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에스테의 언덕길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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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스가 아쓰코 여사의 책들을 읽었나? 지난달에는 5권의 책들을 섭렵했다. 대미는 가장 최근에 나온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이었다. 코르시카 서점 이야기는 나름 재밌었는데, 보다 본격적인 작가 삶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이번 책에서는 무언가 동어반복과 가정사의 나열로 좀 관심이 시들해진 느낌이다.

 

표제작에서는 왠지 작가의 오기가 발동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움베르토 사바, 이방인이 이탈리아어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겠냐는 일종의 비아냥을 남편 페피노의 친구에게 들은 작가는 결국 움베르토 사바의 활동 무대였던 트리에스테를 찾는다. 원래는 작고한 남편과 함께 했었어야 했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왠지 모를 지식인의 오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파리와 로마에서 유학한 일본 출신 지식인은 이탈리아 지식인의 지적을 수용하지 않는다. 나도 충분히 배운 사람인 만큼, 그들만큼 움베르토 사바의 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나라면 그냥 그렇지 뭘 했을 텐데. 사람마다 어떤 사안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니 그럴 수 있겠지 하고 넘어가야 하나. 네이티브가 아닌 사람이 그 나라에서 나고 자라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알고 있는 사회, 문화적 요소들을 후천적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남편 페피노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고 난 뒤, 저자는 결국 이탈리아를 떠나 일본으로 귀국한다. 문득 나를 작가에게 대입해 본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하고. 오기로라도 그곳에 남아서 무언가 성취를 이루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주변에 지인들도 많고, 특히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같은 이들과의 교류도 할 수 있는데 말이지.

 

일본 출신의 부유한 저자는 이탈리아 프롤레타리아 계급 철도원의 아들 하지만 '일급 지식인' 주세페 리카와 결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밀라노에 신혼집을 차린 그들에게 가난은 변수가 아닌 상수였다. 젊은 시절의 스가 아쓰코 여사는 어쩌면 그걸 낭만이라는 포장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가난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저자는 소소한 서사를 확장시켜 나간다. 스가 여사가 만약 귀족 가문으로 시집가서 넘사벽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누가 관심을 가졌을까? 그냥 살롱에서나 가능한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개미취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결국 시어머니와 더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한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내가 아는 꽃이나 나무가 다른 나라에서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걸. 그리고 시어머니의 작은 텃밭이 전후 곤궁했던 이들 채소나 푸성귀를 직접 재배해서 가족의 식탁에 올렸다는 이야기는 거의 전설 같이 그렇게 다가온다. 어제 보령의 석탄박물관에 가서 본 이제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풍로에 대한 설명을 꼬맹이에게 해주니, 이해는커녕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더라.

 

리카 패밀리의 비극에 대해서도 저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증언한다. 촉망 받던 맏형이 전후 병으로 죽고 누이도 죽었다.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페피노도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 제일 못난 것처럼 보인 알도만이 살아서 자식도 낳고 잘 살았다. 알도의 아들이 카를로 그리고 그의 아내가 실바나였다. 아니 내가 왜 이 집안 식구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 있는 거지.

 

막내로 집안 형제들을 잃은 알도는 아들 카를로가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랬지만, 어디 자식들이 부모의 바람대로 성장하는 적이 있었던가.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군대를 나와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어라, 어딘가 우리나라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네.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알도는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이탈리아 정예부대라는 알프스 부대, 아니 낙하산 부대에 들어갔다가 다리 부상을 당해 얼렁뚱땅 그렇게 제대하고 야간 경비원이 됐다. 외국 출신 큰어머니 입장에서 왠지 많이 부족한 조카에 대한 단상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애잔하기도 했다.

 

평생 산 사나이로 사신 카를로의 외할아버지 이야기도 심금을 울린다. 어중간하게 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로브레크너는 진짜 산사람이었다. 산에서 내려 오려면 한 나절을 그리고 다시 올라가려면 두 배는 족히 걸린다고 했던가. 말수도 많지 않고, 내외도 많이 하는 그런 인물이었지만 또 속정 깊은 그런 사람이었다. 페피노를 잃은 스가 아쓰코 여사에게 자신이 직접 밀조한 그라파를 타인의 손에 의해 건네주는 모습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ㅇ우리 식으로 하자면, 오다가 주웠다 정도랄까. 그 안에 배인 정성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참 귀중한 선물이었겠지.

 

생전에 많은 자신의 글을 남기지 않았다는 스가 아쓰코 여사의 책들을 잇달아 읽은 후유증이라고 해야 하나. 소화낼 수 있는 이상을 허겁지겁 삼킨 모양이다. 다섯 권의 책들에서 중첩되는 이미지들도 있고 또 헷갈리기도 한다. 내가 이걸 여기서 읽었던가? 다른 책에서 읽었던가. 어쨌든 저자가 구사하는 이야기들을 내가 다 판단하고 수용할 수는 없겠지. 그저 내가 필요한 부분들을 받아들일 뿐. 그래서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기란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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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10-03 2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가 아쓰코는 기억나는 책은 없는데,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요.
일본 작가가 이탈리아 이야기를 써서 그런지, 중역된 책을 읽는 느낌도 조금 들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4-10-05 21:40   좋아요 2 | URL
저는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다른 책들 섭렵하고 나서 이 책
을 집게 되니 좀 질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