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 워 : 캡틴 아메리카 시공그래픽노블
에드 브루베이커 지음, 이규원 옮김, 마이크 퍼킨스 그림 / 시공사(만화)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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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자리에서 이달에 개봉하는 캡틴 아메리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빌 워>를 읽었다. 시리즈 작품이라 그런지 꼴랑 한 편만 봐가지고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슈퍼 히어로들이 패를 갈라서 죽도록 싸워 대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빌 워>에 대한 기사 몇 편과 트레일러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최대치인 것 같다. 물론 더 찾아보면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영화를 아직 못봐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위키피디아의 도움을 받아 검색해 보니 등록법은 닉 퓨리가 맨해튼에서 수행한 비밀전쟁과 헐크의 라스 베이거스 난동으로 26명이나 되는 민간인들이 희생되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초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들을 등록제로 운영해서 피해를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S.H.E.I.L.D. 팀이 주도하는 (슈퍼 히어로) 등록법에 대한 이견으로 각 진영을 대표하는 선수라고 할 수 있는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와 스티브 로저스(캡틴 아메리카)가 전편에서 빡세게 붙은 모양이다. 전자는 보수를 대표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어떤 형식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에 선 캡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유지를 이어 받은 진보주의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토니 스타크는 어마어마한 군산복합체의 사장이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히어로가 아니었던가? 내가 아이언맨 시리즈를 정주행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 대부터 대대로 잘 나가는 집안 출신의 호남자로 스캔들 제조기인 토니 스타크도, 슈퍼솔저로 2차세계대전에 참전해서 자유를 위해 싸운(전쟁의 명분은 차치해야 하나) 전쟁 영웅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슈퍼 히어로들이 출동하려면 어지간한 악당들로는 안되고, 최소한 초능력을 가진 악당이 반대편에 서 있어야 하는 법인데 이제 그런 악당 개발도 이젠 시들해진 모양이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최악의 악인 구소련이 사라지고 나서 한동안 할리우드에서는 내부의 적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제 슈퍼 히어로 서사는 내부의 갈등을 대화로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들이 가진, 그러니까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구하는데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치고 박는데 쓰게 될 운명에 처해있다. 초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자제하는 초인적인 능력도 발휘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적을 제압하는 것보다 어쩌면 그게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캡틴이 등록법에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의 친구인 버키 반스(윈터 솔저)를 돕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래픽노블에서는 아마 통제 받지 않는 슈퍼 히어로들의 힘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등록법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우리는 현실세계에서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충분히 체험하지 않았던가). 물론 정부에서는 갖가지 선전수단을 이용해서 등록법에 찬성하는 여론을 유도했겠지. 한편 캡틴의 숙적인 히드라를 조종하는 레드 스컬과 닥터 둠 일당의 모습도 그래픽노블에서 볼 수가 있었다. 영화에서는 정말 유치하게 봤는데, 그렇게 자신의 목숨조차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테러집단(이것 역시 현실세계의 IS집단과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의 광신적인 모습에 놀랄 수밖에.

 

영화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시빌 워>는 마블 코믹스에서 나온 13번째 영화로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3부작의 최종편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설국열차>로 깊은 인상을 국내팬들에게 심어 주었던 크리스 에번스는 <시빌 워>를 마지막으로 촬영 계약이 끝날 예정이라고 하는데 연장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한다. 그래픽노블에서는 레드 스컬/닥터 둠에게 세뇌 받아 캡틴 아메리카를 곤경이 빠뜨리게 만드는 중요인물로 에이전트 13/샤론 카터가 등장하는데 기존의 영화 시리즈에서 캡틴이 로맨스에 빠져 있었던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갑자기 생긴 애인이 주인공을 파멸로 몰아 넣는다는 설정이라.

 

마블에서 서자 취급을 받던 스파이더맨도 이번 <시빌 워>를 통해 다시 돌아온 모양인데, 트레일러를 보면 캡틴의 수호부적 같은 방패를 거미줄로 낚아채는 걸 보면 아마 토니 스타크 편에 선 모양이다. 영화가 기대된다. 이번엔 꼭 극장에 가서 볼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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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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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면 리뷰를 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게 아닐까? 갑자기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점심 먹고 나서 중고서점에 들렀다. 우선 살 책 세 권을 집고 들고 그래픽노블을 둘러 보러 갔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이 그래픽노블 말고 뭐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제 곧 개봉 예정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마스다 미리 작가의 <아무래도 싫은 사람>을 골랐다. 당첨, 오늘의 읽을 책이로구나.

