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별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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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1볼라뇨를 읽는 중이다. 역시 예전에 한 번 읽었던 글들이라 그런지 소화가 쑥쑥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볼라뇨 읽기 가운데 <먼 별>과 만났다. 그리고 내가 가장 처음으로 만난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맨 끝에 실린 단편을 확장해서 리라이팅한 것이 바로 <먼 별>이었다.

 

<먼 별>은 독재문학을 기초로 삼은 느와르 스타일의 추리소설이다. 볼라뇨의 얼터 이고라고 할 수 있는 아르투로 벨라노가 들려주는 연쇄 살인마 카를로스 라미레스 호프만 혹은 카를로스 비더, 그도 아니라면 알베르토 루이스 타글레의 삶을 추적한다. 전작에서 짧게 다뤄진 서사는 <먼 별>에서 보다 확장된 서사로 독자를 맞이한다. 나는 그래서 결국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 찾아 호프만 중위의 전사(前事)를 찾아 읽어 봤다. 인물들의 이름이 조금 다르게 나오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1970년대 초반, 시창작 교실에 나타난 알베르토 루이스 타글레와의 인연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사실 카를로스 라미레스 호프만이라는 이름의 칠레 공군 소속의 중위였다. 그러니까 그는 소위 시창작 교실이라는 간판을 걸고 불온한 모임을 갖는 좌파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임무를 맡은 프락치(fraktsiya)였다. 시창작 모임에는 당시 문단에서 주목을 받던 베로니카와 앙헬리카 가르멘디아 자매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아는 1973911, 쿠데타가 발생했고 가르멘디아 자매는 지방으로 몸을 피했다. 루이스 타글레는 어느 날 밤, 그는 문단에서 주목을 받던 가르멘디아 자매를 찾아가 살해한다. 어때, 시작부터 살벌하지 않은가.

 

시리얼 킬러 공군 중위의 기행은 이제 막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 주력기였던 메서슈미트 Bf 109를 몰고 공중에 연기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Fiat Lux라는 요한복음 첫 장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문구를 스페인어도 아닌 무려 라틴어로 쓰는 이 빌런은 분명 지식인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가 지식인이라고 해서 그가 암흑 시절에 행한 악행이 지워지는 건 아닐 것이다.

 

볼라뇨의 다른 작품 <칠레의 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니카시오 이바카체 신부/평론가가 등장해서 카를로스 비더의 작품에 대한 평을 하는 시퀀스도 아주 흥미로웠다.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들을 작품에 등장시켜 상호간에 작용시키는 기법이 마음에 들었다.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캐릭터의 재활용인데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산티아고 퍼포먼스를 대충 마친 이 빌런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소름 끼치는 사진 전시회를 기획해서 손님들을 초대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소시오패스 같은 고백이라고 할까. 그는 분명 시인을 위장한 예술가가 아닌 범죄자였다.

 

우리의 아르투리토 벨라노는 그전에 볼셰비키 유대인이었던 후안 스테인과 디에고 소토라는 특별한 인물들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아르투리토 벨라노가 나치와 2차 세계대전 마니아라는 건, 그의 저작들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먼저 피노체트 쿠데타가 발생한 칠레를 탈출해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독재에 대한 무장투쟁이 벌어지는 거의 모든 곳에 등장해서 전설이 된 시인이자 전사였던 후안 스테인은 이반 체르냐호프스키라는 독일 파시스트를 상대로 한 소련의 대조국전쟁에서 명성을 날린 공산당 장군의 조카였다. 문학과 무장투쟁이라는 상극의 요소 역시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던 걸까. 시 창작 교실의 지도자였던 양반이 느닷 없이 게릴라 전사로 변신해서 마나구아 해방과 엘살바도르 내전에 참가해서 명성을 날렸다는 그야말로 판타지에 가까운 서사가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그리고 어려서 사고로 두 팔을 잃은 로렌소 아니 로렌사에 대한 에피소드도 기억할 만하다.

 

후안 스테인의 삶을 추적하는 장면과 슈퍼 빌런 카를로스 비더의 뒤를 쫓는 장면이 중첩되면서 몽매한 독자는 다시 한 번 문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책을 읽고 나서 부조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점진적인 의식의 전환을 이루는 것만으로도 귀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라고 감히 유추해본다.

