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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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을 거의 두 달에 걸쳐 읽었다. 만날 하는 말이지만, 책 사기는 줄이고 그전에 사둔 책들을 읽어야 하는데 둘 다 쉽지 않은 미션이다. 그래서 읽다만 책들부터 하나씩 완독해 가는 프로젝트에 올해 중점을 두기로 했다.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이 출발점이었다.

 

내가 읽다만 지점은 정확하게 철도 공무원이자 역장을 역임한 주인공이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열거하고 반추하기 시작하기 직전까지였다.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이자 화자는 유년 시절에 늘 자신감이 없었다. 아버지처럼 풍채도 좋지 않았고, 요즘 말로 하면 아싸 정도였지 않나 싶다. 그에게 탈출구는 바로 공부였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 좀 하면 누구에게나 환영받기 마련이다. 이제 공부라는 학업으로 성취된 학벌은 개인의 성공을 위한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어려서부터 정해진 코스를 뛰는 경주마처럼 그렇게 경쟁에 내몰린 셈이다. 여튼 주인공은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다 청춘 시절 약간의 일탈도 경험하게 되는데, 한동안 시인 행세도 한 모양이다. 이야, 소설가도 아니고 시인이라 대단한 걸 그래.

 

그러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절 체코에도 철길이 깔리자 미래는 철도에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그쪽에 투신한다. 철도 공무원으로 출발해서 어느 역장의 딸과 결혼해서 자신도 결국 역장이 되기도 했다. 전쟁 시절(아마도 1차 세계대전)에는 민족을 위해 황제에 반대해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기도 한다. 후술하는 부분에서는 그러다 잡히면 반역죄로 교수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말을 언뜻 던지기도 한다. 그러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은퇴해서 살다가 죽게 된다는 그런 아주 평범한 이야기다.

 

, 문제는 글을 쓰는 와중에 화자는 진짜 여러 가지 자아들과 대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소설 <평범한 인생>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화자는 분명 평범한 자아였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라는 개인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모습들이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형성한다는 거다.

 

기본 베이스는 평범한 자아가 등장한다. 그 다음에는 억척이로서 철도 공무원과 역장이 되기 위에 사회에서 고군분투한 내가 있다. 하지만 내면의 갈등을 촉발하는 상이한 존재인 우울증 환자가 있다. 하긴 이 세상 삶이 언제나 그렇듯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다.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은가 항상 좋을 수는 없다가 진리다. 그렇게 계속되는 삶의 순환이 내 삶에 질서를 만들고,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 세 존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아온 청년은 시인 행세를 하던 시절에 화자가 쓴 시에 감명을 받았다며 그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간청한다. 야자나무에서 탬버린 소리가 들린다고 했던가. 화자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에 했던 말들을 우리가 과연 기억할 수 있을까? 아마 나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남긴 유산들의 백래시가 올 때도 있는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든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든. 화자는 자신에게 애초에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걸 깨닫고 부리나케 후퇴했다.

 

열렬한 체코 민족주의자로 변신해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던 영웅으로서의 모습은 어떤가. 여기서 나는 카렐 차페크의 그들에 대한 일종을 비판의식을 읽을 수가 있었다. 어떤 투철한 목적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대의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 그냥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지불식간에 형성된 시대정신에 편승하게 됐던 게 아닐까. 물론 그런 것들이 훗날에 역시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였으리라. 만약 체코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서 독립하지 못했다면 그의 그런 행동이 영웅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소설 <평범한 인생>을 읽으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내 삶의 질서와 상이하게 다투는 자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바로 이런 게 문학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순하게 책을 읽고 또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아주 조금이라도 나의 삶에 대해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간과 비용을 동원해서 책을 읽는 게 아주 효용이 없지 않나 싶다. 한 스푼 더 얹자면, 개인적 발전 내지는 성장까지도 할 수 있다는 아마 더 바랄 게 없으리라.

 

결국 책에서 만난 상이한 자아들의 투쟁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아 그리고 보니 거지도 있었지. 영웅, 시인, 거지, 낭만주의자 그리고 아내의 헌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엉터리 남편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내 삶의 질서를 고착시키는 그런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들이 몰려오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절판된 카렐 차페크의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삶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다른 책들도 빨랑 번역이 되어 나오면 좋겠다. 어수선하고,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어 좋았다. 역시 힐링에는 책만한 것이 없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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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11 1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힐링에는 책만한게 없는거 같아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좀 어렵기는 했지만 😅

레삭매냐 2022-03-11 13:30   좋아요 2 | URL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

저도 쩜 어려웠습니다. 지금
내가 무얼 읽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
니다. 그래도 다 읽어서 스스
로에게 대견하다고 ㅋㅋ

고저 힐링에는 책이닷!

mini74 2022-03-11 1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으려고 사놓기만 하고 ㅠㅠ 매냐님 보니 생각납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2-03-11 13:37   좋아요 3 | URL
저도 사서 바로 한 절반
정도 읽고 나서 내삐 두
었다가 어제 잡아서 쭈악
다 읽었답니다.

책은 고저 바로 다 닐거야
하는가 봅니다. 고고씽~~~

페넬로페 2022-03-11 15: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신차리고 다시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내가 산 책은 뒤에 읽어도 도서관 희망도서는 꼭 읽자고 결심하는데 이 책도 아직 읽지 않고 있네요.
조금 어려운 책인가봐요.
근데 그런 책이 생각할 거리는 많이 주는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03-11 17:05   좋아요 2 | URL
참으로 죽비 같은 말씀입니다 -
저도요...

어려운 책일수록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가 봅니다. 그래도
어려운 책들은 쩜...

얄라알라 2022-03-13 2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 달 동안 천천히 나눠 읽으시면서, 지난 번 읽다만 지점을 정확하게 기억하시는 레삭매냐님!

저는 어제 밤에 읽다 만 소설, 오늘 다시 읽을 때 잠시 헤맸거든요.

차곡차곡 사두신 책 완독하시는 프로젝트
그 역시 미니멀리즘, 멋진 도전이십니다

레삭매냐 2022-03-14 09:23   좋아요 2 | URL
어제 책방에 쌓인 책들 정리
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정말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ㅠㅠ

그래서 다시 안볼 책들이랑 기타
책들은 팔거나 내다 버리거나
그러고 있답니다.

욕심을 덜어내야지 싶습니다.

추신. 이러면서도 책은 계속해서
사대고 있답니다 냐하 ~ 노답
인생이네요.

그레이스 2022-03-15 08: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른쪽 주머니, 왼쪽 주머니 ... ㅋㅋ
어딘가 있는데 찾다가 포기상태입니다.

레삭매냐 2022-03-15 13:46   좋아요 2 | URL
차페크의 그 책도 있었지요 ^^

다시 한 번, 세상은 넓다랗고
읽을 책들은 차고 넘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뒷북소녀 2022-03-31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똑같은 부분에서 읽기를 멈췄다가 최근에 다시 읽었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