 않아요.

 

다시 사람답게 사는 길, 되새겨 봅니다.

 

(2015.6.2.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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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6-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쪼록 슬기롭게 말길을 잘 찾아보시기를 빌어요

민들레처럼 2015-06-0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길잡이가 되주셔서 고맙습니다. ^^
 

 엊그제 서울도서관에서 열린 ‘아이처럼 살다’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이오덕·권정생·하이타니 겐지로 전시회였지요. 가보려 하던 참에 글쓰기교육연구회 선생님들이 모인다고 해서 이때다 싶어 올라갔죠. 온 삶을 아이처럼 살다 가신 세 분 삶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오덕 선생님이 아이들 글 하나 하나를 갈무리해 손수 붙여 만든 책을 보았지요. 삐뚤빼둘 쓴 쪽지 시 하나까지 버리지 않으셨어요.

 

 

 저는 선생이 되기 전까지 존경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늦게 이오덕 선생님을 책으로 만나며 제 삶을 다시 돌아보고 선생으로 사는 길을 찾았죠. 만나 뵐 수 없지만 이런 저런 궁금한 것도 여쭤보고 따끔한 가르침도 받고 싶어요. 책과 글쓰기교육연구회 선생님들 이야기라도 만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예요.

 

 전시회를 둘러보다 이오덕 선생님이 남기신 말이 오래 남아요.

 

 ‘자기 삶은 모든 사람 삶에 이어져야 한다.’

 

 

 사람은 무얼까요? 국어말집(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어요.

 

1)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보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

2) 어떤 지역이나 시기에 태어나거나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자

보기> 서울 사람, 충남 사람

3)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

보기> 사람을 만들다.

4) 인격에서 드러나는 됨됨이나 성질

보기> 사람이 괜찮다.

 

 물론 사람도 ‘동물’이고 ‘짐승’이죠. 그래도 무언가 찜찜해요. 김수업 선생님 ‘우리말은 서럽다.’를 살펴보면 ‘사람’ 뜻풀이가 참 뜻 깊어요(우리말은 서럽다 251~252쪽). ‘사람’에서 ‘ㅏ’만 빼면 ‘삶’이 되죠. 사람의 값어치는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사람’이라는 낱말은 본디 ‘살다’라는 움직씨(동사)에 ‘ᄋᆞᆷ(암)’이라는 이름씨(명사) 씨끝(어미)이 붙어서 이루어진 이름씨 낱말이예요. 그러니 뜻은 ‘사는 것’ 또는 ‘살아 있는 것’ 곧 ‘삶’이겠죠. 김수업 선생님은 더 나아가 ‘살다’와 ‘알다’라는 두 낱말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으로 보셨어요.

 

*‘살다’의 줄기 ‘살’ + ‘알다’의 줄기 ‘앎’ → [살+앎], [삶+앎]

 

 ‘삶을 아는 것’이 곧 사람이고, ‘삶을 아는 목숨’이 사람이라는 뜻이다. 왜 사는지를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어떤 삶이 보람차고 헛된지를 알고, 무엇이 값진 삶이며 무엇이 싸구려 삶인지를 알고서 살아가는 목숨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말은 서럽다 252쪽)

 

 어찌 보면 ‘사람’은 몸뚱아리만 보면 동물과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마음’과 ‘얼’이 있기 때문이예요. 먼저 ‘마음’은 무엇일까요? 국어말집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요.

 

1)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보기> 마음이 좋다. 아내는 착한 마음을 가졌다.

2)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보기>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3)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보기> 안 좋은 일을 마음에 담아 두면 병이 된다

4)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

보기> 오늘은 날이 추워 도서관에 갈 마음이 없다.

5) 사람이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

보기>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결혼해라.

6)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好意)의 감정.

보기> 너 저 사람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7) 사람이 어떤 일을 생각하는 힘.

보기> 마음을 집중해서 공부해라.

 

 뜻풀이가 또렷하지 않아요. ‘우리말은 서럽다’ 책을 보면 그 뜻이 또렷해져요. 김수업 선생님은 마음은 ‘느낌’, ‘생각’, ‘뜻’ 이렇게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하세요(우리말은 서럽다. 213~218쪽).

 

 ‘느낌’은 춥고 덥고, 밝고 어둡고, 시끄럽고 고요하고, 쓰고 달고…… 이런 것들이죠. 몸에서 빚어지는 마음의 움직임인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까지도 느낌이라고 볼 수 있어요. ‘몸’에서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 겹이며, 다스려지지 않은 채로 어수선한 상태일 수 있어요.

