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알파벳
시배스천 폭스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특별한 시기에 만나게 되는 책이 현재의 삶을 관통하기 마련이다. 나에게 지난주에 사서 읽게 된 시배스천 폭스의 책 <바보의 알파벳>이 그런 책이다. 가히 인생의 책이라 부를 만하지 싶다. 올해 <리옹 도르의 여인>으로 시배스천 폭스를 알게 되었는데 최애하는 작가로 삼아야지 싶다. <새의 노래>와 <초록 돌고래의 거리>도 속히 구해서 읽어야겠다. 다만 문제는 두 책 모두 절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원서로 폭스의 최신간 <파리 에코>도 주문해야겠다.

 

어찌해서 <바보의 알파벳>을 나의 인생책이라 부를 만한지 썰을 풀어 보도록 하자. 프랑스, 전쟁, 로맨스 그리고 멜로드라마라는 주제에 있어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저널리스트 출신 시배스천 폭스가 1992년에 세 번째로 발표한 소설에는 삶을 망라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생의 과정, 만남, 이별, 죽음, 사랑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주제들이 넘실거린다. 우리의 주인공 피에트로 토마스 러셀은 우선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의 아버지 레이먼드 러셀은 2차 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닫던 1944년 이탈리아 안치오 해변에 상륙해서 독일군의 치열한 방어전 와중에 부상을 당하고 후방으로 이송된다. 이렇게 폭스의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전쟁 시퀀스로 소설은 시작된다. 시작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시작이 이 정도로 강렬해야지.

 

그렇게 후방에서 만난 19세 이탈리아 소녀 프란체스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요건 좀 클리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쟁 신부가 되어 러셀을 따라 영국으로 이주한 프란체스카는 아들 피에트로를 낳고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문제는 그녀가 암에 걸려 그 행복한 시절이 오래 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말할 점은 소설 <바보의 알파벳>은 모두 알파벳 자수대로 2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과 장소를 오가며 마치 한 편의 퍼즐 게임을 맞추는 듯한 전개가 이어진다. 지금 당장 내가 전혀 모르는 사건이 등장한다고 해서 긴장할 필요는 없다. 작가가 치밀하게 구성한 내러티브가 이어지니 말이다.

 

아버지의 곁을 떠나 엄격한 훈육이 시행되는 기숙학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평생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소녀 로라를 만나고, 평생지기 해리 프리먼을 만나기도 한다. 어여쁘고 재능도 출중한 로라와 사랑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였을까? 시간의 더께를 가지고 성장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벨기에 출신 부르주아 계급의 아가씨 한나와 결혼한 점도 삶의 아이러니를 반영하는 것일 게다.

 

피에트로는 자신의 정체성만큼이나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 러셀이 집착적으로 몰두하는 어원학에서 유래했을 지도 모를 A에서부터 시작해서 Z까지 이어지는 어떤 공간들이 순차적으로 배열되는 목차를 보고 나도 소설에 등장하는 도시들 가운데 몇 군데나 가보았는지 꼽아봤다. 로마, 파리, 뉴욕, 주룽 그리고 잠깐 거쳐 갔던 소렌토까지 하면 5곳이었다. 엑셀로 나도 한 번 소설의 궤적을 기록해보려고 했지만 어차피 다 완성하지 못할 바에야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그만둬 버렸다. 난 참 포기도 빠른 인간이다. 여하튼 간에 폭스가 그리는 기억의 연대기는 정말 흥미진진하고 내 삶을 대입해 봐도 유사한 궤적들을 찾을 수가 있어서 더욱 더 애착이 가지 않았나 싶다. 바로 이런 책이야말로 인생책이라 부를 만한 게 아닌가.

