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월요일인데, 융단폭격을 당하는 것처럼 몰려드는 일거리가 장난이 아니다.  어려운 시대에 바쁜 것은 좋은 것이지만, 아무튼 아침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  오후도 거의 저물어가는 지금에서야 겨우 한숨 돌리고 주말에 읽은 책을 정리하기 위해 들어왔다.  


마중물이 되어준 책이 두 권이다. 워낙 쉽고 빨리 읽히는 책이라서 아무런 부담없이 쭉 읽어내고, 그 덕분에 힘을 얻어서 다른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는데, 독서행위라는 것도 여느 다른 취미들처럼 분명히 지칠 때가 있기 때문에 만화책과 함께 이런 가벼운 재미를 주는 책들도 종종 읽곤한다.  물론 이들을 폄하하거나 순전히 어떤 쉬운 독서로만 여기는건 절대 아니고, 다만 상대적으로 무겁고 복잡한 책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뽕구라 같은 책은 아닌 작품들은 하나씩 구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친구의 스케줄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자영업자인 나름대로의 업무강도와 업무 외적인 일에 대한 부담이 늘 있어, 이것도 그리 만만하게 여길 수는 없다.  일례로 첫 2년 동안은 다음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는 일요일밤을 보냈지만, 이제는 일요일밤이 되면 다가오는 한주의 업무량과 일정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독일어로는 모르겠고, 영어로는 Magic Mountain이라는 이 책, '마의 산'은 말 그대로 나에게는 마성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작년 2월 말경에 그때까지 반 조금 넘게 읽은 이 책을 과감히 덮고 다시 시작하는 출정식(?)을 신고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한 해가 다시 돌아오고도 3주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이번의 시도에서는 거의 다 읽고 마지막 8-90페이지 미만까지 갈 수 있었는데, 어느 시점에 또다시 책을 놔버려서 머릿속에 남은 내용의 구성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고, 이를 억지로 한번 끝내버리면 아주 오랜 시간동안 다시 손에 들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어제 저녁때 이 책을 다시 reset해버렸다.  확실히 두 번째 읽을 때의 느낌은 처음보다 나았기에 세 번째 읽게 되는 이번에는 더 깊은 reading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성서도 아니고 왜 자꾸 다시 읽게 되는건지 알 수가 없어서 묘한 공포감 같은걸 느끼게 된다.  나도 한스나 요양원의 다른 환자들처럼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돌아오기를 반복하게 된 것인지의 여부는 사실 모르겠지만, 우연히도 그렇게 등장인물들의 행보를 따라가는 독서행각이 우습기도 하다.  과연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다시 일하자.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5-03-17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딱딱한 책들 읽다가 지칠땐 저도 가벼운 책들 보는것으로 한숨 돌리곤해요.


<마의 산> 하아...오늘 아침에도 책장에 꽂혀 있는 마의 산을 가져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다른 책을 가져왔어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한번 중간에 덮고 나니 좀처럼 다시 손이 가질 않네요.

저도 이만 일하러..^^

yamoo 2015-03-17 16:29   좋아요 0 | URL
<공중그네> 저두 정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라부는 제가 정말 많은 웃음을 선사해 줬습니다..

<마의 산>은....지루해서 읽다가 디져부렀습니다~ㅜㅜ

transient-guest 2015-03-17 16:53   좋아요 0 | URL
오쿠다 히데오는 비교적 최근에 접한 작가인데,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게 역시 지칠때 읽기 좋은 듯 합니다. `마의 산`은 일단 다 읽어야 무엇인가 할 얘기가 생기겠지 싶네요. 일단 작가양반의 스타일이 매우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게 역시 어렵네요.