 

, 이제 본격적인 시리얼 킬러의 추적에 나설 차례가 되었다. 우선 아옌데 정부 시절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전직 경찰 아벨 로메로가 등장한다. 아옌데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은 로메로는 피노체트 시절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고 유럽으로 망명했다. 나고 자란 땅이 아닌 타지에 뿌리를 내린 이들처럼 수년간의 고생은 나라 잃은 망명자들에게는 기본 옵션이었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을 망각시키고, 파괴해 버리는 시간이 흘러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던 로메로에게 동포 한 명이 카를로스 비더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한다. 돈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카를로스 비더 혹은 루이스 타글레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 때문에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종적을 감췄다. 자신을 드러낸 악당보다 이렇게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사라진 전설적 살인마를 추적하는 게 소설적 재미를 더 주지 않는가 말이다. 아벨 로메로는 우리의 아르투리토를 찾아와 시인 행세를 하는 범죄자를 찾아 달라는 주문을 한다. 자신만의 문학을 포기할 수 없었던 사이비 시인이 이곳저곳에 남긴 자료들을 안겨 주면서. 50만 페세타의 사례비는 아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르투리토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로메로가 카를로스 비더를 찾아내면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피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암흑시절에 사라져간 이들에게 그리고 피의 복수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공허한 외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2년 전에 볼라뇨의 책들이 나오는 족족 사서 읽던 시절이 문득 생각났다. 볼라뇨를 다시 만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갑자기 애정하게 된 작가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자 허겁지겁 제대로 씹지도 않고 그대로 삼켜 버렸다면, 지금은 좀 더 익은 시선으로 그의 저작들을 만나고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로베르토 볼라뇨가 <먼 별>에서 설계한 서사는 완벽하지 않았나 싶다. 독재문학이라는 베이스에 카를로스 비더-알베르토 루이스 타글레라는 시대의 악당을 배치하고, 한 시대를 명멸해 간 인물들을 관조적인 시선에서 조용하게 수놓는다. 가해자들은 용서와 화해를 말하지만, 피해자들은 복수를 원한다. 이렇게 서로 상충하는 생각들을 두고, 열린 결말이라는 탁월한 선택으로 <먼 별>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스스로를 유럽의 공장들에서 길을 잃은 묘한 시인”으로 자신을 규정한 로베르토 볼라뇨.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뱀다리] 볼라뇨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서사들이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인지 궁금해졌다. 실제 피노체트 군사독재 시절에 있었던 사건 사고들에 대한 볼라뇨식 변형이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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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5-13 15: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글을 읽을 때 매번 느끼는 감탄은 인용문을 쓰지 않아도 글을 채우실 수 있는 능력이십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런 경지에 오르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로베르토 볼라뇨 작가 다시 찜합니다^^

레삭매냐 2022-05-13 20:28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제가 책 읽으면서 인용하겠
노라고 밑줄도 좍좍 긋고
메모도 하지만 막상 리뷰를
쓸 적에는 기냥 느낌으로
파파밧~하는 스탈이라 인용
을 못하곤 하네요 :>

사람들마다 다 스탈이 다르니
깐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
다.

mini74 2022-05-13 17: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볼리뇨 작가분이 매냐님 리뷰를 본다면 감동하지 않을까요 ㅎㅎ 볼라뇨 작가를 매냐님 통해서 전 알게됐어요. 이제 책만 읽으면 됩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2-05-13 20:29   좋아요 2 | URL
ㅋㅋㅋ 하늘에 계신 그 양
반이 미니님의 덧글을 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칠레 출신 돌 I, 문학의 이단
아 작가의 매운맛을 속히
보시길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살인 창녀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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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책들은 어떤 책들인가. 일단 내가 애정하는 작가들의 책은 덮어 놓고 사들인다. 제임스 설터가 그렇고 로맹 가리가 그렇다. 내 마음대로 이달의 작가로 선정한 로베르토 볼라뇨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물론 사들인 책을 모두 읽는 건 아니다.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방치되어 있다가, 별의 순간이 오면 맹수처럼 달려들어 읽어제낀다. 8년 전에 산 <살인 창녀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내가 이 책을 안 읽었단 말인가? 명색이 볼라뇨 팬인데. 하여튼 8년만의 완독을 자축하는 바이다.

