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 겐신 국내 미출간 소설 21
요시카와 에이지 지음, 박현석 옮김 / 현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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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에 맞선 호적수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의 화려한 용병술이 돋보이는 서사다. 다만, 너무 부분적이라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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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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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을 거의 두 달에 걸쳐 읽었다. 만날 하는 말이지만, 책 사기는 줄이고 그전에 사둔 책들을 읽어야 하는데 둘 다 쉽지 않은 미션이다. 그래서 읽다만 책들부터 하나씩 완독해 가는 프로젝트에 올해 중점을 두기로 했다.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이 출발점이었다.

 

내가 읽다만 지점은 정확하게 철도 공무원이자 역장을 역임한 주인공이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열거하고 반추하기 시작하기 직전까지였다.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이자 화자는 유년 시절에 늘 자신감이 없었다. 아버지처럼 풍채도 좋지 않았고, 요즘 말로 하면 아싸 정도였지 않나 싶다. 그에게 탈출구는 바로 공부였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 좀 하면 누구에게나 환영받기 마련이다. 이제 공부라는 학업으로 성취된 학벌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어려서부터 정해진 코스를 뛰는 경주마처럼 그렇게 경쟁에 내몰린 셈이다. 여튼 주인공은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다 청춘 시절 약간의 일탈도 경험하게 되는데, 한동안 시인 행세도 한 모양이다. 이야, 소설가도 아니고 시인이라 대단한 걸 그래.

 

그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절 체코에도 철길이 깔리자 미래는 철도에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그쪽에 투신한다. 철도 공무원으로 출발해서 어느 역장의 딸과 결혼해서 자신도 결국 역장이 되기도 했다. 전쟁 시절(아마도 1차 세계대전)에는 민족을 위해 황제에 반대해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기도 한다. 후술하는 부분에서는 그러다 잡히면 반역죄로 교수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말을 언뜻 던지기도 한다. 그러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은퇴해서 살다가 죽게 된다는 그런 아주 평범한 이야기다.

 

, 문제는 글을 쓰는 와중에 화자는 진짜 여러 가지 자아들과 대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소설 <평범한 인생>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화자는 분명 평범한 자아였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라는 개인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모습들이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형성한다는 거다.

 

기본 베이스는 평범한 자아가 등장한다. 그 다음에는 억척이로서 철도 공무원과 역장이 되기 위에 사회에서 고군분투한 내가 있다. 하지만 내면의 갈등을 촉발하는 상이한 존재인 우울증 환자가 있다. 하긴 이 세상 삶이 언제나 그렇듯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다.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은가 항상 좋을 수는 없다가 진리다. 그렇게 계속되는 삶의 순환이 내 삶에 질서를 만들고,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 세 존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아온 청년은 시인 행세를 하던 시절에 화자가 쓴 시에 감명을 받았다며 그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간청한다. 야자나무에서 탬버린 소리가 들린다고 했던가. 화자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에 했던 말들을 우리가 과연 기억할 수 있을까? 아마 나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남긴 유산들의 백래시가 올 때도 있는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든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든. 화자는 자신에게 애초에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걸 깨닫고 부리나케 후퇴했다.

 

열렬한 체코 민족주의자로 변신해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던 영웅으로서의 모습은 어떤가. 여기서 나는 카렐 차페크의 그들에 대한 일종을 비판의식을 읽을 수가 있었다. 어떤 투철한 목적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대의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그냥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지불식간에 형성된 시대정신에 편승하게 됐던 게 아닐까. 물론 그런 것들이 훗날에 역시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였으리라. 만약 체코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서 독립하지 못했다면 그의 그런 행동이 영웅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소설 <평범한 인생>을 읽으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내 삶의 질서와 상이하게 다투는 자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바로 이런 게 문학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순하게 책을 읽고 또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아주 조금이라도 나의 삶에 대해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간과 비용을 동원해서 책을 읽는 게 아주 효용이 없지 않나 싶다. 한 스푼 더 얹자면, 개인적 발전 내지는 성장까지도 할 수 있다는 아마 더 바랄 게 없으리라.

