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과 마르가리타 대산세계문학총서 69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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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산 책을 작정하고 읽기에 나섰다. 그리고 세상에 읽지 못할 책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로 독서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는 서양 작가의 글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장만해 두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내가 처음 읽은 불가코프의 책은 <개의 심장>이었지 아마. 두툼한 책의 두께에 질려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칩거의 시간들이 길어져 가는 어느 봄날 밤에 나는 드디어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집어 들었다. 아니 이 소설 왜 이렇게 재밌는 건가. 읽고 있던 다니엘 켈만의 <세계를 재다>를 때려치우고 <거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가 말이다. 도대체 거장은 누구고, 마르가리타는 누구란 말인가.

 

러시아 소설들이 그렇듯 한 주인공의 이름이 다양하게 변주되기 때문에 역시나 그들이 푸는 썰의 흐름을 쫓는데 좀 헷갈리기도 했다. 어쨌든 모스크바의 어느 봄 날, 문인 베를리오즈(절대 작곡가가 아니다!)와 이반(이바누시카)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 낯선 이방인/외국인을 만나면서부터 이야기는 내달리기 시작한다. 가장 놀라운 건 이방인 볼란드 교수가 베를리오즈의 처참한 죽음을 예언했고,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소설 속의 소설로 등장하는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소설도 흥미진진하다. 시대를 초월하는 SF장르물 같은 성격으로 이천년을 되돌려 예르샬라임의 예슈아(마시아!)의 수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장>의 배경이 되는 현재의 시점이 아마 부활절 즈음에서였을까. 볼란드 교수는 당시 현장에서 예슈아의 수난을 그대로 목격했다지 않은가. 이 정도면 정체불명의 볼란드가 누구인지 슬슬 감이 오지 않는가.

 

검은 마술의 대가를 자처하는 볼란드는 자신의 수하들인 코로비예프와 빨간 머리 아자젤로, 말하는 검정고양이 베헤못 그리고 비서 헬라를 동원해서 대극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놀라운 흑마술을 시전하면서 관객들을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 소설은 1938, 스탈린 공포정치가 그야말로 절정에 달했을 무렵에 쓰였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사회주의/공산주의 실험이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소비에트 인민들은 여전히 미신과 탐욕에 절은 인간 본성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거장>을 통해 불가코프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문제인 거주문제에서 모스크바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면에 걸려) 얄타로 날라간 극장장의 아파트를 차지위해 벌이는 암투는 심각한 거주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다. 그 시절부터 이미 거주문제 혹은 토지소유 문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던 걸까.

 

한편, 정신병원에 수감된 청년 시인 이바누시카는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어느 누구의 공감도 얻지 못하고, 분열증에 시달리는 불쌍한 영혼으로 규정된다. 그의 모습에서는 진실이 왜곡되고 사라져 버린, 스탈린 치하 비극적 소비에트에 대한 불가코프의 신랄한 비판이 읽혀진다.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해 마지않던 거장이 등장한다. 그는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소설을 정신병원의 동료 수감자다.

 

본디오 빌라도는 예슈아를 유대의 축제 기간에 다른 흉악한 범죄자들과 함께 민둥산(골고다 언덕)에서 처형한 로마의 기사 출신 다섯 번째 유대 총독이었다. 거리의 철학자 예슈아를 신성모독으로 처벌하라는 대제사장 카이파를 대신해서, 사법권을 지닌 유대 총독이 무고한 예슈아에 사형 판결을 내리면서, 지난 이천년 동안 수많은 이들의 욕받이가 된 인물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 되시겠다.

 