해피북 2015-03-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가끔씩 묵직한 책을 읽다보면 기분 전환을 위한 책이 필요하더라구요

마의산 세번째 도전은 꼭 성공하시길 바래요 ^~^

transient-guest 2015-03-17 16:54   좋아요 0 | URL
곧 다시 시작할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좋겠네요.ㅎ

Alicia 2015-03-1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tran님이 마의 산을 정복하신 이야기를 꼭 듣고 싶네요. ㅋㅋㅋ 언젠가 페이퍼에서도 마의산을 언급한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고 하셨잖아요. ㅎㅎㅎㅎㅎ
마중물 독서가 필요하긴 한데 저는 요즘 의욕도 없고 책이 통 손에 잡히질 않아서 문학수 기자의 클래식 강의를 듣고 있답니다. 지기님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밑줄그어 올려주시는 걸 가끔 읽는데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가벼운 독서, 늘 꿈꾸는 거지만 제 독서는 항상 진지하고 조금은 무거운 듯 해서 걱정이예요. ㅠ

transient-guest 2015-03-17 16:56   좋아요 0 | URL
정말 여러번 `마의 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요..ㅎㅎ 그런데 책을 사들인 2012년에서 지금까지 결국 한번도 완독을 하지는 못했네요. 문학수 기자님의 강의를 듣고 사서 읽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도 좋았고, 최근에 나온 책도 꽤 좋았습니다. 늘 reference할 수 있는 책 같은데, 겉멋도 없고 뭐랄까 거품을 싹 거둬낸 알찬 책 같습니다. 독서를 오래 가져가는 방법은 역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ㅎ

다락방 2015-03-1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개님과 게스트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어쩐지 [마의 산]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네요? 책 검색 들어가봅니다. 훗.

yamoo 2015-03-17 16:3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마의 산 읽다가 지루해서 디져부렀어요~ 것두 3번씩이나...토마스 만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 젤루 재밌었던 거 같아요...근데, 뭐...토마스의 소설은 소설이 아닌 교양서 같아서...서사가 정말 지루합니다..네..

transient-guest 2015-03-17 16:58   좋아요 0 | URL
작가님께서 읽고나면 멋진 리뷰가 나오겠지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ㅎㅎ

yamoo님: 토마스 만의 소설은 확실히 서사가 길어서 깊이 들어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듯 합니다. `마의 산`은 정말 힘이드네요..

icaru 2015-03-17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껏 살면서 마의 산을 완독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 성장소설 이야기가 나오면, 성장소설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토마스만의 마의 산이 있다고들 하고요..
시시종종 도전 의지를 불태우지만 요양원 생활만 재독삼독하다가 만 1인입니다.;;

다락방 2015-03-17 10:39   좋아요 0 | URL
아니, iacru님까지...
아, 정말 완독에의 욕망이 솟네요. 불끈불끈. ㅎㅎ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3-17 16:59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이번에도 요양원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절망할 듯..ㅎㅎ 계속 읽다가 어떻게 하면 환자를 오래 keep하면서 쥐어짜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일어날 듯 합니다.ㅎ

다락방님: 꼭 완독하시길! 너무 어렵고, 길어서 집중도 그렇고, 일단 한번에 다 읽기가 쉽지 않네요.ㅎ

붉은돼지 2015-03-1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십여년전에 작심하고 세계문학전집 읽을 때 마의 산 읽은 기억이 납니다. 내용은 가물~~무슨 병원에서 환자들끼리 어쩌고 저쩌고 하던 세기말적인 분위기... 그런 기억만 어렴풋이...그때는 범우사 세계문학전집이었는데요. 죄와 벌이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소설을 무슨 도닦듯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transient-guest 2015-03-18 01:16   좋아요 0 | URL
일단 내용이 너무 길고, 작가 특유의 서사도 그렇고 쉽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세번째 읽는 것이니까 내용이 좀더 잘 파악되고, 따라서 의미를 더 잘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ㅎㅎ 저도 도를 닦듯이 읽게 될 것입니다.

cyrus 2015-03-17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넘기 힘든 문학의 산이 토머스 만의 <마의 산>과 조정래의 <태백산맥>일 겁니다. ^^

transient-guest 2015-03-18 01:17   좋아요 0 | URL
태백산맥은 오히려 참 쉽게 읽었는데, 마의 산은 너무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