 

한국사람 가운데 과연 여행을 떠나면서 책을 챙겨 가는 이들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서구 작가들의 책을 읽다 보면 어디서고 책이 등장한다. 산책하지 않는 시간에는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게 너무나 당연한 풍경 중의 하나다. 영국에 가서 찰스 디킨즈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아마 구입해서 다시 읽었지 싶다. 아니 여기서 또 포인트는 새로 읽은 것이 아니라 다시 읽었다는 점일 것이다. 나같은 책쟁이들이 절대 놓칠 수 없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도무지 평생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Q로 시작하는 과테말라의 케찰테낭고에는 왜 갔을까? 로라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해변에서 이별하고 그대로 차를 달려 멕시코 국경을 넘어 케찰테낭고에까지 간 것이다. 그곳에서 이탈리아계 영국인 피에트로는 현지 주민들에게 한낱 부유한 그링고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어느 궁금증에 대한 호기심을 살살 달래 주는 작가의 실력 역시 감탄할 만하다.

 

누구처럼 강박적인 독서가 아니라 때가 되어 읽고 싶다는 주인공 피에트로의 변명 아닌 변명도 마음에 든다. 교과서에 나오기 때문에 혹은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독서의 진정한 쾌락을 깨달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지경에 도달했단 말인가. 내가 아마 이 책을 이십대에 읽었더라면 절대 인생책으로 치부할 수 없었으리라. 죽음이나 육아 혹은 친구를 배신하고 물질을 추구해야 하는 갈림길 같은 삶의 어느 지점에서만 고유하게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만 작가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게 됐다. 프랑스 휴가 중에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족과 만났지만, 첫째 딸 메리가 없어져서 애타게 찾는 와중에 자신이 상상한 끔찍한 결말이 차라리 빨리 왔으면 하고 생각하는 고뇌를 애를 길러 보지 않은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공감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미국 에번스턴에서 만나 사진작가 피에트로에게 옵션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며 친구를 배신하라고 종용하는 어느새 상사가 된 폴 콜먼의 유혹은 또 어떤가. 아무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평생기지를 배신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자신을 유혹하는 맘몬을 밀쳐내고, 사표 받을 준비를 하라는 피에트로의 결기에 통쾌한 느낌이 절로 솟아났다. 해리 가족과 여행에서 마사의 질문에 피에트로가 머뭇거린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구나. 참으로 멋진 내러티브의 전개다.

 

분쟁의 코어 예루살렘을 방문한 피에트로와 해리가 현지 유대인들과 벌이는 정치적 대화도 작가의 저널리스트다운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현지 유대인의 의식을 대표하는 몇몇 이들이 원래 그곳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공존을 인정하지만, 그들은 요르단이나 시리아 같은 나라의 국적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 유대인들이 그곳을 그렇게 비옥한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기상천외한 주장을 펼친다. 천년 넘게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들이 그 옛날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받은 자신들의 땅이라며 영주권을 주장하는 게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까. 다시 한 번 그곳에서는 어떤 해결책도 쌍방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롬보에서 싱할라족과 타밀족이 겪는 갈등에 대해서는 예전에 송도에서 만난 국제기구에서 일한다는 스리랑카 아저씨와의 대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타밀 일람 호랑이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 아저씨는 무척이나 놀랐었지 아마.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는 데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피에트로의 할아버지 만한 끈이 없었으리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세계대전에 참전한 러셀 가문이라. 유럽의 18세에서 30세에 이르는 청년들의 30%가 전장에서 전몰되었다는 끔찍한 사실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한 세대의 1/3이 세계대전에서 아무런 의미 없는 보몽이나 티에프발 같은 참호전에서 사라져 갔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왜 우리 세대에 반전이 필요한 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고 시배스천 폭스가 삶이나 죽음 혹은 예루살렘의 정치적 문제 혹은 세계대전 같은 거창한 주제들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와 함께 한 이탈리아 소렌토 여행길에 식사를 하던 리스토란테에서 “엄청난 양의 밥이 실망스럽게도 일정한 색”을 띠고 있었다느니 “치즈가 거미줄처럼 숟가락에 달라붙어” 있었다는 디테일은 또 어떤가. 콜먼 휘하에서 일하는 각종 풍문과 스캔들이 난무하는 진원지에 대한 이야기나 매점에 팔리는 샌드위치의 푸르스름한 빛이 나는 “다진 정어리와 참치 마요네즈”나 재가공된 햄으로 보이는 푸석푸석한 살코기들을 나사못처럼 보이는 것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묘사는 정말 대단했다.