한편 본디오 빌라도는 예슈아를 30드라크마에 판 키리아트 출신 배신자 유다의 신변을 보호하라는 밀명을 두건 쓴 사나이(총독의 비밀호위대장) 아프라니우스에게 내리지만, 유다는 여인의 유혹에 빠져 깔끔한 실력을 갖춘 자객의 칼을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 그렇다면 거장은 바로 그런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소설을 쓴 사람이라면 마르가리타는 누구인가. 바로 그 거장을 사랑하는 젊은 유부녀다. 그리고 볼란드 교수의 초대에 응해, 발가벗고 빗자루를 탄 마녀로 변신해서 연인 거장의 복수에 나선다. 정숙해 보이는 마르가리타가 거장의 소설을 퇴짜 놓은 라툰스키가 사는 건물을 초토화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종교와 흑마술, SF시간여행으로 점철된 이 소설을 넷플릭스에게 실사로 만든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복수심에 불타는 마녀 마르가리타가 벌이는 사회주의 심장부에서 벌이는 반달리즘은 스탈린의 폭압적인 통치에 대한 인민의 저항심으로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저항에 나설 수 없기에, 불가코프 스타일의 판타지가 등장하는 게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흑마술로 인민을 현혹시키는 사탄 볼란드 교수는 스탈린으로, 코로비예프를 비롯한 그의 수하들은 NKVD 수장으로 사회주의 러시아를 공포로 몰아넣은 베리야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볼란드 교수와 측근들이 벌이는 난장판은 수년 뒤에 벌어질 독소전의 전초전으로도 보인다. 러시아에서 인민들에게 구원을 약속하며 마시아 노릇을 하던 독재자가 주최한 만월의 봄밤에 행해지는 대무도회는 그야말로 소설 <거장>의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다. 거장 불가코프의 현란한 상상력과 할리우드 자본과 영화 테크놀로지가 의기투합한다면 정말 걸작 영화가 탄생할 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소설에 대한 몰입을 어지럽힌다.

 

개인적으로 1부에서 현란하게 전개되던 내러티브는 역동성은 2부에서 상대적으로 현저하게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미샤 베를리오즈의 처참한 죽음과 볼란드의 화려한 흑마술에 넘어간 시민들이 보여주는 인간 본성의 노출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의 고뇌. 인간계의 질서를 어지럽힌 볼란드 교수 일당이 벌인 소동에 대한 설명이 집단 최면이었더라는 허무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버릴 것 하나 없이 유려한 스토리가 아닌가 말이다. 모든 인민에게 평등한 삶을 공언한 레닌과 스탈린을 비롯한 혁명가들의 약속이 결국은 하나의 최면술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과연 현대 러시아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런 작품이었다. 시대를 앞서 간 거장의 은유적 체제 비판, 판타스틱한 내러티브, 흥미진진한 소설의 전개 방식 등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너무 늦게 만난 점이 아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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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3-22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글을 통해서 느껴지는<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장르를 오가면서도 혼란스럽지 않게 메세지를 전달하는 좋은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항상 레삭매냐님 덕분에 좋은 작품을 덕분에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0-03-22 08:49   좋아요 1 | URL
그저 평범한 책쟁이의 독서일기
일 뿐인데, 좋은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열심으로 읽겠습니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욜로욜로 시리즈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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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머리 아픈 책은 읽지 말지어다. 평소 나의 독서 룰이지만, 그렇다고 입에 착착 감기는 그런 달고나 같은 책들만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미 책장에 읽지 않은 책들이 수두룩하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즈음해서 책사들이기 대신 쟁여둔 책을 찾아 읽어 보자로 선회하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책장에는 읽을 만한 책들이 참 많더라. 라헐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집었다. 글맛이 아주 마음에 들더라.

 

소설의 실제적인 주인공보다 내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바로 인간개바르톨로메 카라스코의 아버지 후안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소작농으로 고향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돈 카라스코는 대처에 나가 특유의 성실함으로 공주의 마부가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 다섯 명의 아이들을 모두 천하를 제패한 스페인 제국의 수도 마드리드로 불러들인다. 그렇다면 이제 휘황찬란한 제국의 수도에서 식구들이 잘 지내는 모습이 나와야 하는 게 순서 아닌가.

 

그렇게 소설이 흘러간다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짜내는 그 무언가가 결핍되어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라헐 판 코에이는 돈 카라스코 자식 중에 정중앙에 자리 잡은 바르톨로메가 장애를 가진 난쟁이로 설정했다. 중세를 벗어났지만, 당대에 장애는 신의 저주로 간주되었던 모양이다. 돈 카라스코는 그래서 마드리드에 아들 바르톨로메를 데려 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다른 가족들과 함께 수도에 간다는 바르톨로메의 주장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가끔 네 발로 기는 바르톨로메는 다른 이들의 눈에 띠지 않기 위해 궤짝에 들어가 제국의 수도로 향한다.