 

<시빌 워>는 등록법에 관련된 중간편이라 아쉬울 따름이었고, 삼십대 여성들의 결혼 연애 직장 생활에 초점을 맞춘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은 쉬우면서도 책장이 팔랑팔랑 그렇게 넘어가는 묘미가 있었다. 서구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본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같은 동양에서는 여성이 나이가 되면 결혼해야 하고(물론 남성도 마찬가지다), 직장생활을 해서 돈벌고 기타 미래의 설계를 해야 한다는 삶의 공식 같은 게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가족의 압박이 있었다. 만화의 주인공 수짱 역시 예외는 아니다. 수짱은 어쩌면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고향 가고시마에서 멀리 떨어진 도쿄에 둥지를 틀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수짱은 36세고, 수짱의 사이드킥으로 등장한 친척동생 아카네는 이제 서른이 되었다고 한다. 수짱의 고민은 직장에서 아무래도 좋아할 수 없는, 아무래도 싫은 무카이 씨 그리고 아카네에게는 40세 직장동료 기무라 씨가 있다. 무카이 씨는 수짱이 점장으로 활약 중인 카페의 주인장의 조카딸로 소위 말하는 금수저 스타일이다. 허구한 날 점장인 수짱에게 와서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하는 것으로 소일거리를 삼는 모양이다. 다른 이들의 일에 그닥 관심이 없는 수짱은 피곤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하지 않을 수도 없고, 자꾸만 자신의 영역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무카이 씨가 얄밉기 짝이 없다. 급기야는 점장의 고유권한인 일정조정까지 넘보니 그 말은 결국 수짱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압박이었을까. 당연히 우리의 당돌한 수짱은 모종의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이번 편에서 수짱의 직장생활에 초점이 맞춰저 있고, 연애사는 뒤로 밀린 느낌이랄까.

 

그에 비해 아카네의 경우는 직장생활과 연애가 병행으로 돌아간다. 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의 압박은 녹록치 않다. 게다가 직장동료인 기무라 씨는 예전의 영화(?)만을 생각하며 후배 아카네를 부려 먹느라 여념이 없다. 손님을 접대하면 그 사람이 자리를 치우는 게 기본이 아닌가. 왜 자꾸만 아카네에게 시키고, 누구나 다 쉬고 싶어하는 징검다리 휴일에 연차를 내서 동료의 발을 묶는 걸까. 아주 피곤한 건 아니지만, 얄밉게 자기 이익만 챙기는 직장내 얌체 동료에 대한 일종의 고발이라고나 할까.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아마 그럴 수 없겠지.

 

아카네의 고민은 지금 만나는 남자 친구의 배려 없는 말버릇이다. 식당이나 레스토랑에 가서 종업원들을 부리는 듯한 짧은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카네. 이 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 게다가 동생이 먼저 시집가는 바람에 집안의 압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활동 중인 남자친구가 센다이로 발령이 났다면서, 프로포즈를 퉁친다. 진작부터 애정이 가지 않던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삶을 리셋하고 싶었던 아카네는 남자친구의 프로포즈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의 본질을 두고 고민을 거듭한다. 과연 아카네의 결정은 어떻게 날 것인가.

 

<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시시콜콜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거리를 공감할 수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꼭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결혼해야 하나 그런 고민, 직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와 잘 지내는 방법, 결혼하라고 성화를 부리는 부모님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방법에 고민들을 마스다 미리 작가는 콕콕 집어낸다. 공간을 우리나라도 바꿔도 무리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 마당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수짱의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또 한편으로는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이 다 마찬가지지 하며 그냥 익숙한 직장에 남아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마스다 미리 작가의 작품을 야금야금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음에 볼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은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이다. 마침 근처 도서관에 있다고 하니 당장 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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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07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쓰기 위해서 책을 읽습니다. 그래야 책 읽을 시간이 아깝게 흘러 보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책 한 권 읽고 나서 관련 글 한 편 쓰지 못하면 허전합니다. 다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요.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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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텔레비전에 아세안 국가 간의 국경 없는 경제교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한 편 봤다. 미얀마와 태국 국경을 하루에 세 번씩 넘나들며 아이들 교육을 시키는 미얀마 아줌마의 이야기와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돈 벌러 가는 미얀마 처녀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모두 경제적 재화를 얻기 위한 어떤 것이었다. 국경이 인간의 노동에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는데, 노동 위에 있는 자본에게 탈국경 이야기는 이미 철지난 이야기일 따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 모신 하미드는 세계에서 가장 핫한 시장인 아시아의 어느 나라를 배경으로 해서 성공하는 자기계발서를 위장한 멋진 소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을 창조해냈다. 2016년이 1/3 정도 지난 시점에서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마도 파키스탄 촌마을 출신으로 여겨는 2인칭 ‘당신’이다. 시골 마을에 사는 당신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손위 형과 누이가 한명씩 있다. 도시에서 돈을 벌어 오는 아버지는 어느날 도시로 가야 성공할 수 있을 거라며 이주를 결심한다. 여전히 농촌경제가 중심인 사회에서 물설고 낯선 도시로 이주는 기존의 익숙한 공동체생활에서의 분리를 의미하며, 약육강식의 정글로 내몰린 이주민들의 신산한 삶을 예고한다. 공간이동이 끝났다면 이제 다음 차례를 바로 신분상승을 위한 교육이다. 어느 사회고 교육이 미래의 성공을 담보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교육을 끝까지 마칠 수 있게 할 수 있는 가장의 경제적 능력이 중요하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든 가정에서 당신은 유일하게 대학교육을 받은 인재로 성장해간다. 물론 그 와중에 사랑도 빼놓을 순 없다.