 

소설은 A 이탈리아의 안치오에서 시작해서 Z 이탈리아의 차니카에서 끝난다. 그것은 피에트로 인생의 기원이 되는 알파와 오메가였던 것이다. 처음에서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끝내는 종결은 작가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보다 더 멋진 결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이제 소설 속의 피에트로보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삶에 대한 욕심이 더 많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어디선가 만난 질문이 계속해서 뇌리를 때린다. 당신은 인생을 즐기고 있는가라는. 좀 더 많은 시배스천 폭스의 책을 읽어야겠다. 결론은 슈퍼그뤠잇!!!


[뱀다리] 너무 급하게 리뷰를 적다 보니 사진작가 피에트로의 사진 이야기를 빼먹었구나. 그의 행적을 쫓다 보니 예전 흑백필름 현상과 인화를 배우던 시절 생각이 문득 났다. 그전에도 무지 사진을 찍었었지만, 언제고 기회가 되면 현상/인화를 배우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시킬 수가 있었다. 첫 번째 유럽여행에 가서 찍은 흑백사진들을 현상액을 잘못 부어 망친 일들, 암실 대신 암실옷(?)을 입고 캐니스터에 필름을 감다가 그만 빛을 쬐어 날린 경험들이 <바보의 알파벳>을 읽는 동안 오롯이 피어올랐다. , 치열했던 나의 어느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해준 것만으로도 독서한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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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2-12 1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때문에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의뢰로 번역되어 있는 책들이 좀 되는군요.
슈퍼그뤠잇인 이 소설은 절판이나 품절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2-12 11:50   좋아요 2 | URL
폭스의 책이 무려 18권이나 되는데...
국내에 번역된 건 꼴랑 5권이랍니다.

그나마 두 권은 절판, 오늘 초록 돌고래
중고서적으로 주문 날렸습니다.
상태가 좋은 녀석으로 와야 할 텐디...

<파리 에코>도 읽어 보고 싶네요.

목나무 2019-02-12 11:57   좋아요 1 | URL
이 작가의 다른 책들에 대한 레삭매냐님 리뷰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서니데이 2019-02-13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있으면 조금 더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어요.
여행을 떠날 때도 그렇고요. 재미있는 책으로 챙겨가지만, 많이 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가방속에 넣고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2-13 21:04   좋아요 1 | URL
저도 2013년 여름 캄보디아/태국 여행 길에
욕심에 책을 한껏 가져 갔었지요.

피피섬으로 가는 배 위에서 그 험한 풍랑이
넘실거리는 데도 눈이 빠져라 책을 읽어서
주변 사람들이 다 놀랐던 기억이...

그 책이 바로 정영문 작가의 <어떤 작위의
세계>였었는데 아직도 못 다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

뒷북소녀 2019-02-14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또 절판. 왜 레삭매냐님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작가들의 책은 모두 절판인거죠?ㅋㅋㅋ

레삭매냐 2019-02-14 13:40   좋아요 0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책들
이 하나 없네요.

멤포 지아르디넬리의 책은 구할 수가 없어
서 결국 책바다 서비스를 신청했네요. 너무
읽고 싶어서요.

글구 오늘 시배스천 폭스의 <초록 돌고래
의 거리>도 도착했답니다. 물론 바로 읽기
시작했구요...

카알벨루치 2019-02-14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모르는 작가를 넘 많이 아셔서 ㅜㅜ쩝

레삭매냐 2019-02-14 13:41   좋아요 1 | URL
뭐 저도 올해 알게 되어 읽은 작가인
걸요.

<리옹 도르의 여인>, <바보의 알파벳>
그리고 오늘부터 <초록 돌고래의 거리>
를 읽습니다.