 

 ‘생각’은 마음의 둘째 겹이예요. 생각은 생각(生覺)이라는 한자말로 알고 있는데, 이건 잘못 알고 있는거예요. 생각은 본디부터 우리 토박이말이죠. ‘느낌’보다는 마음 안쪽으로 끌어와 흔들림이 가라앉은 다음 빚어지는 마음의 움직임이예요. 그래서 알고 모르고, 같고 다르고, 맞고 틀리고, 참되고 그르고…… 이런 것을 가려내지요.

 

 ‘뜻’은 ‘느낌’과 ‘생각’을 지나 좀 더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자리잡은 움직임이예요. 바깥 세상을 받아들여 느낌과 생각을 간추린 마음의 셋째 겹이죠. 뜻은 생각과 느낌을 끌고 가요. 뜻이 마음을 끌고 가면 마침내 몸도 끌려가지요. ‘뜻’을 두면 어떤 일도 해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래서 뜻은 마음의 알맹이, 사람의 알맹이인 거죠.

 

 뜻이 어떠한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게 마련이고, 뜻이 어떠한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면 사람의 값어치가 달라지게 마련이므로, 뜻이 사람의 값어치를 매김 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뜻’이 온전하게 세워지려면 먼저 ‘생각’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그보다 더 먼저 ‘느낌’을 제대로 가꾸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몸 바깥세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바탕에 깔고, 온갖 것을 가늠하고 간추리는 생각의 힘을 갖춘 위에, 굳세고 슬기로운 뜻의 힘을 세우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란 느낌과 생각과 뜻이 골고루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적에 마침내 바람직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은 서럽다. 218쪽>

 

 책을 다시 보며 한참 생각했어요.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값진 삶인지. ‘사람’은 ‘삶을 아는 것’이라는 ‘뜻’을 다시 새겨봅니다. 우리말 공부가 그냥 국어 맞춤법 공부가 아니라는 걸 또 깨달아요. 다음 글에서는 ‘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2015.5.27.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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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네요. 대학생때는 광주 망월동에 찾아가 참배도 하고 아픈 역사를 생각하며 울기도 했어요. 하지만, 갈수록 무뎌지는 마음에 씁쓸하고 안타까워요. 오랜만에 누리집에 들어가 영상도 보고 글도 살펴봐요. 대문글이 마음에 와 닿네요.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사회가 돌아가는 판을 요즘에는 손전화로 쉽게 확인할 수 있어요. 그래서 종이신문을 좀처럼 잡기 어려워요. 주마다 오는 시사잡지라도 보려고 애쓰죠. 그런데 기사를 읽으면 이 ‘등’이라는 말이 많이 나와요. ‘등’을 쓰지 않으면 글을 못 쓰겠다 싶죠. 쓴 것 말고 더 있을 때 주로 써요. 저도 많이 쓰지요. 고치려고 해도 잘 안 고쳐져요.

 

 등(等)은 일본사람들이 쓴 한문글자 ‘等’을 그대로 읽고 쓰는거예요. 일본사람들은 ‘나도(など)’라고 자기 말로 읽구요. ‘나도(など)’라는 말은 ‘들’, ‘따위’란 뜻이예요. 이오덕 선생님도 ‘등’은 살아 있는 말이 아니다 라고 하셨지요.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라고 말하지 “사람 등이 많이 모였다.”라고 말하지 않죠. “봄이 되어 쑥이나 냉이 같은 나물이 많이 돋았다.”라고 말하지 “봄이 되어 쑥이나 냉이 등 나물이 많이 돋았다.”라고 하지 않아요. 둘레 글들을 살펴보며 적바림해봅니다. 글은 ‘우리글 바로쓰기 4’와 ‘시사인 시사잡지(2015.4.4.)’를 살펴보았어요.

 

*프랑스 교사 등 20만 시위 → (들)
*비전향 장기수였던 김명수, 한장호씨 등이 1일 오후 대전시... → (들이)
*검찰은 이 과정에 포스코건설 정동화 전 부회장 등 고위 임원들이 개입한 흔적을 포착하고 이들을 상대로 비자금... → (같은)
*그는 이상득 전 의원, 김신종 광물자원공사 사장 등과 함께 볼리비아를 여섯 차례나 드나들었다. → (들과)
*대선 자금과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 등에 대한 의혹은 → (들에)
*사절단에는 최수현 당시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서진원 신한은행장 등이 포함돼 있다. → (들이)
*국방·법무·외무·재무·내무 장관 등 그리스 정부 각료가 잇따라 → (같은)
*종친인 이상득 전 의원 등과 돈독한 친분 관계를 맺기도 했다. → (과, 흐름상 빼기)
*중국·브라질·러시아·인도·남아공 등 이른바 ‘브릭스(BRICS)’신흥 경제 5국에 더 많은 투표권을 주자는 것이다. → (흐름상 빼기)

