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 대부분의 정보는 텔레비젼, 라디오 같은 방송 매체나 책, 신문같은 인쇄물에서 얻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발간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스크린'이라는 월간지는 국내뿐만 아니라 헐리우드 등 외국의 영화정보를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창구였었다. 물론 '로드쇼', '시네마', '키노'같은 다른 잡지도 있었지만 '스크린'이 제일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타잡지와 비교해서 대중성과 전문성이 고루 분배되어 있어 가장 잘 팔리는 잡지였다.
'스크린'은 1984년 3월에 창간이 되었다. 창간호 표지는 브룩 쉴즈가 장식했는데 당시 여배우의 인기 정도를 생각했을 때 소피 마르소 정도나 경쟁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이 잡지는 부록이 인기였는데 이 잡지가 제공한 국내외 내노라하는 인기 배우들의 브로마이드와 유명 영화의 포스터는 친구들 방에 한 장 정도는 붙어 있었다. 철 지난 '스크린' 잡지를 찾아 중앙시장 뒤쪽에 주욱 늘어선 헌책방 거리를 헤집고 다녔던 장면이 지나간다. 보이는 족족 사들였고 가끔 일본 '스크린'잡지라도 발견하면 그 날은 되게 기분이 좋았었다. 내 방에 구석에 쌓여 있었던 그 잡지들,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필요할 때 요긴하게 활용되었을 텐데... 쩝.
오늘 볼 포스터 유형은 '잡지 스타일(maqgazine style)'이다.
언제나처럼 포스터부터 감상하자.


[파리, 텍사스, 1987], [베를린 천사의 시, 1993]으로 유명한 빔 벤더스 감독의 미스터리 느와르 [해밋, 1982]과 존 트라볼타, 제이미 리 커티스가 출연한 [퍼펙트, 1985]의 포스터다. 두 영화 모두 영화 제목이 동명의 잡지 제목처럼 표현 되었다. 두 포스터의 차이점이라면 처음 것은 '아트' 스타일이고 두번째 것은 사진 스타일이라는 정도이다.
[해밋]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야 겠다. 영화 제목 '해밋'은 포스터에도 다소 힌트가 나와 있는 것처럼 [몰타의 매], [그림자 없는 남자(The Thin Man)]의 작가 새뮤얼 대실 해밋 (Samuel Dashiell Hammett, 1894.5.27.~ 1961.1.10.)의 이름이다. 그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과 여러개의 단편작품을 남겼는데 소설 속에서 샘 스페이드(Sam Spade), 닉 과 노라 찰스(Nick and Nora Charles) 라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을 창조하였다. 역사상 가장 멋진 미스터리 소설을 쓴 작가로 그리고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다면적인 캐릭터의 강조, 동기에 대한 현실주의적 묘사, 날카롭고 위트있는 대화가 특징이라고 한다. 특히 [몰타의 매]는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으로 참여한 동명의 영화도 아주 유명하다.
또 다른 미스터리 작가 조 고어스(Joe Gores, 1931.12.25.~2011.1.10.)는 새뮤얼 대실 해밋과 그가 창조해 낸 여러 소설들을 뒤섞어 독특한 미스터리를 만들어 냈고, 빔 벤더스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포스터에 표현된 책은 가판대에서 싸게 파는 '페이퍼 북'을 연상케 한다. 주로 짧은 탐정소설이나 코믹북의 주요 판매 형태가 이런 형태였는데 영화의 소재와 아주 잘 어울리는 포스터라고 생각된다. 아쉽게도 이 영화 아직 못봤는데 꼭 보고싶은 영화중에 하나다.
[퍼펙트]의 포스터 속 책은 아무리 봐도 월간지 아니면 주간지 같다. 건강, 마약, 섹스 따위가 언급되는 걸로 봐서 남성 잡지 쯤 되지 않을까. 영화는 그닥 주목받지 못한 채 잊혀졌지만 젊은 존 트라볼타와 제이미 리 커티스의 건강미 넘치는 모습만으로도 마음에 드는 포스터다.
이런 류의 포스터 몇가지 더 보고 가자. 생각보다 이런 스타일은 많다. 제이 캠피온의 [홀리 스모크]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케빈 스미스의 [몰래츠]는 수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코믹스를 활용했다.

잡지를 포스터에 활용하는 또 다른 예는 아래의 포스터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잡지 또는 책의 한 지면을 포스터의 배경으로 삼는 방법인데 위 포스터, 리차드 해리스가 공연한 [마지막 말(The Last Word) , 1979]이 대표적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이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1976]도 이런 유형에 속하지만 배경이 아주 희미하게 처리되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책 표지가 아니라 내용을 배경으로 처리한 포스터의 영화는 대개 사회 고발성 영화가 많다.

과거 포스터는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첫단추였다. 요즘처럼 홍보수단이 많지 않던 시절, 잘 만든 포스터 하나는 사람을 극장으로 유인하는 수단이었다. 물론 포스터가 좋다고 영화까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할 수 없는 얘기다. 그래서 더욱 포스터 자체를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나 보다. 오늘 본 잡지 스타일 포스터는 대부분 마음에 들지만 영화적으로는 '글쎄'인 것이 여럿이다. 제일 좋은 것은 영화도 재밌고 포스터도 멋진 경우일텐데... 요즘 포스터 중에서 인상적인 것이 드물다. 영화제작 수준은 많이 높아졌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의 포스터는 눈에 띄지 않으니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