 

마드리드로 가는 길은 카라스코 패밀리 모두에게 고난의 행군이었다.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거친 길을 걷다 보면 발이 붓고 터지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수도에서 기다리는 찬란한 삶은 카라스코 패밀리의 고난을 무마하기에 충분했던 걸까.


수도에서 성공한 난쟁이 엘 프리모의 경우를 따라, 바르톨로메는 서기로 성공해서 사람 몫을 하기 위해 크리스토발 수사에게 글공부를 시작한다. 물론 돈 카라스코는 둘째 아들의 외출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띠지 말라고 명령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면 아버지의 사랑을 얻을까 노심초사하지만, 아버지의 자랑은 그저 다른 온전한 자식들뿐이었다. 가뜩이나 장애로 위축된 바르톨로메가 느낄 상실감이 느껴지는가.

 

영민한 바르톨로메의 스승, 크리스토발 수사는 불쌍한 제자에게서 신이 계획한 삶의 오묘한 섭리를 느낀다. 바르톨로메는 특유의 성실함과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그야말로 스승 크리스토발 수사 알려주는 정보들을 문자 그대로 습자지처럼 흡수해 버리지 않았던가. 바르톨로메가 성경으로 다음으로 만나게 된 책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지금은 책의 수급이 어렵지 않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책으로 대변되는 문학은 부유한 지식인 계급이나 향유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로 접어들 시간이 되었다. 바르톨로메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아버지가 섬기는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공주의 눈에 들어 인간개로 변신하게 된다. 마르가리타 같은 높은 계급의 귀족들은 일상이 따분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지엄하신 공주는 특이한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자신이 조직한 기인한 캐릭터들로 구성된 서커스단이 그 중에 하나였던 모양이다. 특히 바르톨로메 같은 상상 이상의 추물이라면 더더욱 환영을 받았을 지도.

 

공주의 손에 넘겨진 바르톨로메는 당대 유명했던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휘하에서 도제 수업 중이던 안드레스가 그려준 개분장을 하고 데뷔전을 치른다. 아니 이게 정말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하지만 위기는 기회였다고 했던가. 글을 깨우친 바르톨로메는 궁정에서 라이벌 니콜라시토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지만, 그림그리기에서 자신이 가진 천부적 재능을 발견하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 시절인 1656년 발표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을 모티프로 삼은 소설이다. 그림 한 편에서 어떻게 그렇게 당대의 시대상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뿜어져 나왔는지 대단하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바르톨로메의 불우한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글쓰기와 그림 공부로 난국을 돌파해 가는 과정, 영국에 앞서 해가지지 않은 제국이었던 스페인 왕실 내부의 은밀한 속살까지 다양하면서도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통해 펼쳐진다.

 

공주의 노리개로 인간개 같은 존재였던 바르톨로메가 천재적 재능과 감각으로 벨라스케스의 제자 파레하 선생의 도제가 되는 과정은 아무래도 작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하지만, 정식으로 화가가 되기 위한 길드/조합에서 도제 과정을 거치지 않은 바르톨로메는 영원히 화가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무어인 파레하 선생 휘하에서 우리의 바르모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시녀들>의 주인공은 마르가리타 공주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2세와 결혼해서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한다. 다만 21세의 나이에 다섯 번째 자녀를 유산하고 요절했다던가. 자신이 그린 그림인 <시녀들>에 등장하는 화가 벨라스케스는 귀족의 일원으로 산티아고 기사단원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소설에서 벨라스케스는 인간개를 지우고, 대신 진짜 개를 등장시킨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라헐 판 코에이 작가의 다른 책도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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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3-17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책을 읽으시는 레샥매냐 님!! 마침 궁금하던 책인데 리뷰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0-03-17 14:40   좋아요 0 | URL
요즘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게
되어 그동안 집안 곳곳에 쟁여
둔 책들을 섭렵 중이랍니다 :>

프레이야 2020-03-17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오래전에 읽었는데 표지 옷 갈아입고 나왔나 봅니다. 역사에 상상력을 더한 흥미로운 책이지요.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봄기운 완연한 날입니다.