 

결국 책에서 만난 상이한 자아들의 투쟁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아 그리고 보니 거지도 있었지. 영웅, 시인, 거지, 낭만주의자 그리고 아내의 헌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엉터리 남편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내 삶의 질서를 고착시키는 그런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들이 몰려오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절판된 카렐 차페크의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삶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다른 책들도 빨랑 번역이 되어 나오면 좋겠다. 어수선하고,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어 좋았다. 역시 힐링에는 책만한 것이 없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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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11 1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힐링에는 책만한게 없는거 같아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좀 어렵기는 했지만 😅

레삭매냐 2022-03-11 13:30   좋아요 2 | URL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

저도 쩜 어려웠습니다. 지금
내가 무얼 읽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
니다. 그래도 다 읽어서 스스
로에게 대견하다고 ㅋㅋ

고저 힐링에는 책이닷!

mini74 2022-03-11 1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으려고 사놓기만 하고 ㅠㅠ 매냐님 보니 생각납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2-03-11 13:37   좋아요 3 | URL
저도 사서 바로 한 절반
정도 읽고 나서 내삐 두
었다가 어제 잡아서 쭈악
다 읽었답니다.

책은 고저 바로 다 닐거야
하는가 봅니다. 고고씽~~~

페넬로페 2022-03-11 15: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신차리고 다시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내가 산 책은 뒤에 읽어도 도서관 희망도서는 꼭 읽자고 결심하는데 이 책도 아직 읽지 않고 있네요.
조금 어려운 책인가봐요.
근데 그런 책이 생각할 거리는 많이 주는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03-11 17:05   좋아요 2 | URL
참으로 죽비 같은 말씀입니다 -
저도요...

어려운 책일수록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가 봅니다. 그래도
어려운 책들은 쩜...

얄라알라 2022-03-13 2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달 동안 천천히 나눠 읽으시면서, 지난 번 읽다만 지점을 정확하게 기억하시는 레삭매냐님!

저는 어제 밤에 읽다 만 소설, 오늘 다시 읽을 때 잠시 헤맸거든요.

차곡차곡 사두신 책 완독하시는 프로젝트
그 역시 미니멀리즘, 멋진 도전이십니다

레삭매냐 2022-03-14 09:23   좋아요 2 | URL
어제 책방에 쌓인 책들 정리
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정말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ㅠㅠ

그래서 다시 안볼 책들이랑 기타
책들은 팔거나 내다 버리거나
그러고 있답니다.

욕심을 덜어내야지 싶습니다.

추신. 이러면서도 책은 계속해서
사대고 있답니다 냐하 ~ 노답
인생이네요.

그레이스 2022-03-15 08: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른쪽 주머니, 왼쪽 주머니 ... ㅋㅋ
어딘가 있는데 찾다가 포기상태입니다.

레삭매냐 2022-03-15 13:46   좋아요 2 | URL
차페크의 그 책도 있었지요 ^^

다시 한 번, 세상은 넓다랗고
읽을 책들은 차고 넘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뒷북소녀 2022-03-31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똑같은 부분에서 읽기를 멈췄다가 최근에 다시 읽었어요.ㅋㅋㅋ
 
아웃 오브 이집트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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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근원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 지중해를 품은 알렉산드리아 시절에 대한 서사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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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 동안 투표를 해왔지만 오늘처럼 오래 기다린 적은 또 처음이다.

하긴 그전에는 모두 사전투표를 해서일까.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부리나케 투표를 하러 인근 투표장으로 향했다.

투표장은 초등학교였는데, 정문에서부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이럴 수가...

 

결국 40분 정도 기다려서 투표를 할 수가 있었다.

등재번호를 숙지하거나 모른 채로 와서 찾는데 시간이 또 걸리고.

