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런던을 가보지도 못하고 죽을 확률은 그렇다 치고 내가 사는 인근 파출소의 앞길에서 취객을 만날 가능성은 없지 않아 조금 있는 내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고 있다.
박근혜 탄핵 가결이 정기국회 마지막날 이루어진 사실을 생중계로 들으면서 치직거리는 소음을 피해 채널을 돌리느라 몇 번의 다리와 몇 개의 국도와 지방도를 달려왔던 어제 오후의 햇살.
아들이 4박5일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느라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가고 있을 때 나와 남편은, 아니 나는 남편이, 학교생활기록부를 손에 들고 운동장 옆길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모습을 차 안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진천의 어느 시골 초등학교였다.
의정부 터미널에 막 도착한 아들이 탄핵 뉴스를 봤는지 다음에 있을 포상휴가(젖먹던 힘으로 얻어낸)에 대해 걱정해왔다. 우리의 답변은 걱정 말고 있어라. 안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조지오웰이 왜 훌륭한 작가이며, 얼마나 뛰어난지는 이미 누구나 인정한다. 그리고 거기엔 차마 말할 수 없는 작가들의 부끄러움도 함께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작가란 모름지기 완벽한 인격체로 남아야한다는 강박을 경멸해왔고 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요즘와서 조금 달라졌다. 훌륭해야한다는 강박은 당연히 없다. 그러나 글을 쓸 때 자신의 타고난 기질이나 성향과 이반되는 사회적 정치적 지점과 만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는 순간 이미 끝났다고 본다. 인기있는 작가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그것이 지상최대의 목표라면 할 말 없다) 좋은 작가는 될 수 없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기에 그 어떤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조지오웰은 고민을 한 것 같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놓고. 하지만
나는 내 주장을 조금 양보해서라도 그가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적어도 그는, 무엇을 쓸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진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