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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론리하트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이종인 옮김 / 마음산책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2주 전부터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미스 론리하트>를 사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에 필적할 만한 미국 산문계의 대가라는 평이 있더라. 37세의 이른 나이에 요절한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작품이라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갔다. 아울러 절판되기까지. 어제 저녁, 산책을 빌미로 사냥에 나섰다.
중고서점에 가서 <미스 론리하트>와 라오서의 <이혼> 그리고 클로드 모르강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세 권을 샀다. 그리고 바로 <미스 론리하트>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이 발표된 해는 1933년 그러니까 1919년부터 시행되던 금주법이 폐지된 해다. 그런데 책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에 가서 술을 한 잔 걸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 점이 좀 궁금했다. 이미 그 당시에 금주법은 유명무실한 그런 법이었었나 하고.
미스 론리하트는 신문사에서 신문구독자들의 고민들을 상담해주는 칼럼니스트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독실한 크리스천처럼 보인다. 물론 실제는 그런 삶과는 많이 다르지만. 참고로 미스라는 말이 빚어내는 오해와 달리 그는 남자다. 그리고 본명은 나오지 않는다. 얼마 전, 베티라는 여성에게 청혼했지만 또 딱히 그녀와 결혼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하여튼 간에 미스 론리하트란 인간은 정의하기 힘든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발표되던 1933년은 미국에서 대공황이 한참이던 시절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이들의 삶에는 고통과 가난 그리고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신문사에서는 미스 론리하트의 칼럼이 돈벌이가 될 거라는 점을 정확하게 알았던 모양이다. 아니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통해, 나는 이 정도라면 행복하지 뭐 그런 심산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그 정도는 아니잖아라는 자기만족적 글쓰기랄까.
베티는 그런 미스 론리하트의 칼럼 쓰기가 못마땅해 그만 두라고 종용하지만, 이미 자신의 일에 중독된 미스 론리하트는 사실 그럴 생각이 없으면서도 애인을 설득하기 위해 광고대행 일을 찾아 보겠다고 공언한다.
침례교 목사님의 자녀답게 항상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 고민하지만, 또 현실에서는 그만큼 타락한 인간이 없다. 술집에 가서 한 잔 걸치다가, 싸움이 붙어서 이가 다 흔들릴 정도로 얻어 터지고 또 의자에 맞는 봉변도 당한다. 그리고 자신의 팬을 자처하는 도일 여사와 불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잘 나가는 것 같았던 미스 론리하트 삶의 작은 균열이 결국 그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하나의 결정적 탄환이 되었다.
사실 난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메뚜기의 날>이 더 읽고 싶었다. 하지만 그 책을 언제라도 살 수 있는 책이고 <미스 론리하트>는 도서관에도 없는 책이라 빌려서 읽을 수가 없기에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사다가 단박에 읽어 버렸다.
미스 론리하트가 구축한 질서는 완벽해 보인다. 애인 베티와의 관계가 조금 삐걱거리긴 하지만, 곧 결혼을 앞두고 있고 신문사에서 구독자들이 보내는 편지에 대한 고민 해결사이자 그리스도의 사제로서의 임무도 나쁘지 않다. 다만 삶이 태생적으로 지닌 가역적 유동성은 미스 론리하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완벽해 보이는 질서 역시 결국 무질서로 향하게 된다는 단순하지만 불변의 메시지를 너새네이얼 웨스트는 던지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의 분량은 짧았고, 파국적 엔딩으로 치닫는 진행 속도를 따라 잡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시간을 두고 다시 한 번 읽어야봐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미스 론리하트>가 나에게 <싱글맨> 같은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