 

무슨 마음에서인지 이달 들어 다시 볼라뇨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보니 계기가 있었구나. 볼라뇨의 유작 <SF의 유령>에서 촉발되지 않았나 싶다. <칠레의 밤>을 필두로 해서 <살인 창녀들>까지 세 권을 읽었다. 지금은 <먼 별><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 동시다발적으로 읽고 있다. 이제사 왠지 슬럼프에 빠졌던 책읽기의 본궤도 오른 느낌이랄까.

 

제목도 거시키한 <살인 창녀들>에는 모두 13개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장편 소설보다 짧게 짧게 끊어치는 단편 리뷰가 더 어렵지 않나 싶다. 한 작품마다 리뷰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래도 강렬한 이미지의 잔상이 남아 있는 단편 위주의 리뷰로 흘러가지 않나 싶다. 보통 출퇴근길 버스에서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데, 학생들이 볼까 두려워 책 제목을 마스킹 테이프로 가렸다. 포장지로 제목을 가린 애덤 써웰의 <나의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이래 처음이지 싶다.

 

나는 축구에 대하 문외한이지만 서로의 피를 공유하는 축구 선수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부바>가 참 매력적이었다.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화자 아베세도는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외국인 용병이기에 더 그랬을까? 룸메이트이자 동료로 아프리카 출신 부바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흥미를 돋우기 시작한다. 팀의 승리를 위해, 부과 영광을 위해 서로 피를 나누는 세리머니를 통해 아베세도와 부바 그리고 에레라는 기묘한 주술 의식을 경기 전날 치르기 시작한다. 사실 단편의 엔딩은 중요하지 않다. MLB의 광팬인 나는 야구 선수들이 돈과 명성을 얻기 위해 자신들에게 금지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축구나 야구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가 약물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지 않나 싶다. 가장 강력한 약물 방지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올림픽에서도 줄줄이 도핑 선수가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표제작 <살인 창녀들>에서는 창녀에게 생포되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남자의 이야기다. 정확한 이유는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 시스템에서 착취당하는 계급의 일원이 포식자가 된다는 소설적 상상이 보여주는 가치의 전도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인과성의 부족해서 콘텐츠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우리의 볼라뇨가 그렇게 친절한 작가는 아니니까.

 

모두 69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무도회 수첩>에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거장 파블로 네루다와 보르헤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작가들이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모두까기의 달인 볼라뇨에게 자비란 존재하지 않았다. 볼라뇨는 선배 작가 네루다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음을 비판한 걸까?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문학의 사회적 기능 그리고 그 문학을 생산해내는 작가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문학의 이단아에게 성역이란 1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볼라뇨가 계속 살아남아 기성 문단 작가가 되었을 때, 그 역시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하늘의 별이 된 지금, 요절 작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보다는 숭배와 추앙이 대세가 된 마당에 그 누가 볼라뇨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개인적으로 <살인 창녀들>의 문제작은 바로 <랄로 쿠라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포르노그래피가 지금은 야동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달고 사회의 이곳저곳을 횡행하게 되었지만, 오래 전에는 손에 넣기가 쉽지 않은 그런 아이템이었다.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돈이 된다는 것이다. 포르노 배우와 사제의 아들로 태어난 랄로 쿠라가 들려주는 그 동네 연대기는 서글픈 현실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과연 예술이란 무언가에 대한 볼라뇨의 생각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멕시코시티에서 보낸 십대 시절, 아마 볼라뇨는 시 창작에 매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저술한 거의 모든 작품에 시 창작과 시 동호회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시 창작이 고상함과 숭고함의 극단이라고 한다면, 그 대척점에는 랄로 쿠라가 추적하는 포르노그래피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저속함의 대표선수로 버티고 있지 않나 싶다. 결국 상호 극단을 오가는 예술의 가치나 정의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려나.

 


아버지와 같이 여행 가서 내내 책만 읽는 청년의 이야기도 마음에 들었다. 멀리 아카풀코까지 가서 쾌락을 추구하는 아버지를 혐오하면서, 초현실주의 작품을 읽는 아들의 모습에서 내가 추구하는 다른 의미의 쾌락이 언뜻 보이는가 싶었다. 일상에서의 일탈을 의미하는 여행에서 반드시 맛있는 것을 먹고, 무언가 새롭고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천편일률적인 사고에 대한 강력한 어퍼컷이 아닐 수 없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속세로부터 벗어난다는 점은 좋다. 여행하는 내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 이래서 내가 여행을 떠났지라는 각성의 순간이 온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지난주에 방문했던 고성 왕곡마을의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그리고 개울가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을 보면서 그런 느낌 말이다.

