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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조선일보 기사를 잠깐 봤다. 평소같으면 지나칠 신문이지만, 책에 관계된 기사라 잠깐 눈길이 갔다. '한국인의 모순...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 문학상 원해"' (제목부터가 조선일보스럽다.) 지하철에서 인쇄매체를 들고 있는 사람이 (토익책, 전공서적, 신문 등등 합쳐서) 수백명 중에 12명 뿐이라는 이야기(왜곡과 과장이 심한 조선일보지만, 내 경험상 딱히 부인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성인의 연간독서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만 해도 독서율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특히 요즘에 들어서는 책이 잘 읽히지가 않는다. 어디를 이동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책 한 권이라도 가방에 들어있어야 안심이 되는 편이지만, 요즘에 들어서는 그 안심을 직접 꺼내 확인해보는 일이 드물다. 대신 반쯤 홀린 듯한 눈으로 멍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새로나온 기사가 없는지 뒤적거리고 있다. 스마트폰에서는 계속 놀랄만한 이야기들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예를 들어 2월 17일자 중앙일보 뉴스 '박 대통령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내야할 규제만 살리도록 전면 재검토"' (오마이갓. 만약 9.11후 미대통령이 "건물을 무너뜨려" 어쩌구 하는 발언을 했으면 미국에서는 어땠을까. 아무래도 그분은 생각보다 교묘한 것 같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이 정부의 기본 전략은 아무래도 '쓰레기에다 더 큰 쓰레기를 끼얹어 예전 쓰레기를 잊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거기 낚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몰아닥치는 쓰레기들에 정신이 팔려 가방 속의 안심을, 혹은 의식을 잃어가는 중은 아닐까.
책이 잘 읽히지가 않는다. 그런 와중에서도 책에 대한 욕심은 줄지 않아서, 쌓아놓은 책들의 탑은 점점 높아만가고, 도무지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서평단 도서를 두 권 또 추가하는 것이 잘하는 짓일까.) 다만, 가까운 세계에 조금 더 발을 디디고 있는 이야기들을 보고 싶다. 어딘가 붕 떠 있는 듯한 이야기들은 거기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데, 혹은 다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카인>과 <그들>이 그랬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또 너무 가까운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의 책들은 영 당기지가 않으니...나는 또 여전히 그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미적미적거리고 있나보다. 의식을 잃어가면서,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신을 차려야지, 정신을!)
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문학동네
아무래도 윤대녕의 소설을 첫등에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윤대녕의 소설이라고 하면, 아주 오래전 어느 지방 소도시에 있을 때 윤대녕의 신작을 사러 돌아다니던 일이 떠오르는데(인터넷서점의 당일배송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고릿적 시절 얘기다), 온 시내를 다 돌았음에도 결국 책을 구하지 못하고, 대신 윤대녕 소설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쓸쓸한 모양의 도서관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그 곳에 갇혀있었던 것 같은 사서에게 윤대녕의 예전 소설을 빌려 거기에 만족해야 했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윤대녕의 이 책을 읽으면 그 때의 책을 구하러 다니던 열정이 되살아날까.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창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책 소개를 보니 흥미가 생겨서 골랐다. (책 소개로 미루어보건대) 윤대녕의 키워드가 '쓸쓸함'이라면 아마도 이 작가의 키워드는 '예민함'인 것 같다. 하긴, 지극히 내성적인,이라는 말은 지극히 예민한,이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고, 예민함이란 소설가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길, 김원일, 문학과지성사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어떠한 것은 계속 남아있다. 이제 칠순을 훌쩍 넘긴 노작가가 소구하는 아직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풍경. 그 풍경 속에 조용히 들어가봐도 괜찮을 것 같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 모신 하미드, 문학수첩
이 책은 전적으로 작가의 전작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읽고 받았던 강렬한 인상에서 고르게 되었다. 책 소개를 보니 이야기를 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언뜻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확실한 것은 책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눔의 세계 : 알베르 카뮈의 여정, 카트린 카뮈, 문학동네
휘성이 부릅니다. '안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