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에너미 - Public Enem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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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영화까진 아니더라도, 올해의 캐릭터 정도는 충분히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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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에너미 - Public Enem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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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에 대한 미리니름일 수 있습니다.)



몰락해 가고 있는 영웅을 바라 보는 것은 많이 마음 아픈 일이긴 하지만, 늘 흥미롭다. 그가 가고 있는 이 길의 끝에는 파멸만이 존재한다는 점,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임에도, 그것을 향해 조금씩 돌진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움과 함께 비장한 아름다움을 준다. 동료도 모두 잃고, 주위에서도 그를 버리고, 경찰이 마지막까지 그의 숨통을 죄어 올 때,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한 탕 크게 하여 여기를 뜨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일을 벌이기 직전, 몇 안 남은 동료가 그에게 묻는다. "넬슨이 너무 조급해하는 것 같지 않아?" 조급해하는 사람을 쓰지 않는 것, 그가 가진 철칙 중에 하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넬슨'이 기어이 사고를 치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만다. 이 때 존 딜린저(조니 뎁)는 단호하면서도 중간중간 살짝 주저하는 빛을 보인다. 물론 그는 빠른 속도로, 단호한 몸놀림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의 눈은 중간중간 초점을 잃고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철칙을 무너뜨린 대가를 치르는 것인가. 그는 약간 후회하는 듯도 보이지만, 살아남은 동료들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탈출한다. 여기서의 조니 뎁의 연기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사실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건,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 존 딜린저가 파멸의 길로 조금씩 들어서고 있는 순간이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기 보다는, 그 파멸의 길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라고 말해야 할 터이다. 그가 감옥에 갇힌 동료들을 탈출시켜 멋지게 은행을 터는 영화의 첫머리부터 그는 이미 파멸의 길에 들어섰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영화 속 존 딜린저의 애인 빌리(마리안 코티아르)는 존 딜린저에게 말한다. 당신에게는 두 가지 길 밖에 없다고 말이다. 잡히거나 죽거나. 그러나 그는 코웃음친다. 경찰은 너무 멍청해서 나를 잡을 수 없어. 그는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그랬다. 그건 허세였다. 잡히고 나서 웃으며 인터뷰를 하며, 경찰과 어깨동무를 하는 것, 또는 은행을 털며, 은행여직원을 인질로 잡아, 그녀에게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주는 것 같은 것들 말이다.