레삭매냐 2020-03-17 14:47   좋아요 1 | URL
그동안 책장에만 있다가 드디어
꺼내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밌더군요.

바다... 가보고 싶네요.
여긴 춥네요. 마스크 사려고 줄서서
기다리다가 연세 드신 분이 새치기
를 하셔서 기분 잡쳤네요 그것 참.
 


 

tvN<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가 인기다.

아마 최근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즈음해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진행한 모양이다. <페스트>를 출간한 모든 출판사들이 판매경쟁에 뛰어 들었다.

 

이런 경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솔직히 말해서 좀 비기 싫다).

 

예를 들어 이전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진행했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이유는 한길사만 한나 아렌트의 판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출판사는 언감생심 숟가락을 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카뮈의 경우는 달랐다. 아마 사후 저작권 시효가 풀렸기 때문일까, 업계 사정을 잘 모르니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이미 <페스트>를 출간한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그렇지 않은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새로운 책을 준비해서 페스트 마케팅에 나섰다.

 

나는 예전 경주 지진이 났을 때, 이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미리 읽어서 다행이다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유행을 탔다는 핑계는 대지 않을 수가 있어서 말이다.

 

<요즘책방>에 소개되는 책의 선정은 과연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널리 알려졌지만 잘 읽지 않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책은 괜찮은 선정이었던 것 같다. 한나 아렌트의 책도 마찬가지. 카뮈의 <페스트> 역시 위기 상황에 처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반 세기 전에 고찰했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다만 자신이 읽는 책도 방송의 시류에 편승해야 한다는 점이 좀 아쉽다고나 할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스 팔라다(<술꾼> 읽다 말았음)나 타리크 알리 같은 작가들을 소개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타리크 알리의 소설들은 다 절판된 책이라 구할 수도 없지.

하나의 도전일 수도 있는데 방송쟁이들이 그런 모험을 할 리가 없겠지.

뭐 그렇다고.

 

설마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이런 책을 진행하진 않겠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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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3-16 16: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실 TV방송탓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이 무척 많지요.한권 판매라도 아쉬운 출판사입장에선 불감청이언정 고소언이라고 방송국이 공짜로 해주는 광고가 무척 고마울 따름이지요^3^

레삭매냐 2020-03-16 17:02   좋아요 1 | URL
전 사실,,, 그게 과연 공짜인지
그게 정말 궁금합니다.

협찬을 받았다고 말하면 진정성
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stella.K 2020-03-16 1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스 팔라다, 타리크 알리라. 이건 정말 매냐님 서재나 들어와야 알 수 있는 책이네요.
참 들어 보는데요?ㅎ
페스트는 시의도 있지만 다룰만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까뮈가 유명 하지만 일반인은 잘 안 읽잖아요.

글쎄 좀 의문스럽긴 하죠? 근데 출연진들 하나 같이 책커버를 씌우고
진행을 하더란 말이죠. 그런 걸 보면 감수나 선정위원 같은 사람은 있어도
협찬을 받을 것 같지는 않기도 한데. 제작비에 비해 가성비 높잖아요.ㅋ

레삭매냐 2020-03-17 10:48   좋아요 2 | URL
기냥 프로 불편러의 썰로 보아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페스트> 선정은 정말 탁월했다고 생
각합니다.

방송은 실제로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책커버를 씌웠나 보네요 그것 참...

cyrus 2020-03-16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양미술사>를 너무 띄워주는 방송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서양미술사>의 초판은 나온 지 꽤 오래됐어요. 스테디셀러이긴 하지만, 사실 <서양미술사>보다 내용이 더 좋고, 젊은 느낌이 나는 서양미술사 책이 많아요.

레삭매냐 2020-03-17 10:49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방송에 나오는 분들이
프로 책쟁이들이 아니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북큐레이터로 우리 싸이러스
브로 같은 분에게 의뢰해야
하는데 말이죠 :>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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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문이 자자하던 그 소설을 이제야 읽었다. 책은 아마 오래 전에 수급해서 쟁여 두었던 모양이다. 책의 색깔이 다 바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름 봄철 독서 슬럼프인지 이 책, 저 책 시작은 많이 했는데 마무리 지은 책이 별로 없다. 이럴 땐 가독성이 뛰어나고 흥미진진한 그런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 때 책상머리에 얌전하게 놓여 있던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를 발견했다. 슐링크 작가의 다른 책들도 제법 읽었는데 왜 대표작인 <더 리더>는 읽지 않았는지.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해 보니, 영화에 대한 글들이 있더라. 그런데 이 소설/영화가 로맨스 영화였던가? 아마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 물론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의 내 감상은 좀 달랐지만 말이다.

