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국지톡 7 ㅣ 삼국지톡 7
무적핑크 지음, 이리 그림, 와이랩(YLAB) 기획.제작 / 문학동네 / 2024년 4월
평점 :
주간 행사인 도서관에 방문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히샴 마타르의 <시에나에서의 한 달>을 들고 갔지만 정작 읽지는 못하고 다른 책들 구경하고 빌리고 그랬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는 이달부터 관외대출 도서의 수를 7권에서 10권으로 늘렸다. 그리고 그 혜택을 바로 받기 시작했다. 신난다.
삼국지 코너에서 발견한 게 바로 무적핑크의 <삼국지톡>이었다. 그전에도 살짝 맛을 본 지라, 어떤 이야기가 있나 싶어서 바로 대출신청을 했다. 아니 그전에 좀 읽다가(한 백쪽 정도) 밥 먹으러 갈 시간이 되어 일단 빌렸다.
훗날 거의 천하를 집어 삼킨 조조도 그 시절에는 한낱 군웅에 불과했다. 연주에 자리잡은 조조는 서주대학살(193-194년) 사건으로 자신의 책사였던 진궁에게 배신을 당한다. 바로 이웃한 서주에서 유비가 도겸에서 서주 자사 자리를 날로 먹으려던 걸 참을 수가 없어 요격에 나선 동안, 진궁은 여포와 장막을 이용해서 조조를 배신하고 본진털이에 나섰다. 연주의 두 개 요점인 연주성과 복양성을 모두 점령해 버렸다.
아마 이 때가 조조의 최대 위기가 아니었을까? 나중에 위왕의 자리에 오른 다음에는 천하의 절반을 집어 삼켜 그의 권력은 공고해졌고, 이런 시절 같은 위기는 오지 않았다. 본거지를 털린 군주가 과연 다시 무력을 동반한 권력투쟁에 나설 수 있을까?
진궁은 조조가 천하에 평화를 가져올 인물이라 생각하고 그를 섬겼지만, 서주에서 백성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서 버렸다. 자신의 근거지였던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아마 조조가 본진을 비웠을 때, 장막-여포-진궁의 배신에 백성들이 가담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만이 이렇게 간웅으로서의 이미지를 착착 쌓아 가고 있을 때, 서주에서 유비는 반대 이미지를 쌓는데 성공한다. 무력을 쓰지 않고 그러니까,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던 도겸이 스스로 서주자사의 인을 자신에게 건네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달라고 하지 않아도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은 후한말 같은 난세에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난세에 살아남기 위한 군사력을 위한 병사들의 수도, 설사 병사들의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먹이고 무장시킬 쩐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럴 때, 유비에게 등장한 구세주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미축이었다. 서주 인근에서 부자로 이름을 날리던 미씨 집안의 가독이었던 모양이다. 미축은 든든한 지원과 더불어 유비에게 자신의 여동생 미영란을 시집 보내 매부로 삼으려고 한다. 문제는 유비가 이미 감소혜라는 처자와 혼인한 유부라는 사실이었다. 연의와 정사를 오가다 보니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한편, 조조의 수하 순욱과 정욱은 사력을 다해서 동아와 견성 그리고 범현 세 곳의 근거지를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자신의 본거지를 잃은 조조는 진궁의 계교에 다시 한 번 빠져 복양성 탈환전에서 거의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다. 가까스로 전위의 활약으로 살아나는데 성공한 조조는 권토중래의 시간을 갖는다.
기주에 웅거한 실력자 원본초는 이런 아만의 위기를 보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지원해줄 것을 제안한다. 아만의 입장에서는 정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처지가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아만의 책사 정욱은 절대 그런 선택을 해서는 안된다고 진언한다. 게다가 기주의 원본초가 서주의 유비와 연합하려는 정황에 대해서도 보고한다. 대신, 자금과 군량을 얻기 위해 황건적 잔당을 습격하자는 역제안을 날린다. 어쩌면 훗날 아만의 청주군단으로 유명해진 전설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정욱의 제안대로, 황건 잔당을 토벌하고 이 와중에 호치장군으로 알려진 허저라는 용장도 얻는다.
