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톡 2 - 조선 패밀리의 활극 조선왕조실톡 2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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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밥상머리카페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그전부터 눈여겨 보던 무적핑크라는 작가의 <조선왕조실톡> 두 번째 권을 빌려 왔다. 부제가 조선 패밀리의 활극이라고 한다. 요즘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카카오톡 메신저를 대화의 매개체로 사용한 아주 획기적인 발상의 만화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메신저라는 매개체를 사용해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스타일의 사극에 대한 진입장벽을 신랄하게 뽀개 주었다. KBS에서 하는 역사저널 그날인가하는 프로그램도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신하는데 아주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적핑크 작가는 한술 더 뜬다고나 할까.

 

조선 패밀리의 활극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서는 패밀리들이 칼싸움을 불러 일으켰던 개국시절의 정권쟁탈전부터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명분도 없는 쿠데타를 일으켜 멀쩡한 왕위계승권자인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계유정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종을 이은 연산군 시절까지를 다루었다. 2권에서는 연산군의 폭정을 뒤엎고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중종 시대부터 스타트한다.

 

성종의 둘째 아들이었던 진성대군은 공신들의 추대로 그야말로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다. 물론 그는 실권이 없는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1506년 박원종과 성희안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정으로 중종은 공신들의 전횡에 휘둘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 군왕으로서의 짬밥을 먹게 되자, 자연스레 왕권을 휘두르고 싶어졌을 것이다. 무적핑크 작가가 그림을 맡았다면, 실록돋보기 코너에서는 이한이라는 분이 해설을 맡았다. 조금은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후발주자인 이한 씨가 맡아서 부족한 정사 부분을 깨알 같은 글씨로 채워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공신들의 압력으로 아내마저 내친 중종은 훗날 사림의 영수로 추앙받게 되는 조광조를 등용하기에 이른다. 성균관 대표선수이자 성리학 이념으로 똘똘 뭉친 조광조와 중종은 왕도정치를 주창하며, 다방면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훈신들을 제압하기로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조광조 선수는 곧은 정신과 올바른 몸가짐으로 개혁의 기수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능구렁이 같은 훈신들을 제압하기에는 정치가로서 융통성이 역부족이었다고나 할까. 자신의 권력은 어디까지나 군왕이었던 중종이 받쳐줄 때에만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조광조 개혁의 실패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게다가 수구세력이자 기득권층이었던 훈신들의 위훈삭제 이슈는 그야말로 파국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군왕의 지지와 애정을 잃은 조광조의 개혁이 기묘사화라는 방식으로 와해되면서 조선왕조 패밀리는 자연스레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이 수개월 만에 승하하고 나이 어린 명종이 등극하면서 조선 패밀리의 국운 쇠락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어 버렸다. 명종의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며 실제적 권력을 행사했던 문정왕후 윤씨 일파의 폭정은 의외로 실록카톡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 같다. 이 시절에 아마 임꺽정이 등장해서 일세를 풍미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화나 정쟁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다루면서도 외척으로 절정의 권력을 행사했던 소윤 윤원형 일파의 폐해에 대해 다루지 않았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나는.

 

왕조가 흥성을 이루는 전기를 지나고 나면, 안정기를 거쳐 반드시 위기가 닥치기 마련이다. 조선 패밀리의 절대위기는 바로 선조 시대에 도래하게 된다. 조선시대 정치를 규정하는 사색당파라는 부분을 붕당붕당 돌을 던지자라는 식으로 유쾌하게 그려내긴 했지만, 사실 정권 다툼에서 지는 쪽은 어쩌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중국 송나라 시절처럼 사대부들의 언로를 틔우기 위해 형벌이나 유배는 보내도 죽이지는 않는다는 원칙은 조선 패밀리 시절에는 씨도 먹히지 않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요즘에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천이라는 무기를 들고 칼춤이 난무하지만, 조선 패밀리 시대에도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사화라는 방식이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 모양이다.

 

방계 계열로는 처음으로 국왕의 자리에 오른 선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서인을 적극 기용하기에 이른다. 그 중에서 선조의 호위대로 앞장서서 기축옥사를 일으켜 동인들을 숙청한 주인공이 바로 우리에게는 속미인곡 사미인곡 같은 가사문학으로 널리 알려진 송강 정철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전란을 앞두고, 정철은 마구잡이로 칼날을 휘둘러 미증유의 위기를 앞두고 유용한 인재들을 소진시키는데 앞장섰다. 그나마 류성룡 같은 이가 살아남아 다행이었지, 정철의 무자비한 숙청은 마치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을 앞두고 소련의 스탈린이 자국의 유능한 장군들을 솎아내 독소전 초반의 괴멸적인 패배를 부른 장면이 연상시켰다.

 

일본의 전국을 통일하고 조선은 물론이고 명나라까지 정복하겠다는 허황된 꿈에 젖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7년 대전란으로 조선 패밀리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물론 이미 그전에 전쟁의 위협을 눈치챈 조선 패밀리는 서인 황윤길과 동인 김성일을 통신사로 파견했지만, 서로 상반된 의견을 내놓는데 그치고 전쟁 방비는 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그렇게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1592년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수도 한양까지 단박에 진격하기에 이르렀다. 패밀리 최고의 찌질한 임금 선조는 백성들의 운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도를 내버리고 도주하기에 이른다. 정확하게 358년 뒤에 어느 지도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성난 백성들은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간 임금이 거처하던 궁궐을 불살라 버리는 것으로 화풀이를 했다고 전한다.

 

선조는 창피하게 몽진한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명나라로 망명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전란 수습을 급하게 세자로 봉한 광해군에게 일임해 버린다. 분조를 이끌고 7년 대전란을 수습하는데 전력한 광해군은 아버지의 질투를 받아 보위에 오르기까지 지난한 권력투쟁의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 군왕이 그렇게 도망가 버렸지만, 백성들은 조선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의병을 조직해 왜군에 대한 게릴라전을 시작한다. 육지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자면, 바다에서는 성웅으로 존경받는 이순신 장군이 해로를 장악하고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극적인 공세로 나서면서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된다. 초반의 성공으로 단기전으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장기전으로 바뀌고, 명나라의 만력제마저 무슨 생각으로 참전을 결정하면서 임진왜란은 16세기 최대의 국제전으로 비화되기에 이른다.

 

무적핑크와 해설을 맡은 이한 씨는 과연 선조의 주장대로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전란을 극복한 것이 흔히 재조지은이라 불리게 되는 명나라 파견군의 도움 덕분이냐 아니면 홍의장군 곽재우를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기의한 근왕군 그리고 해군총사령관이었던 이순신 장군 등의 활약 때문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에 불을 당긴다. 어쩌면 단순하게 딱 한가지 이유를 꼽는 것 자체가 넌센스가 아닐까. 그런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서 국난을 극복하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왕권유지에만 급급했던 선조 역시 밀덕 류성룡을 기용하고 육전에서는 권율을 그리고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순신을 기용한 결정은 나름대로 평가를 해주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조선왕조실톡>을 읽으면서 중요하게 느낀 것 중의 하나는 1차 사료에서 어떤 사실을 취사선택해서 다루느냐에 따라 역사적 관점도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독자를 상대로 모든 부분들을 다룰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선택과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그리고 너무 거시적인 차원에서 정치사에 치중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역순으로 패밀리 탄생의 시대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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