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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새로운 책을 접하게 되는 채널은 다양하다. 종이신문에 실리는 책 소개도 참조하고, 요즘에는 인스타 그리고 스레드를 통해 새로운 책들을 알게 된다. 나의 인스타 피드에 오른 캐드펠 수사 시리즈도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렇다면 또 내가 참을 수가 없지.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무려 20권이나 된다는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빌렸다.
우리의 주인공은 58세 정도로 추정되는 퇴역한 십자군 전사 캐드펠 수사다. 캐드펠 수사는 젊어서 세상을 주유하면 많은 경험을 쌓았다. 동방에 가서는 성도 예루살렘에도 갔었다고 했던가. 이 양반은 수도원보다 어쩌면 속세에 더 어울리는 인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그런 매력을 지닌 특이한 수사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여러 여성과 연애 경험도 많은 것 같다고 추정된다. 참고로 중세 교황들은 자식도 여럿 두었었다.
지난 15년 동안,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의 슈루즈베리 수도원에서 허브 밭을 가꾸며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게 살던 캐드펠 수사에게 이제 막 파란만장한 모험이 펼쳐질 5월의 어느날이 다가왔다.
클뤼니 수도회에서 촉발한 성인들의 유물 그리고 유골 수집에 대한 열풍은 슈루즈베리 수도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광과 짭짤한 수입을 가져다 줄 성물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야심가 로버트 부수도원장과 결탁(?)한 콜룸바누스-제롬 수도사 콤비의 활약으로 귀더린이라는 곳에 있다는 성처녀 위니프리드의 유골 발굴에 나선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여기서 정확하게 중세를 휩쓸었던 성물 수집 열풍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 시선을 보여준다. 나도 예전에 로마에 갔을 적에, 가톨릭 사제로 로마에서 유학하던 사촌 형님과 성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개인적 성화의 발로가 아닌가 싶었다.
자 문제는 귀더린 사람들이 슈루즈베리에서 파견된 6인조 유골 발굴단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이다. 참, 캐드펠은 웨일스 출신으로 잉글랜드 사람들을 위한 통역으로 발굴단에 선발됐다. 그리고 자신의 수하에 있던 수사라기보다 건달 같아 보이는 존 수사도 같이 동행한다. 캐드펠은 특유의 친화력과 같은 웨일스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역 유지인 리샤르트와 그의 딸 쇼네드, 대장장이 베네드 등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캐드펠과 대조적으로 노르만 귀족 출신의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고압적이고 오만한 자세로 귀더린 사람들에게 비호감을 산다. 사실 국왕의 권력을 능가하던 중세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로,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귀더린 촌구석에 사는 이들의 외지인에 대한 반감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오해에서 비롯된 충돌이 발생할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귀더린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유지 리샤르트를 돈으로 매수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망신만 당한다. 더 큰 문제는 다시 한 번 성 위니프리드의 유골 이전 문제에 대한 협상을 하기 위해, 모임에 오던 리샤르트가 행방불명되고 나중에 싸늘하게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소설은 미궁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우리 캐드펠 수사가 실력을 발휘할 순서다. 중세 사람답지 않게, 리샤르트가 살해된 현장을 보존하라고 귀더린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런 건 현대식 수사 방식이 아닌가. 이야기는 성 위니프리드 유골 이전 문제에서, 리샤르트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가로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다. 지금처럼 지문 검사나 CCTV나 녹음 자료 같은 범행의 전모를 밝혀줄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캐드펠 수사의 수사는 자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명백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제 해결 방식도 상당히 중세스러운 방식을 선택한다. 그리고 결론은 모두가 행복한 엔딩이다. 역시 수사답게, 모든 건 신의 뜻에 맡긴다. 신의 종을 자처하는 수사지만 캐드펠은 미제 사건을 상당 부분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처리한다. 현대식 탐정들과 달리, 일이 흘러가는 대로 억지스럽지 않게 하는 방식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엘리스 피터스 작가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47년 전에 쓰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올드스쿨 스타일에 아주 세련되진 않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 캐드펠은 신의 소명을 받은 수사지만, 동방의 성도에서는 사라센인들의 화살 공격에 맞서 싸운 전사였으며 15년 동안의 수도원 허브 밭 주인으로 진통제 역할을 하는 양귀비즙의 효능에 대해서도 잘 아는 그리고 속세의 잔기술을 사용하는 데도 능한 그런 인물이다. 수도원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존 수사가 사랑을 찾아 떠날 때에도 전적으로 공감해 주지 않았던가. 엄숙한 신의 뜻과 사그라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의 본질을 잘 아는 캐드펠 수사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