네 자리 숫자라 외우고, 또 혹시 몰라 사진을 찍어 갔다.


새치기하는 사람도 둘이나 있었다. 아니 차 시간이 830분인 건 자기 사정이고, 다른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자기 사정만 이야기하고 새치기하는 장면이 참... 선거사무원들은 앞 줄에 선 분들에게 양해하라고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바쁘면 미리미리 나와서 투표를 하던가.

 

금방 투표할 줄 알고, 옷을 대충 입고 나갔다가 낭패를 봤다.

어쨌든 나의 투표는 끝났고 이제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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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9 09: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투표하러 가고 싶지만 ㅠㅠ 전 사전투표했어요. 수고하셨어요 매냐님 ~

레삭매냐 2022-03-09 10:20   좋아요 3 | URL
전 지난 금요일날 사전투표
하러 갔다가 엄청나게 긴
줄에 그만...

오늘 재도전에 성공했습니다.
 
술탄 살라딘
타리크 알리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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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5부작의 신호탄 <석류나무 그늘 아래>를 읽고 나서 바로 <술탄 살라딘>을 읽었다. 자꾸만 살라딘인지 알라딘인지 헷갈린다무려 4년 만에 다시 읽는 느낌이란... 좋은 책은 다시 읽어도 좋더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내가 이 책을 두 번 산 것은 안 비밀이다. 살라딘, 살라흐 앗 딘은 타임에서 선정한 지난 천 년의 인물이기도 하다.

 

타리크 알리는 팩션에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석류나무>에서 안알달루스의 추락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프랑크족의 침입 이래 이슬람 수치의 상징이 된 알 쿠드스(예루살렘)를 탈환하는 신자들의 사령관 살라흐 앗 딘의 이모저모를 역사라는 큰 줄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첨가해서 멋진 드라마를 완성했다.

 

매혹적인 이야기는 살라흐 앗 딘의 지하드의 선구자 모술의 장기와 누르 앗 딘(누레딘)의 신하였던 카이로에서 출발한다. 유대인 역사가 이븐 야쿠브는 술탄의 서기로 발탁되어 술탄의 측근에서 그의 회고록을 쓰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신자도 아니고, 알 파딜이나 이마드 앗 딘 같은 술탄의 총신도 아닌 자가 측근에 임명되니 자연 주변의 시기를 받기 마련이다. 노련하고 신중한 살라흐 앗 딘은 나름 자신의 방식으로 이븐 야쿠브를 배려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회의에서 그를 배제시키는 것이다. 소설의 화자 이븐 야쿠브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아쉬움을 달래지 못한다.

 

어쨌든 쿠르드 시골 출신의 부친 아이유브 밑에서 성장한 살라흐 앗 딘이 어떻게 해서 이집트의 와지르를 거쳐 명실상부한 아랍 세계 최고의 술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가공의 인물인 이븐 야쿠브의 시선으로(아마도 타리크 알리 자신이 아닐까) 서술은 흘러간다.

 

1차 십자군 원정으로 알 쿠드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한 프랑크에 대항해서 아랍 세계는 일치단결하지 못하고 분열상을 계속해 왔다. 심지어 어떤 아미르들은 프랑크와 결탁해서 같은 신자들을 공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미 <석류나무 그늘 아래>에서 이런 분열의 결과, 알안달루스를 카스티야 왕국에서 상실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결하면 성공, 분열하면 망조라는 걸 역사는 누누이 우리에게 알려준다.

 

살라흐 앗 딘은 숙부인 시르쿠와 더불어 파티마 왕조 지배 아래 있던 이집트 원정에 나선다. 결국 수차례에 걸친 원정 끝에 이집트를 정복하는데 성공하지만, 시르쿠가 식탐 때문에 어이 없이 죽은 뒤 살라흐 앗 딘이 와지르의 자리를 차지한다. 자신의 수하였던 살라흐 앗 딘을 결국 경쟁자로 인식하게 된 누르 앗 딘은 그를 정벌하려고 하지만 자신이 먼저 죽고, 아랍 세계의 통일은 살라흐 앗 딘이 이루게 된다.