 

195815세 소년 미하엘 베르크는 간염에 걸려 당분간 학교를 쉬게 된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한나 슈미츠 부인을 만나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 ‘꼬마는 자신보다 무려 21살이나 많은 한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플라토닉한 사랑이냐고? 절대 아니다. 아마 그랬다면 <더 리더>는 처음부터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는데 실패했을 것이다.

 

철학교수의 아들 미하엘은 거의 매일처럼 반복되는 책 읽기,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나란히 눕기라는 패턴 속에 자신의 엄마 뻘되는 여성 한나와 관계를 시작했다. 이미 성에 눈을 떠버린 꼬마는 고등학생답지 않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한다. 연상의 여인 한나에게 나란 존재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꼬마 미하엘은 한나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철저하게 베일에 쌓인 과거를 품고 있다. 지멘스사에서도 일하기도 했고, 전쟁 중에는 군인으로 복무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은 꼬마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변덕스러운 한나의 감정 앞에 꼬마는 수치와 굴욕적인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같이 떠난 밀월여행 기간 동안에는 아침식사와 장미를 준비하러 갔다가 벨트로 얼굴을 쳐 맞기도 한다. 아니 이렇게 폭력적일 수가 있나 그래. 어쩌면 슐링크 작가는 다가올 암울한 미래에 대한 하나의 징조를 심어놓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예상대로 전차 차장으로 일하던 한나는 아무런 소식도 없이 꼬마의 곁을 떠난다. 그전에 이미 꼬마는 한나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유죄를 선고한다. 그리고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간다.

 

7년이 지나 이제 법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 된 미하엘은 꿈에 그리던 한나를 법정에서 만나게 된다. 법정에서 밝혀지는 한나 슈미츠 부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까지 전개되어온 방향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한나는 1943년 자진해서 무장친위대에 들어갔다. 베어마흐트도 아니고 무장친위대에? 그리고 그녀가 아우슈비츠와 크라카우의 강제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충격이 아닌가? 갑자기 소환된 독일 과거사 청산 이슈에 그만 어안이 벙벙해진다. 중년 여성과 십대 소년의 철부지 같았던 사랑놀이의 이면에 그런 어마어마한 사실이 숨겨져 있었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지 않은가.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가이기 전에 법학전문가이자 교수로 맹활약해 온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전문 분야가 치솟아 오른다. 물론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는 법정 드라마 와중에 한나의 처벌을 경감해줄 치명적인 요소도 잘 준비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한나가 문맹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책읽기를 좋아하던 그녀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것이다! 놀라운 설정이 아닌가. 그래서 한나는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했던 것이고, 지멘스사에서 승진이 예정되자 친위대 입대를 감행했고, 7년 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미하엘의 고향 도시에 모습을 감춘 것이다. 어때 이 정도면 소설의 개연성이 충분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가. 그리고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법정에서 종신형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설의 표면에 들어나는 그런 이야기들 말고, 기의적인 면에서 슐링크는 제3제국이 호령하던 시절 제국에 부역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겨냥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부모 세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히틀러와 나치들이 준동하던 시절, 그들의 부모들은 의도적인 문맹이었다는 것이다. 한나가 왜 글을 읽고 쓸 수 없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한나와는 상황이 달랐던 많은 수의 지식인들과 사업가들은 히틀러가 꿈꾸던 천년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기꺼이 눈과 귀를 가리고 기꺼이 부역에 나섰다.

