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일 : 2024년 7월 3일 수요일
이번 월초에 이른 휴가를 속초로 다녀왔다. 난 사람 많은 건 질색이라. 극성수기에 돌입하게 되면 로드 트래픽은 물론이고, 당연시되는 바가지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데 마침 장마철이더라. 아이구야. 3박 4일 일정 중에 하루는 비로 공쳤다. 우리 달궁 보스님은 나보고 명예 속초시민이라고. 참고로 그 양반이 진짜 속초 사람이다. 나는 가짜고.
가기 전에 안가본 곳 어딜 한 번 가볼까 싶어서 주욱 훑어 봤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문우당서림이었다. 속초에 ㄷㅇ서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전에 한 번 방문했었는데 나는 노인장의 불친절함에 학을 떼서 다시는 안가는 것으로.
아니 그전날 비가 왕창 내릴 적에 여길 왔었어야 했는데 말이지. 아니 입장하기 전부터 마음에 든다. 꼬맹이 데불고 어딜 갈 때면 비가 가장 큰 적이다. 어른들이야 카페나 이런 데 가서 멍때리기라도 하지,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꼬맹스들이 어디 카페에서 버틸 재간이 있나 그래. 너튜브나 쥐어 주면 몰라도. 사실 그 꼴도 못보겠고.
마침 숙소 근처라서 걸어서 갔는데 옆에 보니 주차장도 있더라. 나중에 물어 보니, 주차장 맞다고 한다. 그전날 비가 많이 와서 아주 습했는데 말이지. 더위가 문제가 아니라 습기가 더 큰 적이었다. 거리에는 우리 같이 뚜벅이 친구들이 배낭을 메고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이런 게 낭만 아니겠냐고.
포스팅을 위해서 일단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한다. 사진이 많으면 골라서 쓸 수 있지만, 쓸만한 게 없으면 다시 갈 수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나의 포스팅 지론이다.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찍어라. 다 쓸 데가 있으니. 그렇게 말은 하지만 막상 사진 찍는다는 게 쉽지가 않다. 프레임부터 시작해서 포스팅까지 염두해 두면서 '찍기'를 해야 한다면 사실 좀 귀찮다. 기존의 읽고 쓰기에서 이제 보고 찍기로 바뀌어 가는 텍스트 대전환의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 우리는.
아 무려 <백년가게>다. 중소기업청인가에서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이런 백년가게를 선정한다는 뉴스를 들었지 아마. 어쩌면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게 바로 이 <문우당서림>일지도 모르겠다.
지난주에 우리 옆동네 유일한 백년가게인 <부곡통닭>의 그 유명한 반반 치킨을 먹어 보려고 했으나, 포장 대기가 무려 한 시간이라는 말에 바로 포기해 버렸다. 내 언젠가 반드시 먹어 보리라. 먹고 싶은 거 하나도 마음 대로 먹을 수가 없구만 그래. 백년가게 부곡통닭 포스팅도 기대해 주시라.
가게 매대에서 처음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책이 바로 작가 중의 작가라는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이었다. 물론 그전에 읽은 책이다. 나는 재즈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몇몇 좋아하는 넘버들이 있다. 그 중에서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모 베러 블루스>는 너무 좋아한다.
그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가 을유문화사에서 아마 판권을 새로 얻어서 새로운 번역으로 나왔다. 이 책도 침대 머리맡에 있지 싶은데. 다시 읽다 말았다. 또 언젠가 다시 이어서 읽게 되지 않을까.
문우당서림의 종교책 섹션도 강력하다. 안그래도 얼마 전 유연하게 폴 존슨 작가의 책들을 검색해 본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니 반갑더라. 책 두께가 아주 후덜덜하지 않은가. 출판사는 포이에마라고. 아마 종교 서적 전문 출판사가 아닌가 싶더라. 생각 같아서는 집어서 촤라락 살펴 보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포기했다. 목이 말라서 일단 물부터 조금 마셔야지.
한쪽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역시 마음에 들었다. 약간 주변이 어두웠는데, 조명도 있어서 책 보기에 불편함이 없더라. 이런 서비스 좋다.
책 읽는 데 맞은 편에는 이렇게 마음껏 낙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뒤에 보이는 노트들은 그동안 문우당서림을 방문한 이들이 남긴 글들이 기록되어 있더라.
아하 그렇군.
나도 몇 자 적으려다가 그만 두었다. 글씨를 너무 못 쓰는 탓도 있고 무언가 생각하려고 하니 그냥 오전의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대신 최근 글은 아니고 예전에 쓴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글 하나를 데려왔다.