 

타리크 알리는 술탄의 하렘을 지배하는 영명한 술타나 자밀라와 할리마라는 매력적인 여성들을 등장시켜 소설 <술탄 살라딘>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아니 술탄의 서기인 이븐 야큐브는 그야말로 위대한 술탄의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과 끊임없이 교류를 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그런 중요한 인물로 성장해 간다. 살라흐 앗 딘에게는 그의 아버지 아이유브보다도 더 중요하고 고지식한 쿠르드 전사 샤디를 배치해서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에 반전을 가하기도 한다.

 

이집트에서 출발한 살라흐 앗 딘이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와 알레포 그리고 모술을 차례로 정복해 가면서 아랍 세계의 통일을 이루고 대망의 성도 알쿠드스 탈환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타리크 알리는 정밀하게 그려냈다. 이 부분은 역사적 사건들이라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의 소설가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부분들을 채워 나간다.

 

90년 전, 고드프루아와 탄크레디가 이끄는 프랑크 기사들이 알쿠드스를 정복했을 때 보여준 만행을 무슬림은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관용의 군주인 살라흐 앗 딘은 그런 방식의 보복을 원하지 않았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 이벨린의 발리앙으로부터 자신에게 대항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풀어 주었지만, 결국 알쿠드스 수비대의 대장으로 격렬하게 저항했음에도 그를 용서해 주었다. 대주교가 자신의 그런 서약을 무효화했다는 주장을 하면서도, 술탄에게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장면은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중에라도 <술탄 살라딘>이 드라마로 만들어지게 된다면 과연 이 장면이 어떻게 영상화될지 좀 궁금해졌다.

 

그전에 아랍 세계를 통일하고, 팔레스타인 해안 지역을 평정하면서 알쿠드스 공략에 나서는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타리크 알리는 알쿠드스 탈환이 신자들에게 대의명분 뿐 아니라, 전쟁에 나선 아미르를 필두로 하는 전사들에게 재정적 이득이라는 점도 중요했다는 점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사실 십자군원정 역시 비슷한 이유가 다수 존재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준비한 하틴 전투에서 결국 살라흐 앗 딘은 예루살렘의 기 왕와 레지날드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긴다. 프랑크 병사 15,000명이 전사하고, 3,000명이 포로로 잡혔다. 기독교 왕국의 군대는 농성전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무리하게 살라흐 앗 딘과 정면대결에 나섰다가 치밀하게 준비된 포위망에 걸려 전군이 전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살라흐 앗 딘은 맹세한 대로 자신의 고모와 무고한 성지 순례단을 죽인 레지날드에 사망선고를 날렸다. 아무리 관용의 군주라고 하지만, 풀어 주게 되면 자신의 군대에게 다시 싸우게 될 기독교 기사들도 모두 처형했다.

 

하틴 전투로 주력부대를 잃은 예루살렘 왕국은 결국 살라흐 앗 딘의 무슬림 부대에게 탈환되고 만다. 하지만 이런 영광의 순간은 지나가 버리고 곧 사자심왕 리처드를 필두로 하는 프랑크 군단이 다시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와 혈전을 치르게 된다. 살라흐 앗 딘은 이를 예견하고 메카 순례를 마치고 프랑크들의 본진털기를 시전할 장대한 계획도 꿈꾸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호적수 리처드와 공존을 도모하기도 했지만, 참모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시 천년이 지나도 팔레스타인 땅의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석류나무 그늘 아래>에서 알후다인의 비극이 있었다면, 이븐 야쿠브의 카이로 집이 알쿠드스 함락에 화가 난 프랑크 기사들이 방화를 저지르면서 아내 라헬과 딸 마리암 그리고 손주가 모두 죽는 비극이 발생한다. 과연 인간의 삶에 영광의 순간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작가는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것일까. 알후다일의 비극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술탄 살라딘>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덜한 느낌이다. 다른 무슬림 퀸텟에서도 비슷한 비극의 궤적이 등장하는지 조금 궁금해졌다.