 

몹시 불친절한 볼라뇨 씨의 책들을 하나하나 독파하면서 그가 서술하는 모든 걸 수용하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의 능력으로서는 그럴 수도 없고, 그걸 의지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순수함과 사악함 사이에서 자유자재로 노니는 이 문학적 공상가를 어찌 애정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씹을수록 무언가 오묘한 맛이 느껴지는 칡 같은 작가다.

 

[뱀다리] 일단 산 책들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언젠가는 읽는다. 이 책을 읽는데 무려 8년이 걸렸다. 그러니 책 사는데 아무런 걱정은 하지 마시라. 산 책을 읽지 않는다고 전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책을 사고, 읽어라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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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12 12: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도 그렇고 내용도 참 충격적이네요~!! 첨 들어본 작가인데 저도 한번 빠져보고 싶습니다 ^^

레삭매냐 2022-05-12 13:09   좋아요 2 | URL
일단 제목부터 아주 기냥...

제가 오죽했으면 제목을 마
스킹 테이프로 가렸겠습니까.

볼라뇨는 고저 사랑입네다.

페넬로페 2022-05-12 1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베르토 볼라뇨 작가의 소개가 너무 좋은 페이퍼입니다.
엄청 끌리네요.
가차없이 까는것과 친절하지 않다는 것도 맘에 듭니다**

레삭매냐 2022-05-12 13:10   좋아요 1 | URL
제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아, 이 작가로구나 싶었던
그런 작가 중의 하나랍니다.

십여년이 지나 다시 읽는
기분 매우 짜릿합니다.

자기만의 세상에 사시던 분
이라 그런지 -
여튼 대단히 매력적인 작가
입니다.

coolcat329 2022-05-12 1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제목이!😬
저도 볼라뇨가 참 궁금합니다.
근데 참으로 ‘불친절한‘ 작가인가 보네요.
저도 단편이 장편보다 더 어려운데 이 책은 이해못해도 즐길 수 있는 그런 책인듯합니다. 찜합니다!

레삭매냐 2022-05-12 13:23   좋아요 2 | URL
아무래도 자신만의 문학
세계가 확고한 작가다
보니, 따라 오지 못하는
독자를 봐주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편 가운데 주인공이
책을 읽어도 무슨 뜻인
지 모르고 읽는다라는
말을 보면서 용기를 얻
게 되었답니다 ㅋㅋ

mini74 2022-05-12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마지막 문단을 가슴에 새길거 같습니다 매냐님 ㅎㅎ단편내용들이 정말 다 독특하네요.~~

레삭매냐 2022-05-12 17:11   좋아요 1 | URL
요즘 일일 일볼라뇨~하고
있습니다.

다시 읽어서 그런지 기시
감에 술술 넘어 갑니다.

상호연관성이 차고 넘치
는 작가라 일단 한 번 시
작하시면 끊으실 수가 없
을 거라고 단언합니다.

moonnight 2022-05-12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군요. 안 읽은 책들이 쌓여 있지만 일단 주문을^^

레삭매냐 2022-05-12 17:12   좋아요 1 | URL
네 그러합니다.

저희 책쟁이들은 이리
서로 보듬고, 책 사재기
를 권장한다지요.

마구 질러어~~~

라로 2022-05-12 18: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아 웰케 웃기세요!!!ㅎㅎㅎ
저 리뷰 읽으면서 막 웃었잖아요.ㅋㅋ
정말 단편 리뷰가 더 어렵죠,, 어느 것 하나 딱 정해서 올리기도 뭣하고
다 올리자니 또 그렇고, 몇 개는 더 그렇고,,,
암튼 8년만에 사신 책을 이제야 읽으셨다니,,, 아오,,, 매냐님은 진정
저와는 급이 비교가 안 되시는 분이셨어요.^^;;
근데 블라뇨,,, 불친절하군요,, 제가 불친절한 작가에게 약한데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일단 이 단편으로 할까 봐요.^^;;
참참 로맹가리 좋아하신다니 넘 반가와요!! 매냐님 취향이라니 솔찌기 약간 놀랍기도 했고요..
근데 저도 좋아하니까 저야말로 의외이긴 하죠??^^;;;