 

 쓴 대상보다 많을 경우 ‘들’, ‘~와 같은’을 쓰면 되요. 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버릇처럼 뒤에 붙일 때도 있어요. 마지막 보기에서 보면 다섯 나라를 가리킨 후 뒤에 등을 붙여요. 세 사람을 가리켜 글에 다 썼는데 뒤에 붙이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이럴 때는 ‘등’을 빼야겠죠. 

 

 ‘등’이라는 말 대신 ‘따위’라는 말을 쓸 수 있어요. 우리가 나쁜 뜻으로만 알고 있지만 원래 뜻은 세 가지 뜻이 있어요. ‘따위’를 붙이면 나쁜 뜻이라는 굳어진 생각은 우리가 ‘따위’를 넓게 쓰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따위>
1. 앞에 나온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
 <보기> 텃밭에 상추, 호박, 고추 따위를 심었다.
2. 앞에 나온 종류의 것들이 나열되었음을 나타내는 말
 <보기> 냉장고, 텔레비전, 세탁기 따위 가전제품들.
3. 앞에 나온 대상을 낮잡거나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
 <보기> 너 같은 놈 따위가 뭘 안다고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냐?

 

*서울시 부시장 3명이 호남 출신이라는 점 등을 물고 늘어졌다. → (따위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영돈 PD는 → (따위)
*조종을 위한 소프트웨어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을 잘 융합시켜야 → (따위)
*텐트 내 난방을 위해 전기장판, 가스난로 등을 사용하게 되는데 → (따위를)
*난방시설 이외도 냉장고와 텔레비전 등 각종 전기·전자 기기가 즐비하다 → (따위)
*과거 일본 각료들은 “팔굉일우 등의 역사교육을 부활시킬 생각은... → (같은)
*임차료 900만원 외에도...식자재비 960만원 등이 매달 지출되었다. → ( 따위가)
*훈련 중인 군인들이 풀 등으로 위장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 (따위로)

 

 이런 말도 많이 보셨죠? 기타 등등(其他 等等). 한자말 기타(其他)는 ‘그 밖의 또 다른 것’을 뜻하고, 한자말 등등(等等)은 ‘그 밖의 것을 줄임을 나타내는 말’을 뜻한다고 해요. ‘기타 등등’은 ‘그밖에’, ‘이밖에’를 쓰면 되겠죠.

 

*수박, 토마토, 딸기, 기타 등등 → 수박, 토마토, 딸기, 그밖에

 

(2015.05.18.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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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돌아왔다 - 킹콩샘과 아이들이 엮어가는 작은학교 이야기
윤일호 지음 / 내일을여는책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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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일호 선생님을 만난건 작년 여름 글쓰기연구회 연수였다. 글쓰기회보를 받아 본지는 꽤 됐는데 연수를 가기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늘 그렇지만 부딪치고 시작하면 절반은 해낸거다. 어렵게 딪은 한걸음이 나에게는 큰 뜻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렸던 선생님들을 만난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

 첫인상은 옆집 형님처럼 편했다. 생활한복과 구수한 말투가 좋았다. 학교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때 장승학교를 일궈오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연수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참 반가웠다. 언제든지 궁금한게 있음 연락하라는 이야기에 이것저것 전자편지로 보내 물어보기도 하고 홍성으로 모셔 학교 일군 이야기도 알차게 들어보기도 했다. 든든한  학교 고민을 들어주는 선배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때도 느낀 거지만 참 닮고 싶은 형님이자 선배 선생님이다.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다' 장승학교 철학이다. 요즘 선생님들과 함께 '교육과정 세우기' 공부를 하고 있다. 그 시작이 바로 철학세우기다. 프레네와 이오덕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바로 그 흐름과 닿아있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되는게 바로 철학이다. 함께 탄탄하게 철학을 세워나가는 모습 배우고 또 배웠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그러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는 수업이 잘하는 수업이야?'하는 물음이다. '그러니까 어쩌라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수없이 던지다 보면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왠지 다른 교사보다 수업을 더 못하는 것 같다. 수업을 잘한다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하는 생각보다는 자꾸 주눅이 든다." (141쪽)

 학교자랑만 늘어놓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학교를 만들지 고민이 담겨 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면서 행복하게 지낼까, 어떻게 수업을 잘 할 수 있을까, 밤새 회의하고 애쓰는 선생님들 모습이 그려졌다. 두렵기도 하다. 나도 지금 꿈꾸는 학교를 위해 준비하고 있지만 수없이 부딪칠 문제들, 사람들 관계들이 무섭다. 그래도 현실에 묻혀 적당히 살아가는 모습은 아니다. 힘들어도 뿌듯한 길을 걸어가야지 싶다. 