허세는 아마도, 불안의 산물일 것이다. 대부분 불안한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게 마련이다. 주가가 2000선에 곧 도달할거야...2000이 뭐야, 곧 3000까지도 갈 거라고...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는...내기해도 좋다.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엄청나게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주식에 투자한 그 많은 돈이 날라가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하고 말이다. 존 딜린저도 불안했을 것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같은 갱들의 도시 시카고, 이 시카고에서 멋지게 한 탕 해서 어디론가 뜰 수 있을까, 그 전에 잡히거나 죽거나, 역시 둘 중의 하나로 끝나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계속 호기를 부린다. 그래서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그의 허세가 점점 커지는 것은, 역으로 그를 둘러싼 불안이 점점 커지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말이다. 당신의 옆자리에 혹시 존 딜린저가 앉아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른쪽을 보시고, 이번에는 왼쪽을. 이런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광고가, 불켜진 극장에서 흘러나오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옆을 차례로 돌아볼 때 미동도 하지 않고 꼿꼿이 앞을 보고 있는 존 딜린저를 수많은 관객 한 가운데서 잡는 샷이나, 경찰서에 들어가 '존 딜린저 특별수사팀' 사무실로 유유히 걸어들어가, 야구경기에 관심이 몰린 틈을 타서 사무실을 천천히 돌아보며 "지금 몇 대 몇이죠?"라고 묻는 존 딜린저를 뒷 모습으로 잡는 샷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그는 저 순간에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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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 감독의 몇몇 영화들, <히트>나 <콜래트럴>, 그리고 이번 영화 <퍼블릭 에너미> 같은 작품들을 보면 멋드러진 총격전 장면들과 더불어 위의 존 딜린저와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온다. 내 생각에는, 그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위에서도 말해듯이, 불안해 보이면서도, 불안해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에 있다. 꼭 불안이 아니더라도, 어떤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과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양가적인 감정이 미묘하게 교차하며 드러나는 것이 캐릭터의 매력을 가중시킨다는 말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마이클 만 감독의 역량이 출중해서라기 보다는 그가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가 대체로 그런 것과 맞닿아 있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드는 캐릭터들은 대체로 자존심이 무척 강하고, 일종의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약한 것에는 약하게, 강한 것에는 강하게 대할 줄 아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인물들은 대체로 커다란 위험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주변에서는 점차 고립되고, 파멸은 거의 예정되어 있다. 이 거대한 자기 확신이 예정된 파멸로 달려가 그것에 부딪힐 때, 그 파장 속에서 어떤 것들이 드러나는가. 그것을 마이클 만은 조용히 잡아낼 줄 안다. 인물의 그림자에 난사된 총알들이 박히는 것으로, 혹은 경찰에게 잡혀가는 여자를 구하러 갈까말까 망설이는 아주 짧은 멈칫거림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왠지 마이클 만은 이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기꺼이 다른 캐릭터를 희생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존 딜린저의 곁에는 여러 동료들이 따르지만, 이 중에 특별히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캐릭터는 없다. 그저 동료들은 존 딜린저의 곁에서 폼나게 있다가, 한 명씩 조용히 사라져갈 뿐이다. 존 딜린저의 애인인 빌리도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다. 남자를 위해, 혹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남성의 눈에 비친 여성으로서만 말이다. 아마도, 이와 관련해서 가장 큰 희생자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다른 한 축인 퍼비스 형사(크리스천 베일)일 것이다.퍼비스 형사는 전체적으로 존 딜린저의 가장 큰 적수이면서, 영화의 나머지 한 축으로 보이지만(혹은 한 축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별로 인상적으로 기억나는 부분이 없다. 존 딜린저와의 몇 번의 맞대결에서는 약간은 머뭇거린다, 혹은 우왕좌왕한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래서 그랬을까. 존 딜린저의 마지막 말을 여자에게 전하는 폼나는 역할도 그의 몫이 아니다. (어쩌면 이는 크리스천 베일의 어떤 부분과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다크 나이트>의 스포트라이트는 그가 아닌 히스 레저의 몫이었으며,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에서도 그는 주인공이면서도 그다지 주목받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무려 '존 코너'였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다른 하나의 장점은 그 캐릭터들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거리나 의상, 자동차, 극장과 같은 물질적인 재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서 존 딜린저와 같은 사악하지 않은 반 사회적 영웅에 열광하는 것, 혹은 경찰이 그를 공공의 적으로, 즉 '퍼블릭 에너미'로 정하고, 그를 잡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시작부에 경찰이 과학적인 수사방법을 통해서 그를 잡을 것이라고 공표하지만, 경찰이 결국 활용하는 방식은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약을 투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여자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하는 등의 결국 '그 방식'이었다.)이 어떤 사회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가를 돌이켜 생각하게 한다. 존 딜린저가 잔인한 폭력을 사용하지 않아서, 혹은 은행은 털어도 은행 고객의 돈은 털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민중들은 응원했다? 글쎄. 은행 돈이라는 것도 결국 고객들의 돈이고, 그는 어쨌든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아마도, 이는 대공황 시기 사람들의 심리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는지를 살펴보는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마이클 만은 그런 시대 속으로 우리를 성큼 들어서게 만든다. 꼭 실감나는 총격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마이클 만은 총격전에 특화된 감독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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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8-16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조니뎁을 좋아하는 딸이랑 보고 왔어요.
역시 멋진 캐릭터에 멋진 영상이었어요. 좀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존의 불안과 허세, 어린시절의 상처로 약한 면이 있는 사람이더군요.
어떤 큰일을 두고 꼭 세살때 죽은 어머니의 흑백사진을 열어보더군요.
그 얼굴이 사랑하는 연인 빌리랑 꼭 닮았구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맥거핀 2009-08-17 20:56   좋아요 0 | URL
네..중간에도 아버지 얘기도 나오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던 사람인듯 싶어요.
물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요.
중간 이전에는 영화가 좀 지루한 감이 있는데,
막판에 터뜨리기 위해서 중간에는 좀 쉬어가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한 30분간은 아주 좋았습니다.

따님이랑 영화를 많이 보시는군요.
개인적으로는 따님이 부럽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문화적인 체험을 많이 하는 것, 좋죠.^^
 
해운대 - Haeun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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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를 가장한 다른 이야기. 강조된 휴머니즘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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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 Haeun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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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미리니름 있습니다.)