레삭매냐 2022-05-12 19:42   좋아요 0 | URL
아주 적확하신 분석이십네다.
그렇죠, 모든 단편들을 다 리뷰할
수도 없고... 전 기냥 느낌 가는 대
로 적어 보는 것으로 할랍니다.
설렁설렁 -

전 미처 몰랐었는데, 오래 전에
산 책이라 당근 닐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볼라뇨 읽기 달을
맞아, 이참에 다 읽었습니다.

로맹 가리 아자씨도 딱히 친절하
신 분이 아닌지라 ㅋㅋㅋ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본격 한중일 세계사 12 - 임오군란과 통킹 위기 본격 한중일 세계사 12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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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이나 만화는 대개 도서관을 이용해서 읽는다. 어제 저녁에는 저녁을 먹고 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전부터 굽시니스트 선생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12> 임오군란편을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에 갈 때마다 연이 닿지 않아 빌리지 못했다. 어제도 분명 도서관에 있다는 말을 듣고 행차했는데 서가에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간 코너에 따로 분류가 되어 있더라.

 

사람 없는 호젓한 공간에서 굽시니스트 작가의 만화를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한다. 재밌다.

 

그냥 기억에 의존해서 리뷰를 하다 보니 연도가 정확하지 않아도 부디 이해해 주시길. 1870년대인가 우즈벡 삼국을 모조리 먹어 치운 노스께들과 청나라는 일리에서 쎄게 붙었다. 아편전쟁과 애로우호 사건으로 이미 서구 열강에게 호구 취급당하던 청나라는 이번에도 노스께들에게 물릴 뻔한 위기를 맞게 된다. 이미 만주에서 광활한 연해주를 노스께들에게 먹힌 바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리한 협상을 하다가 판이 엎어질 위기도 처하지만, 대충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다음 무대는 러투전쟁이다. 대략 19세기 역사를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지만 러시아의 남진 저지라는 점에서는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던 모양이다. 이미 크림전쟁으로 러시아의 남진을 막은 전력이 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발칸반도에서 불가리아-세르비아-보스니아 등 예전의 오스만 제국의 속국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자 노스께들이 슬라브주의와 정교회를 앞세워 적극 개입한다. 아르메니아 일원에서 중동의 빈자라 불리던 오스만 제국은 서구의 일진 노스께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역시 외교는 균형이었고, 어느 한 나라가 실컷 먹는 걸 원하지 않았다. 발칸과 중동에서 노스께들의 영향력 강화를 두려워한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이 비록 기독교도들을 학살하고 박해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한 그레이트 게임의 속행을 원했다. 물론 국내 여론들은 무슬림 국가 오스만을 지원하는 데 격렬하게 반대한 것은 물론이고.

 

그리고 보니 <본격 한중일 세계사> 12번째 권의 전반부 상당 부분이 이런 전세계적 움직임에 할해된 느낌이다. 하긴, 역사라는 게 한 부분으로만 볼 수가 없으니 불가피한 선택이지 싶다.

 