글씨체도 마음에 들고...
뭐랄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모든게 억지스럽지 않고
모두가 분주하지 않아
더 좋은 곳입니다.
이 표현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멋지지 않은가.
오전 시간이라 사람이 더 없어서 좋더라.
이제 2층으로 올라가 보자.
개인적으로 평일 오전 시간이라 서점에 손님들이 없어서 사진 찍기에 좋았다.
그래도 다른 분들에게 사진 셔터 소리가 불편할 수 있으니 아주 잽싸게 셔터를 누른다.
2층은 확실하게 1층과 다른 구성으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아니 내가 요즘 즐겨 읽는 그래픽노블들이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특히 그전에 읽은 한나 아렌트의 책을 만나니 참 반갑다. 서점에 갈 때 내가 읽은 책 혹은 소장하고 있는 책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2층의 한 코너에는 박완서 작가의 책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보니 난 아직도 한 번도 박완서 선생의 책을 읽지 않았나 보다.
예전에 소설가 김영하 선생이 박완서 선생의 집을 찾아가는 길에 부랴부랴 그의 책을 읽던 그런 기억이 난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에서 책소개 프로그램도 하고 그랬었는데 이젠 다 없어져 버렸다. 그것마저도 너튜브가 담당하게 된 건가.
이게 무언가! 말로만 듣던 피렌체 출신의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의 한정판 <신곡>이 아닌가. 괴테가 단테의 <신곡>을 일컬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했다고.
신부님 번역으로 신곡을 읽겠다고 도전했지만 역시나 완독하지 못했다.
500부 한정판 중에 286번째 작품이라고?
가만 책을 살펴보면 얼마나 사람들이 펼쳐 보았는지 책이 상당히 헐어 있다.
아마 이 책이 나왔을 적에 가지고 싶긴 했지만 비싸서 사지 못하지 않았을까.
소장만 해도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 않았을까.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 사진을 한 번 찍어본다. 갖고 싶어서? 부러워서? 아마 다양한 그런 감정이 들었겠지.
2층에도 역시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또 1층의 그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여기가 좀 더 밝은 느낌이랄까.
서점이 도서관인가? 그건 아니지 않나.
예전에 우리 동네에 반디앤루니스 서점이 들어와 있었는데(아쉽게도 얼마 가지 않아 망했다) 사람들이 책은 사지 않고 모두 잘 구비된 독서대에서 책을 읽었다.
우리 꼬맹이도 반디를 도서관으로 착각했더라는. 그땐 그랬지.
실물로 보고 잠시 이 책을 사야 하나 잠시 고민했던 스피노자의 저작에 대한 그래픽노블들이다. 아예 난 이 책들의 존재를 몰랐네 그래.
도서관에 있거나 아니면 중고책으로 사들일 수 있나 찾아봐야겠다.
세상의 모든 책들을 다 갖고 싶은 뜨거운 욕망, 물론 그전에 읽을 수 있나에 대해 물어보게 되지 않을까.
너튜브로 강연을 듣고 당장 도서관에 달려 가서 읽은 황현필 선생의 책을 서점에서 만나게 되니 또 반갑더라. 강연을 계속해서 듣게 될 줄 알았는데 또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더군.
얼마 전에 생각나서 찾아 보니, 독립전쟁 영화 시나리오 작업 때문인지 당분간 강의를 쉬겠다는 공지를 하시더군. 암튼 잘 마치시고 속히 복귀하시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까지 나의 구매 후보에 올랐던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책이다.
목차를 가만 살펴보니 과연 내가 부담 가지지 않고 다 읽을 수 있을까가 고민되더라. 결국 이 책은 나중에 사거나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의 픽은 역시 유시민 선생의 신간이었다.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도 못 다 읽었다. 김용 선생의 드라마 <사조영웅전 2024>도 봐야 하고...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도 거북이 걸음으로 읽어야 하며...
아, 한동수 전 검찰감찰부장의 책도 유시민 선생의 책으로 알게 되었네. 그 책도 빌려서 읽는다.
또 연두 독서모임 책도. 스레드를 통해 알게 된 자연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의 책들도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바람에 나의 독서 새끼줄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뭐 그래도 언제가는 다 읽게 되겠지.
다음에 또 속초에 가게 되면 문우당서림에 갈테다.
이 녀석은 이번 속초여행에서 업어온 속고양(속초-고성-양양)의 캐릭터
라는 뚱매기라고 한다.
비가 내리던 세 번째 날에 롯데리조트에 가서 커피 마시고 소품샵에 들렀다가
산 자석이다. 단가는 5,000원이었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