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12 - 임오군란과 통킹 위기 본격 한중일 세계사 12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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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이나 만화는 대개 도서관을 이용해서 읽는다. 어제 저녁에는 저녁을 먹고 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전부터 굽시니스트 선생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12> 임오군란편을 읽고 싶었는데 도서관에 갈 때마다 연이 닿지 않아 빌리지 못했다. 어제도 분명 도서관에 있다는 말을 듣고 행차했는데 서가에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간 코너에 따로 분류가 되어 있더라.

 

사람 없는 호젓한 공간에서 굽시니스트 작가의 만화를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한다. 재밌다.

 

그냥 기억에 의존해서 리뷰를 하다 보니 연도가 정확하지 않아도 부디 이해해 주시길. 1870년대인가 우즈벡 삼국을 모조리 먹어 치운 노스께들과 청나라는 일리에서 쎄게 붙었다. 아편전쟁과 애로우호 사건으로 이미 서구 열강에게 호구 취급당하던 청나라는 이번에도 노스께들에게 물릴 뻔한 위기를 맞게 된다. 이미 만주에서 광활한 연해주를 노스께들에게 먹힌 바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리한 협상을 하다가 판이 엎어질 위기도 처하지만, 대충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다음 무대는 러투전쟁이다. 대략 19세기 역사를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영국과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지만 러시아의 남진 저지라는 점에서는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던 모양이다. 이미 크림전쟁으로 러시아의 남진을 막은 전력이 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발칸반도에서 불가리아-세르비아-보스니아 등 예전의 오스만 제국의 속국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자 노스께들이 슬라브주의와 정교회를 앞세워 적극 개입한다. 아르메니아 일원에서 중동의 빈자라 불리던 오스만 제국은 서구의 일진 노스께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역시 외교는 균형이었고, 어느 한 나라가 실컷 먹는 걸 원하지 않았다. 발칸과 중동에서 노스께들의 영향력 강화를 두려워한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이 비록 기독교도들을 학살하고 박해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한 그레이트 게임의 속행을 원했다. 물론 국내 여론들은 무슬림 국가 오스만을 지원하는 데 격렬하게 반대한 것은 물론이고.

 

그리고 보니 <본격 한중일 세계사> 12번째 권의 전반부 상당 부분이 이런 전세계적 움직임에 할해된 느낌이다. 하긴, 역사라는 게 한 부분으로만 볼 수가 없으니 불가피한 선택이지 싶다.

 

친중-결입-연미라는 미명 아래 시도된 황준헌의 <조선책략>이 과연 당시 기울어져 가던 조선 조정에 도움이 되었는가는 의문이다. 계유상소로 187311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실각한 다음, 뒷방 늙은이 신세로 가만있지 않고 계속해서 권력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부분도 흥미롭다. 강화도조약으로 결국 강제 개항되고, 서구 열강과의 무역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깨달게 된 조선 조정의 대세가 개국으로 흐르자 이에 대한 격렬한 반동이 시작된다. 그 중심에는 유림 세력들이 있었는데, 서원 혁파로 자신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대원군이야말로 그들이 주창하는 위정척사운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 유림들이 대원군을 중심으로 해서 뭉치기 시작한다. 역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정치판의 영원한 진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민씨 척족 세력을 중심으로 한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부패, 매관매직이 국가가 지향해야 하는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는 가운데, 외세의 개입이라는 외부 요소까지 더해지면서 조선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물론 이웃 일본처럼 근대화를 이루어야겠다는 의식 있는 지식인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정작 나라를 움직이던 기존의 기득권층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조금도 나눌 생각이 없었고 수구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한편, 급진적 모험주의자들로 구성된 개화당의 대표 선수는 김옥균이었다. 김옥균과 오경석 그리고 이동인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나라를 뒤집어엎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상은 나름 괜찮았지만 실력은 갖추지 못한 그런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조선과 만주 경영(사실은 침략과 식민화)이라는 막부 말기 이래 일본의 거대 전략을 미처 알지 못한 채 그들의 도움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강제 개항 이래, 방어적 민족주의 운동 성향의 양이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양이운동은 아시아주의와 흥아론이라는 기괴한 방식의 이론으로 흘러갔다. 훗날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오직 일본에 의한 패권주의의 원형이 이 때 발아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18827월에 발생한 임오군란은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시발점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 대원군을 제끼고 친정을 시작한 고종은 일본군에게 신식 훈련을 받은 정예 400명의 별기군을 애정했던 모양이다. 역시 권력은 무력에서 나온다는 점을 고종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자신들보다 3배나 많은 임금을 받는 불공정한 처우에서부터 시작해서, 혹독한 인플레이션과 재정파탄으로 기존의 훈련도감 출신 병사들에게 13개월 동안이나 임금을 체불하고, 또 배급한 군량미 조작질이 발각되면서 이른바 도봉소 난동사건(1882719)으로 구식 군인들의 불만이 폭발한다.