친중-결입-연미라는 미명 아래 시도된 황준헌의 <조선책략>이 과연 당시 기울어져 가던 조선 조정에 도움이 되었는가는 의문이다. 계유상소로 187311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실각한 다음, 뒷방 늙은이 신세로 가만있지 않고 계속해서 권력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부분도 흥미롭다. 강화도조약으로 결국 강제 개항되고, 서구 열강과의 무역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깨달게 된 조선 조정의 대세가 개국으로 흐르자 이에 대한 격렬한 반동이 시작된다. 그 중심에는 유림 세력들이 있었는데, 서원 혁파로 자신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대원군이야말로 그들이 주창하는 위정척사운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 유림들이 대원군을 중심으로 해서 뭉치기 시작한다. 역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정치판의 영원한 진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민씨 척족 세력을 중심으로 한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부패, 매관매직이 국가가 지향해야 하는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는 가운데, 외세의 개입이라는 외부 요소까지 더해지면서 조선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물론 이웃 일본처럼 근대화를 이루어야겠다는 의식 있는 지식인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정작 나라를 움직이던 기존의 기득권층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조금도 나눌 생각이 없었고 수구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한편, 급진적 모험주의자들로 구성된 개화당의 대표 선수는 김옥균이었다. 김옥균과 오경석 그리고 이동인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라를 뒤집어엎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상은 나름 괜찮았지만 실력은 갖추지 못한 그런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조선과 만주 경영(사실은 침략과 식민화)이라는 막부 말기 이래 일본의 거대 전략을 미처 알지 못한 채 그들의 도움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강제 개항 이래, 방어적 민족주의 운동 성향의 양이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양이운동은 아시아주의와 흥아론이라는 기괴한 방식의 이론으로 흘러갔다. 훗날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오직 일본에 의한 패권주의의 원형이 이 때 발아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18827월에 발생한 임오군란은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시발점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 대원군을 제끼고 친정을 시작한 고종은 일본군에게 신식 훈련을 받은 정예 400명의 별기군을 애정했던 모양이다. 역시 권력은 무력에서 나온다는 점을 고종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자신들보다 3배나 많은 임금을 받는 불공정한 처우에서부터 시작해서, 혹독한 인플레이션과 재정파탄으로 기존의 훈련도감 출신 병사들에게 13개월 동안이나 임금을 체불하고, 또 배급한 군량미 조작질이 발각되면서 이른바 도봉소 난동사건(1882719)으로 구식 군인들의 불만이 폭발한다.

 

이런 난병들과 자신의 아들인 고종을 폐위하고 다른 임금을 세워 권력을 다시 탈환할 궁리를 하던 대원군이 합세하면서 판이 커진다. 결국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민씨 척족들이 대거 제거되고, 왕비 민씨마저 도주하며(시아버지 대원군은 며느리가 죽었다며 장사까지 치른다, 요즘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활극이 아닐 수 없다) 전형적이 수구 쿠데타에 성공한다.

 

임오군란 와중에 한성에 거주하던 일본 공사관원들이 일부 살해되는데, 이는 훗날 일본군의 적극적인 개입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대만 출병, 세이난 전쟁 그리고 류큐 복속 등으로 정신이 없던 일본이 전열을 가다듬고 드디어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2권의 마지막 파트는 월남(베트남)의 종주권을 둔 프랑스와 청나라의 갈등에 할애되고 있다. 아시아의 거점으로 코친차이나를 염두에 두고 있던 프랑스는 사이공 델타를 중심으로 해서 하노이 왕국과 계속해서 무력 충돌을 하던 중에 결국 종주국 청나라와 맞짱을 뜨게 된다.

 

아무리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완패했다고 하지만, 세계열강 프랑스의 저력을 청나라는 간과했던 것일까. 육전에서는 비교적 청군이 선전했지만, 이홍장이 막대한 전비를 쏟아 육성한 4개 함대 가운데 복건 함대가 프랑스 해군에게 격멸당하면서 청나라의 전쟁 의지가 완전히 꺾여 버렸다. 결국 중국식 화이 세계관에서 남부를 차지하는 베트남을 프랑스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베트남-프랑스보다는 조선-일본을 상대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이홍장의 판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래 전 수업시간에 배운 중체서용, 동도서기론이 과연 내용적으로 병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물신의 시대에 어느 누구도 공맹의 도를 논하지 않게 되었다. 공맹의 종주국인 이웃나라 역시 껍질만 공산주의지, 자본주의 뺨치는 그런 수준의 나라가 되지 않았던가.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는 물질만 서구의 것을 따라하게 만들지 않는다. 역사를 통해 중국이 시도했던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의 실패가 그것을 말하지 않는가. 물질을 창조해내는 정신과 의식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 전반에 걸친 혁명적 개조가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선행조건이었다. 그걸 이루지 못한 조선은 결국 망국과 외세에 의한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의 상황도 14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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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5-11 1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대다수 분들 서재에서 느끼지만, 레삭매냐님 마찬가지로 참으로 스펙트럼이 넓으십니다.
이 책 상호대차 도서로 부지런히 옮겨다니는 것을 보았어요. 인기 시리즈더라고요. 도서관 갈 때마다 연이 닿지 않으셨던 이유도 인기도서여서 그럴까요?^^
만화라 하니 조금 부담 내려놓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2-05-11 17:50   좋아요 1 | URL
저는 기냥 잡다하게 책을 읽는
닝겡으로다가 ㅋㅋ