기회가 되면 원서로 <파리 에코>도 만
나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답니다.
열린책들에서 도통 새로운 책 번역을
하지 않고 있네요.

카알벨루치 2019-02-14 13:49   좋아요 1 | URL
원서라....👍👍👍

레삭매냐 2019-02-14 14:03   좋아요 1 | URL
무언가 오해를 하심이...

원서는 모름지기 읽기용이 아니라
소장각으루다가 ㅋㅋㅋ
 
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역시 리디북스를 통해 알게 되어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책이다. 다시 한 번 리디북스 땡큐우~

 

소설에서 정말 얄미울 정도로 정의를 추구하는 실제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다가키 노리코는 이름에 들어간 한자 규범같은 인물이다. 노리코는 여고 시절 5총사를 이룬 가즈키, 유미코, 리호 그리고 레이카에게 한편으로는 도움을 주어서 은인 같은 존재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원수 같은 인물이다. 그녀에게 동정심 따위는 없다. 오로지 자신을 황홀하게 만드는 정의를 추구할 따름이다. 네 명의 친구들은 노리코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도왔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드러나는 사실은 노리코는 자신만을 위한 정의를 따랐을 뿐이다.

 

전조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있었다. 수업 시간 도중에 쪽지돌리기를 선생님에게 고발하고, 단순한 경고 정도로 끝낼 학내 흡연문제를 공론화시켜 연루된 선생님의 은퇴와 경찰관의 징계도 불사할 정도로 슈퍼 히어로 같은 존재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희생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유미코 케이스에서도 두 명의 노숙자들이 동사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들이 타인의 이야기라면 모르겠지만 자신의 경우가 되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비화가 된다는 걸 아키요시 리카코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가즈키에게는 취재 대상에 대한 교묘한 설득 작업의 과정을 알게 된 노리코가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를 날릴 법한 폭로를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첫 번째 살인 동기가 부여된다. 아 그전에 경비 처리르 위해 영수증을 챙기겠다는 가즈키에게 탈세라며 몰아 붙이는 장면에서는 정말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버렸다. 네 명의 친구들 모두 노리코가 구사하는 논리에 맞대응하지 못한다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그녀의 주변을 떠날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을 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자인 무능력한 남편과의 이혼을 원하는 유미코에게는 자식들의 양육권과 위자료를 주어야 할 지도 모를 아동학대 건을 부각시킨다. 병주고 약주는 식으로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종용하기도 하다가 또 한편으로는 남편에게 숨어사는 곳을 알려주니 친구라고 생각한 유미코로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의란 말인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영재교육 사업으로 성공한 리호에게는 불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난자를 제공하겠단다. 미치겠다 정말. 리호의 미국인 남편 조이 윌리엄스 씨는 그들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재정을 맡게 된 노리코의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나아가서는 가족으로까지 받아 들일 기세다. 이것을 리호가 용납할 수 있을까? 물론 절대 아니다. 마지막으로 삼십대 중반의 성공한 연기자 레이카의 어린 시절 문제를 해결해준 바 있는 노리코가 이번에는 자신의 커리어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 지도 모를 그런 스캔들을 폭로하겠다고 나선다. 이 친구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결국 네 명의 친구들은 의기투합해서 노리코를 살해한다. 모두들 노리코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동시에 그런 이유로 그녀를 증오하는 친구들이다. 노리코의 돌아가신 어머니도 자녀에 대한 콘트롤 매니악이었던가. 통금을 어긴 노리코를 데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녀는 더더욱 정의 구현에 앞장 서는 것일까? 변호사 뺨치게 법조문을 줄줄 외우며 원리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 친구들은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원래 친구 사이라면 그 정도는 눈감아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작가가 후반에 준비한 결말을 대단하다. 어떻게 보면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절대정의>를 통해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한 우리들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었다. 크고 작은 잘못들을 수시로 저지르면서 합리화의 과정을 통해 반칙과 위반들을 사소하다고 폄하하는 나의 모습 말이다. 그리고 보니 나는 어제도 무단횡단을 했지 아마.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나라도 노리코의 친구들처럼 소원해지지 않았을까. 그저 만나서 술 한 잔 하면서 그간의 회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요즘에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도통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구나. 서글픈 시절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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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2-10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친구’와 ‘책 안 읽는 친구’와 대화하는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죠. 저도 전자의 친구와 대화하는 게 편하고 즐거워요. 후자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대화 레퍼토리가 뻔해서 다시 만나고픈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

