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런던을 가보지도 못하고 죽을 확률은 그렇다 치고 내가 사는 인근 파출소의 앞길에서 취객을 만날 가능성은 없지 않아 조금 있는 내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고 있다.

박근혜 탄핵 가결이 정기국회 마지막날 이루어진 사실을 생중계로 들으면서 치직거리는 소음을 피해 채널을 돌리느라 몇 번의 다리와 몇 개의 국도와 지방도를 달려왔던 어제 오후의 햇살.

아들이 4박5일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느라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가고 있을 때 나와 남편은, 아니 나는 남편이, 학교생활기록부를 손에 들고 운동장 옆길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모습을 차 안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진천의 어느 시골 초등학교였다.

의정부 터미널에 막 도착한 아들이 탄핵 뉴스를 봤는지 다음에 있을 포상휴가(젖먹던 힘으로 얻어낸)에 대해 걱정해왔다. 우리의 답변은 걱정 말고 있어라. 안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조지오웰이 왜 훌륭한 작가이며, 얼마나 뛰어난지는 이미 누구나 인정한다. 그리고 거기엔 차마 말할 수 없는 작가들의 부끄러움도 함께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작가란 모름지기 완벽한 인격체로 남아야한다는 강박을 경멸해왔고 여전히 그렇긴 하지만 요즘와서 조금 달라졌다. 훌륭해야한다는 강박은 당연히 없다. 그러나 글을 쓸 때 자신의 타고난 기질이나 성향과 이반되는 사회적 정치적 지점과 만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는 순간 이미 끝났다고 본다. 인기있는 작가는 될 수 있을지 모르나(그것이 지상최대의 목표라면 할 말 없다) 좋은 작가는 될 수 없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기에 그 어떤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조지오웰은 고민을 한 것 같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놓고. 하지만 나는 내 주장을 조금 양보해서라도 그가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적어도 그는, 무엇을 쓸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진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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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0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6-12-10 11:33   좋아요 2 | URL
군대 첫휴가 나온 아들. 맛있는 거 해주고 하고 싶은거(노는 거?) 하라고 돈 주는 것보다 어려운 게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4박5일이면 뭘해요. 얼굴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요. 부모형제는 뒷전이고ㅠㅠ친구들 만나러 다니느라..
의정부에서 또 버스 타고 들어가야하는 곳이더라구요. 완전 최전방은 아니고요.
춥긴 해도 견딜만한 날씨예요. 주말 잘 보내시길~^^

2016-12-10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6-12-10 11:41   좋아요 2 | URL
파리 런던 가고싶어도 못가는 사람이 어디 저뿐이겠어요. 어딜 가느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도요. 일러주신 앗제(금시초문입니다만..) 작품, 꼭한번 찾아볼게요.
맞습니다, 해외여행 못간다고해서 기죽고살고 싶진 않아요. 기죽을 게 따로 있지 고작 그런 걸로 기죽을 필요는 없지요. 님의 이런 속시원한 워딩. 정말 좋습니다^^

서니데이 2016-12-13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고달수(고백수라고 해서 미안.^^;)씨도 이제 어른스러운 얼굴이.^^
컨디션님댁 고양이들은 사진 잘 찍어주시나 봅니다.^^
컨디션님 좋은밤되세요.^^

컨디션 2016-12-13 01:27   좋아요 2 | URL
고달수도 알 거예요. 자기의 또다른 별칭이 고백수라는 것을요.^^
얘네들 사진 요즘같은 겨울이나 되니 그나마 찍어주는 거예요.ㅎㅎ 저야말로 백수나 다름없게시리 겨울 방콕생활을 하다보니 고양이 둘 털 날리는 거나 감상하고 있어요.ㅠ
서니데이님도 좋은 꿈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