 

고학시절 시작한 DVD배달을 하다가 만난 익명의 “예쁜 여자”와 평생을 갈 로맨스가 시작된다. 어느 시답잖은 이야기들처럼 주인공의 여자친구는 반드시 이뻐야 하고, 어느 정도 팜므파탈 같은 매력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유사 여자친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예쁜 여자는 적당한 돈이 모이면 지긋지긋한 고향을 떠날 궁리에 여념이 없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예쁜 여자는 자신의 처녀성도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산업화와 근대화가 진행되는 아시아 도처에서 벌어져온 일들과 어쩌면 이렇게 닮았단 말인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모신 하미드는 어쩌면 이렇게 동시대에서 발생한 근대화의 부작용들을 꿰고 있는지 놀랄 따름이다. 아니 어쩌면 비슷한 과정을 겪은 아시아의 일반적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우여곡절 끝에 생수 사업에 투신하게 된다. 당신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악마와도 결탁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란 절대적으로 다수의 금전확보를 의미한다. 초반에는 미약했던 생수 사업이 폭력사용을 마다하지 않는 당신의 깡다구와 신흥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업권 획득을 위한 관료에 대한 뇌물수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당신의 사업은 번창을 거듭한다. 경쟁업체가 보낸 킬러에 의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절대 과거의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당신의 움직이지 않는 결심은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 텔레비전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인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사고와 몹시 유사해서 놀랄 지경이다.

 

당신의 경제적 성공에 더불어 로맨스도 진전을 보이기 시작한다. 모델 계에 투신한 예쁜 여자 역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한 장(chapter)이 넘어갈 때마다 당신과 예쁜 여자의 관계는 널뛰기를 하면서도 꾸준한 영속성을 보여준다.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지독한 현실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이상주의자다. 예쁜 여자를 아내로 취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자 당신은 더 젊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내와 결혼해서 2세를 생산해낸다. 당신의 언뜻 행복해 보이는 결혼생활은 경제활동의 재생산(reproduction)과 닮아 있다. 계속해서 자본은 자본을 불려야 하고, 현상유지를 넘어 부채를 의미하는 레버리지라는 고상한 용어로 사업확장을 도모한다. 인생사가 언제나 그렇듯 항상 서사는 좋은 쪽으로만 굴러가지는 않는다. 사업의 정점에서 신뢰했던 전처의 처남에게 당신을 뒤통수를 맞게 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좀 신파에 가깝다. 어쩌면 치열하게 살아 보니 모든 게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도가사상의 그것에 도달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200쪽 조금 넘는 경장편 정도의 가벼운 분량과 자기계발서라는 형식으로 무장한 모신 하미드의 서사는 현실과 너무 유사하다는 점에서 독자의 가독성을 자극한다. 짧게 치고 시간을 뛰어 넘어가는 구조가 가진 힘은 대단하다. 지루하게 서사를 늘어뜨리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이 압도적이다. 예전에 읽은 성석제 작가의 <투명인간>이 한국경제 압축성장 보고서였다면, 모신 하미드의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은 동시대 아시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경제성공신화에 대한 문학적 저격으로 다가온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다루는 방식이 글로벌하다는 점에서 광역의 함의를 지니고 있다. 특정인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와 주인공 당신을 동일시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독자에게 적극 호소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시아 경제에 대한 그리고 아시아에서 성공하기 위한 충분한 자기계발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모신 하미드의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을 읽은 보람이 느껴질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냉소적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자기계발을 하는 방법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다 성공을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근본주의자와 성공을 쫓는 부나비 같은 인생이야기, 과연 다음에는 모신 하미드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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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 - 내 이름은 르네 타르디 슈탈라크ⅡB 수용소의 전쟁 포로였다
자크 타르디 지음, 박홍진 옮김 / 길찾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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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해문집에서 출간된 <그래픽노블 파리 코뮌>의 작가 자크 타르디의 전작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도서관에서 <포로수용소>를 빌려다 읽었다. 프랑스의 국민작가라 불린다고 하는데 국가 최고 영예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거부한 일화도 유명하다고 한다. 아나키스트로서 어떻게 국가가 주는 훈장을 받을 수 있겠냐고 했던가. 예술가의 대단한 의이가 아닐 수 없다.

