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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ㅣ 욜로욜로 시리즈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7년 7월
평점 :

너무 머리 아픈 책은 읽지 말지어다. 평소 나의 독서 룰이지만, 그렇다고 입에 착착 감기는 그런 달고나 같은 책들만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미 책장에 읽지 않은 책들이 수두룩하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즈음해서 책사들이기 대신 쟁여둔 책을 찾아 읽어 보자로 선회하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책장에는 읽을 만한 책들이 참 많더라. 라헐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집었다. 글맛이 아주 마음에 들더라.
소설의 실제적인 주인공보다 내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바로 ‘인간개’ 바르톨로메 카라스코의 아버지 후안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소작농으로 고향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돈 카라스코는 대처에 나가 특유의 성실함으로 공주의 마부가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 다섯 명의 아이들을 모두 천하를 제패한 스페인 제국의 수도 마드리드로 불러들인다. 그렇다면 이제 휘황찬란한 제국의 수도에서 식구들이 잘 지내는 모습이 나와야 하는 게 순서 아닌가.
그렇게 소설이 흘러간다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짜내는 그 무언가가 결핍되어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라헐 판 코에이는 돈 카라스코 자식 중에 정중앙에 자리 잡은 바르톨로메가 장애를 가진 난쟁이로 설정했다. 중세를 벗어났지만, 당대에 장애는 신의 저주로 간주되었던 모양이다. 돈 카라스코는 그래서 마드리드에 아들 바르톨로메를 데려 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다른 가족들과 함께 수도에 간다는 바르톨로메의 주장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가끔 네 발로 기는 바르톨로메는 다른 이들의 눈에 띠지 않기 위해 궤짝에 들어가 제국의 수도로 향한다.
마드리드로 가는 길은 카라스코 패밀리 모두에게 고난의 행군이었다.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거친 길을 걷다 보면 발이 붓고 터지는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수도에서 기다리는 찬란한 삶은 카라스코 패밀리의 고난을 무마하기에 충분했던 걸까.
수도에서 성공한 난쟁이 엘 프리모의 경우를 따라, 바르톨로메는 서기로 성공해서 사람 몫을 하기 위해 크리스토발 수사에게 글공부를 시작한다. 물론 돈 카라스코는 둘째 아들의 외출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띠지 말라고 명령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면 아버지의 사랑을 얻을까 노심초사하지만, 아버지의 자랑은 그저 다른 온전한 자식들뿐이었다. 가뜩이나 장애로 위축된 바르톨로메가 느낄 상실감이 느껴지는가.
영민한 바르톨로메의 스승, 크리스토발 수사는 불쌍한 제자에게서 신이 계획한 삶의 오묘한 섭리를 느낀다. 바르톨로메는 특유의 성실함과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그야말로 스승 크리스토발 수사 알려주는 정보들을 문자 그대로 습자지처럼 흡수해 버리지 않았던가. 바르톨로메가 성경으로 다음으로 만나게 된 책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지금은 책의 수급이 어렵지 않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책으로 대변되는 문학은 부유한 지식인 계급이나 향유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로 접어들 시간이 되었다. 바르톨로메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아버지가 섬기는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 공주의 눈에 들어 ‘인간개’로 변신하게 된다. 마르가리타 같은 높은 계급의 귀족들은 일상이 따분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지엄하신 공주는 특이한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자신이 조직한 기인한 캐릭터들로 구성된 서커스단이 그 중에 하나였던 모양이다. 특히 바르톨로메 같은 상상 이상의 추물이라면 더더욱 환영을 받았을 지도.
공주의 손에 넘겨진 바르톨로메는 당대 유명했던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휘하에서 도제 수업 중이던 안드레스가 그려준 개분장을 하고 데뷔전을 치른다. 아니 이게 정말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하지만 위기는 기회였다고 했던가. 글을 깨우친 바르톨로메는 궁정에서 라이벌 니콜라시토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지만, 그림그리기에서 자신이 가진 천부적 재능을 발견하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는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 시절인 1656년 발표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을 모티프로 삼은 소설이다. 그림 한 편에서 어떻게 그렇게 당대의 시대상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뿜어져 나왔는지 대단하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바르톨로메의 불우한 삶으로부터 시작해서, 글쓰기와 그림 공부로 난국을 돌파해 가는 과정, 영국에 앞서 해가지지 않은 제국이었던 스페인 왕실 내부의 은밀한 속살까지 다양하면서도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통해 펼쳐진다.
공주의 노리개로 인간개 같은 존재였던 바르톨로메가 천재적 재능과 감각으로 벨라스케스의 제자 파레하 선생의 도제가 되는 과정은 아무래도 작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하지만, 정식으로 화가가 되기 위한 길드/조합에서 도제 과정을 거치지 않은 바르톨로메는 영원히 화가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무어인 파레하 선생 휘하에서 우리의 바르모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시녀들>의 주인공은 마르가리타 공주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2세와 결혼해서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한다. 다만 21세의 나이에 다섯 번째 자녀를 유산하고 요절했다던가. 자신이 그린 그림인 <시녀들>에 등장하는 화가 벨라스케스는 귀족의 일원으로 산티아고 기사단원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소설에서 벨라스케스는 인간개를 지우고, 대신 진짜 개를 등장시킨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라헐 판 코에이 작가의 다른 책도 만나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