그니깐요. 분명 도서관에는 있
다고 하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
구요. 아마 누군가 끼고 읽고 있
었던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형식은 만화지만, 격변의 시대를
다루고 있고 또 구성도 알차서
입문서로는 그만이지 싶습니다.

mini74 2022-05-11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고 냥이들이 잠시 밉상으로 보이고, 사자들이 째째하고 팬더가 능글능글해 보이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ㅎㅎ 독수리는 확 한 대 치고싶고 ㅎㅎㅎ 굽시니스트님 책 참 재미있어요. 저도 도서관에 찾으러 가봐야겠어요 매냐님 *^^*

레삭매냐 2022-05-11 17:53   좋아요 2 | URL
나라별로 동물들을 배치한
것을 보면서 왠지 아트 슈피겔
만의 <마우스>가 연상됐습니
다. 역시 하늘 아래 독보적 새
로움은 없는 걸까요 -

로스께는 곰돌이로 나오더라구
요. 냥이들은 진짜 밉상 그 자체
였다는 점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굽시니스트 작가가 캐
릭을 아주 잘 잡았습니다.

보니까 13편도 나왔던데 저희
도서관에는 수급이 되지 않았더
라구요. 한참을 기다려야겠네요
아숩게도.

coolcat329 2022-05-11 1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레삭매냐님 이 시리즈 진정한 매니아세요. 참 저도 본받고 싶습니다.😅
이게 만화지만 글도 많고 쉽지도 않더라구요.

레삭매냐 2022-05-11 19:32   좋아요 2 | URL
그니깐요, 만화라고 어제 빌려서
생각하고 날을 넘기지 않고 읽겠
다라고 결심했지만 결국 하루가
넘어 가더라구요.

후반부는 꾸벅꾸벅 졸면서 읽어
서 격이 잘...
 
SF의 유령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최용준 감수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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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에 속지 말자. 로베르토 볼라뇨의 새로운 책 <SF의 유령>은 에스에프와는 한참 거리가 먼 그런 소설이다. 나는 그의 팬이기 때문에 그가 설사, 제목으로 장난을 친다고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의 책이 새로 나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서 읽을 거니까 말이다.

 

어젯밤에 <SF의 유령>을 읽다 말고, 문득 12년 전에 처음 읽은 <칠레의 밤> 생각이 나서 서가의 볼라뇨 코너에서 그의 책을 찾아 펼쳐 들었다. 그리고 단박에 읽어 내렸다. 참 이상하기도 한 나의 독서 편력이 아닐 수 없다. 새로 나온 책을 읽다 말고, 이미 두 번이나 읽은 책을 다시 꺼내 읽다니.

 

<SF의 유령>에 보면 1984년이라고 쓴 날짜가 게재되어 있는데 아마 그의 초기작에 해당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읽다만 그의 대표작인 <야만스러운 탐정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볼라뇨의 첫 번째 망명지였던 멕시코 시티에서 벌어지는 청춘들의 좌충우돌 스토리가 심심하게 다가온다. 나도 소설을 이끌어 가는 한 슈레야(로베르토 볼라뇨), 레모 그리고 호세 아르코 삼총사 같이 살았던 시절이 있었던가. 너무 오래 전이라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볼라뇨 작가에게 SF를 기대하지 않았다. 작가가 자신의 부캐로 삼은 한은 그링고 출신 SF작가들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날린다. 그들이 자신이 보낸 편지를 읽건 말건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저 편지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폭력이 만연한 시대를 살아온 라틴 아메리카의 문청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과 레모는 그들이 새로 둥지를 튼 멕시코시티에 왜 그렇게 많은 문예지와 잡지 그리고 시를 담은 문집들이 난무하는지 조사에 나선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과 그링고 청년들은 비디오에 열광했다. 영국에서는 팝스타가 되기 위해 청년들이 열광했다고 하던가. 21세기 K-팝스타가 떠오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라틴 아메리카 청년들과 달랐던 건, 자신의 취미활동과 오락거리에 돈을 쓴 반면 가난한 우리의 아미고들의 선택지는 값싸고 초라한 시, 시 잡지였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상대적으로 돈이 들지 않는 문학 작품에 매진했던 게 아닐까. 최소한 상상력에는 돈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그런 문학 붐이 일어나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튜브라는 강력한 미디어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가 상존한다. 초단위로 새로운 오감을 자극하는 동영상 콘텐츠들이 수시로 업로드되는 마당에, 가다듬고 편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문학 작품 혹은 시 쓰기에 누가 그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단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전자는 대박이 나면 금전이라는 보상이 뒤따르지만, 점점 독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후자는 물질적 보상도 기대할 수가 없다.