우리학교 (이산하, 장승초3)

우리 학교는 좋다
우리 학교는 혁신학교다
우리 학교에 전학 왔다
전학 와보니 좋다
우리 학교만 계속 다닐 거다 (154쪽)

 정말 아이들이 다니고 싶은 학교가 어떤 학교일까 생각해본다. 장승학교는 선생님들 힘만으로 만들어진 학교는 아니다. 마을이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학교, 그런 학교 모습을 보았다. 그렇다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마을에 오래 사셨던 분들과 마찰과 오해도 있었다. 하지만, 학교는 마을사람들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 함께 하기 시작했다. 자기 자식만을 위해 좋은 학교를 보내는게 아닌 함께 아이들을 어떻게 잘 키울지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있었다. 그게 바로 장승학교 힘이다.

 "지금은 조금 부족하고 힘들더라도 아이가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작은 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 정작 어른이 되어 선택을 해야 할 때, 책임을 져야 할 때, 어쩔 줄 몰라하는 그런 어른으로 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 내 아이를 믿자. ...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아이들이 어떻게 자랄 것인지 두려움을 넘어서 아이들을 존중하고 믿어주자. 아이들은 부모가 믿는 만큼, 둘레 어른들이 믿는 만큼 그렇게 자랄 것이다." (237,239쪽)

 그렇다. 스스로 설 수 있게 만드는 힘. 바로 그 힘이 아이에게 있다는 믿음,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 돌아보면 아이들을 믿지 않았다. 믿는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한구석에는 내 기준에 맞춰 아이들을 끌어오려고만 했다. 아이들이 킹콩이라 부르며 함께하는 관계를 만들고, 아이들 목소리, 글 하나를 소중히 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다시 그려본다. 

 작은 학교를 일군 이야기가 책에 살뜰히 담겨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며 담백하게 풀어낸 이야기가 마음을 건들이며 스르륵 읽고 어느새 끝장을 덮었다. 덮고 드는 생각은 아, 나도 가고 싶다. 그렇게 즐겁고 뿌듯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학교들은 왜 이럴까? 정말 아이들과 함께 즐거이 커가는 학교를 나는 만들 수 있을까?

 한참 논문에 파묻혀 있다 마음을 추스리게 했다. 지금 아이들을 만나지 않는 연구실이 참 좋고 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아이들을 신나게 만나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학교로 돌아가면 아이들과 하고 싶은 일들이 몇 가지 있다. 문집만들기, 그리고 지리산 종주다. 아이들과 땀을 뻘뻘 흘리며 천왕봉 정상에서 함께 힘차게 고함을 외쳐보는 기분좋은 상상을 해본다. 

(2015.05.12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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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논문 계획서 발표가 있었어요. 논문을 쓰다보면 눈과 마음에 걸리는 글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요. 서론, 이론적 배경, 교육프로그램 설계……서론을 머리말, 이론적 배경을 바탕이론 같이 바꿔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아요. 참고논문들, 인용하는 글들도 바꾸기 쉽지 않구요. 연구할 속살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해 뜻을 잠시 접었죠. 천천히 다시 보며 고쳐봐야겠어요. 쉽지는 않을 듯 하구요. 김수업 교수님도 우리말로 학문을 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래요.

 

 

 오늘 이야기까지 색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빛깔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최종규님 답장과 누리사랑방,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책들을 살펴봤어요. 먼저 우리가 빛깔을 보며 [진하다, 연하다, 선명하다, 탁하다]라고 하는 말부터 잘 가려 써야겠어요. 우리말을 한자말로 바꾼 말들이죠. 이런 말들도 우리말이 있을까 생각해요. 늘 그렇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어요. 아, 그렇구나. 있구나. 없어서 못 쓰는게 아니고, 몰라서 아니 알아차리지 못해서 못 쓰는 거구나.

 

*진(津)하다 → 짙다.
*연(軟)하다 → 옅다.
*선명(宣明)하다 → 맑다.
*탁(濁)하다 → 흐리다.