 

1871년의 대서사시 <파리 코뮌>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당장 구할 수 없으니 일단 <포로수용소>로 만족할 수밖에. 지금은 작고하신 작가의 아버지 르네 타르디의 2차세계대전 참전기와 나치 독일의 전격전으로 프랑스가 항복하고 난 뒤 전쟁포로로 4년 8개월이나 독일 동부의 포메라니아에서 포로생활을 기록한 육성수기다. 타르디 작가는 만화에 나온 모든 내용이 사실에 바탕을 둔 실화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단 한 가지, 자신의 아버지 르네와 장인이 임시수용소에서 잠깐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는 빼고 말이다.

 

타르디의 할아버지도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라고 하는데,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또다른 전쟁으로 참전용사의 아들도 전차병 부사관으로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전자가 승전의 영예를 드높였다면, 후자는 패전의 불명예를 지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떳떳하지 못했노라고 증언하고 있다. 아버지와 자식 세대의 불화는 물론이고, 전선에 뛰어든 병사들의 사기는 높았지만 소위 앉은뱅이 전쟁이라 불린 시기 동안 프랑스 전쟁지도자들의 무능력 때문에 결국 전쟁에 지고 말았다고 르네 타르디는 그래픽노블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과연 사실이었을지 궁금하다. 전쟁의 최고 책임은 역시 지도자들이 지는게 맞지만, 전선에 투입된 병사들 역시 일부를 제외하고는 폴란드에서 블리츠크리크(전격전)로 사기충천하고 현대식 무기와 많은 훈련을 통해 단련된 나치 독일군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이 아니었을까.

 

굳이 탱크가 아닌 전차라 불러 달라고 주문하는 르네 타르디의 전투는 1940년 봄에 어처구니없이 끝나 버렸다. 그리고 그는 동부 포메라니아의 슈탈라크 수용소에서 전쟁의 나머지 기간을 보내게 됐다. 적에게 패배했다는 열패감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효율과 규율을 강조하는 독일군의 점호와 전쟁포로들은 충분히 굶겨야 하고(가장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르네는 증언하고 있다), 전쟁으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독일 제국에 강제노역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 작가답게 비참한 현실 가운데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있는데 특히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공중변소 장면은 압권이었다. 뒤로 팔을 걸고 볼일을 치르는 포로들의 일상이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그래픽노블은 시종일관 사실에 좀 더 객관적으로 접근해 보려는 작가 자크 타르디의 페르소나인 반바지 입은 소년과 자신의 전쟁 트라우마를 최대한 드러내면서 한편으로는 아들 세대에게 사실을 전해 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 르네의 첨예한 갈등이 전면에 그려 넣고 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가치료하기 위해 르네는 엄혹한 시절에도 불구하고, 독일 전쟁에 기여하지 않기 위해 노동력 제공을 거부했고 귀찮은 점호를 일상놀이처럼 만들었으며 회계업무 처리를 위해 동원되었지만 숫자에 장난을 쳐서 협력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 한편으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꼴라보’들도 있었노라고 증언한다. 독일제국이 천년 동안 지속되라는 전망이 보일 적에는 자청해서 꼴라보레이션을 하다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미국의 참전으로 독일 천년제국의 꿈이 날아가 버리자 어느새 레지스탕스로 변신한 이들도 있었단다.