 

이런 난병들과 자신의 아들인 고종을 폐위하고 다른 임금을 세워 권력을 다시 탈환할 궁리를 하던 대원군이 합세하면서 판이 커진다. 결국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민씨 척족들이 대거 제거되고, 왕비 민씨마저 도주하며(시아버지 대원군은 며느리가 죽었다며 장사까지 치른다, 요즘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활극이 아닐 수 없다) 전형적이 수구 쿠데타에 성공한다.

 

임오군란 와중에 한성에 거주하던 일본 공사관원들이 일부 살해되는데, 이는 훗날 일본군의 적극적인 개입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대만 출병, 세이난 전쟁 그리고 류큐 복속 등으로 정신이 없던 일본이 전열을 가다듬고 드디어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2권의 마지막 파트는 월남(베트남)의 종주권을 둔 프랑스와 청나라의 갈등에 할애되고 있다. 아시아의 거점으로 코친차이나를 염두에 두고 있던 프랑스는 사이공 델타를 중심으로 해서 하노이 왕국과 계속해서 무력 충돌을 하던 중에 결국 종주국 청나라와 맞짱을 뜨게 된다.

 

아무리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완패했다고 하지만, 세계열강 프랑스의 저력을 청나라는 간과했던 것일까. 육전에서는 비교적 청군이 선전했지만, 이홍장이 막대한 전비를 쏟아 육성한 4개 함대 가운데 복건 함대가 프랑스 해군에게 격멸당하면서 청나라의 전쟁 의지가 완전히 꺾여 버렸다. 결국 중국식 화이 세계관에서 남부를 차지하는 베트남을 프랑스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베트남-프랑스보다는 조선-일본을 상대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이홍장의 판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래 전 수업시간에 배운 중체서용, 동도서기론이 과연 내용적으로 병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물신의 시대에 어느 누구도 공맹의 도를 논하지 않게 되었다. 공맹의 종주국인 이웃나라 역시 껍질만 공산주의지, 자본주의 뺨치는 그런 수준의 나라가 되지 않았던가.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는 물질만 서구의 것을 따라하게 만들지 않는다. 역사를 통해 중국이 시도했던 양무운동, 변법자강운동의 실패가 그것을 말하지 않는가. 물질을 창조해내는 정신과 의식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 전반에 걸친 혁명적 개조가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선행조건이었다. 그걸 이루지 못한 조선은 결국 망국과 외세에 의한 식민지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의 상황도 14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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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5-11 1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대다수 분들 서재에서 느끼지만, 레삭매냐님 마찬가지로 참으로 스펙트럼이 넓으십니다.
이 책 상호대차 도서로 부지런히 옮겨다니는 것을 보았어요. 인기 시리즈더라고요. 도서관 갈 때마다 연이 닿지 않으셨던 이유도 인기도서여서 그럴까요?^^
만화라 하니 조금 부담 내려놓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2-05-11 17:50   좋아요 1 | URL
저는 기냥 잡다하게 책을 읽는
닝겡으로다가 ㅋㅋ

그니깐요. 분명 도서관에는 있
다고 하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
구요. 아마 누군가 끼고 읽고 있
었던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형식은 만화지만, 격변의 시대를
다루고 있고 또 구성도 알차서
입문서로는 그만이지 싶습니다.

mini74 2022-05-11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고 냥이들이 잠시 밉상으로 보이고, 사자들이 째째하고 팬더가 능글능글해 보이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ㅎㅎ 독수리는 확 한 대 치고싶고 ㅎㅎㅎ 굽시니스트님 책 참 재미있어요. 저도 도서관에 찾으러 가봐야겠어요 매냐님 *^^*

레삭매냐 2022-05-11 17:53   좋아요 2 | URL
나라별로 동물들을 배치한
것을 보면서 왠지 아트 슈피겔
만의 <마우스>가 연상됐습니
다. 역시 하늘 아래 독보적 새
로움은 없는 걸까요 -

로스께는 곰돌이로 나오더라구
요. 냥이들은 진짜 밉상 그 자체
였다는 점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굽시니스트 작가가 캐
릭을 아주 잘 잡았습니다.

보니까 13편도 나왔던데 저희
도서관에는 수급이 되지 않았더
라구요. 한참을 기다려야겠네요
아숩게도.

coolcat329 2022-05-11 1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레삭매냐님 이 시리즈 진정한 매니아세요. 참 저도 본받고 싶습니다.😅
이게 만화지만 글도 많고 쉽지도 않더라구요.

레삭매냐 2022-05-11 19:32   좋아요 2 | URL
그니깐요, 만화라고 어제 빌려서
생각하고 날을 넘기지 않고 읽겠
다라고 결심했지만 결국 하루가
넘어 가더라구요.

후반부는 꾸벅꾸벅 졸면서 읽어
서 격이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