 

술탄 살라흐 앗 딘의 삶을 관통하는 성장과 아이유브 제국의 건설 그리고 알쿠드스 탈환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당대 최고 권력자의 곁에서 지켜본 유대인 서기의 증언이라는 방식으로 소설화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동시에 비교적 중립적인 시선으로 술탄의 여성들, 최측근 쿠르드 전사, 제국의 재상 그리고 학자들을 아우르는 최고 권력자 주변의 인간 군상들이 펼치는 욕망의 파노라마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추적한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돌기둥 여인>을 필두로 한 나머지 타리크 알리의 이슬람 퀸텟 3편도 부디 출간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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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3-07 01: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오래 전에 읽었는데 세세한건 거의 생각이 안나네요. 아 저도 리뷰쓸 때 레삭매냐님처럼 살라딘의 일대기를 좀 더 세밀하게 썼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이 글을 보면서 듭니다. 제가 못쓴 내용을 레삭매냐님 글 통해서 보니 좋네요. ^^
소개해주신 <석류나무 그늘아래>는 알라딘 중고로 구입했는데 책이 왔어요. 언제나 알라딘 중고는 정말 혜자스럽습니다. 진짜 책이 너무 깨끗해서 득템이라는 말을 저절로 하게 되네요. 이번 달에 아껴가며 읽을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

레삭매냐 2022-03-07 09:39   좋아요 1 | URL
리뷰를 쓰면서 좀 더 디테일하게
쓰고 싶었으나 역량의 부족으로
줄거리 소개 정도로 밖에는...

<석류나무 그늘 아래>는 정말 ~
인생책이라 부를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태가 매우 좋다고 하시니 저도
왠지 기분이 덩달아 좋아지네요.
부디 아껴 읽으시길... 후반으로
갈수록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
이 다분하지만요 ^^

mini74 2022-03-07 09: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살라딘 알라딘 ㅎㅎ 형제 이름같아요 십자군관련 책에서 자주 봤던 분이네요 ~~

레삭매냐 2022-03-07 09:40   좋아요 2 | URL
십자군 원정하면 빠질 수가
없는 인물이 바로 살라흐
앗 딘이지요. 대단한 캐릭터
였습니다. 두고두고 울궈 먹
을 만한...

그레이스 2022-03-07 09: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타리크 알리의 5부작 도전하고 싶어요
읽기시작하면 또 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겠죠?!;;;;

레삭매냐 2022-03-07 09:45   좋아요 2 | URL
우와 좋은 생각이십니다.

단, <석류나무 그늘 아래>와
<술탄 알라딘>은 모두 절판되었
구요...

나머지 <돌기둥 여인>을 필두로
해서 <팔레르모의 술탄> 그리고
<황금 나비의 밤>은 아직 번역
이 되지 않은 미출간 책들이랍니다
ㅠㅠ

그레이스 2022-03-07 10:01   좋아요 3 | URL
저도 지금 검색해보기 그렇네요
기다려야겠어요
일단 저장!

서니데이 2022-03-07 2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살라딘과 알라딘은 전혀 다른 사람이지만, 한글은 처음 보면 비슷하긴 해요.
잘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2-03-08 15:34   좋아요 1 | URL
저도 자꾸 헷갈리더라구요 - 알라딘 살라딘!
이제 봄이 온 모양입니다. 좋은 날 되세요.

가필드 2022-03-07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레삭메냐님 좋은 책 소개 감사해요 😊 저도 장바구니로 쓰윽

레삭매냐 2022-03-08 15:38   좋아요 0 | URL
좋은 책들이 절판되어 아쉬울
따름입니다.

감상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