레삭매냐 2019-02-10 16:08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

다만 또 책읽지 않는 친구들과의 만남
역시 그만큼이나 즐거운 시간들이랍니다.
 

 


나는 언제부터 중고책만 사게 되었다.

새 책은 잘 안산다. 꼭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도서관에 신간 희망도서를 신청해서 읽는다. 잔뜩 사두기만 하고서 읽지 않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다. 신간도 제법 도서관에서 수급을 잘해줘서 읽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

 

오늘도 중고서점 원정가서 다섯 권을 데려왔다.

일단 로맹 가리의 <흰 개>는 작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긴 했지만 소장각으로 데려왔다.

왠지 올해 안으로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재독이야말로 독서인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마음에 드는 책이어서 읽었지만 샀노라고 자위한다.

 

다음 주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카사노바를 쓰다>. 이렇게 얇고 작은 책인 줄 미처 몰랐다. 판형도 아주 작고, 쪽수도 적다. 164쪽이란다. 올해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기로 했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걸리는 책은 살 것이다라고 핑계를 대본다.

 

그동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이언 뱅크스의 <말벌 공장>은 사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 품절된 책이라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으니 기회가 되면 당근 사야 하지 않을까. 참 핑계도 다양하구나. 상태는 아주 좋다. 마음에 든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한 번 빌려다가 책을 펴기는 했으나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인지 어쨌는지 못다 읽고 반납한 기억이 난다.

 

시배스천 폭스의 <바보의 알파벳>도 당당하게 목록에 올랐다. <리옹 도르의 여인>을 읽고 나서 폭스 작가의 책을 모두 읽겠노라고 마음 먹었으니 당연 사야지. 일단 사두고 읽는 것은 나중에, 우리 독서인의 모토가 아닌가. 지난 명절 때 폭스의 책을 읽겠다고 도서관에서 자그마치 세 권이나 빌렸으나 결국 읽지 못하고 이번 주 내내 반납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 상태가 좋지 않지만 가격이 너무 착하다. 오늘 낮에 커피빈에서 마신 라떼 한 잔 값보다도 싸다. 라떼 5,800원 책 4,00010% 할인을 받았으니 더 저렴하겠지. 밑줄 좍좍 그으면서 한 번 읽어 보리라.

 

마지막 책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미국은 섹스를 한다>라는 책이다. 이 책이 오늘 산 책 중에 가장 저렴한 레테르를 달고 있다. 단돈 2,600원 커피 한 잔 값도 짜장면 한 사발 값도 안되는 가격이다. 지난 번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테미오의 최후>를 비싸게 사서 읽다 말았지 아마. 멕시코를 대표하는 작가의 책으로 작년부터 읽기 시작한 푸엔테스 작가 읽기의 연장선이다.

 

자 이제 어떤 책부터 읽을까나. 행복한 고민의 시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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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08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벌 공장> 20대 초반에 저도 읽었는데, 겨우겨우 읽고 나니까 웬만큼 충격적인 작품들도 버틸 수 있게 되더라구요 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19-02-08 21:20   좋아요 0 | URL
엽기적이라고 짜안!~ 하더군요.

당장 도전은 그렇고 봄이 오면
한 번 읽어 볼까요...