 

하지만 역시 결혼한 지 얼마 안되는 사랑하는 아내와 떨어져 기약 없는 포로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가장 힘들지 않았을까. 감옥에 갇힌 죄수도 자신의 형량을 알고 기다릴 수 있는데, 전쟁포로들은 전쟁이 끝나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군대가 무적처럼 유럽대륙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고향으로 돌아겠다는 그들의 바람은 헛될 꿈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독일군의 포로에 대한 형편없는 처우 역시 절망을 가속화시키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똑같은 포로라고 하더라도, 미군의 대우는 달랐다고 하는데 전쟁 초기 어이없는 패전으로 프랑스군에 잡힌 거의 없던 독일군은 프랑스군을 미군처럼 대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르네 타르디의 생각인 모양이다. 일견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또다른 형태의 강제수용소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전쟁포로인 르네는 알고 있었을까? 그들에게 아주 간혹 가다 허용되는 샤워실이 누군가에는 죽음의 순간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 때문에 애꿎은 병사들이 배고픔과 추위, 가혹행위에 시달려야 했다는 사실에 난 분노했다. 그리고 자크 타르디가 이 그래픽노블을 통해 명백하게 그리고 있는 반전 메시지에도 적극 찬성한다. 같은 포로로서 자신들보다 낮은 대우를 받는 사람 좋은 폴란드 혹은 러시아군 포로에 대한 연민과 동정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타르디 작가는 아버지 르네의 입을 빌어, 지속적으로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비난에 지면을 할애한다. 결국 최종적으로 누구도 원하지 않는 전쟁을 피해야 하는 결정은 그들이 내릴 테니까 말이다. 여전히 전쟁이 진행 중인 분단국가에 사는 사람으로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들리지 않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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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 2 - 조선 패밀리의 활극 조선왕조실톡 2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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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밥상머리카페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그전부터 눈여겨 보던 무적핑크라는 작가의 <조선왕조실톡> 두 번째 권을 빌려 왔다. 부제가 조선 패밀리의 활극이라고 한다. 요즘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카카오톡 메신저를 대화의 매개체로 사용한 아주 획기적인 발상의 만화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메신저라는 매개체를 사용해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스타일의 사극에 대한 진입장벽을 신랄하게 뽀개 주었다. KBS에서 하는 역사저널 그날인가하는 프로그램도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신하는데 아주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적핑크 작가는 한술 더 뜬다고나 할까.

 

조선 패밀리의 활극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서는 패밀리들이 칼싸움을 불러 일으켰던 개국시절의 정권쟁탈전부터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명분도 없는 쿠데타를 일으켜 멀쩡한 왕위계승권자인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계유정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종을 이은 연산군 시절까지를 다루었다. 2권에서는 연산군의 폭정을 뒤엎고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중종 시대부터 스타트한다.

 

성종의 둘째 아들이었던 진성대군은 공신들의 추대로 그야말로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다. 물론 그는 실권이 없는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1506년 박원종과 성희안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정으로 중종은 공신들의 전횡에 휘둘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 군왕으로서의 짬밥을 먹게 되자, 자연스레 왕권을 휘두르고 싶어졌을 것이다. 무적핑크 작가가 그림을 맡았다면, 실록돋보기 코너에서는 이한이라는 분이 해설을 맡았다. 조금은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후발주자인 이한 씨가 맡아서 부족한 정사 부분을 깨알 같은 글씨로 채워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공신들의 압력으로 아내마저 내친 중종은 훗날 사림의 영수로 추앙받게 되는 조광조를 등용하기에 이른다. 성균관 대표선수이자 성리학 이념으로 똘똘 뭉친 조광조와 중종은 왕도정치를 주창하며, 다방면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훈신들을 제압하기로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조광조 선수는 곧은 정신과 올바른 몸가짐으로 개혁의 기수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능구렁이 같은 훈신들을 제압하기에는 정치가로서 융통성이 역부족이었다고나 할까. 자신의 권력은 어디까지나 군왕이었던 중종이 받쳐줄 때에만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조광조 개혁의 실패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게다가 수구세력이자 기득권층이었던 훈신들의 위훈삭제 이슈는 그야말로 파국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군왕의 지지와 애정을 잃은 조광조의 개혁이 기묘사화라는 방식으로 와해되면서 조선왕조 패밀리는 자연스레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이 수개월 만에 승하하고 나이 어린 명종이 등극하면서 조선 패밀리의 국운 쇠락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어 버렸다. 명종의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며 실제적 권력을 행사했던 문정왕후 윤씨 일파의 폭정은 의외로 실록카톡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 같다. 이 시절에 아마 임꺽정이 등장해서 일세를 풍미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화나 정쟁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다루면서도 외척으로 절정의 권력을 행사했던 소윤 윤원형 일파의 폐해에 대해 다루지 않았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나는.

