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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어제 텔레비전에 아세안 국가 간의 국경 없는 경제교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한 편 봤다. 미얀마와 태국 국경을 하루에 세 번씩 넘나들며 아이들 교육을 시키는 미얀마 아줌마의 이야기와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돈 벌러 가는 미얀마 처녀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모두 경제적 재화를 얻기 위한 어떤 것이었다. 국경이 인간의 노동에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는데, 노동 위에 있는 자본에게 탈국경 이야기는 이미 철지난 이야기일 따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 모신 하미드는 세계에서 가장 핫한 시장인 아시아의 어느 나라를 배경으로 해서 성공하는 자기계발서를 위장한 멋진 소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을 창조해냈다. 2016년이 1/3 정도 지난 시점에서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마도 파키스탄 촌마을 출신으로 여겨는 2인칭 ‘당신’이다. 시골 마을에 사는 당신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손위 형과 누이가 한명씩 있다. 도시에서 돈을 벌어 오는 아버지는 어느날 도시로 가야 성공할 수 있을 거라며 이주를 결심한다. 여전히 농촌경제가 중심인 사회에서 물설고 낯선 도시로 이주는 기존의 익숙한 공동체생활에서의 분리를 의미하며, 약육강식의 정글로 내몰린 이주민들의 신산한 삶을 예고한다. 공간이동이 끝났다면 이제 다음 차례를 바로 신분상승을 위한 교육이다. 어느 사회고 교육이 미래의 성공을 담보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교육을 끝까지 마칠 수 있게 할 수 있는 가장의 경제적 능력이 중요하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든 가정에서 당신은 유일하게 대학교육을 받은 인재로 성장해간다. 물론 그 와중에 사랑도 빼놓을 순 없다.
고학시절 시작한 DVD배달을 하다가 만난 익명의 “예쁜 여자”와 평생을 갈 로맨스가 시작된다. 어느 시답잖은 이야기들처럼 주인공의 여자친구는 반드시 이뻐야 하고, 어느 정도 팜므파탈 같은 매력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당신의 유사 여자친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예쁜 여자는 적당한 돈이 모이면 지긋지긋한 고향을 떠날 궁리에 여념이 없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예쁜 여자는 자신의 처녀성도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산업화와 근대화가 진행되는 아시아 도처에서 벌어져온 일들과 어쩌면 이렇게 닮았단 말인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모신 하미드는 어쩌면 이렇게 동시대에서 발생한 근대화의 부작용들을 꿰고 있는지 놀랄 따름이다. 아니 어쩌면 비슷한 과정을 겪은 아시아의 일반적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우여곡절 끝에 생수 사업에 투신하게 된다. 당신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악마와도 결탁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란 절대적으로 다수의 금전확보를 의미한다. 초반에는 미약했던 생수 사업이 폭력사용을 마다하지 않는 당신의 깡다구와 신흥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업권 획득을 위한 관료에 대한 뇌물수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당신의 사업은 번창을 거듭한다. 경쟁업체가 보낸 킬러에 의해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절대 과거의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당신의 움직이지 않는 결심은 동아시아의 어느 나라 텔레비전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인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사고와 몹시 유사해서 놀랄 지경이다.
당신의 경제적 성공에 더불어 로맨스도 진전을 보이기 시작한다. 모델 계에 투신한 예쁜 여자 역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한 장(chapter)이 넘어갈 때마다 당신과 예쁜 여자의 관계는 널뛰기를 하면서도 꾸준한 영속성을 보여준다.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지독한 현실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이상주의자다. 예쁜 여자를 아내로 취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자 당신은 더 젊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내와 결혼해서 2세를 생산해낸다. 당신의 언뜻 행복해 보이는 결혼생활은 경제활동의 재생산(reproduction)과 닮아 있다. 계속해서 자본은 자본을 불려야 하고, 현상유지를 넘어 부채를 의미하는 레버리지라는 고상한 용어로 사업확장을 도모한다. 인생사가 언제나 그렇듯 항상 서사는 좋은 쪽으로만 굴러가지는 않는다. 사업의 정점에서 신뢰했던 전처의 처남에게 당신을 뒤통수를 맞게 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좀 신파에 가깝다. 어쩌면 치열하게 살아 보니 모든 게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도가사상의 그것에 도달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200쪽 조금 넘는 경장편 정도의 가벼운 분량과 자기계발서라는 형식으로 무장한 모신 하미드의 서사는 현실과 너무 유사하다는 점에서 독자의 가독성을 자극한다. 짧게 치고 시간을 뛰어 넘어가는 구조가 가진 힘은 대단하다. 지루하게 서사를 늘어뜨리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이 압도적이다. 예전에 읽은 성석제 작가의 <투명인간>이 한국경제 압축성장 보고서였다면, 모신 하미드의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은 동시대 아시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경제성공신화에 대한 문학적 저격으로 다가온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다루는 방식이 글로벌하다는 점에서 광역의 함의를 지니고 있다. 특정인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와 주인공 당신을 동일시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독자에게 적극 호소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시아 경제에 대한 그리고 아시아에서 성공하기 위한 충분한 자기계발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모신 하미드의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을 읽은 보람이 느껴질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냉소적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자기계발을 하는 방법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다 성공을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근본주의자와 성공을 쫓는 부나비 같은 인생이야기, 과연 다음에는 모신 하미드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