목나무 2019-02-09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쌓여가는 책을 보니 신간 사기가 주저되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굿즈에 혹해서 가끔 신간을 왕창 사기는 합니다. ㅋㅋ
저도 어제 중고서점 가서 5권 데려왔어요! 낑낑거리며 걸어도 즐겁더라구요. ^^
사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는 레삭매냐님의 글도 그렇고 syo님 글도 보니 저도 <말벌 공장>에 혹합니다. 왜 충격적일까나....리뷰로 꼭 알려주세요! ^^

레삭매냐 2019-02-09 09:00   좋아요 0 | URL
굿즈... 독서정가제 실시 후에 기기
묘묘한 굿즈들이 등장해서 유혹하
더라구요. 전 최근에 예스24 중고매장
에서 산 고흐 책갈피를 아주 애정하고
있답니다. 넉넉해서 여기저기 꽂아도
남더라구요 :>

낑낑... 책쟁이들의 숙명입니다.

<말벌 공장> 대신 전 시배스천 폭스
의 <바보의 알파벳>을 집어 들었는
데 넘 재밌어서 100쪽을 순식간에
읽었네요.

<말벌 공장>은 고 다음에 읽고 리뷰
로 보답하겠습니다 ㅋㅋㅋ

coolcat329 2019-02-09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독이야말로 독서의 본질‘이란 생각에 정말 공감합니다. 그 진리를 40넘어 이제야 깨달았는데 시간과 체력이 안받쳐주니 마음만 조급해지네요ㅎㅎ 저도 사실은 레삭매냐님을 보고 중고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츠바이크 저 시리즈는 얇지만 내용은 강렬한거 같아요. 몰랐던 책 알게 되어 좋아요.

레삭매냐 2019-02-09 19:33   좋아요 1 | URL
일찍이 이탈로 칼비노가 그랬더랬답니다.

책은 다시 읽는 것이라구요.
새 책이 엄청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재독이야말로 우리 독서인들이 추구
해야 할 로망이 아닌가 사료해 봅니다.

말쌈 대로 츠바이크 짱입니다 !!!

가끔 사연이 있는 중고책을 만나게
되는 데 참 그렇더군요. 그전에 어느
분은 콜롬비아 갈 꿈에 마르케스의
책을 샀는데 꿈이 무산되어 책을 파노
라는 글을 써 두셨더라구요 ㅠㅠ

서니데이 2019-02-09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사진이 흑백같은 느낌이 들면서 예쁜데요.^^
전에 읽었던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개정판이 나오는 것처럼 다시 읽고 싶어져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표지도 새로 나오는 것처럼 다시 읽으면 조금은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요.
레삭매냐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19-02-09 21:11   좋아요 1 | URL
달아주신 덧글을 읽고 보니 그렇네요 :>

오래 전에 흑백사진 찍고 인화하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정말 오래 전
일이네요.

가끔은 흑백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
 


긴 명절 때문에 월간 독서 리포트가 늦어졌다.

 

명절이 끝나니 감기에 걸렸다. 아 젠장 맞을... 너무 놀아도 피곤한 모양이다. 일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놀기만 하고 일을 안해서 그런가. 그냥 무념무상으로 놀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

 

어쨌든 지난 달에는 20권의 책을 읽었다.

 

새해의 독서 출발이 나쁘지 않구나. 원래 그냥 저냥 읽으려고 했는데, 막판에 가서 이 책 저 책 집적대다가 시작만 하고 끝내지 못한 책들이 많아서 일주일 정도 공친 느낌이랄까.

 

원래 대로 읽었다면 칼럼 매캔의 누레예프 전기 <댄서>를 월간 베스트에 넣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뭐 나중에라도 다 읽으면 되겠지. 이달에 마저 다 읽어야지 싶다. 얼마나 남았나.