이렇게 소위 '대박이 나고' 있는 영화들은 영화를 보기 전에, 많은 글들과 이야기들과 곁가지 내용들을 접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가. 왠지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보고 난 이후에는 이전에 보았던 리뷰들에 나의 감상이 영향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괜히, 몇몇 부분들에는 반박을 하고 싶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CG의 어설픔이라든가, 배우들의 연기의 미숙함, 특히 박중훈 연기의 미숙함을 지적하는 것과 같은 내용들이 그렇다. 글쎄..개인적으로는 CG 부분은 생각보다 의외로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재난영화에서 CG는 큰 부분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의 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CG가 얼마나 정교하고 실감나게 제작되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타이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설혹 약간 어설프게 제작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하고, 핵심적인 포인트를 살짝 다른 곳에 돌릴 수 있게 함으로써, CG를 영화를 받쳐주는 하나의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도 그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영화 <해운대>의 CG는 그것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적절히 잘 분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박중훈의 연기는...여러 부분에서 약간 어색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몇 가지의 변명을 해줄 수는 있다. 먼저 첫째는, 사투리 연기가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점. 강한 사투리의 사용은 그것의 적절한 사용만으로도 가끔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그는 이 영화에서 이러한 이점을 활용할 수 없는 몇몇 캐릭터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둘째는, 그의 이 영화에서의 역할은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는 점. 더구나 그러한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서처럼 몇 분간의 장황한 설명을 해야하는 방식이었다면, 좋은 연기를 보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쓰나미의 발생을 설명하는 그 몇 분간의 씬이 과연 필요한 씬이었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사실 하려던 이야기는 이러한 것이 아니었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듯 하다. 하려던 이야기는 이 영화를 보고 들었던 몇 가지 의문이었다. 먼저 자잘한 의문부터. 둘로 딱 나눠져 있는 이 영화의 이상한 구조부터 말이다. 이 영화는 관객 누구나가 느끼듯이, 딱 두 개의 영화를 붙여놓은 듯한 구조로 되어있다. 해운대 사람들의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이야기인 전편과 쓰나미가 몰아닥친 후편의 이야기. 물론 많은 영화들이 이야기가 나뉘어진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코미디 영화들도 거개가 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 처음의 웃음 코드와 나중에 감동 코드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들은 대개 '코드'만이 그렇다. 이 영화 <해운대>는 갈매기가 차창에 머리를 박던 그 순간부터 갑자기 '페이스 오프'한다. 그리고 몰아닥친 쓰나미 속에 앞의 모든 이야기와 캐릭터의 특징들은 의미가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 영화의 이런 어색한 전후반의 연결은, 다른 영화들에서 제기될 틈이 없는 질문을 굳이 하게끔 만든다. 이것이 한 영화로 굳이 묶여져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라는 질문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실 이 영화가 재난 영화인가라는 의문이 살짝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는 재난이 초반부에 몰아닥친다. 그리고 재난이 일어난 이후에 그 중심 이야기는 그 재난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투쟁,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애, 서로가 살겠다고 벌이는 싸움, 그리고 결국 그것에의 극복이 주된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러닝타임 반이 지나가도록 재난을 숨겨놓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여러 갈등을 최대한 끌어올려놓고 쓰나미로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한다. 재난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나약함, 그것을 넘어선 인간목숨의 중요함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애의 고결함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다른 재난영화와는 달리 이 이야기는 그 이전에 인간의 본성이나 나약함 같은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해버리고, 쓰나미가 몰아닥치자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위대한 인간애를 발휘하고 모든 갈등은 그 속에서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나는 이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재난 영화라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여러 다른 재난 영화의 클리셰들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는 여타의 영화들과 상당히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

아마도 그것을 여는 하나의 실마리가 윤제균 감독이 이 영화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윤제균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연의 중요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적을 만들지 말고 착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죽일 듯이 싫어한 사람도 자기를 구해줄 수 있고, 또 싫어한 사람을 자신이 구할 수도 있으니까. - <씨네 21 714호> 윤제균 인터뷰" 그래서 김밥할머니는 김휘(박중훈)의 아이를 헬기에서 기꺼이 받아주고, 변기를 뚫어줬던 사내는 엘리베이터에서 유진(엄정화)를 구하고, 작은아버지(송재호)는 만식(설경구)를 구하고, 형식(이민기)은 기꺼이 자일을 끊고 떨어지는 것이다. 즉 재난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나약한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라, 고귀한 인간애와 인연을 강조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라고 했을 때 여러 갈등은 영화의 전반부에서 쓰나미가 몰아닥치기 전에 이미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갈등은...몰아닥친 쓰나미 속에서 고귀한 휴머니즘으로 상쇄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휴머니즘의 일방적인 강조는 가끔 지나쳐보이기도 하며, 조금은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호텔 옥상에서 헬기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에게 2차 쓰나미가 몰아닥치는 장면. 이 장면에서 노약자들이 올라타 있는 헬기구조대에 사람들이 올라타는 것을 군인들이 통제한다. 그러나, 이 장면이 실제라면 가능할까. 2차 쓰나미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고, 지금 저 헬기에 올라타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것이 거의 확실할 때, 군인들이 그것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군인들마저도 살기 위해 매달리고 따라서 헬기가 뜨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더 현실에는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휴머니즘을 강조하기 위해 이 비현실적인 장면을 고수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합동분향 장면에서 유독 죽은 구조대원들의 사진만 집중적으로 비춰주는 것, 그리고 구조대원들의 고귀한 희생만 강조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다른 것에 있다. 이 휴머니즘의 강조라는 것이 진정 이 영화의 주제인지, 감독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인지 조금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화의 몇몇 시퀀스들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영화의 감초 캐릭터인 동춘(김인권)이 떨어지는 컨테이너 박스들을 피하는 장면. 이 장면은 마치 게임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것처럼 처리되어 있으며, 뭔가 약간 우스꽝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팬티를 반쯤 내리고 있는 여자가 떨어지는 물에 놀라는 장면들 같은 것. 물론 몰아닥치는 쓰나미의 상황에서 여러 다양한 삶과 죽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왜 많고많은 삶과 죽음의 엇갈림 속에서 굳이 그러한 장면을 선택하여 보여줬을까. 한 인간의 생과 사가 오가는 이러한 장면들, 이러한 내용들이 왠지 하나의 유희로서 혹은 오락으로서 제공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러한 장면들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이유는 감독의 인터뷰로도 뒷받침된다.