 

이제 성인이 된 미하엘은 감옥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는 한나에게 자신이 읽은 책의 오디오 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나는 예전 꼬마의 도움으로 글을 읽고 쓰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이 핍박하던 유대인에 대한 사죄를 실행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격랑처럼 회오리치던 소설의 엔딩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진짜 슐링크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실(팩트)을 깨달았다면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행동에 나서라고. 전후 나치주의자들은 독일연방공화국 곳곳에 스며들어, 요직을 차지하고 승승장구했다(어느 나라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독일은 과거사청산의 모범적인 국가로 칭송되지만, 죽음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수긍할 만한 진정성이 담보되어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슐링크 작가가 구사하는 균형 잡기는 문학적으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주말 저녁 가벼운 마음으로 펴들었던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는 확실히 잠자고 있던 나의 독서 본능을 일깨우고 새벽잠마저 날아가 버리게 만들었다. 비록 몸은 피곤하지만, 좋은 책과 만난 즐거움으로 상쇄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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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3-16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해석에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예요~~
저는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왜 한나가 문맹일까가 계속 납득이 안되었거든요^^
그러다보니 한나의 ‘사랑‘ 에만 초점을 맞추었던것 같아요~~
작가의 의도를 알았으니 제가 받은 느낌을 다시 정리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0-03-16 14:28   좋아요 2 | URL
어젯밤에 자기 전에 좀만 읽어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결국 다 읽고
잤습니다 ㅠㅠ

아침에 죽을 뻔 했네요.

주위의 평을 들어 보니 영화도 잘
빠진 모양인데... 볼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

stella.K 2020-03-16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마지막 문장이...! 정말 매냐님의 소설 사랑이 느껴지는군요.
이 책 몇년 전까지만 해도 가지고 있었는데 하도 안 읽어 팔야버렸슴다.
장정도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던지라...
무엇보다 영화가 나름 인상적여서 굳이 소설을 읽을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이야기가 좀 파격적이긴 하죠.

레삭매냐 2020-03-16 14:50   좋아요 0 | URL
제 원칙 중의 하나는 산 책,
얻은 책이고 읽지 않은 책이라도
언젠가는 읽는다... 뭐 그런 거랍니다.

<더 리더>도 정말 오랫동안 읽지
않고 버팅기던 책이었는데 금세
휘리릭 다 읽었거든요.

과연 영화가 어떨지 궁금하긴 하네요.

희선 2020-03-17 0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이야기는 언젠가 들어본 듯도 한데, 한나가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건 그때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린 사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군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늘 마음을 다잡아야겠네요


희선

레삭매냐 2020-03-17 10:55   좋아요 0 | URL
절절히 옳은 말씀입니다.

세상풍파에도 눈이 멀지 않고
귀가 잘 들을 수 있게 수신제가
할 그런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03-18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더 리더> 영화로 재밌게 봤어요ㅎ

고양이라디오 2020-03-18 18:47   좋아요 1 | URL
비로그인으로 댓글 달았습니다. 삭제 잘 못하겠어요ㅎ

영화로 재밌게 봐서 그런지 책으로 읽을 생각은 안 들더라구요.

레삭매냐 2020-03-21 21:19   좋아요 1 | URL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
책만한 영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영화도 한 번 구해서
보고 싶네요 :>

teddybear 2020-03-21 1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전에서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인데요, 이 책을 회원들과 함께 읽어보도록 하고 싶네요. 레삭매냐님의 글이 동기부여되어 감사드립니다.

레삭매냐 2020-03-21 21:20   좋아요 1 | URL
대전에서 독서 모임을 하시는군요.

저희는 서울에서 하는데, 코로나
사태로 당분간 모일 수가 없게
되었네요.

독서모임 동지로서 건투를 빌겠습니다.

그림자칭찬 2020-03-23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으로 읽고 영화를 무척 기대했던 ˝더리더˝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일없는데
영화는 3번 이상 봤어요.
이번에 도서로? 다시 보고싶어지네요.
 
그해, 여름 손님 (양장)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국내에 소개된 안드레 애시먼의 첫 번째 책이다. 이미 읽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하도 평을 많이 들은지라 읽으면서도 영 낯설지가 않았다. 영화로도 나왔는데 주인공 엘리오와 울리바(올리버)가 보르디게라에서 만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다. 이 책은 표지갈이를 하면서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는데, 처음 나온 책의 표지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양장본으로 나온 책을 샀다. 이미지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그래. 그렇다고 해서 다른 표지가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지만. 결국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원작대로 새로 단장해서 나오기까지 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그냥 원제로 갈 것이지.