 

1월의 월간 베스트

 

1. 에라스무스 평전 - 슈테판 츠바이크

2. 전족 - 펑지차이

3. 동방의 부름 - 피터 프랭코판

 

요렇게 세 권을 뽑는다. 올해를 츠바이크 읽기의 해로 삼은 만큼 우선 그의 작품부터 컬렉션에 들어갔다. 절판된 책도 제법 되고 해서 사냥하는 맛이 나는 작가가 아닐 수 없다. 오래전에 구입해 두었으나 이제야 결국 읽게 되었다. 참 오랜 시간이 필요하구나. 작가가 오롯하게 집중하는 광기에 대한 혐오를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다. 츠바이크는 모든 종류의 광기에 대해 반대한다. 종교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런 면에서 카스텔리오네의 변론을 위해 쓴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에서 칼뱅을 그렇게 비판하는 걸까.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 버린 종교개혁가에 대한 증오에 가까운 글들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도 다시 읽을 계획이다. 읽고 나서 리뷰를 쓰지 않아서 다시 읽고 나서 쓸 계획이다.

 

펑지차이의 <전족>에서는 천진에 사는 전족광들의 전족학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넘실거린다. 문제는 어떻게 포장을 하던 전족을 여성들을 상대로 한 끔찍한 폭력이다. 하긴 지금은 전족이 목숨을 건 성형이라는 다른 방식으로 여성들을 옥죄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페티시즘에 가까울 정도로 중국인들의 전족 사랑은 적어도 내게는 비정상으로 다가왔다.

 

피터 프랭코판의 <동방의 부름>은 새해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게 된 책이다. 역사서를 소설보다 빠른 속도로 읽는 지라 아주 재밌게 읽었다. 십자군 원정의 진짜 주인공이 비잔티움 제국의 알렉시오스 1세라는 주장이 참신했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서임권 투쟁 이래 쇠락해 가는 교황권의 재확립을 위해, 서유럽의 기사들은 성지회복과 새로운 봉토를 위해, 민중십자군은 봉건 계서제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동방에서 새로운 기회를 위해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의 알렉시오스 1세는 동방 투르크의 압박을 효과적으로 감쇄시키고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서방 기사단의 전투력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서로의 이해가 딱 맞아 들어 중세 최대 규모의 군사원정이 종교전쟁의 외피를 두르고 시작된 것이다.

 

어제 읽은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전쟁의 비인간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민중십자군이 성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도중에 만난 유대인과 비그리스도들(심지어 같은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교도로 제거의 대상이었고, 민중십자군은 학살을 마다하지 않았다. 2차세계대전 당시 대소련 전투에서 전투부대를 따라 전선으로 이동하면서 학살을 맡았던 아인자츠그루펜 부대원들이 처형 트라우마로 시달리게 되자, 대량학살 수용소에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가스실에서 죽은 동료 유대인을 처리하게 만든 일이 생각났다. 대량학살의 원조였던 공중폭격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어떤 방식의 전쟁도 우리 세대에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핵무장이니 무력통일 운운하는 환자들의 발언은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월에는 쉬엄쉬엄 가자. 특히 재미난 소설을 집중적으로 읽을 것이다. 그렇다면 추리 소설이 제격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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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2-07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새해 인사가 늦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2019년 되세요!^^:)

레삭매냐 2019-02-07 13: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바로 방문해서
메리 설날 남겼답니다 헷 :>

페크pek0501 2019-02-14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권 독서에 기죽고 갑니다. (오늘밤 늦게까지 책 봐야지~~:혼잣말...)

 

[영화읽기] 알리타 배틀에인절 / 로베르트 로드리게스

관람일시 및 장소 : 인천 아시아드 롯데시네마 14:00

 

설날에는 딱히 할 것도, 갈 곳도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갔다. 항상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나라는 인간이 선택한 영화는 <알리타 배틀에인절>이었다. 러닝타임 두어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일본 3대 사이버펑크 저패니메이션이라는 <총몽>을 실사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를 실사로 만들기 위해 2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던가. 연출은 자신의 피를 팔아 독립영화를 제작한 영화매니아 중의 매니아라고 할 수 있는 로베르트 로드리게스가 맡았다. 특수효과는 아바타님이 맡았다고 하는데, 스칼릿 요한센도 구하지 못한 <공각기동대>의 위업을 과연 <알리타>가 해낼지 궁금했다.