 

 빛깔을 보면 짙거나 옅지요. 이런 짙은 빛깔이나 옅은 빛깔을 가를 적에 우리는 흔히 농도(濃度)나 농담(農談)이라는 말을 써요. 지난 글에 마음결, 물결 이야기하며 ‘바탕의 상태나 무늬’가 ‘결’이라고 했죠. 짙거나 옅은 느낌도 ‘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바꿀 수 있겠죠.  

 
*농도(濃度), 농담(農談) → 빛껼

 

 지난 글에 주황(감빛), 연두(옅은 풀빛), 녹색(풀빛), 청록(짙은 풀빛), 남색(쪽빛, 짙은 파랑),  자주(자주빛) 빛깔을 말해보았어요. 이번 글에는 다른 빛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아이가 쓰는 크레파스를 뒤져보니 서른 여섯 가지 빛깔 크레파스가 있어요. 여기에 나온 빛깔을 견주어보며 하나씩 말해볼께요. 최종규님 책과 누리사랑방 글, 국어말집과 누리집들에서 살펴봤어요. 제가 이야기하는 빛깔이 답은 아니예요. 오히려 더 알쏭달쏭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크레파스를 꺼내보세요. 더 뒤죽박죽이랍니다. 찬찬히 빛깔을 하나씩 찾아봅니다.

 

 

 

*빨강 → 핏빛, 알빛(열매빛), 동백꽃빛, 장미꽃빛, 딸기알빛, 앵두알빛, 능금알빛, 말랑감빛(홍시빛깔)
*다홍(주홍) → 짙은 감빛, 단감빛
*귤색 → 옅은 감빛, 귤빛
*연주황 → 살구빛

 

 찾아본 노랑 빛깔 크레파스는 짙은 순으로 보면 개나리색, 노랑, 레몬색, 상아색 순이예요. 레몬색은 원래 맑은 노랑으로 개나리색과 가까운데 크레파스는 옅은 노랑을 띄죠. 잘못 만들어진 것 같아요. 상아색은 아이보리라고 불리기도 해요. 아주 옅은 노랑이죠. 이보다 조금 짙은 베이지, 크림색도 있어요. 노랑을 가운데 두고 이름을 불러도 좋고 꽃과 열매로 이름 붙여도 좋겠어요.

 

*개나리색 → 짙은 노랑, 개나리빛, 유채꽃빛
*노랑 → 노랑, 병아리빛, 민들레꽃빛, 원추리꽃빛
*레몬색 → 맑은 노랑
*상아색 → 흰 노랑
*베이지, 크림색 → 흐린 노랑

 

 

 

 우리가 잘못 쓰는 빛깔 가운데 ‘갈색(褐色)’도 있어요. 영어로는 브라운(brown)이라고 하죠. 국어말집에는 ‘검은 빛을 띤 주홍색’이라고 나와요. 다색(茶色)이라고도 하구요. 한자 ‘褐’은 ‘굵은 베’나 ‘털옷’이나 ‘다색’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무슨 빛깔인지 통 모르겠어요. 이렇게 바꾸어 봅니다.

 

 

*고동색 → 짙은 흙빛, 짙은 밤빛
*갈색 → 흙빛, 밤빛, 도토리빛, 상수리빛, 호두빛, 가을잎빛, 가랑잎빛
*황갈색 → 된장빛
*황토색 → 누런 흙빛

 

 

 

보라, 연보라, 홍매색(핑크), 검정, 회색, 어두운 회색, 금색, 은색은 어떻게 바꿀까요?

 

 

*보라 → 도라지꽃빛, 제비꽃빛
*연보라 → 등나무꽃빛
*홍매색, 분홍색 (핑크) → 꽃잔디빛, 패랭이꽃빛
*검정 → 능금씨빛, 배씨빛, 나팔꽃씨빛, 깨알씨빛, 그림자빛, 그늘빛
*회색 → 잿빛
*어두운 회색 → 짙은 잿빛
*금색 → 금빛
*은색 → 은빛

 

 우리 둘레 수많은 빛깔을 어떻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겠어요. 미술시간 크레파스와 물감이 아닌 이런 아름다운 빛깔을 숲에서 찾아봐야 겠어요. 아름다운 우리말이 담긴 <숲에서 살려낸 우리 말>도 읽어보면 참 좋구요. 최종규님 누리사랑방에 올리신 빛깔 이야기를 보시면 더 자세히 나와 있어요. 꼭 들러보세요.

(2015.05.11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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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5-05-24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만히 보면, 어른들부터 빛깔을 제대로 모르니
규격에 맞도록 세운 말을 그저
외워서 쓰기만 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