- 쓰나미가 진행된 뒤에 벌어지는 2차적인 재난에 대한 아이디어가 관건이었겠다.
= 맞다. 변압기 시퀀스는 장마 때 감전사로 죽은 사람들이 실제로 많다는 사실에 기인한 거다. 호텔방에서 물이 빠지면서 아이가 밖으로 떨어지는 장면도 재난영화에서 못 본 것 같아서 넣었다. 컨테이너 장면은 사실 더 재밌게 갔다. 컨테이너가 박히는 건물이 호텔이다. 그때 안에서 반라의 남녀가 피하다가 박스와 바짝 붙게 되는 장면이 있다. 여자가 뭔가 해서 고개를 내밀 때, 두 번째 콘테이너 박스가 날아와 변을 당하는 거지. 다 찍었는데, 너무 장난스럽다고 해서 뺐다.

- 사실 아쿠아리움 장면을 보면서 또 다른 시퀀스가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수족관에서 빠져나온 상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지….
= 그 장면도 있었다. 실제 찍었다. 화장실에 가는 희미의 친구가 물을 헤치고 나오는데, 상어한테 물리는 장면이다. 역시 너무 웃기다고 해서 뺐다. 그런가 하면 건물 앞에 빽빽이 모여 있던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지는 장면도 있었는데, 같은 이유로 삭제했다. 전체적으로 10분 정도를 자른 것 같다. 다 코믹스러운 장면이다. 재난의 긴장이 몰아쳐야 하는데,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아서…. (웃음) 나중에 DVD에는 다 넣을 거다.

(<씨네 21 714호> '윤제균 인터뷰' 중 부분 발췌)



과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인간애, 인연..그런걸까. 잘 모르겠다. 위의 몇 가지 장면들을 보면서, 그리고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자꾸 아리송하게 된다. 인간의 죽음을 장난스럽게 묘사하는 것과 과도한 휴머니즘의 강조. 휴머니즘의 강조는 무엇을 덮기 위한 것일까. 혹은 무엇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일까. 자꾸만 아리송해지는 그것의 상관관계들. 우리는 그것을 단지 상업영화의 최대치이자, 그것의 한계에 불과하다고만 말해야하는 걸까.


p.s. 그래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은 동춘(김인권)이 어머니의 사진을 붙잡고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의 옆에 놓인 '용감한 시민상'이 과연 무엇을 위한 용감한 시민이었냐고 묻고 있는 그 장면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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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8-12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동춘의 어머니와 물에 둥둥 떠다니는 신발, 그리고 용감한 시민상,
그걸로 울면서도 우쭐해하는 동춘, 감독이 김인권을 가장 신뢰하는 게
아닌가싶은 정도로 역할이 크더군요.

맥거핀 2009-08-13 01:3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의 리뷰 당선도 축하드립니다.^^
(하하..상금이 줄어서 상당히 불만..;)

확실히 이번 영화에서는 많은 분들이 김인권의 호연을 말하는 것을 볼 때,
이번 영화의 숨은 승리자(?)는 김인권이 아닌가도 모르겠어요.
나쁜 면을 가지고 있지만, 나쁘게 느껴져서는 안되는 캐릭터였는데,
그런 면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플라스틱 시티 - Plastic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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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릭와이의 불교 수행을 따라가는 것은 강렬하나, 꽤나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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