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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반쪽
브릿 베넷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작가와 책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그래서 모름지기 책 읽는 이들은 겸손해져야 한다는 진리를 책을 읽을수록 깨닫게 된다. 역시 NYT 시리즈 96위의 오른 브릿 베넷의 책 <사라진 반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뉴욕타임즈가 아니었다면, 영영 이 책을 만날 일이 없었겠지. 병렬독서 덕분에 진도가 늦긴 했지만 일단 가속이 붙으니 몰입도가 엄청났다.
브릿 베넷 작가는 소설 장르의 특징 중의 하나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나드는 서사를 능숙하게 직조한다. 루이지애나 맬러드라는 작은 타운을 떠난 두 쌍둥이 데지레와 스텔라 빈스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생성도 일품이다. 인종차별이 일상이던 시절, 쌍둥이 자매는 아버지를 백인들의 폭력에 잃는다. 그들에게 가난과 차별은 변수가 아닌 상수다. 무언가 새로운 삶을 위해 데지레와 스텔라는 맬러드 탈출을 꿈꾸고 결국 실행에 옮긴다.
데지레와 스텔라의 캐릭터성을 더 부각시키는 요소는, 맬러드에서 그들은 유색인종이지만 그들의 정체성을 모르는 곳에서 그들은 백인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넬라 라슨의 <패싱>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둘 중의 누군가가 ‘패싱’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소설이 데지레의 귀환으로 시작했던가. 그렇다면 패싱해서 “사라진 반쪽”은 바로 스텔라일 것이다.
데지레는 자신과 닮은 점이 없는 정말 검은 딸 주드 윈스턴을 데리고 요란한 귀환을 감행한다. 고향 맬러드를 떠날 때는 소리 소문 없이 도망쳤지만, 귀환을 그럴 수가 없었다. 남편과 자식을 잃었던 미스 아델은 데지레와 손녀 주드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얼리 존스라는 훗날 데지레의 조력자이자 연인이 되는 캐릭터를 하나 추가한다. 그의 정체는 인간 사냥꾼이다.
워싱턴 DC에 살던 데지레의 남편 샘 윈스턴은 학대와 가정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인생에서 두 번째 도주를 감행한 아내의 추적을 의뢰한다. 인간은 누구나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얼리에게 데지레 찾기란 누워서 떡먹기 같은 사건이었다. 얼리가 샘에게 그가 찾는 정보를 건네 주었다면, 소설은 거기에서 멈추었겠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얼리는 자신의 평판에 금이 가는 대신 데지레 모녀의 수호자가 되었다.
그 다음 파트에서는 캘리포니아로 간 데지레의 딸 주드가 배턴을 이어 받는다. 맬러드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게 되는 주드. 고향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어머니와 이모의 뒤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드의 경우는 좀 다르다. 1978년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주드는 남장 여자 리스 카터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아 기묘하다 참), 미래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자력으로 생활비를 벌고, 리스를 위한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경야독하던 주드는 케이터링 서비스 요원으로 어느 파티에 참석했다가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 충격에 빠지게 된다. 주드는 드디어 어머니의 “사라진 반쪽”을 만난 것이다.
드디어 독자가 기대하던 에스텔, 스텔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유색인종이 당해야 했던 차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스텔라는 뉴올리언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반드시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워싱”해서 백인으로 변신했다. 그 배경에는 자신의 상사이자 명문가 출신으로 무려 예일대를 졸업한 블레이크 샌더스가 있었다. 별처럼 빛나던 19살의 스텔라와 사랑에 빠진 블레이크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텔라에게 보스턴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가난과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텔라는 쌍둥이 언니 데지레를 배신하고, 온통 거짓으로 도배된 자신을 창조했다.