 

영화는 대만족이었다. 영화 <엘리시움><업사이드 다운>의 두 개로 나뉜 세계라는 구조를 떠올리는 자렘으로 가고자 하는 고철도시에 사는 군상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300년 전, 대추락(The Fall) 이후 고철도시(아이언 시티)와 배드랜드를 지배하는 자렘의 존재는 천국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고철도시의 모두가 가보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갈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다.

 

무료로 사이보그들을 치료해 주는 닥터 다이슨 이드는 어느날 자렘에서 떨어지는 고철더미 속에서 알리타의 코어를 발견한다. 그리고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알리타에게 자신의 죽은 딸 이름을 그대로 붙여주고,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들어 놓았던 바디를 알리타에게 준다. 닥터 이드의 이미지는 닥터 프랑켄슈타인이자 자상한 아버지의 그것을 따른다. 로드리게스 감독의 연출은 원작을 충실하게 따르는 동시에 특별한 재조립의 과정을 거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만화 <총몽>을 보기 시작했는데, 원작의 시간구성을 따르지 않고 제작진은 그들만의 유니크한 <배틀 에인절>을 만들어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배틀 에인절 알리타는 화성에서 자렘을 정복하러 온 광전사(버저커) 부대의 일원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해야 했고, 자신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닥터 이드가 헌터워리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의 밤사냥을 미행했다가 비로소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녀를 집요하게 괴롭히게 되는 빌런도 만나게 된다.

 

원작에서는 헌터워리어 등록을 마친 알리타가 헌터워리어들의 소굴인 <캔자스> 바에서 실력발휘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은 명백하게 통과의례의 과정이다. 그리고 감독은 원작의 중반에 등장하는 모터볼경기도 적절하게 조합해서 영화의 속도감을 높인다. 오락영화라면 모름지기 속도감 넘치는 볼거리가 중요하지 않은가. 시속 300KM 달리면서 모터볼을 낚아채는 경기야말로 영화팬들을 매혹시키는 요소 중의 하나였다.

 

영화 속에서 휴고와 사랑에 빠진 알리타가 휴고에게 자신의 소중한 심장을 꺼내주면서 돈으로 바꿔 자렘으로 올라 가라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You are the most human I've ever met"이라는 대사도 멋지더라. 문득 다분히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의식한 대사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원작의 전개와 좀 다른 점 중에 특이할 만한 캐릭터는 바로 자렘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노바와 닥터 이드의 전 부인인 닥터 쉬렌(제니퍼 코널리 분)이었다. 노바는 에드워드 노턴으로 보이는데, 이거 꼭 속편을 만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감독은 흥행에 성공하면 속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는데 꼭 만들어 주시길.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많았는데 너무 피곤해서 이만 접어야겠다. 대단한 영화였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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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2-07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통 영화에는 관심이 없다보니 어떤 영화가 개봉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었는데, 이 영화 느므 땡기는데요! 덕분에 좋은 영화 알게 되었습니다! 만화 <총몽>도 보고싶네요! ^^

레삭매냐 2019-02-07 09:55   좋아요 1 | URL
제가 영화 만화 모두 보니 역시나 원작이 뛰어납니다.
그나저나 극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던
데, 아이들 데리고 볼만한 영화는 아닌 듯...

<극한직업>이 이번 명절 최대 수혜자라고 하던데
아직 못보았네요. 본 사람들은 두 번이라도 볼 기세
더라구요 ㅋㅋㅋ

coolcat329 2019-02-07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어제 봤는데...그냥 뭐. 멋지다! 진짜 멋지다! 이 말 밖엔 안 나오더라구요

레삭매냐 2019-02-07 19:17   좋아요 0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

흥행도 저패니메이션 리메이크의 저주
를 뽀사길 바랍니다.

감독은 속히 속편 제작을 해야 합니다.
반드시 !!!

coolcat329 2019-02-07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속편이 너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