가히 삼국지 최고의 전사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여포는 모사 진궁의 진언을 따르지 않았다가 어렵게 얻은 연주성과 복양성을 차례로 조조에 손에 넘겨주고, 다시 한 번 오갈 데가 없어진 여포를 데리고 서주의 유비에게 투항한다. 삼국지 초반, 조조에게 이런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준 인물이 진궁 말고 또 누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여포가 진궁의 진언대로, 연주성과 복양성을 든든하게 지키면서 조조 일당을 요격했다면 조조가 중원을 제패하는 일 따위는 아예 벌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자 이제 아만의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카톡은 강동의 드넓은 양주로 이동한다. 강동의 호랑이라 불렸던 손문대의 유아 손책이 원술의 부대를 지휘해서 이 지역 최대 호족이었던 육씨 집안과 2년 간의 사투를 벌이고 중이었다. 한나라의 뼈대 있는 원씨 집안 출신의 원술은 손책 집단을 거의 자신의 강아지 다루듯 하는 중이었던 모양이다. 아버지 손문대에게도 그랬지만, 원술은 자신의 부하에게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육씨 집안을 제압하면 여강태수 자리를 주겠노라고 약속했지만, 아버지에 이어 아들 손책에게도 다시 한 번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어느 군웅 집단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할거 하기에 앞서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이 필요했다. 이미 약관의 나이 손책에게는 아버지 대부터 충성을 다하던 황개와 정보 같은 노장들이 존재했다. 그 다음 선수로는 자신과 동갑내기 공근 주유가 등장한다. 언젠가 삼국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교수님이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주유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적벽대전 이후 공명에게 너무 발리는 바람에 요절했다지 아마.
이 때 12살이었던 육씨 집안의 가독 육손을 용서해서 휘하에 두고, 관우를 잡고 형주를 공략하게 되는 흙수저 십대 소년 여몽도 주유에게 맡기는 인재 픽업의 빌드업을 손책은 열심히 구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울러 오나라의 기틀이 되는 손권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해 주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형님을 잘 만난 부잣집 도련님 정도의 이미지랄까.
이야기는 다시 중원으로 돌아가, 동탁 사후 잔당이었던 이각과 곽사는 가후의 충고대로 장안에서 후한의 마지막 천자 헌제 유협을 옹위하고 권력을 농단한다. 이각과 곽사는 서로 못 잡아먹을 것처럼 그렇게 싸우다가도, 또 위기가 닥치면 서로 연합해서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그런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어쨌든 헌제는 이각과 곽사로부터 탈출해서 낙양으로 향한다. 천자가 자신들의 수중에서 탈출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권력 행사도 끝이라는 걸 알게된 이각과 곽사는 전력을 다해 천자의 탈출을 막지만, 이번에는 조조가 한 발짝 더 빨랐다.
정사에서는 이각-곽사-장제 연합군에게 동승과 양봉 천자군이 대패하고 장안에서는 일대 아수라장이 벌어지는데, 이를 <삼보의 난>이라고 부른다. 삼국지톡에서는 비교적 간략하게 상술되어 있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한 연주자사 조조에게 헌제는 무향후로 봉하고 녹상서사, 사례교위 그리고 대장군에 봉했다(196년). 이로서 조조는 일개 군웅에서 천자를 품은 조정의 대신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대의명분이라는 차원에서 조조의 선점 효과는 대단했다.
마지막으로 서주의 유비에게 간 여포가 다시 한 번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비는 자신은 서주를 품을 그릇이 아니라고 하면서 여포와 진궁 집단에게 서주를 양보하겠다는 쇼를 연출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전후사정을 고려한다면, 유비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였다. 자신이 무력으로 여포에게 대항해서 서주를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고려한 게 아니었을까.
종이 문서 외에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없었던 1,800년 전 당시에 현대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카톡으로 마치 당시 상황을 중계하는 방식의 전개가 인상적이다.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삼국지가 현대에 이런 식으로 변개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캐릭터 이미지가 너무 비슷해서, 특히 계속해서 등장하고 사라지는 조연들에 대한 확실한 개성이 떨어지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내가 캐릭터들에 너무 비중을 두지 않고 대충대충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