 

왕조가 흥성을 이루는 전기를 지나고 나면, 안정기를 거쳐 반드시 위기가 닥치기 마련이다. 조선 패밀리의 절대위기는 바로 선조 시대에 도래하게 된다. 조선시대 정치를 규정하는 사색당파라는 부분을 붕당붕당 돌을 던지자라는 식으로 유쾌하게 그려내긴 했지만, 사실 정권 다툼에서 지는 쪽은 어쩌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중국 송나라 시절처럼 사대부들의 언로를 틔우기 위해 형벌이나 유배는 보내도 죽이지는 않는다는 원칙은 조선 패밀리 시절에는 씨도 먹히지 않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요즘에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천이라는 무기를 들고 칼춤이 난무하지만, 조선 패밀리 시대에도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사화라는 방식이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 모양이다.

 

방계 계열로는 처음으로 국왕의 자리에 오른 선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서인을 적극 기용하기에 이른다. 그 중에서 선조의 호위대로 앞장서서 기축옥사를 일으켜 동인들을 숙청한 주인공이 바로 우리에게는 속미인곡 사미인곡 같은 가사문학으로 널리 알려진 송강 정철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전란을 앞두고, 정철은 마구잡이로 칼날을 휘둘러 미증유의 위기를 앞두고 유용한 인재들을 소진시키는데 앞장섰다. 그나마 류성룡 같은 이가 살아남아 다행이었지, 정철의 무자비한 숙청은 마치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을 앞두고 소련의 스탈린이 자국의 유능한 장군들을 솎아내 독소전 초반의 괴멸적인 패배를 부른 장면이 연상시켰다.

 

일본의 전국을 통일하고 조선은 물론이고 명나라까지 정복하겠다는 허황된 꿈에 젖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7년 대전란으로 조선 패밀리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물론 이미 그전에 전쟁의 위협을 눈치챈 조선 패밀리는 서인 황윤길과 동인 김성일을 통신사로 파견했지만, 서로 상반된 의견을 내놓는데 그치고 전쟁 방비는 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그렇게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1592년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수도 한양까지 단박에 진격하기에 이르렀다. 패밀리 최고의 찌질한 임금 선조는 백성들의 운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도를 내버리고 도주하기에 이른다. 정확하게 358년 뒤에 어느 지도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성난 백성들은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간 임금이 거처하던 궁궐을 불살라 버리는 것으로 화풀이를 했다고 전한다.

 

선조는 창피하게 몽진한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명나라로 망명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전란 수습을 급하게 세자로 봉한 광해군에게 일임해 버린다. 분조를 이끌고 7년 대전란을 수습하는데 전력한 광해군은 아버지의 질투를 받아 보위에 오르기까지 지난한 권력투쟁의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 군왕이 그렇게 도망가 버렸지만, 백성들은 조선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의병을 조직해 왜군에 대한 게릴라전을 시작한다. 육지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자면, 바다에서는 성웅으로 존경받는 이순신 장군이 해로를 장악하고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극적인 공세로 나서면서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된다. 초반의 성공으로 단기전으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장기전으로 바뀌고, 명나라의 만력제마저 무슨 생각으로 참전을 결정하면서 임진왜란은 16세기 최대의 국제전으로 비화되기에 이른다.

 

무적핑크와 해설을 맡은 이한 씨는 과연 선조의 주장대로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전란을 극복한 것이 흔히 재조지은이라 불리게 되는 명나라 파견군의 도움 덕분이냐 아니면 홍의장군 곽재우를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기의한 근왕군 그리고 해군총사령관이었던 이순신 장군 등의 활약 때문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에 불을 당긴다. 어쩌면 단순하게 딱 한가지 이유를 꼽는 것 자체가 넌센스가 아닐까. 그런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서 국난을 극복하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왕권유지에만 급급했던 선조 역시 밀덕 류성룡을 기용하고 육전에서는 권율을 그리고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순신을 기용한 결정은 나름대로 평가를 해주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조선왕조실톡>을 읽으면서 중요하게 느낀 것 중의 하나는 1차 사료에서 어떤 사실을 취사선택해서 다루느냐에 따라 역사적 관점도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독자를 상대로 모든 부분들을 다룰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선택과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그리고 너무 거시적인 차원에서 정치사에 치중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역순으로 패밀리 탄생의 시대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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