 

고백하건데 나는 SF 문학에는 거의 문외한인지라, 볼라뇨 작가가 숱하게 인용하는 SF 작가들의 이름이 그렇게 낯설게 들릴 수가 없었다. 설사 들어는 봤어도 그들의 작품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재기발랄한 문청이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짚었나 싶다.

 

소설의 한 축에 SF 소설의 불모지 라틴 아메리카에서 문학도로 성공하겠다는 한과 레모가 있다면, 다른 한 축에는 이제 막 사랑에 눈뜨기 시작한 청년들의 감정들이 너울거린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정하다는 가정 아래, 썬업은 기본이고 장물 오토바이를 외상으로 사들여서 멕시코시티의 밤거리를 질주한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사랑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왠지 물설고 낯선 도시에서 청춘을 보낸 볼라뇨 작가의 단상을 엿보는 듯하다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쨌든 이 소설에서 SF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시간여행이나 외계인, 스페이스 오페라 같이 장대한 요소들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밤이 내린 도시의 곳곳을 누비며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운 늑대 같은 사랑꾼의 모습들이 기대를 대신한다. 라우라와 레모가 사랑의 장소를 선택한 장소가 대중목욕탕인 힘나시오 목테수마라고 했던가. 목욕탕의 벽면을 장식한 아즈텍 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시선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1984년작인 <SF의 유령>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볼라뇨를 읽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시작은 <칠레의 밤>이었고, 지금은 <살인 창녀들>을 읽고 있다. 오늘은 야만적인 두께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샀다. 나에게 20225월은 볼라뇨의 달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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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0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칠레의 밤. 기억하겠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2-05-10 15:21   좋아요 1 | URL
볼라뇨의 시작은 <칠레의 밤>
으로 하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페넬로페 2022-05-10 15: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베르토 볼라뇨?
역시나 처음 들어봅니다.
덕분에 새로운 작가를 많이 영접합니다^^

레삭매냐 2022-05-10 17:21   좋아요 2 | URL
제 마음 대로 저를 볼라뇨
전도사를 임명...

저희 오래된 독서모임에서
오래 전부터 볼라뇨의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함 하자 노래를
부르던 시절 생각이 나네요.

결국 <칠레의 밤>으로 하긴
했었는데, 기대했던 것처럼
열변을 토하지는 못한 것으로
기억하네요.

다시 한 번 더 잘할 자신이 ㅋ

라로 2022-05-10 1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라뇨,,, 또 다른 작가를 읽어야 하는 리스트에,, 적자 적어.ㅠㅠ
매냐님 찬찬히 소개해 주세요,, 따라가기 벅참요.^^;;;

레삭매냐 2022-05-10 17:57   좋아요 0 | URL
볼라뇨는 12년 전에 처음
만난 순간부터 찌리릿~~~
하는 무언가를 만난 작가
라 그런지 더 애정하고
있답니다.

더군다나 칠레가 우리나라
처럼 혹독한 군사독재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친 나라
라 그런지 더 애착이 가더
라는 -

moonnight 2022-05-10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볼라뇨씨는 사놓기만 한 수많은 작가들 중 한 분ㅠㅠ 언젠가는 읽겠지요. (또 체념조ㅠㅠ;)

레삭매냐 2022-05-11 08:56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나올 책들이 있으니
마치 살아서 계속해서 집필하
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랍니다.

언젠가는 반다시 읽습니다 젭알.
 
SF의 유령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최용준 감수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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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부터 로베르토 볼라뇨의 찐팬이다. 계속해서 그의 책들을 읽고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고 해서 모두 좋을 수는 없다. 이미 제임스 설터의 소설집에서 그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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