때는 1968년, 그야말로 흑인 민권운동이 절정에 도달했던 시기다. 하지만, 여전히 차별은 사리지지 않았다. 패싱해서 백인 행세를 하던 스텔라는 자신의 이웃에 유색인종 워커 가족이 이사 온다는 말을 듣고, 누구보다 격렬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 항상 변절자가 가장 험악한 행동을 마련이지 않은가. 로레타 워커와의 교제를 통해, 브릿 베넷 작가는 당대 LA 백인들의 위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정치적으로는 흑인과의 평등한 삶에 찬성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삶에 흑인들이 들어오는 것은 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런 이중성 말이다.
로레타와의 관계 속으로 기울어져 가던 스텔라의 일상은, 어느 날 딸 케네디의 실수로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텔라의 이웃들이 실제 행동(벽돌 던지기, 오물 투척 등)에 나서게 되면서 결국 백인들과의 공존이라는 높은 벽을 실감한 워커 부부는 철수를 결정한다. 그 어느 때보다 지킬 게 많아진 스텔라는 철저하게 두꺼운 마스크를 쓴 채,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숨기는데 전력한다. 사실 결심이 어렵지, 실행 절차는 요식절차에 불과하니까.
바로 스텔라의 완벽해 보이는 삶에 미세한 균열을 내기 시작한 인물이 바로 그녀의 조카인 주드였다. 주드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공작을 시작한다. 우선 스텔라의 딸 케네디에게 접근해서 스텔라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다. 한편 케네디는 요즘 말로 하면, 관종 정도가 아닐까.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유복한 집안 덕분에 일단 대학에 진학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연극이나 연기에 관심을 갖고 그러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할리우드의 주변부를 배회한다. 그리고 케네디가 궁금해 하던 엄마 스텔라에 대한 비밀 해독의 단서를 바로 주드가 제공하기 시작한다. 미스 아델과 쌍둥이 자매가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면 충분했다.
고향 맬러드의 식당에서 일하게 된 언니 데지레와 달리, 수학에 재능을 지니고 있던 스텔라는 어느 순간 자각해서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대학에 진학해서 결국 통계학 교수가 되었다. 거짓으로 구성된 스텔라 인생의 태피스트리에 그야말로 정점을 찍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완성된 거짓말을 위해서는 스텔라는 계속해서 양심을 속이고 사랑하는 남편 블레이크와 딸 케네디에게도 항상 위선의 태양 같은 존재가 되어야말 했다.
스스로 창조한 거짓의 지지대가 붕괴한다면, 그녀의 삶 역시 신기루처럼 날아가 버릴 판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외로웠을까. 그녀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 데지레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자신의 결심으로 배신하지 않았던가. 비참하게 백인들에게 린치당하고 죽은 아버지의 이미지 때문에 한시도 불안해서 곁에 야구방망이를 두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신의 결심으로 행복하기 위해, 워싱을 결행하고 ‘사라진 반쪽’이 되었지만 결국 행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텔라는 비극의 여주인공 같은 그런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후과를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자신이 짊어져야할 업이겠지만.
브릿 베넷 작가는 마치 영화에서 에피소드마다 등장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캐릭터들의 이모저모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같은 효과를 소설적 스타일로 연출한다.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에, 타인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결정들을 내리기 마련이다. 삶의 모든 면들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게 된다면 너무 재미가 없지 않을까. 잘못된 판단을 했다가, 일이 어그러지고 또 그 일을 바로 잡으려고 하다가 엉망이 되어 버리게 된다는 고전적 서사가 <사라진 반쪽>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스텔라였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을 철저하게 위장하고 과연 그것이 탄로 났을 때, 감당할 수 없을 후폭풍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사는 것을 선택했을까? 작은 실수 하나에도 후회와 번민으로 고민할 게 뻔 한데 스텔라 같은 결정을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스릴이 현실이 된다면 또 그만한 공포도 없을 것 같지만 말이지.
과연 브릿 베넷의 <사라진 반쪽>은 책장을 넘길수록 몰입도가 배가되는 작품이 분명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치밀한 서사 빌드업으로 캐릭터들에게 맡겨진 미션들을 부여해서 수행하게 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소설의 주인공들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동반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용서와 화해를 도모한다. 그리고 그것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우리의 삶을 살아내게 될 것이다. 대단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