 

소설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매해 여름마다 B(보르디게라)에서 지낼 하숙생이 엘리오 아버지의 집을 찾는다. 소설은 세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교수인 아버지 덕분인지 감수성과 지성이 풍부한 17세 소년 엘리오가 7세 연상의 울리바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보르디게라, 그 둘이 영원히 잊지 못할 시간들을 보낸 로마 그리고 재회를 갖게 되는 미국의 뉴잉글랜드. 나는 각각의 공간들을 침잠, 열정 그리고 회한으로 표현하고 싶다.

 

과연 엘리오는 울리바에게 첫눈에 반했을까? 울리바의 냉랭한 감정선은 어쩌면 민감한 소년 엘리오에게 보내는 하나의 경고였을 지도 모르겠다. 감당할 수 없는 선을 넘는다면 너는 과연 감당할 수 있겠니라는.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 가다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코드가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보르디게라 모네의 언덕에서 지루한 게임을 끝내고 둘은 첫 키스를 했던가. 궁금한 마음에 보르디게라를 찾아 봤다. 내가 오래 전에 갔던 모나코를 조금 더 지나면 보르디게라가 나오더라. 이탈리아 리비에라 정도일까. 소설의 어디선가 본 망통(구글 지도에서는 멍똥으로 표시되어 있더라)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곳이 바로 보르디게라였다. 그 때 소설 <향수>의 도시 그라스를 찾았던 것처럼,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보르디게라도 가지 않았을까. 이 책에 앞서 애시먼의 <알리바이>를 먼저 읽었는데, <그해, 여름 손님>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울리바는 소년이 느끼는 갈망의 지향점이다. 둘은 모두 보르디게라의 빛나는 여름이 끝나면,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전도유망한 청년 울리바는 뉴잉글랜드의 하버드로 그리고 어쩌면 엘리오도 사랑하는 이에 대한 갈망을 안고 유학길에 오를 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걱정하기에 그들은 너무 어리거나 젊었고, 이탈리아 리비에라 해변에 쏟아지는 햇살은 너무 강렬했다. 그들의 감정들이 시기 혹은 질투로 마구 뒤엉키는 선선한 오후의 나름함이 얼마나 매혹적이던지.

 

그렇게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영원한 도시로 이별여행길에 나선다. 시인 문인들과의 만남에서 곤드레만드레 취한 엘리오와 울리바가 로마의 어느 광장에서 키스를 나눈다. 앨리오는 평생의 기억으로 그 순간을 기억한다. 물론 그런 둘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아니 그전에 울리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고 했던가.

 

불길이 사그라지고 보르디게라로 돌아온 엘리오가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는 정말 놀랍다. 어쩌면 안드레 애시먼은 바로 이 장면을 쓰기 위해 찬란한 태양으로 빛나는 이탈리아 리비에라라는 무대에 엘리오와 울리바를 올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모르실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모른 척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훗날 울리바와 재회한 엘리오는 그 사실을 울리바에게 말한다. 아마 울리바의 아버지라면 당장에 교화 시설에 보냈을 거라고 했던가.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을 격려하는 아버지... 아들은 과연 그가 자신이 아는 아버지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식구라고 하지만, 누군가를 전적으로 아는 게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하나의 질문이다.

 

소설 <그해, 여름 손님>에서 나는 이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냥 이렇게 끝내도 소설의 완성도는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뒤에 이어지는 울리바와의 재회는 그냥 사족 같은 느낌이랄까. 오랜 시간이 지나 그해 여름의 기억들이 임의대로 왜곡되고 어느 아름달움의 잔향만이 남은 상태에서 다시 만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다. 게다가 울리바는 이미 결혼해서 두 명의 아들들까지 둔 상태가 아니던가. 아름다운 추억은 추억 그대로 간직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모두 미련일 뿐.

 

나는 아마 이 소설의 후속편이라는 <파인드 미>는 읽지 않을 것 같다. <그해, 여름 손님>을 읽다 보면 나도 보르디게라의 여름 손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두 번 만난 지중해의 여름은 참 즐거웠었다. , 지난에 주문한 안드레 애시먼의 <하버드 스퀘어>가 발송되었다고 한다. 다음 주에나 도착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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